Case Study: STX그룹

대형 M&A 성공, 10년 새 100배 성장 장기불황 예측못해 매각실패 공중분해

183호 (2015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STX그룹은 창업 후 초기 잇달아 대형 M&A를 성공시키며 급속한 성장을 이룬다. 특히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의 인수는 10년 만에 회사를 100배 이상 성장시킨다. 하지만 아커야즈의 인수와 다롄 조선해양종합생산 기지 구축은 이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그룹의 유동성을 크게 악화시킨다. 그룹 회생을 위한 자구 노력으로 STX에너지와 STX OSV 매각, STX팬오션과 STX다롄 매각을 시도하지만 불리한 협상조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룹은 와해의 길을 걷게 된다. 초기 성공적인 M&A로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낸 STX그룹이었지만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시점에서 사업매각을 위한 M&A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그룹의 와해를 막지 못한 것이다. STX그룹의 사례는 구조조정을 위한 M&A가 성장을 위한 M&A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실증한다고 할 수 있다.

 

편집자주

필자의 요청으로 실명 대신 가명을 썼습니다.

 

 

서론

 

2001년 외환위기로 위기에 처한 쌍용중공업을 인수하며 출범한 STX그룹은 대동조선(STX조선해양), 산단에너지(STX에너지), 범양상선(STX팬오션)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불과 10년 만에 매출 및 자산규모 약 30조 원을 기록하며 재계 12위의 대기업으로 올라섰고, 강덕수 회장은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성장도 잠깐이었다. 2008년 리먼 사태와 함께 몰아닥친 경제위기 상황이 조선, 해운산업의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면서 2013년 그룹이 와해되는 비운을 맞게 됐다. 경제위기 직전 진행됐던 대규모 투자에서 비롯된 유동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STX그룹은 창업 후 초기 10년간 이뤘던 M&A를 통해 급속한 성장을 했다. 강 회장은시너지가 큰 관련 산업 진출을 통해 조선·해운 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과감하게 이를 실행해 나갔다. 선박엔진 및 부품 사업을 하다 그 수요처가 되는 조선산업에 직접 뛰어들게 됐고, 배를 만들다 보니 다시 조선의 수요산업인 해운에 관심이 생겼다. 여기에 에너지 자원 개발 분야, 배 제작 산업 등까지 영역을 확대했고 차례차례 기업을 인수해 나갔다. M&A를 통해 STX그룹은 결국 조선기자재, 엔진제조, 선박플랜트 건조, 자원개발, 해상운송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이루게 됐다.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 등 3건의 성공적인 M&A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STX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또 다른 M&A와 투자를 준비했다. 2007∼2008년에 진행된 유럽의 크루즈선 제조업체인 아커야즈(Aker Yards) 인수와 중국 다롄에 대규모 조선해양 종합생산기지를 구축한 일이 그것이다.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시행한 이 계획은 불행히도 투자 직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맞게 된다. 조선해운산업이 급격한 경기불황에 접어들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결국 이 두 건의 투자는 STX그룹 유동성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

 

조선해운산업의 불황이 예상외로 장기화되고 그룹 유동성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STX그룹은 M&A를 통해 탈출구를 모색했다. 그룹 내 가장 우량한 기업이었던 유럽의 STX OSV STX에너지를 매각하고, STX팬오션과 STX다롄 매각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성장을 위한 그룹 초기의 M&A와 달리 매각을 위한 M&A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룹의 어려움을 알게 된 협상 파트너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고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결국 STX OSV STX에너지는 제값을 받지 못했고, 팬오션과 다롄은 매각 자체가 불발됐다.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친 STX그룹은 결국 와해되고 말았다.

 

STX그룹의 성공과 실패 과정은 주요 M&A 사건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5개의 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쌍용그룹을 인수해 STX그룹으로 탄생한 출범기,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의 성공적 M&A를 통한 고속성장기,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아커야즈의 인수와 다롄 조선해양종합기지 투자를 진행한 글로벌 리더로서의 모색기, STX OSV STX에너지를 매각하며 그룹 회생을 도모했던 자구 노력기, 그리고 생존을 위해 팬오션과 다롄의 매각을 시도했으나 불발로 그친 생존모색기가 그것이다.

 

 

이 중 초기의 M&A, STX그룹의 기반을 다진 쌍용중공업 인수와 수직계열화 달성 및 고속성장을 이룩한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 인수는 10년 만에 회사에 100배의 성장을 가져온 성공적인 M&A였다. 불황으로 어려워진 기업을 인수해 조기에 턴어라운드 시키고, 다시 증시에 상장시켜 기업가치를 높였다. 반면 2007년과 2008년에 이뤄졌던 아커야즈의 인수와 다롄 조선해양종합생산 기지 구축은 이후 그룹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무리한 투자였다. 경제 위기와 관련한 여러 조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큰 규모의 투자를 해외에서 진행했다.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음에도 시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한편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되고 회생을 위한 자구노력으로 이뤄진 STX에너지와 STX OSV의 매각, 팬오션과 다롄의 매각 시도는 구조조정을 위한 M&A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모든 협상조건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초기 성공적인 M&A로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 낸 STX그룹이었지만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시점에서 사업매각을 위한 M&A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그룹의 와해를 막지 못했다. 구조조정을 위한 M&A가 성장을 위한 M&A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실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래에서 각 기간의 주요 내용들을 검토해 보면서 STX그룹의 초반 M&A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와 구조조정을 위한 M&A를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쌍용중공업 인수를 통한 STX그룹의 출범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쌍용그룹은 해체 위기를 맞게 됐다. 그중 쌍용중공업은 한누리 컨소시엄에 매각됐고 CFO를 맡고 있었던 강덕수 당시 전무는 쌍용중공업의 CEO로 발탁됐다. 급격히 몰아닥친 경기불황에 쌍용중공업의 주가는 당시 담배 한 갑 가격도 안 되는 350원이었고 여기에 더해 부채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회생 작전이 시작됐다. 강 전 회장은 우선 보유하고 있던 스톡옵션과 사재를 털어 20억 원 정도의 돈으로 쌍용중공업의 지분을 사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회사 이름도 STX로 바꿨다. STX는 시스템(System) 경영을 기반으로, 테크놀로지(Technology)를 핵심역량으로, 탁월함(Excellence)을 구현한다는 의미였다. STX로 새출발한 엔진사업은 신속히 안정되기 시작했고, 엔진부품 및 기자재사업을 분리해 STX엔파코(STX 메탈)를 출범시켰고, 엔진영업 부문은 별도로 분리해 상사역할을 하는 ㈜STX가 설립됐다. 이렇게 해서 STX그룹이 탄생했다.

 

M&A를 통한 수직적 통합과 이를 통한 고속 성장

 

엔진사업이 안정되면서 STX그룹은 M&A를 통해 꾸준히 성장한다. 2001년 대동조선을, 2002년에는 산단에너지를, 2004년에는 범양상선을 인수하며 기업의 덩치를 급속하게 키워나갔다. M&A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회사의 성장을 일군 강 회장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M&A를 통한 전 사업 부문 간의 시너지 창출, 그리고 인수 후의 기업가치 상승이 그것이었다. 여기서 기업가치 상승은 단순히 M&A를 성공적으로 했을 때의 결과만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역량 강화가 가능한 기업끼리 통합함으로써 기업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는 의미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선박엔진사업으로 시작한 STX그룹이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을 인수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STX그룹은 배를 직접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대동조선을 인수했고, 배를 만들다보니 해운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돼 범양상선을 인수했고, 여기에 에너지 자원개발까지 한다면 에너지를 실어나를 수도 있고 선박엔진을 활용해 에너지 자원을 추출할 수 있음을 알고 산단에너지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조선기자재, 엔진제조, 선박플랜트 건조, 자원 개발, 해상 운송까지 이어지는 STX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이룰 수 있었다.

 

2001 STX그룹이 설립된 후 첫 번째 M&A였던 대동조선 인수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STX그룹이 갖고 있었던 M&A의 원칙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던 STX그룹은 수요처인 조선소를 직접 갖게 된다면 시너지가 커질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 진입도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대동조선은 100% STX에서 엔진을 구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8년 법정관리를 받게 되면서 STX의 대동조선에 대한 납품길이 막혀버렸다. 대동조선 주채권자인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관할 법원이 대동조선의 매각공고를 내자 강 회장은 주요 고객이었던 대동조선을 인수하기로 했다. STX그룹을 비롯해 국내 2곳과 해외 3곳이 최종제안서를 제출했다.

 

당시 대동조선은 주인이 5번이나 바뀐 회사로신통치 않은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업계에서는 회사 인수가격을 500억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 회장은 입찰서에 이의 두 배인 1000억 원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측근들이 이런 높은 배팅 가격에 회의적일 때 강 회장은대동조선의 현재가치가 아니라 미래 가치에 투자를 해야 한다며 반대파들을 설득했다. 강 회장은 STX그룹이 대동조선을 인수했을 때의 시너지를 고려하면 그 가치는 500억 원이 아닌 열 배, 스무 배가 된다고 본 것이다. 지금 인수 가격을 낮게 써 대동조선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당시 STX그룹에는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판단에서 영업수주를 확대해 미래에 받을 매출채권을 담보로 해서 자산유동화채권 770억 원을 발행하고, 경쟁자들이 생각하는 금액보다 두 배에 달하는 1000억 원의 과감한 배팅을 했다. 결과적으로 대동조선은 20억 원의 차이로 STX그룹에 가게 된다. 업계의 예상과는 달리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경쟁사 한 곳이 980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의 벌크선사였던 범양상선 인수 때도 마찬가지였다. 범양상선 역시 법정관리 후 공개매각이 진행 중이었다. 이때는 국내외 13개의 기업이 인수전에 참여했다. 선박엔진과 조선 등 제조업에서 다시 조선의 수요산업인 해운·물류업에서 기회를 엿보는 기업들이 많이 참여했다. 당시 범양상선 인수대금은 4000억 원을 넘었으며, 매출 규모도 기존 STX그룹과 맞먹는 정도여서 STX그룹으로는 무리한 도전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강 회장은 이때도 인수 기업의 미래 가치와 시너지를 고려했다. STX그룹이 범양상선을 인수할 경우 조선사업과 연계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건조물량을 확보할 수 있으며 STX에너지에 필요한 유연탄 장기 운송권 등을 확보해 그룹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범양상선 인수는 해운-조선-엔진-조선기자재로 이어지는 해운 조선산업의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의미했다. STX조선해양의 안정적인 건조물량 확보와 범양상선의 선단 확충을 통한 경쟁력 강화도 기대할 수 있었다. , 범양상선과 STX조선해양의 연계를 통해 해운과 조선을 그룹의 양대축으로 획기적 발전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번 인수작업 때도 강 회장은 시장에서 평가되는 가격이 아닌 그 기업 고유의 미래가치를 봤다. 당시 경쟁자들의 평균 제시가격보다 20% 많은 4199억 원에 범양상선을 인수하고, STX팬오션으로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곧이어 싱가포르 증시 상장으로 외국주주를 확보하면서 글로벌 해운선사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이렇듯 2001∼2004년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 등 3건의 M&A 6000억 원 정도의 자금을 투입해 성사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STX그룹은 비약적인 성장을 구가하게 된다. STX조선해양은 인수하자마자 경영정상화를 이뤄냈고 불과 2년 만에 한국거래소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무려 17년간의 국내 최장수 법정관리를 기록했던 범양상선도 STX팬오션으로 재출범한 이후 급격한 성장을 한다. 인수 당시 19000억 원이었던 매출액이 2008년에는 550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커진다. 이러한 성장을 기반으로 국내 기업 최초로 2006년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직상장하게 되며 2007년에는 국내 증시에도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쌍용중공업을 포함해 초기 M&A를 성공시키고 턴어라운드시킬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인수가격에 있다. STX그룹은 인수기업 정보를 면밀히 분석했고 불황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기업을 결정할 때 기업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지금 상황이 안 좋은 이유가 본질적인 이유인지를 살펴본 후에 인수작업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기업 가치 분석 역량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 조선기자재 및 엔진, 선박플랜트, 자원개발, 해상운송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달성한 것도 호황과 맞물려 도움이 됐다. 이와 더불어 강 회장이 적극적으로 영업 물량을 수주해오면서 회사는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었다.

 

 

M&A를 통한 글로벌 리더로서의 모색: 아커야즈 인수 및 다롄 투자

 

대동조선, 범양상선 인수를 통해 해운 조선업의 수직적 계열화를 완성하고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STX그룹은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조선업의 경쟁관계를 뒤흔들 큰 포석을 준비하게 된다. 바로 세계 최고의 크루즈선 제조업체인 아커야즈의 인수다. 아커야즈는 노르웨이, 핀란드, 프랑스를 포함해 8개국에서 20개 야드를 운영하고 있었고 크루즈선, 오프쇼어(Off-Shore), 해양극지 기술 분야의 최고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STX그룹은 아커야즈를 인수하게 되면 국내 빅3 조선업체들(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아직 이루지 못한 크루즈선 분야에 진출할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글로벌 생산체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글로벌화와 첨단기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이룰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STX그룹은 아커야즈 인수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유럽의 텃세는 만만치가 않았다. 2007 12 EU가 반독점 심층조사에 착수하면서 합병이 되더라도 조사결과에 따라 합병조건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아커야즈 2대 주주였던 하버야드는 집요하게 경영권 분쟁을 야기했다. 유럽에 STX그룹이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유럽의 최신 기술을 빼앗기기 싫다는 명목 아래 임직원과 노조도 심하게 반대했다. 강 회장은 직접 나서서 노르웨이, 핀란드, 프랑스의 주요 조선소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직접 설득하기 시작했다. 4개의 노조대표들과 일일이 만나 STX그룹이 어떤 회사이고 이번 인수가 아커야즈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설명했고, 마침내 인수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아커야즈 인수는 10년도 채 되지 않은 한국의 신생기업이 27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을 인수한 것으로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조선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국내 조선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이기도 했다.

 

조선업의 사이클을 무시한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쳤고

결국 STX그룹은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된다.

 

아커야즈의 인수는 또한 한국과 중국, 유럽에 걸쳐 조선산업의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유럽에서 아커야즈의 인수가 완성되기 직전인 2007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조선해양 종합생산기지를 착공하고, 2008 12월 첫 번째 선박을 진수하게 된다. 다롄 조선해양기지는 170만 평의 STX조선소, 45만 평의 주거단지, 54만 평의 협력단지에 100% 단독 투자로 진행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중국 정부는 50년간의 토지 사용허가뿐 아니라 STX조선소가 위치한 장흥도까지 6차선의 주도로를 건설해 주는 등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2010 28000명을 고용하는 거대 조선소가 완성됐고 여기에 더해 아커야즈를 전격 인수함으로써 STX그룹은 한국, 중국, 유럽에 이르는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상선에서 여객선, 해양플랜트, 군함, 크루즈선까지 건조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찾아왔다. 이런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직후인 2008년 가을 리먼그룹 파산과 함께 전 세계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조선해운산업은 급격한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2008 5 11440에 도달했던 해운운임지수(BDI) 2011 5 1474까지 떨어지고, 신조선가지수 역시 경제위기 이후 34%가 하락했다. 신조발주는 위축되고 지급 조건은 악화돼 대금 지급방식이 선수금 비중이 낮고 60% 이상의 자금이 선박이 완성돼 인도되는 시점에서야 지불되는 소위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이 일반화되게 된다. 결국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과 2008, 중국 다롄에서의 대규모 투자, 유럽에서의 대규모 M&A는 그룹의 유동성을 악화시켰다. 또 조선업의 사이클을 무시한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쳤고 결국 STX그룹은 그룹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된다. 장기불황을 예측하지 못한 대규모 투자와 M&A가 그룹 해체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유럽을 잇는 조선산업의 생산기지 구축이라는 시도 자체는 별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강 회장은 중국 조선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그들의 인프라와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활용해 중국 조선업체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 스스로 호랑이가 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강 회장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그들의 대규모 단지를 활용해 기초 소재부터 건조에 이르는 전 공정을 한 곳에서 수행해 물류비용을 줄이는, 세계 최고의 대규모 종합 조선 단지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크루즈 사업은 국내 조선 빅3도 넘보지 못했던, 유럽이 독보적 우위를 갖고 있던 분야였다. 아커야즈는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조선그룹이자 세계 최고의 크루즈선 건조회사였고, 미래 유망 분야로 평가되던 해양 및 극지기술을 보유한 회사였다. 이런 회사를 인수함으로 STX 유럽조선소의 원천기술과 STX 선박건조기술, 조선기자재 공급 능력이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세계적 조선업체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구가했던 STX그룹에 유럽과 중국에서의 동시다발적 대규모 투자는 무리였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커야즈 인수의 또 다른 문제는 PMI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수와 동시에 홀딩스 컴퍼니 격인 STX유럽을 만들고 회사를 STX OSV, STX핀란드, STX프랑스 등 3개 법인으로 분리해 기업가치 상승을 도모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자존심 강한 프랑스와 북유럽의 경영자들을 본사에서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STX그룹에서는 피인수기업의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안정감을 주기 위해 기존 핵심 임원들을 유임시켰다. 유럽에서는 핵심 임원이라 하더라도 긴 휴가나 개인 시간을 꼼꼼히 챙긴다. 유임 결정을 내렸으면 그들을 믿되 상황을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통제하지 못한 점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핵심 임원 가운데 한 사람은 STX 측에서 파견해 현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국내 기업 간의 PMI도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고려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PMI에 대한 명확한 전략과 상황에 따른 대응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STX는 의도했던 크루즈사업 및 극지 기술의 이전, 진해 야드 및 다롄 야드와의 시너지 창출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해양지원선사업 중심의 STX OSV는 양호한 경영실적을 보였지만 크로즈가 주 사업이었던 STX핀란드와 STX프랑스는 유럽 경제의 침체와 함께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STX그룹의 와해와 함께 STX OSV STX핀란드는 유럽 기업에 재매각됐다.

 

 

그룹 회생을 위한 자구노력 -STX OSV STX에너지 매각

 

2008년 리먼 사태와 함께 몰아닥친 경제위기 상황이 조선, 해운산업에 미친 영향은 다른 어떤 산업에서보다도 심각했다. 선박의 발주가 급감하고 해운운임지수가 급락하는 등 2006년과 2007년에 결처 최고의 호황을 기록했던 조선업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불황의 사이클로 치닫고 있었다.

 

2008년까지 급속한 성장을 기록했던 STX그룹 국내 법인의 매출액이 2009년에는 158000억 원으로, 2008 172000억 원 대비 처음으로 감소했다. 그룹 전체의 영업이익도 2008 13000억 원에서 2009 3800억 원으로 줄었다. 2010년에는 매출 182000억 원, 영업이익 6700억 원의 양호한 실적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2011년 말부터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로 촉발된 유럽의 경제위기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으로 확산되면서 유럽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조선, 해운산업의 어려움 또한 가중됐고 2012년 중에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에 들어갈 것이 전망되고 있었다.

 

M&A를 통해 수직계열화를 달성했지만 조선해운사업의 장기불황이 대두되자 조선해운업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된 사업구조가 경기변동의 영향을 쉽게 받는 취약한 구조라는 것을 STX그룹은 절감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STX그룹은 2011년 여름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전문가 집단으로 TF를 구성해 심도 있는 인수 검토를 진행했다. 일각에서는 STX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만한 자금능력에 회의를 갖기도 했지만 STX그룹은 이미 아부다비의 국부펀드와 수차례의 미팅을 통해 공동 인수를 위한 구체적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도체 기업인 글로벌 파운드리의 주주이기도 했던 아부다비의 국부펀드는 반도체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STX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다면 2대 주주로 참여하면서 총 1조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할 것을 검토했다. STX그룹은 이 펀드의 참여가 확정되면 STX팬오션을 매각해 추가 자금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당시 시가로는 6000억 원에서 1조 원까지의 자금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이처럼 하이닉스 인수 검토는 단순히 매물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정교한 전략적 고려에 의해 이뤄졌다. STX그룹이 조선해운 중심의 사업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부다비의 국부펀드가 참여를 포기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된다.

 

하이닉스 인수가 무산된 후 자체 구조조정을 위해서 강 회장은 STX OSV의 매각과 STX에너지의 지분매각을 결정한다. 앞서 아커야즈를 인수해 STX유럽을 설립한 후에 산하 몇 개 기업을 분리했다. 그중 STX OSV는 노르웨이 야드를 중심으로 해양지원선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싱가포르에 상장돼 기업가치가 1조 원 정도 됐다. STX에너지는 구미와 반월에 열병합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안정적으로 내고 있는 회사여서 동종 에너지기업의 EBITDA멀티플을 고려할 때 역시 1조 원 정도의 총 가치를 예상하던 기업이었다.

 

그러나 매각 작업은 용이하지 않았다. 매각 상대방이 그룹의 자금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했다. 2012년 상반기 내에 마무리할 계획이었던 매각이 계속 지연되자 채권단에서의 압력은 강해졌다. 2012년 연말로 예정된 회사채 상환날짜가 다가오면서 어쩔 수 없이 불리한 조건으로 매각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OSV는 이탈리아 선사에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약 6700억 원에 매각을 완료했고, 에너지는 43%의 지분을 3600억 원에 일본 투자회사인 오릭스에 넘겼다. 그런데 에너지의 지분매각 계약 때, 그룹의 EOD(Event of Default) 사태가 발생할 경우 재평가를 통해 지분율을 재산정하도록 하는 refixing 조건을 받아들이게 된다. 시간에 쫓기던 협상팀은 그 안에 들어 있던 독소조항의 의미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다음해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에 들어가면서 바로 경영권 상실의 위험에 처하게 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STX에너지의 잔여 지분 전체를 헐값에 매각해야 했다.

 

M&A를 통해 급성장을 이뤘던 STX그룹이 그룹의 위기상황을 맞이해 이번에는 M&A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했지만 2012년 진행됐던 OSV 매각과 에너지 부문 매각은 당초 예상보다 기간도 길어지고 금액도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 됐다. 그룹 내 알짜기업을 매각했지만 정작 매각자금은 회사채 등의 결제에 다 쓰이고 실제 운영자금의 부족은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그룹 생존을 위한 시도 -STX팬오션 매각과 STX다롄 매각 시도 및 불발

 

2012년 말까지 OSV와 에너지의 매각이 진행됐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STX그룹은 그해 12 STX팬오션의 매각을 발표하고 공개 입찰을 추진했다. 당시 시가를 기준으로 5000∼7000억 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함께 그룹에서는 2012년 하반기부터 STX다롄의 투자유치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다. 2013 1월에는 중국 국영조선회사인 중국선박공업집단(CSSC, China Southern Shipbuilding Corporation)과 합작투자를 위한 MOU를 체결하게 된다. 강 회장과 후원밍(胡問鳴) 사장과의 미팅이 이뤄졌고, 실사가 진행됐으며, 실사 후 6월까지 합작계약을 종료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미 다롄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돼 있었기 때문에 다롄 매각을 통해 많은 자금유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STX다롄의 주주인 ㈜STX STX조선해양이 입게 될 막대한 투자자산 손실과 지급보증으로 인한 손실 등을 고려할 때 다롄이 투자자를 찾게 돼 파산을 면하게 된다면 그룹 전체에 미칠 영향은 상당한 것이었다. 이렇듯 2013년 그룹 회생을 위한 자체 구조조정의 성패는 STX팬오션 매각 및 STX다롄 투자유치의 성사 여부에 달려 있었고, 강 회장과 STX는 그룹의 명운을 걸고 이 두 가지 과제를 추진한다. 하지만 결국 불발로 그쳤고, 그에 따라 급속히 그룹 해체의 길로 가게 된다.

 

먼저 STX팬오션의 매각과정을 살펴보면 팬오션의 공개매각이 진행 중이던 2013 1월 대한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고, 해운업의 회복은 더욱 지연되는 조짐을 띠게 된다. 이에 따라 국내외에서 팬오션의 인수에 관심을 보이던 투자자들이 인수를 포기하게 되고, 팬오션의 공개매각작업은 난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렇게 되자 STX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팬오션을 직접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STX그룹뿐 아니라 시장에서도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때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계법인의 실사 이후 산업은행은 결국 STX팬오션 인수의사를 철회했고, STX팬오션은 2013 6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편 STX다롄의 처리와 관련해서 STX그룹은 CSSC와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고, 지분 51%를 매각하는 내용의 MOU 2013 1월 체결한 후 상반기 중 본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실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채권은행과의 자율협약 체결이 진행되면서 다롄으로의 자금지원이 중단되고, 생산 공정이 중단되는 등 다롄의 사정은 급격히 악화된다. 이렇게 되자 시간이 급할 게 없는 CSSC 측에서는 당장 협상을 진전시키는 것보다는 시간을 갖고 STX그룹의 자율협약 추진과정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STX OSV STX에너지 매각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은 STX그룹의 편이 아니었다. STX다롄의 상황이 가동중단과 협력업체의 점거 등 악화일로를 걷게 되면서 다롄시정부, 중국 채권은행, 한국 채권은행 간의 미팅이 진행되고 다롄의 회생을 위한 방안들이 논의됐지만 입장 차이로 인해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결국 다롄을 살리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2012년부터 강 회장과 STX그룹은 그룹의 핵심 알짜기업인 유럽 OSV 매각과 에너지 매각을 진행했다. 그 후 차례대로 팬오션 매각, 다롄투자유치 및 정상화 방안을 추진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이후 그룹의 주력 제조업인 조선해양, 엔진, 중공업 등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게 되고 팬오션과 건설은 법정관리, 포스텍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결국 그룹은 해체됐다.

 

 

결론

 

2001년 쌍용중공업을 인수해 출범한 이래 불과 10여 년 만에 매출 및 자산 30조 원 규모의 재계 12위 그룹으로 성장했던 STX그룹은 다롄과 유럽에의 막대한 투자 직후에 찾아온 글로벌 경제위기와 조선해운산업의 장기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성공적인 M&A는 그룹 초기 고속 성장의 주요 동인이 됐던 반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해외에서 진행했던 대규모 M&A와 투자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투자 직후 발생한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그룹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룹 위기상황을 맞이해 주요 계열사 매각을 추진했으나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구조조정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그룹 해체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듯 M&A는 그 환경과 시기에 따라 기업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기업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좋은 기업을 인수하는 것보다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 기업을 매각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M&A를 잘 활용해 성장을 이룬 기업이 M&A를 활용한 사업구조조정 및 위기극복은 실패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STX그룹이 짧은 역사를 끝으로 와해됐기 때문에 M&A를 통해 성장했지만 M&A 이후 사업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던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STX그룹에서 추진한 모든 M&A가 일괄적으로 폄하되는 것은 옳지 않다. 초기에 진행했던 4건의 M&A는 성공적이었으며 이후 신속한 턴어라운드와 재상장 등으로 기업 가치를 급속히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STX그룹은 와해됐지만 창업 초기 과감한 M&A로 급성장한 부분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산업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대규모 투자가 유동성 위기로 귀결됐지만 조선산업의 글로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과 중국, 유럽을 잇는 글로벌 3대 생산축을 이루려 했던 도전정신 역시 평가받을 측면이 있다.

 

다만 M&A를 통해 경이적인 성장을 이뤘던 강 회장과 STX그룹이 사업매각을 통한 구조조정의 시점을 좀 더 앞당기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수보다 매각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초기 M&A 때 보여준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경영위기를 맞이한 시점에서 발휘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돼 모든 협상에서 불리해지기 전에 기업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고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1. 나는 생각을 행동에 옮겼을 뿐이다, 이임광, 2009

2. 한국을 빛내는 CEO, 한국전문경영인학회, 2011

 

 

이덕진 자유기고가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