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EMBA Field Trip Interview①: 장 클로드 라레슈 교수
편집자주
카이스트 EMBA는 매년 여름 미국 컬럼비아대와 프랑스 인시아드에서 필드트립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각 학교의 대표 교수진이 직접 참여한다. 올여름 인시아드에서 진행된 필드트립에서는 장 클로드 라레슈 교수와 란델 S. 클록 교수 등이 강의했다. DBR은 카이스트와 동행해 인시아드를 방문,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인터뷰했다. 인시아드는 유럽(프랑스)과 아시아(싱가포르), 중동(아부다비)에 각각 캠퍼스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이다.
모든 것은 관찰에서 시작됐다. 잘나가던 탄산음료가 주춤했다. 캔으로만 판매하던 기존 단위를 6개들이 묶음으로 팔면서 반짝 치솟기는 했지만 매출은 곧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탄산음료 시장이 정체되면서 알코아(ALCOA)가 타격을 받았다. 코카콜라 등 탄산음료 업체들은 알코아에서 구입한 캔 용기에 음료를 담아 판매한다. 탄산음료 판매가 부진하면 알코아에도 직접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알코아는 팀을 꾸려 조사(ethnographic research)에 착수했다. 수개월에 걸쳐 사람들이 가정에서 탄산음료를 어떻게 저장하고 소비하는지 끈기 있게 관찰했다. 그 결과 팩 단위로 음료를 사온 사람들이 일부만 꺼내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부엌 선반이나 베란다에 방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이 마르면 냉장고를 열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음료부터 마시기 마련이다. 냉장고에 넣었던 것을 다 마시면 다른 곳에 보관했던 탄산음료를 가져와야 하지만 당장 목이 마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물이나 주스 등 냉장고에 넣어둔 다른 음료를 마셨다. 알코아 조사원들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음료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게 해야 탄산음료 소비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하면 팩 단위로 들려간 음료가 나뉘지 않고 전부 냉장고로 직행하게 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 프리지 팩(fridge pack)이다. 박스를 길쭉하고 좁게 만들어 캔을 눕혀둘 수 있게 만든 패키지다. 알코아는 이렇게 하면 아래에서부터 하나씩 차례로 캔을 꺼낼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팩 자체를 냉장고에 넣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알코아가 예상한 대로 사람들은 패키지를 뜯고 캔을 꺼내 나누는 대신 팩 자체를 냉장고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베란다나 선반에 방치되는 캔이 줄면서 탄산음료 소비가 늘었고 알코아가 생산하는 캔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알코아의 고객사인 코카콜라는 이 패키지를 두고 코카콜라병의 컨투어 디자인 이래로 가장 위대한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핵심은 관찰이다. 꾸준하고 끈기 있는 관찰만이 남보다 우월한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알코아는 코카콜라 등 음료 제조업체에 캔 용기를 납품하므로 개인 소비자는 알코아의 직접 거래대상이 아니다. 소비자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해 마케팅 전략에 반영해야 할 주체는 엄밀히 말해 코카콜라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코아는 직접 소비자로 행동반경을 제한하지 않고 최종 소비자까지 내려가 관찰을 시도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시사점을 이끌어 냈다.
마케팅 분야의 대가로 <모멘텀 이펙트(The Momentum Effect)> 등 다수 저서를 펴냈으며 프랑스의 명문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에 몸담고 있는 장 클로드 라레슈(Jean-Claude Larreche) 교수는 누구보다 관찰을 강조하는 이 중 하나다. 그는 “오늘날 기업들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질적 성장(quality growth)을 하는 것”이라며 “‘소비자 관찰(customer discovery) → 파워 오퍼(power offer) → 소비자 참여(customer engagement)’로 이어지는 구조를 구축해야 질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카이스트 EMBA의 필드트립(field trip) 프로그램에서 직접 강연에 나선 그를 만나 질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관찰의 힘에 대해 묻고 들었다.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대다. 생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오늘날 기업들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질적 성장(Quality Growth)’이다. 성장하느냐, 안 하느냐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기업은 성장해야만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질적으로 성장하느냐, 전통적인 방식으로 성장하느냐다. 전통적인 방식은 그저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push)이다. 비용을 줄이고 사람을 자르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압박하는 것이다. 굉장히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이제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방식이다.
질적 성장의 핵심은 관찰이다. 소비자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 결과를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전 방식으로는 질적 성장이 불가능하다.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급 차원에서는 기업들이 하나의 동일한 시장을 두고 경쟁한다는 점이 달라졌다. 지멘스, 필립스, 삼성, 애플 등이 예다. 이들은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한다. 경계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자가 굉장히 많은 정보와 제안을 받는다는 점이 달라졌다. 소비자는 이전처럼 단순한 필요에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는 무한하고 훌륭한 다국적 기업들이 수없이 다양한 대안을 건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감성(emotion)이다. 소비자에게 더 가깝게 접근하고 싶은 기업은 그들의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 심지어 B2B 시장에서도 제품이나 서비스의 우수성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감성은 고려해야 할 필수 항목이 됐다. 사실 감성은 언제나 중요했다. 2000년 전 줄리어스 시저 같은 리더는 감성을 어떻게 건드릴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감성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일종의 규범이 됐다.
소비자 감성을 건드리려면 이들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현대차가 좋은 예다. 미국 소비자를 정확하게 이해했고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벌였던 마케팅은 큰 성공을 거뒀다. 소비자를 이해하느냐 아니냐가 마케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그래서 관찰이 중요하다. 소비자를 잘 알지 못하는데 그들의 감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보고 또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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