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창간호 독자의 회고DBR이 발간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10년을 꾸준하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어렵다는 매거진 시장에서 10년 동안 꾸준하게 좋은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0년 전 필자는 기존 비즈니스 매거진과는 완전하게 다른 기획과 탄탄한 콘텐츠를 담은 DBR의 등장이 꽤나 반가웠다. 아울러 매년 콘텐츠의 기획 방향성이나 필진의 선정, 편집 디자인 등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점 역시 창간호부터 DBR을 챙겨보던 독자로서 감사하다.
지난 10년 동안 필자가 DBR을 열독해 온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유용하기 때문이다. 컨설턴트,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 총괄(CMO), 스타트업에서의 비즈니스 및 브랜드 총괄(CBO) 등을 거치면서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는 브랜드와 마케팅 관련 기사는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깊이 있고 시의적절한 콘텐츠가 필요했다. 과거 월간지, 주간지 형태의 비즈니스 매거진이 여럿 있었음에도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던 필자에게 그 내용들은 와 닿지 않았다. DBR은 달랐다. 기획은 신선했고, 내용은 알찼다. 요즘 직장인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처럼 시각은 새로웠고 접근은 달랐다. 콘텐츠의 깊이는 만족스러웠으며 다양한 사례가 매력적인 필자를 통해 전달됐다. 브랜드로서의 DBR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단순 콘텐츠 제공이 아닌 콘퍼런스와 교육, 동영상 등 다양한 터치포인트들을 통해서 독자에게 솔루션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매거진 시장의 오늘필자는 다양한 종이 매거진을 좋아한다. 개인적인 취미로 읽기도 하지만 업무에도 꾸준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매거진의 가치와 효용에 대해서 열심히 알리고 있다. 2017년 말부터는 북클럽 ‘트레바리’에서 종이 매거진을 읽는 클럽인 ‘알쓸신잡(알고 보면 쓸데 있고 신박한 잡지 읽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종이 매체는 죽었다는 이야기가 이상할 것 없는 디지털 시대에, 필자가 꾸준하게 종이 매거진을 보고, 매거진에 대한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우수한 콘텐츠 퀄러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과 경력을 쌓은 에디터들이 선별한 양질의 콘텐츠는 상당히 유용하다. 둘째, 새로운 시선과 관점, 관심과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정보를 사실적으로 빠르게 전달하는 일간지와 달리 자신들의 철학이나 관점을 드러내는 매거진의 기획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셋째, 매거진으로부터 얻게 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우연성도 매력적이다. 잠자는 시간마저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시대에 고급스러운 질감의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느낄 수 있는 텍스트와 물성은 다시 부각되고 있는 아날로그 감성의 유행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알지 못하거나 관심 없던 영역의 콘텐츠를 우연하게 접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낯섦과 색다름 역시 기분 좋은 경험이다. 마지막으로 어디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매거진 자체의 특성 또한 강력하다. 특정 주기 동안 반복적으로 발간되는 매거진을 꾸준하게 보면 모으는 재미, 쌓이는 재미가 있다.
매거진 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오지만 새로운 매거진의 창간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적이고 세련된 글로벌 비즈니스맨을 위한 매거진 모노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킨포크의 성공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보 과잉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엄선된 깊이 있는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커져가고 있고,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른 ‘취향’에 대한 관심이 매거진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용 행태나 구조에 대한 인식 변화 또한 나타나고 있다. 무료로 받아 한 번 보고 버리는 대신 명확한 목적으로 구입해서 읽고 오랫동안 보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브랜드로서의 DBR을 기대하며매거진이라는 매체는 사라질 것인가. 디지털 콘텐츠가 매거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종이 매체에는 종이 매체만의 매력과 차별점이 있으므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있다. 이러한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매거진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첫째, 결국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매거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좋은 콘텐츠는 여전히 힘이 세다.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콘텐츠는 어떠한 환경, 형태든지 유효하다.
둘째, 매거진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특징, 핵심 가치를 살려야 한다. 최근 많은 스타트업이 기업이나 브랜드에서 매거진을 만들던 에디터를 채용하고 있다. 매거진의 핵심적인 속성인 편집(Edit), 큐레이션(Curate), 구독(Subscribe) 모델이 디지털 시대에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플랫폼이 돼야 한다. 미래의 매거진은 강력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되 독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터치포인트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지면을 팔아 광고 수익을 얻어 유지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모노클은 꾸준하게 고품질의 매거진을 만들지만 실제로 돈을 버는 분야는 컨설팅, 콘퍼런스, MD 상품이다. 즉 미래의 매거진은, 아니 미래의 콘텐츠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DBR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브랜드 전문가로서, 창간호 독자로서 기대하는 바는 이렇다. 필자는 DBR이 DBR만의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동시에, 변화하는 독자들의 취향과 관심을 잘 반영하는 매거진 브랜드가 되길 기대한다. DBR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간에 DBR이 지향하는 ‘비즈니스 리더의 프리미엄 솔루션’이라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We are what we are reading”이라는 말처럼 제품이든, 서비스든, 시간이든 내가 소비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DBR을 들고 다니기만 해도, DBR에서 주최하는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 줄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명확한 타기팅과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 돈이 되는 40대 글로벌 비즈니스맨만을 철저하게 타깃으로 삼은 모노클처럼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콘텐츠든, 프로젝트든 DBR만이 할 수 있는 기획과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츠타야서점의 창업주 마스다 무네야키가 그의 저서 『지적자본론』에서 “책은 제안 덩어리”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매거진은, DBR은 제안 덩어리가 돼야 한다. 앞으로 매거진은 플랫폼이 돼야 한다. 그리고 DBR은 하나의 매거진을 넘어서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DBR의 생일을 축하한다. 지난 10년, 고생이 많았다. 앞으로도 건투를 빈다. 창간호 독자로서 20주년, 30주년 기념일에도 축사를 쓸 수 있기 바라면서.
우승우 브랜드 컨설턴트, 72초TV CBO go.harrywoo@gmail.com
필자는 스타트업 72초TV의 CBO(chief brand officer)다. 이전에는 KFC Korea에서 CMO(chief marketing officer)로, 인터브랜드에서 브랜드 컨설턴트로, GQ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활동했다.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브랜드, 콘텐츠, 디자인, 공간, 책/서점, 맥주, 야구, 여행 등에 관심이 많다. 국내 최초로 매거진 에디터를 양성하는 더/플레이라운지를 공동 창업했다. 『창업가의 브랜딩』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