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범신

“작가는 연민 많은 사람 결핍이 상상력의 근원이다”

158호 (201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자기계발

작가 박범신이 비즈니스 리더에게 주는 교훈

1. ‘이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확신이 없으면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길을 도중에 잃어버리면 끝까지 글을 쓴다고 해도 좋은 글로 남을 수 없다.

2. 실패할 것이 확실하다면 도중이라도 접는 게 옳다. 선택의 문제다. 더 큰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더 멀리 봐야 한다.

3. 상상력은 결핍에서 생긴다. 억압, 구속, 상처 등 자신을 누르는 것에서 상상력이 발생한다. 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는 아직 행복해지지 않았고 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4. 배타적인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확고해야 하지만 그것을 퍼뜨릴 수 있다면 모든 방법을 다 이용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선정효(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작가 박범신(68) 41년 동안 40여 편의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창작에 대한 매우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아직도 쓸 게 많이 남았단다. 그는 물리적인 결핍을 느끼기 위해 고향인 충남 논산의 집필실에 내려가 글을 쓴다. 서울 자택에 사는 가족과 떨어져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아무래도 불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편한 환경은 고희(古稀)를 앞둔 작가에게 더 많은 창작 열의를 북돋는다. 그는 1980년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불의 나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1989년에 장길수 감독이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내놓은 소설 <은교(2010)>는 블로그 연재와 단행본,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렇다고 그가 늘 대중적인 인기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소설의 내용과 형식에서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했고 문단에서는 그의 작품세계가 계속 깊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1970년대 대중들과 더 가까웠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좋은 문학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해졌다. 모든 예술가는 맺힌 마음을 풀어준다는 의미에서 무당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자궁은 결핍감이다. 나는 그 결핍감을 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화정박물관에서 작가 박범신을 만났다.

 

 

작가 박범신은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를 지내다 1973 1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여름의 잔해가 당선돼 등단했다. 1970년대 주로 소외계층을 다룬 소설을 발표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79년 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0년대에는 동아일보에 <불의 나라> <물의 나라>를 연재해 큰 인기를 모았다. 1993년 문화일보에 소설 <외등>을 연재하다 절필을 선언하고 1996년 중반까지 칩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1996년 문학동네 가을 호에 중편 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도 왕성하게 창작에 매진해 소설 <촐라체(2008)> <고산자(2009)> <은교(2010)> <비즈니스(2010)> <소금(2013)> <소소한 풍경(2014)> 등을 남겼다. 대한민국문학상(1987), 원광문학상(1998), 김동리문학상(2001), 만해문학상(2003), 한무숙문학상(2005), 대산문학상(2009), 올해의 최우수예술가(2010) 등을 수상했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방송공사 이사, 연희문학창작촌 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상명대 국어교육과에서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자기 자신에게이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주제에 대한 작가의 강한 확신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방대하고 극적인 자료를 이미 확보했다고 해도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다. 작가는 소설에서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발언권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신념이 확고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중간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소설을 완성할 수 있다. 소설 <은교>에서는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은 고통스럽고 이겨내기 힘들다라는 주제를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을 잘 마무리했다. 하지만 나도 신문이나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다 중단한 적이 몇 차례나 있다. 1993년 문화일보에 소설 <외등>을 연재하다 중간에 그만뒀다. 소설을 쓰다가 도중에 그만둔 게 대여섯 번 정도다. 소설은 탐험가가 정글을 탐색해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다. 작가는 정글에서 자신만의 나침반을 들고 있다. ‘이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길을 도중에 잃어버리면 끝까지 글을 쓴다고 해도 좋은 글로 남을 수 없다.

 

 

소설을 쓰다 중도에 그만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만뒀다. 작가를 장인이라고 가정할 때 장인은 눈을 가리고 앞으로 달려가는 경주마와 같다. 장인은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자신이 가고 싶은 곳만 보고 달린다. 만일 주변을 보면서 달려가면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목표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눈을 가리고 달린다. 눈을 가렸다고 해서 장인이 길을 가는 도중에 발생하는 여러 위험 요인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감각이 목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도중에 발생하는 여러 위험 요소를 더 잘 알아챌 수 있다. 목표를 정하면 전략은 스스로 나온다. 하지만 목표가 확실하지 않으면 작가는 잔머리를 굴려서 플롯을 짜내려고 할 것이다. 작가가 왜 소설을 써야 하는지, 얼마나 간절한지에 따라서 작품은 실패도 할 수 있고 성공도 할 수 있다. 물론 목표가 확실해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잘못되면 실패할 수도 있다. 전략을 잘못 짰을 수도 있다.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소설도 연재하던 내용을 갑작스럽게 바꿀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패하는 것이다. 물론 중도에 목표가 처음과는 다른 소설로 바꿀 수 있지만 이렇게 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소설을 연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사례가 발생한다.

 

유명 작가에게 중도 포기는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모두 선택의 문제다. 또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화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외등> 1년 이상 연재했다. 3개월 정도만 더 쓰면 그만이었다. 이런저런 내용을 적절하게 섞어서 소설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말 그대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 잡다한 삶의 전략을 소설에도 적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의 평가 이전에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설을 계속해서 쓸 수 있다. 내가 현재 쓰고 있는 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보람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다. 당시 연재하던 소설을 그만두면 계약금을 돌려줘야 했다. 절필은 스스로 상업적 기득권을 반납하는 것이다. 소설 <외등>에 더 매달려서 썼다면 현실적인 문제들은 많이 해결됐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도중이라도 접는 게 더 올바른 판단이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를 원점으로 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더 큰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더 멀리 봐야 한다.

 

독자들은 어떤 소설에서 흥미를 느끼는가?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비유하면 기차에서 기관차와 객차가 떨어진 거리와 같다. 기관차와 객차의 거리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기관차는 객차를 끌고 간다. 객차에서는 기관차가 보이지 않는다. 작가와 독자가 너무 멀리 떨어지면 독자가 소설에 따라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기관차가 객차로 간다면 소설은 재미가 없어진다. 기관차와 객차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기관차가 객차를 끌고 가야 독자들이 재미를 느낀다.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지면 독자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독자의 취향에만 너무 집중하면 독자에게 함몰되고 독자가 작품에 따라오지 않는 상황도 발생한다. 한 발짝 정도만 앞으로 나가 있으면 독자들이 따라올 것이다. 사실 기관차와 객차의 거리는 작가가 소설마다 다르게 설정한다. 소설 <불의 나라>는 대중과 보폭을 맞춰가는 소설이었다. 작가는 대중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줬다. 198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억압을 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중을 위로해야 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소설을 쓸 때도 있다. 올해 내놓은 소설 <소소한 풍경>이 여기에 해당된다. 시장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소소한 풍경>은 일반적인 서사 기법을 따르지 않았다. 소설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단계로 진행된다. 그런데 소소한 풍경은 이런 사이클을 지키지 않았다. 독자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반응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작가는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고 이전의 방법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항상 쓰던 방법대로만 글을 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소소한 풍경>에는 특별한 절정이나 위기가 없다. 일반적인 서사는 처음과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중간을 넘어가면 절정에 이르게 되고 마지막에는 해결되는 게 일반적인 구조다. <소소한 풍경>은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기법을 따르지 않고 이야기 자체를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방식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 소설은 일반적으로 독자가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 이후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계속 읽어 나갈 수 있다. <소소한 풍경>은 그렇지 않다. 그냥 시적인 감수성으로 읽어야 더 잘 읽히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독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작가는 사실 독재자다. 작가는 작품에서 모든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독자들이 글을 끝까지 다 읽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게 독자를 고려하는 이유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끝까지 읽히려면 재미라는 요소를 넣어야 한다. 모든 작가는 절대 군주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하려는 말을 모든 독자들에게 옮겨놓고 싶어 한다. 소설에 재미있는 요소를 넣는 것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독자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회의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할 것인지, 마니아층의 재미를 추구할 것인지는 작가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결정한다. 재미는 보편적이지 않다. 사실 나도 보편적인 재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것으로 볼 때 이웃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나 무의식을 소설에 잘 반영한 것 같다. 사람들의 정서,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혼란스럽게 가지고 있던 사고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거기에 대한 독자의 동의를 받아내면 작가는 승리감을 얻을 수 있다.

 

 

상상력은 결핍에서 생긴다. 억압, 구속, 상처 등 자신을 누르는 것에서 상상력이 발생한다. 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는 아직 행복해지지 않았고 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떤 상황에서 생산력이 높아지나?

작가의 생산력이 높아지려면 모든 상황이 만족스러우면 안 된다. 나는 신혼살림을 쪽방에서 시작했다. 이제 자식들도 다 키웠으니 죽어도 별다른 미련은 없다. 지금 환경은 굉장히 좋아졌다. 하지만 환경에 걸맞게 내가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게는 환경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결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결핍은 자본주의가 세뇌시킨 욕망은 아니다. 영원히 살고 싶다거나 사랑을 완성하고 싶다거나 더 큰 집에 살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나는 더 멀고, 더 큰 욕망에 아직 가득 차 있다. 바꿔 말하면 나는 행복해지지 않았다. 상상력은 결핍에서 생긴다. 억압, 구속, 상처 등 자신을 누르는 것에서 상상력이 발생한다. 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는 아직 행복해지지 않았고 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세상은 자신의 그릇이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결핍돼 있다. 작가는 연민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내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작가다. 시인 윤동주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에도 고통스러워했다. 해방 이후에도 윤동주가 살았고 그에게 커다란 자동차와 집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고통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슬픈 사실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나는 계속 소설을 쓸 수 있다. 이게 상상력의 근원이다.

 

역사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자료가 전혀 없을 때도 있다. 난감하다.

소설 <고산자(古山子)>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의 생애를 그렸다. 그런데 김정호는 유령 같은 사람이다. 우리 모두 그의 이름을 알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다. 사실 김정호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양반이 아니라 중인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조선 후기만 해도 지도는 목판본이 거의 없었다. 김정호는 목판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정보를 모든 사람과 공유해야겠다는 선진적인 생각을 했다. 김정호를 취재했는데 그가 언제 죽었는지, 어떤 배경에서 목판본 지도를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야기는 머릿속에 있었지만 리얼리티를 얻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 다녔다. 박물관에 가고, 목판본도 찾고, 김정호를 연구한 지리학자인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를 만나기도 했다. 위성으로 사진을 찍어 지도를 만드는 시대에 우리는 왜 김정호를 기억해야 할까. 나는 김정호에게 실체를 부여하고 싶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그려서 훌륭하다는 논리 이외의 내용을 소설에 넣고 싶었다. 유령 같은 인물에 어떻게 실체를 붙여서 사실적으로 쓸지 고민됐다. 그래서 당시 지도를 그리려는 사람이 어떤 사회 환경에 놓일 것인지에 대해 알아봤다. 조선 후기 정치와 경제, 사회의 배경을 통해서 거꾸로 김정호의 환경은 이런 것일 것이다, 이런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정호가 위대한 것은 민주화를 꿈꾸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도는 국가만 가지고 있었다.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을 때 국가가 활용했던 게 지도였다. 김정호는 모든 정보는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한 민주화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지도를 나눠줄 수 있도록 목판본을 만들려고 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그리기 10년 전 이미 필사본 지도인동여도(東輿圖)’를 완성했다. 동여도는 필사본이라서 목판본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이 가능했다. 대동여지도에 비해 7000개가 넘는 지명을 더 수록했다. 김정호가 목판본을 만든 이유는 백성에게 지도를 보급하기 위해서다. 그는 대동여지도를 그려서 위대한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시대를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위대하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는 김정호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양반과 김정호 사이에 불화가 생겼을 것이다. <고산자>에서는 이게 주요 플롯이 됐다. 독자들이 김정호를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끼도록 내 나름대로 개연성을 가진 인물을 형상화했다. ‘내가 김정호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소설 <촐라체>를 연재했다.

문단 선배들이 두 가지 이유로 내가 포털 사이트에 소설을 쓰는 것을 말렸다. 하나는 네이버같이 누리꾼들이 많이 접촉하는 곳에 소설을 연재하면 악플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몰래 아이를 낳은 적이 없고, 부정한 돈을 받은 적도 없으며, 정부에 어떤 지원금을 달라고 신청한 적도 없다. 악플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물론 소설 자체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비판은 받아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인터넷에 글을 쓰면 작가의 품격과 이미지만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인터넷 글쓰기는 너무 저급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의 목소리를 듣고 더 욕망을 느꼈다. 60대 작가인 내가 저급한 글이 난무하는 인터넷에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퓨전 음식이 많은 인터넷 연재 소설에 박범신이 한식 정찬을 차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는 실패해도 상관이 없으니 모범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글도 더 클래식하게 썼다. 네티즌들이 저급한 글에 젖어 있다는 통설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 실패해도 이런 시도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 <촐라체> 소재를 히말라야 등반으로 선택한 것은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촐라체>는 목숨을 걸고 험난한 등정에 나선 두 형제를 주인공으로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그 뜨거움에 대한 목마름에 관한 내용이다.) <촐라체>는 주제가 독자에게 잘 전달된 소설은 아니다. 다만 저급한 판에 사뭇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독자들에게 어떤 충족감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촐라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겠지만 <촐라체>가 젊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개인 블로그에 소설 <살인 당나귀(단행본 제목 <은교>)>를 연재했다. 형식적인 파괴를 꾀했다.

작가는 새로운 문화에 계속 반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소설 <은교> e북과 아날로그 책을 동시에 출판했다. 유명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출판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새로운 문화에 배타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배타적인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게 많으면 늙었다는 증거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있는 정체성과 진정성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확고해야 하지만 그것을 퍼뜨릴 수 있다면 모든 방법을 다 이용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은 지키지 못하면서 새로운 것에 배타적인 것은 이미 늙은 것이다. 정체성과 이념을 강력하게 지키고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내 또래 사람들보다 20대 젊은이들과 말할 때 의사소통이 더 잘된다. 이것이 나의 재산이다. 나는 소설을 쓸 때 실패를 고려하지 않는다. 독자의 반응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적은 없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후회는 없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쓰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과 형식에서 파괴를 계속 시도할 것인가?

그렇다. 안전한 길을 걸으면 상상력은 나오지 않는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정신을 불온한 상태로 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의 내용을 바꾸고 기존 형식을 무너뜨린 자리에 자신만의 형식을 짓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내 방식으로 집을 짓고 싶은 것이다. 이런 욕망이 없다면 이미 늙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청년 작가. 소설 <소소한 풍경>의 경우 잘 팔리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득권을 버리고 나만의 집을 짓고 싶었다. 소설 <은교>는 환갑이 넘어서 썼는데 내가 청년과 같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사회적인 기존 양식에 굴복하면서 인생의 말년을 살고 싶지는 않다. 우리 나이로 예순아홉 살이지만 예순아홉 살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20대처럼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예술가의 가슴에는 100살 노인도 들어 있고, 10살짜리 어린이도 들어 있다. 나는 상황에 따라 필요한 나이로 살고 싶다.

 

젊은 감수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창조적 자아에는 나이가 없다. 나는 젊은 감각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도로만 걸으려고 한다면 그건 늙은이다.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스무 살 젊은이라도 늙은이다. 나이가 여든이라도 자신을 갱신하고 발전시키면 그 사람은 청년이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일부의 비난이 있더라도 어떻게 내가 더 새로워지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아주 강력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보다 늙었다. 아직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틀이 과거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안전한 길을 걸으려고만 한다. 젊은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산악인을 살펴보자. 그들은 해발 8000m의 길을 간다. 습관에 삶을 맡기는 것은 늙은 것이다. 인간은 짐승과는 달라야 한다. 안전하게 먹고사는 것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습관에서 빠져 나와서 산다는 것은 매우 생생한 경험이다. 소설을 쓴 41년을 6개월처럼 살았다. 김정호에 대한 소설을 쓸 때는 18세기 사람으로 살았다. <은교>를 쓸 때는 그 세계에서 살았다. 나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간다. 축복받은 인생이다. 예술가는 고통스럽지만 끊임없이 창작하는 것은 생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여자를 처음 만나서 첫경험을 하는 것과 같다. 습관에 매여 산다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룸살롱의 아가씨와 자는 것과 같다.

 

40년 이상 소설을 썼다.

개인적으로 글을 많이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50권 정도를 썼다. 1년에 한 권을 쓰면 200자 원고지로 800장 정도를 쓰는 것이다. 800장을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2장 정도 쓴 것이다. 15년 동안 전업 작가로 살았다. 전업 작가가 하루에 원고지 한두 장 쓰는 것은 별일은 아니라고 본다. 위대한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내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스타일은 그렇지 않다. 나는 많이 쓰는 스타일이고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스타일이다. 모든 인간은 수백 권의 소설을 쓸 수 있다. 예민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더 많이 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 기쁨, 슬픔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면 쓸 것은 무궁무진하다. 쓸 게 없어서 고민한 적은 없다. 많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몰려들면 오히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흔들리는 그림자가 내 안의 그림자를 자극할 수 있고, 울고 있는 여자를 볼 수도 있으며, 신문에서 한강에 떨어져 죽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을 무심하게 보지 않고 나에게 상처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쓸 것인가?

나는 나의 직전 작품이 라이벌이다. 현재 라이벌은 소설 <소소한 풍경>이다. 하지만 계속 소설을 쓴다는 보장은 없다. 다음에는 어떻게 <소소한 풍경>과는 다르거나 더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거의 방법만으로 소설을 쓸 수는 없다. (과거의) 나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가 초점이다. 지난 작품과 같은 게 반복된다면 그만둘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소설 쓰기를 통해 말하고 싶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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