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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농사 배우고 현장서 함께 땀 흘려…
농가 신뢰 쌓아 계약 확대

전정환 | 417호 (2025년 5월 Issue 2)
참고 기사 : 감자 계약재배로 농가-기업 불만 동시 해소 AI-데이터 활용, 가격 예측 정확도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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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현재의 문제로

현재 한국 농업이 안고 있는 당면 과제는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정부 주도 농업 정책의 관성에서 기인한다. 정부는 식량 자급(특히 쌀)과 농촌 개발을 통한 도농 격차 해소, 농민 소득 증대를 목표로 자본과 기술 공급, 농산물 유통 및 가격 결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정부 주도의 비료 및 농약 지원, 품종 개량은 농업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같은 성공의 경험은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정부 주도의 오랜 관성으로 인해 민간에서 농업이 자생력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30년 전부터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가격경쟁력 확보 및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구조적 전환이 시급해졌지만 한국의 농업은 소농 중심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에서 고령화와 인구 절벽을 맞이했다. 더욱이 가속화되는 전 세계의 기후변화에도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이렇게 민간 주도의 혁신 역량이 미흡한 상황에서 우리 농업이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정부 주도 혁신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민간이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시대다. 시장의 문제를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해결하며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스타트업들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지금 스타트업들에 농업은 기회의 땅이다. 스타트업은 정부나 대기업에 비해 자금과 인적 자원, 네트워크가 현저히 부족하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들은 시장의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동안 없었던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 전례 없는 비즈니스를 창출해낸다. 초기에 만든 성공 사례는 미약할지 몰라도 이후 투자 유치와 스케일업을 통해 단기간에 거대한 성장을 일구기도 한다.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농업이야말로 스타트업이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영역이다.

아직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농업 스타트업 중 가장 돋보이는 선도 기업이 바로 록야다. 록야가 걸어온 길은 앞으로 농업 스타트업들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지를 가늠하게 한다. 올해로 창업 14년째인 록야는 어떻게 한국 농업의 관성을 깨고 비즈니스로 농업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었을까?


록야의 성공 요인

1. 농업의 문제를 정의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신뢰를 구축해 해법을 찾았다

그동안에는 농가와 기업이 기존의 관성대로 거래를 했고 문제가 있어도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았다. 페인 포인트를 정의하지도 못했다. 농가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기꺼이 스타트업인 록야에 꺼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록야 창업자의 철학과 문화 덕분이다. 현장을 다니며 땀을 함께 흘리고 장기간의 파트너십을 위해 노하우와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진심으로 신뢰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록야는 사업 초기부터 농가와 기업 양측의 문제를 명확히 정의해낼 수 있었다. 농가들의 불안정한 소득과 판로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기업들의 안정적인 고품질 원재료 확보 요구를 파악해냈다. 그리고 록야와 함께 새로운 거래를 시도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만약 록야가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해결책을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신뢰가 있었기에 ‘계약 재배’라는 솔루션을 도출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한국 농업은 오랜 관행상 계약 재배에 대한 반감이 컸다.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뢰의 부재는 록야만 봉착했던 문제는 아니었다. 뉴질랜드 제스프리 역시 한국을 키위 생산지로 삼고자 한국 진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농가의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고전한 바 있다. 2004년부터 제주도에서 키위 계약 재배 농가를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외국 기업을 향한 지역사회의 오해와 반발로 인해 초기 설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10년이 흘러 이제는 제스프리 키위 재배 농가가 제주와 전남을 중심으로 300곳이 넘을 정도로 많아졌지만 농가와 신뢰를 쌓고 생산에만 집중해주면 높은 소득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록야 역시 작은 기업임에도 신뢰의 중요성을 알고 끈질기게 농가들을 설득했다. 농사를 직접 배우고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초기에 몇몇 농가의 마음을 얻었고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년에 걸쳐 더 많은 농가와 계약을 확대해 나갔다.

2. 농업을 지식산업화해 새로운 세대에 맞는 매력적인 일로 재정립했다

록야의 창업자인 권민수 대표는 1983년생이다. 2011년 창업을 했을 때 그는 20대 후반이었다. 한국의 농업은 농본사상에 뿌리를 두고 유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통이나 관습이 대물림되는 영역이다. 그리고 국가가 주도해서 농부들을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청년 세대에게 농업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산업을 개척할 수 있는 기업의 영역이라는 인식은 미흡했다. 그런데 록야는 농업이 지식산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여타 IT 기업처럼 농업에서도 재배 기술의 발명,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선별과 포장의 자동화, 지식의 공유와 전파 등이 나올 수 있고 청년들에게도 매력적인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록야가 자회사 팜에어에서 AI 기반 가격 예측 서비스 테란을 만든 것 역시 농업의 지식산업화 사례다.

네덜란드가 세계 2위 농업 강국이 된 것도, 뉴질랜드의 제스프리가 연간 3조 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데이터를 쌓고 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지식산업의 공식을 농업에 접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록야가 시도한 지식산업화와 규모화는 농업을 기업가정신과 역량을 가진 청년들이 도전하고 싶은 산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농업을 이전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재능 있는 현세대가 도전할 수 있는 일로 전환했기 때문에 록야는 테란을 개발한 젊은 AI 인력 등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해 기업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3.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 먼저 작고 빠르게 실행하고 피버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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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스타트업은 위험과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제품이나 시장을 발달시키는 기업가들의 프로세스다. 그 핵심은 속도, 피드백, 반복이다. 록야는 ‘한국의 제스프리’라는 큰 비전을 세웠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려 하지는 않았다. 초기에는 자본도 부족하고 B2C 경쟁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B2B 시장, 특히 감자를 사용한 과자 회사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워 시장에 진입했고 이후에 씨감자라는 종자 분야를 선점해 경쟁 우위를 키워냈다.

성장 단계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되 실패로부터 배우고 방향을 기꺼이 수정하며 사업을 확장해갔다. 록야는 초기 사업 모델의 성공 이후에 B2C 온라인 커머스와 스마트팜 사업을 시도하면서 쓴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좌절해 주저앉지 않고 이를 통해 회사의 핵심 강점(B2B 영업, 구매 이해도, 감자 전문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B2B에 집중하면서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그리고 품목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피버팅(Pivoting)하며 현실에 맞게 미션을 수정했다. 이 같은 회복탄력성은 앞으로도 린 스타트업 DNA를 가진 록야가 단기적으로는 실패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농업 시장을 혁신하며 지속가능한 모델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한다.

4. 시의적절한 투자 유치와 파트너십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스타트업은 자신이 가진 자원을 뛰어넘는 더 큰 꿈을 갖는다. 따라서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기업의 초기 성장 단계에서 액셀러레이터들은 투자를 통해 기업이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계약 재배 중심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키고 창업 6년 차가 된 2017년, 록야는 카이트창업가재단, 크립톤과 같은 액셀러레이터들로부터 첫 기관 투자를 받았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수직 계열화를 위해 일반 식품 가공 분야로도 진출했고 스마트팜을 육성해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시장까지 넘보는 등 B2C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비록 실패를 맛보고 B2C가 핵심 역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액셀러레이터들로부터 투자 유치가 없었다면 새로운 시도와 배움을 통한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재무적 투자(FI) 유치 외에도 록야는 2022년 컬리로부터 100억 원을 유치하며 전략적 투자(SI)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2018년부터 록야는 마켓컬리에 입점해 성과를 창출했고 공통의 철학을 바탕으로 양사 간 파트너십을 공고히 했다. 그리고 4년여의 협업을 더 큰 시너지를 위한 투자로 발전시켰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B2C에 강점이 있는 컬리와 B2B에 핵심 역량과 노하우를 보유한 록야는 시너지를 내 양사의 매출 신장에 기여했고 신선식품에 진심인 컬리를 상대로 농산물의 가치를 납득시킨 덕분에 록야의 비즈니스 확장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감자에 집중해 온 록야가 그동안 축적한 역량과 경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양파, 고추, 무 등으로 품목을 확대한 것도 컬리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 기반을 넓혔기 때문에 가능했다.


농업 스타트업 생태계가 커 나가려면

스타트업이 농업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변화관리자가 돼야 한다. 현재 한국의 농업이 당면한 많은 문제는 ‘농업 생태계 전반의 위기’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복잡적응계인 생태계를 하나의 기업이 단기간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이 포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켜가겠다는 미션을 가지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록야는 ‘농업과 함께 혁신하는 대한민국 1등 농업 기업’이라는 비전을 세우고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보장, 농식품 기업의 지속가능한 구매 지원, 데이터 기반 시장 분석 및 의사결정 강화를 핵심 가치 및 전략으로 삼아 왔다. 회사의 미션이 농업 생태계 전체의 혁신을 위한 미션과 정렬돼 있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게 해주고 기업이 계속 전진해야 할 동력을 제공한다. 록야가 농업 생태계의 변화관리자인 셈이다.

그동안에는 정부가 종자를 개발하고 공급했지만 농업 생태계가 변화하려면 스타트업이 종자를 개발하는 식으로 민간 주도 혁신이 탄력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한국 농업의 전환기다. 위기이긴 하지만 기회 요인도 많다. 60년 전과는 달리 현재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IT 강국이 됐을 뿐만 아니라 K-콘텐츠로 높은 브랜드 가치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K-푸드 기업들도 큰 성장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2016년 930억 원이었던 삼양식품의 수출은 지난해 기준 1조3359억 원으로 14.36배나 증가했다. 이런 K-식품의 높아진 위상 덕분에 농업에서도 한국의 제스프리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록야가 한국의 제스프리를 꿈꾸며 시작했다면 이제 후배 기업들은 제2, 제3의 록야를 바라보면서 1차 산업의 혁신 기회와 지속가능한 모델을 모색할 것이다. 1990년대에 창업한 다음, 네이버, 이니시스 등의 창업자들이 2010년대 들어서 후배 기업들에 투자하고 키워냈듯 가장 오래된 산업인 농업에서도 선배 기업의 도전이 후배 기업들의 마중물이 돼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농업 생태계에서 록야가 보여주고 있는 기업가정신이 값진 이유다.
  • 전정환drawnote@gmail.com

    커뮤니티엑스 대표·크립톤 부대표

    필자는 다음커뮤니케이션 프론트엔드개발본부장, 로컬서비스유닛장 출신으로 2015년부터 7년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을 지내며 지역창업생태계를 조성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크립톤의 부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밀레니얼의 반격』 『커뮤니티 자본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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