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Interview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학(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현대카드가 하면 다르다’는 세간의 인식 뒤에는 정태영 사장(53)이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사장이 된 지 만 10년이 된 올해, 그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고 있는 정 사장의 생각을 7월17일 그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들어봤다.
기업의 목적, 경영의 목적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너는 왜 사냐’고 묻는 이런 식의 질문에는 답하기가 정말 어렵다. 진짜로 진부한 대답인데, 회사 전체로 보면 사회적 가치 창출이다. 사회적 가치 중에 주주의 이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돈을 벌어오는 것만이 주주를 행복하게 하는 걸까? 사회에 다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치는 상품일 수도 있지만 방법이나 스타일일 수 있다. 1조 원을 벌건, 5000억 원을 벌건, 다른 메시지를 주면서 돈을 버는 것이 사회적 가치다. 또 사업은 자기 생각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듯이,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그것을 표현하고 이뤄나가는 과정이 바로 경영이다.
‘다른’ 메시지나 방식의 실체, 본질, 내용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다르기만 하면 다 좋은 건가? 새롭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사고의 영역을 넓힌다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고, 어떤 구성원이, 어떤 방식에 의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해져 있는 건 좋지 않다. ‘이런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의 제안은 필요하다. 그것은 마치 작가가 새로운 표현 방법을 개발해내는 것만큼 중요한 얘기인 것 같다. 세부적으로 보면, 나는 현대카드가 카드사업을 시작한 뒤 카드사업의 정의가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업의 정의를 보험 쪽에서 또 한번 넓혀보고 싶다.
보험시장에서도 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분명히 다른 스타일로 접근할 것 같은데….
보험업에서 가장 중요한 DNA는 푸시(push) 상품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구도 오늘 보험을 들었다고 새 구두를 산 것처럼 기뻐하지는 않는다. 최신 TV를 사듯이 ‘신형 보험을 사야겠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푸시 상품이라는 증거다. 필요 없는 것은 아닌데 굳이 내 발로 가서 사면서 기뻐하지 않는다. OLED TV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굳이 필요도 없는데 최신형이라는 이유로 사는 것을 풀(pull)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대부분 고객은 보험을 오늘 아니면 내일 사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잉태하는 결과물이 있다. 채널이 주객을 전도했다는 점이다. 즉, 회사가 시장이 요구하는 적절한 상품을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푸시 상품이다 보니 푸시를 하는 에이전트인 채널이 더 편안한 쪽으로 상품 설계가 됐다.
이런 상황이 이해는 가는데, 과연 바람직한 건지 모르겠다. 중간 채널인 에이전트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이것을 적어도 균형점으로 갖다 놓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다른 회사에서도 많이 해봤을 텐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나 한번 노력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는 토픽이다.
세부적으로 이런 취지를 어떻게 구현할 계획인가.
일단 ‘제로(현대라이프 제로보험)’는 시장의 의사를 타진해보는 척후병이다. 다른 회사는 기본 상품이 있으면 특약 같은 게 있어서 복잡하다. 마치 차를 렌트할 때 하루 7만 원이라고 하면서 사고가 나면, 다치면, 잃어버리면, 휘발유 안 채우면 등등 해서 나중에 하루 20만 원짜리가 되는 것과 같다. 이런 공포스러운 특약을 통해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다 제거해버린다면 어떨까? 그리고 또 요즘 보험은 여러 가지가 하이브리드돼 있다. 종신인지, 저축인지, 연금인지 모르겠는데 그것들을 다 제거해서 하나의 상품이 코어솔루션(core solution)이 됐다. 그것은 마치 바나나,사과, 고기를 안 먹고, ‘이거’ 하나만 먹으면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 등등 다 들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바를 바 없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 자신도 뭘 사는지 잘 모른다. 우리가 조사를 해보면 자기가 직접 선택해서 구입한 보험을 친구한테 권할 수가 없다고 답변하는 비율이 높다. ‘NPS(순추천지수·Net Promoter Scoring)’가 어마어마하게 낮다는 얘기다. 내가 이 TV를 샀으니까 너도 사보라고 자랑하면서 권해야 하는데 대개 보험 고객들은 자기가 뭘 샀는지 모른다. 그런데 사실 파는 사람도 잘 모른다.(웃음) 내가 아무리 과외를 받아도, 아무리 봐도 보험상품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더라. 본질적으로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명쾌한 상품이 바로 제로다. 이건 특약이 신경질이 날 정도로 없다. 가장 단순화했다고 보면 된다.
정태영 사장(53)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MBA를 취득했다. 1987년부터 현대종합상사,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에서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2003년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경영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현대카드M을 비롯한 알파벳 카드와 다양한 VVIP카드 등 차별화된 상품을 출시해 최하위권이었던 현대카드를 6년 만에 업계 2위에 올려놓는 등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정 사장 취임 만 10년을 맞은 현대카드는 최근 ‘CHAPTER 2’를 발표했다. CHAPTER 2는 상품 포트폴리오, 서비스, 경영 전반에 걸친 현대카드의 새로운 리노베이션 작업이다. |
시장의 반응은 어떤가.
예상보다는 2배로 반응이 좋다. 우리 예상이 너무 낮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상당히 고무적이다. 6월경에 월 1만 건 넘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보다 석 달을 앞당겨 월 1만 건을 달성했다. 그래서 내년에 출시하려던 종신 상품을 도입했다. 그냥 죽으면 돈 나오는 종신보험 상품이다. 상품구조가 단순해 더 이상 설명할 게 없다.
제품의 경쟁적 측면에서는 이해가 되는데 본질적으로 채널에 의존하는 영업망 자체도 손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필요하다. 우리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도 그거다. 지금까지 주로 지인 및 친척 영업을 했다. 이렇게 하면 한 달에 한 건만 해도 먹고산다. 그러다 보니 대학교 돌고, 고등학교 돌고, 그 다음에 고등학교 동창들의 후배들을 만나 돌고, 빈 시간에 친척도 가끔 끼워 넣는 식으로 영업이 이뤄진다. 그게 끝나면 더 이상 없다. 고등학교를 두 번 갈 수 없으니까. 그러면 다른 보험사로 옮긴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보험을 민원을 넣어서 다 해지시킨 뒤 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해지하는 순간 고객은 손해를 본다. 그래서 업계에 죄송한 얘기지만 해지율이 높지 않으면 돈을 못 번다. 해지율이 높은 것이 보험사의 경쟁력이라는 게 말이 되나? 우리는 상품 단가가 싸니까 지인 영업이 안 된다. 지인 영업이 안 되니까 처음부터 건전한 영업이고, sustainable한 영업이라고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민원도 떨어지는 거다. 물론 이런 영업 방식에 관한 얘기는 분명 많은 분들을 호도한 것이다. 이렇지 않은 설계사들도 많겠지만 이런 현실이 일부 존재하고 이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싶다.
현재 존재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한계, 문제점에 근거해서 전략을 추출하는 게 가장 유용한 방법인가?
거기서 생각의 근원이 오지는 않은데 일단 또 하나의 미투(me too) 컴퍼니는 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이 강하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그룹이 도와줄 거니까, 우리는 크니까, 현대카드 멤버들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시장에 들어가서 다른 보험사처럼 똑같이 하겠다고 하면 굉장히 큰 damage가 온다. 여태까지 키우고 쌓아온 회사의 문화를 갉아먹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돈을 얼마 벌겠다고 말하기보다 보험에서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라고 한다. 그러면 돈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돼 있다.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