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Sloan Management Review

고객들의 닫힌 지갑을 열 디지털 상품은?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1.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공동 창작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하는 기업만이 업계에서 차별화된 입지를 얻는다.
2.디자인, 상품 관리, 기술, 영업, 서비스 등 다기능 전문가들로 짜인 팀은 단일 직무로 이뤄진 팀보다 고객의 지식을 활용하고, 고객이 겪는 문제를 예측하고, 목표 중심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3.디지털 실험을 하는 것은 모든 경주마에게 돈을 조금씩 건 뒤 경주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지점에서 판돈을 늘리는 옵션을 갖는 것과 같다. 우승할 말이 거의 확실해지기 전에는 큰돈을 걸 필요가 없고, 고객에 대한 통찰력을 쌓고 공유하는 방법부터 먼저 습득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19년 가을 호에 실린 ‘Creating Digital Offerings Customers Will Buy’를 번역한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면서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기존의 고객 가치 제안들을 다시 구상하게 됐다. 이는 소셜 앱이나 모바일 앱, 분석 기법,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생체인식(biometrics), 블록체인, 클라우드 및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 분산된 소형 서버들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역주) 등 새롭고 진보된 기술 덕분에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가치를 전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잠재적 기회 속에서 기업은 어떤 상품이 경쟁력 있을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디지털 기술은 데이터의 편재성, 무한한 연결성, 엄청난 정보 처리 능력을 제공하며 경쟁의 판도를 바꾼다. 영민한 기업들은 이 모든 역량을 디지털 상품으로 바꿔 놓는다. 흠잡을 데 없고 개인 맞춤화된 고객 경험으로 무장한 정보 집약적 솔루션을 내놓는 것이다. 리프트(Lyft)를 떠올려 보자.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해서 차량이 필요한 사람들과 그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기사들을 연결해 주는 이 서비스는 승객들이 택시를 이용할 때 겪는 고충을 해결해준다. 즉 택시를 어디서 잡아야 하고, 언제쯤 도착하고, 비용은 얼마나 들고, 어떤 방법으로 지불해야 좋을지 등 알 수 없는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이다.

성공하는 디지털 상품들은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혜택과 고객들이 원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만한 혜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창조된다. 하지만 그 교차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기업들이 그 접점을 발견하려면 계속해서 실험하고, 고객과 공동으로 창작하고, 여러 기능이 협업하는 개발팀을 만들어야 한다. 또 그 과정에서 수집한 통찰력을 조직 안에서 공유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필자들이 연구한 약 200개의 기업 중 몇몇 곳이 어떻게 이런 역량들을 구축하고 발휘했는지 논의할 것이다.1필자들이 이 주제를 가지고 수행한 사례 연구와 설문 조사 보고서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정보시스템연구소(CISR)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음. http://cisr.mit.edu 참조. 특히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이라는 회사가 고객에 대한 통찰을 얻고 공유하는 데 이런 역량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지속적으로 실험 이어나가기

필자들은 본 연구를 수행하면서 덩치가 큰 대기업들의 경우 대개 조직 자체가 계속해서 진화하고, 계속해서 혁신적인 디지털 상품이나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게끔 설계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의 내부 프로세스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학습하고, 버리고, 개선하고, 재구성하고, 확장해 새로운 가치 제안으로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노하우를 터득한 기업들은 업계에서 차별화된 입지를 얻어 왔다.

디지털 상품들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빠른 반복 학습에 적합하다. 일단 성능을 테스트하고, 테스트 결과를 학습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능을 개선하면 된다. 소프트웨어 코드로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시제품(minimum viable product, 완전한 출시 전에 고객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최소 기능들로만 출시되는 제품-역주)을 개발한 뒤 고객이나 테스트 그룹에 배포하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은 이런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품을 빠르게 개선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디지털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이런 접근법을 취하는 기업들은 해커톤, 특별 자금 후원 프로그램, 혁신 센터같이 디지털 관련 실험을 전담하는 신규 조직을 통해 폭넓은 실험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 혹은 일종의 역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고위 임원들과 젊은 기술직 직원들이 짝을 이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기도 한다. 실험 능력이 무한한 회사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실험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DBR mini box: 연구내용

1. 필자들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약 200개의 중견 기업이 전개한 디지털 활동을 전부 검토했다.

2. 필자들은 40개 대기업에서 인터뷰를 실시했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27개 기업에 대한 미니 사례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사례 연구 기업마다 각각 3건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보통 디지털 전략 수행을 책임지는 고위 임원이나 IT 임원, 실무자가 대상이 됐다.

3. 2016년에는 171명의 기업 리더를 대상으로, 그리고 2018년에는 중견 기업에서 일하는 150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도요타 미국 법인(TMNA)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실험을 해 왔다.2 현재 이 회사에서 최고디지털책임자(CDO)로 있는 잭 힉스(Zack Hicks)가 최고정보책임자(CIO)였을 당시 그는 직원들이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공유하고 괜찮은 아이디어는 경쟁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도록 혁신 박람회를 열었다. 경쟁에서 탈락한 팀도 다른 경로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미국 법인이 시작한 이 개념은 그룹 차원의 글로벌 혁신 박람회로 확대됐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도요타 미국 법인의 IT 부문은 킥스타터(Kickstarter, 미국의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역주)와 비슷한 앱을 만들어서 직원들이 혁신 아이디어를 올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 앱은 특히 창의력이 뛰어나지만 상품성을 검증하기에는 아이디어가 설익은 경우에 효과적이었다. 앱 참여자들은 포스팅된 콘셉트에 추천 혹은 비추천 버튼을 누르고 아이디어가 더 개선되도록 의견을 제안할 수도 있었다. 이사급 임원들로 구성된 도요타 아이카운슬(iCouncil)은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이 그것을 하나의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시키고,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고, IT 직원과 팀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했다. 법인은 혁신가들이 IT 개발자의 노동이나 서버 등의 IT 장비를 최대 30시간까지 쓸 수 있게 함으로써 자원 확보에 들어가는 시간과 프로세스를 없앴다. 덕분에 혁신가들은 자신이 가진 콘셉트의 사업성을 증명하는 데 필요한 제품 원형을 더 간편하게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또 경쟁력이 있는 아이디어들은 특정 사업부에 넘기거나 혁신 박람회에 참가시킬 수 있었다.

도요타 미국 법인에서 나온 실험적 아이디어 대부분은 고객 경험 개선을 위한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비교적 단순하고 금방 개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가령, 고객이 대리점에서 효율적으로 상담하기 위해 사전에 온라인으로 사고 싶은 차량 조건을 설정하는 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제품 차원의 변화를 수반하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차량 안전과 GPS,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위해 통신 및 위성 시스템 응용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것들이 그런 예다. 디지털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DBS은행도 도요타처럼 디지털 혁신과 아이디어 검증 활동을 회사 전체에 확산시켜 나갔다. 3 DBS는 관리 자산 기준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은행으로 18개 시장에서 고객 900만 명을 대상으로 폭넓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5년, DBS에 소속된 2만2000명의 직원은 1000개에 달하는 작은 실험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실험 중에는 금방 중단된 경우도 있었지만 고객들을 위한 새로운 디지털 상품이나 기능으로 발전된 경우도 많았다.

DBS에서는 고객 여정 매핑(customer journey mapping)을 통해 실제 검증해 볼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가 많이 도출됐다. 이 매핑은 고객이 은행과 교류하면서 겪는 경험 전체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상품 설계자는 신용카드나 대출 상품을 신청하는 경우처럼 여정의 주요 순간마다 고객이 느낄 감정들에 이입해 본다. 아예 가상의 고객을 한 명 만들어서 이름과 나이, 직업을 부여한 뒤 그 고객의 금융 상품 신청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고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얻은 통찰을 가지고 진짜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험할 때도 있다.

지속적인 실험으로 고객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는 DBS의 노력은 성과를 얻고 있는 것 같다. DBS는 2016년과 2018년에 유로머니(Euromoney)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은행(World’s Best Digital Bank)이 됐다. 글로벌 파이낸스(Global Finance)도 2018년에 세계 최고의 은행(Best Bank in the World)으로 DBS를 지명했다. 4


고객과 함께 창작하기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산업을 새롭게 정의한 스타트업들, 디지털 거인들, 영민한 경쟁사들, 공격적인 외부 세력들을 따라잡는 데 급급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기업은 산업을 선도해야 한다고 압박을 느낀 나머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가정을 세운다. 본 연구에서 만난 많은 재계 리더들, 특히 B2B 업계 리더들은 고객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치 제안들도 막상 해보면 고객들이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고객과 함께 공동 창작하는 기업들은 잘못된 가정을 세웠더라도 빨리 확인해 바로잡을 수 있다.

B2C 환경에서 고객과의 공동 창작 활동은 보통 온라인에 최소 기능 제품을 출시한 뒤 수천 명 정도 고객들의 반응을 보고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반면 B2B 기업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고객사가 겪는 고충을 파악하고 솔루션의 잠재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각 사와 개별적으로 협력한다.

과거 조명과 오디오 제품으로 유명했던 네덜란드 회사 필립스(Royal Philips)가 그런 과정을 겪었다. 필립스는 5년 전 다수의 사업을 매각하고 엑스레이 장비와 심전도 제품, CT 스캐너 같은 의료장비에 주력해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으로 입지를 재정립하려 했다. 5 그러나 이런 노력은 주로 회사의 주요 고객인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이 무엇을 구입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좌우됐다. 이런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은 변화를 주저하는 성향이 있었다. 뭔가를 바꿨을 때 얻는 혜택이 남들이 보기에 분명하더라도 잘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일부 환자에게는 퇴원 후 집에서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상태를 관리하는 게 회복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침상 점유율을 떨어뜨려 병원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았다. 의료산업의 복잡성도 필립스가 벌이는 새로운 시도들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의료 서비스 제공자(병원과 의료진), 비용 지급자(보험사와 정부기관), 환자, 정책 결정자마다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필립스는 상당한 자원을 투자해서 고객들과 공동 창작 워크숍을 열었다. 헬스스위트 랩스(HealthSuite Labs)라 불리는 이 워크숍은 고객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를 확인하고 솔루션을 찾기 위해 여러 번에 걸쳐 진행됐다. 이 워크숍의 목적은 고객들이 무엇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인지 파악하는 데 있었다. 필립스에서 웰센티브(Wellcentive)와 호스피털투홈(Hospital to Home) 부문을 책임지는 마누 바르마(Manu Varma)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고객들이 겪는 고충을 전부 알 수는 없습니다. 고객들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늘 아는 건 아닙니다.” 헬스스위트 랩스는 고객과 제조사 모두를 깨우쳐 주기 위해 만들어진 상호 자문 프로세스였다.

워크숍은 보통 같은 시설이나 의료 그룹과 관련된 서비스 제공자, 비용 지급자, 환자들을 초대했다. 12명에서 최대 40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은 평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같이 얘기한 적이 없었다. 베네룩스 지역에서 필립스의 헬스케어 인포메이션 & 커넥티드 케어(Healthcare Information and Connected Care) 부문을 이끄는 마크 반 메길렌(Mark van Meggelen)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도 환자들에 대한 얘기는 정말 많이 나눴어요. 그런데 헬스케어 랩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까지 환자들을 실제로 만날 일은 없었어요. 환자들이 최상의 지원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죠.” 여러 분야 전문가가 모여 협의하는 워크숍이 생기자 한 집단의 성과만 높이는 게 아니라 헬스케어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아이디어들이 효과적으로 도출됐다.



다기능 개발팀 구성하기

많은 아이디어가 실패로 끝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최고의 상품을 만들겠다는 제품개발팀이 자신들의 견해와 데이터, 통찰력만 믿고 기존의 업무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영업 담당자들이 알아서 고객을 확보하고, 지원 부서들이 알아서 고객을 지킬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솔루션이 어떤 니즈를 해결하려면 고객의 행동이 이전과 달라져야만 한다. 이는 변치 않는 원칙이다. 즉 고객이 구매결정 패턴을 바꾸고, 기존의 권력 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데이터를 근거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고객들이 상품과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하고 자신의 니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관련해서는 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상품을 개발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확인하고, 그 경쟁력을 고객과 함께 재빨리 검증해야 한다. 이 작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기업들이 보통 다기능(cross-functional) 개발팀을 만든다. 디자인, 상품 관리, 기술, 영업, 서비스 전문가들로 짜인 팀은 단일 직무로 된 팀보다 고객의 지식을 활용하고, 고객이 겪는 문제를 예측하고, 목표 중심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ING그룹의 자회사 ING다이렉트(ING Direct)의 스페인 법인은 새로운 상품들을 통해 고객의 니즈에 처음부터 끝까지 부응할 수 있도록 다기능 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6 상품을 규정하는 아주 초기 단계부터 제품 관리, 마케팅, 오퍼레이션, IT, 신용 리스크, 운영 리스크 같은 직무 담당자들이 협력한다. 다기능 팀은 다양한 견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각자가 세운 가정에 허점은 없는지 확인한다. 이런 상호 압박 과정은 회사가 문제적 상품을 기획해서 회사가 대응할 수 없게 되거나 예기치 못한 불편을 초래해서 고객 경험을 망칠 위험을 완화한다.

다기능 팀은 ING 다이렉트 스페인 법인의 사업이 쓸데없이 복잡해지는 상황도 차단한다. 법인의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워너 지폴드(Werner Zippold)는 이렇게 밝혔다. “그런 상호 압박 과정에서 살아남은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됩니다. 상품 규정 단계부터 IT 담당자와 오퍼레이션 직원들이 관여했기 때문에 상품 출시 이후 운영상에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출시할 신제품을 일선의 영업 담당자들과 지원 부서 모두가 미리 공유할 경우 회사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솔루션을 얻게 되고 고객들의 니즈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통찰 공유하기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은 1836년에 설립된 프랑스 기업으로 260억 달러의 매출 규모를 가진 회사다. 이 회사는 설립 이후 철강 및 전기 장비를 생산해 오다 현재는 지능형 에너지 관리 솔루션 사업을 하는 중이다. 이 회사가 거쳐 온 전면적 디지털 혁신 여정은 대부분 실험, 고객과 공동 창작, 다기능 개발팀을 통해 고객에 대한 통찰을 얻고 공유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혁신 초기, 슈나이더의 리더들은 회사의 주요 전기 장비에 센서를 부착해 인터넷에 연결하면 고객들에게 에너지 수요와 소비 패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7 48개 사업부에 속한 제품 개발 담당자들은 이렇게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기대와 니즈, 불만 등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각 사업부는 초기 노력에 들어가는 자금을 댔고, 아이디어들이 왕성하게 도출됐다. 그러나 이 조직에는 사업부 간 업무를 조율하고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부족했다. 슈나이더의 IT 플랫폼 상무인 마이클 맥킨지(Michael MacKenzie)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사업부들이 저마다 보유 제품에 대한 로드맵을 개발하고, 현지 계획들의 성공 및 실패 요인 등 사업 니즈를 판단했습니다. 말하자면 미시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학습했다고 볼 수 있죠.”

슈나이더의 사업부 중심 접근은 초기 실험치고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현지 니즈에 맞춰 여러 상품이 개발됐지만 매출 증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다른 지역에서까지 따라 할 만한 전략적 역량을 쌓지 못했다. 슈나이더의 IoT & 디지털 상품 부문 전무인 시릴 페르두캇(Cyril Perducat)은 이렇게 설명했다. “거의 모든 직원이 회사 상품을 디지털에 맞게 재창조하려고 애썼습니다. 다들 이런저런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모든 유형의 혁신 기술을 내놓으려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제휴 회사가 갑자기 몇 배로 늘고 클라우드 제공 업체나 연결 프로토콜도 너무 많아졌습니다. 디지털로 상상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넘쳐났죠.”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회사 전체적으로 제품 개발과 지식 공유 활동을 통합할 필요가 있었다. 페르두캇은 사내에 디지털 서비스 팩토리(DSF)를 만들어서 통합 디지털 플랫폼의 역량을 적극 활용한 상품을 개발하고 사업 기회를 탐색하는 책임을 부여했다.

슈나이더의 DSF팀은 아이디어의 발굴, 육성, 상품화, 확장이라는 4단계를 통해 새로운 디지털 상품의 콘셉트를 떠올린다. 아이디어 발굴(ideation) 단계에서는 팀이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검토하면서 여러 부서에 걸쳐 반복적으로 제안되는 비슷한 콘셉트가 있는지 찾는다. 그런 아이디어를 여러 부서에서 같이 전개하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개발팀은 아이디어 발굴 초기 단계에 주요 고객들을 참여시켜 해당 콘셉트에 사업성이 있는지 검증한다. 상품성이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는 재빨리 중단하고, 성공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는 아이디어는 상품 담당자에게 배정한다. 상품화(industrialization) 단계에 접어들면 슈나이더는 보통 파일럿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금 지원을 고객에게 요청한다. 처음부터 상품에 대한 고객의 애착을 높여서 향후 매출로 전환하려는 의도다. 이 단계에서는 다기능팀도 고객과 함께 협력하면서 상품을 통해 고객이 기대하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지, 또 고객은 원하는 가치를 상품에서 찾을 수 있는지 철저히 검증한다. 슈나이더에서 IoT 전략 & 사업 디자인 부문의 상무로 있는 카를로스 자바로니(Carlos Javaroni)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객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은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콘셉트 전부가 고객들의 지갑을 열 정도로 좋다는 건 아닙니다.”

슈나이더는 회사의 기존 고객들이 전략적 측면이 강한 에너지 관리 솔루션 사업에 있어서는 구매 의사결정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회사는 소위 C 레벨을 겨냥해 경험 많고 전문성을 가진 영업사원들로 작은 팀을 하나 구성했다. 이들은 제품개발팀의 소중한 일원으로서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을 고객들이 원하는 속도에 맞춰 점진적으로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


이 모든 활동은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슈나이더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는 원래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중요한 혁신 프로젝트는 철저한 연구개발 활동을 거친 다음 상품화하는 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에너지 관리 솔루션 같은 디지털 상품의 생애주기는 고객 니즈가 확인되는 순간 시작돼 고객이 검증하고 사용해 볼 수 있도록 최소 기능 제품을 개발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어 지속적인 개선 단계로 진입한 다음, 제품 확장과 관련 상품 개발 단계로 넘어간다. 슈나이더는 이런 반복적인 개발 과정과 더불어 공동 창작이라는 접근법을 활용했다. 이와 동시에 과거에 의존했던 디지털 시대 이전의 R&D 관행이나 IT 방법론에서는 손을 뗐다. 그 결과, 기존에는 아이디어를 발굴해 상품화하기까지 걸렸던 통상 2∼3년의 기간이
1년으로 단축됐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슈나이더가 보유한 디지털 상품은 약 40개에 달했다. 그중에는 자산관리 서비스(예측적 관리에 해당하는)와 사업 예측 및 비용 관리 성격의 C 레벨 사업인 에너지 자원 관리, 특수 장비들에 대한 통합적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가 포함돼 있었다. 게다가 조만간 출시될 상품도 20개에 이른다.

디지털 혁신을 한창 겪고 있는 오래된 대기업들도 대개 그렇지만, 슈나이더의 전체 매출과 수익에서 디지털 상품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이런 디지털 상품들은 전통적인 상품 및 서비스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수익성도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슈나이더는 디지털이 주는 기회들을 경쟁사들이 먼저 채 가도록 기다리지 않았다. 슈나이더는 회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고객들이 기꺼이 자금을 댈 상품들을 파악해서 파괴적인 시장 상황에 수익성 있게 대처하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학습이 조직 전체에 자연스럽게 퍼지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개인의 성공을 꿈꾸기 때문에 가능성 없는 아이디어도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살리려 애쓴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배우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아이디어들을 파악하고 그중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 자원을 양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은 것들을 파악해 나가면서 프로세스를 디자인하고 여러 부서가 고객에 대한 통찰을 공유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이 어떤 역량을 길러주고 고객들이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지 통찰을 쌓으려면 기존에 구축된 관리 방식과 개인의 습관을 뒤집고 기업 문화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대기업이라는 조직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실험을 통해 학습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접근법이 생소할 수 있다. 제약사들이 상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보통 10년이 걸린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신형 차 하나를 개발, 테스트, 상용화하기까지도 5년 정도가 걸린다. 장기간에 걸쳐 전개되는 이런 개발 사이클에는 엄청난 자원이 투입된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전략적 사업이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디지털 혁신은 대부분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 작은 시도들은 때때로 아주 거대한 사업으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도중에 중단된다. 디지털 실험을 하는 것은 모든 경주마에게 돈을 조금씩 건 뒤 경주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지점에서 판돈을 늘리는 옵션을 갖는 것과 같다. 우승할 말이 거의 확실해지기 전에는 큰돈을 걸 필요가 없다. 고객에 대한 통찰력을 쌓고 공유하는 방법부터 먼저 습득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디지털 상품에 판돈을 걸 수 있게 될 것이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필자소개
잔 W. 로스(Jeanne W. Ross)는 MIT 정보시스템연구소(CISR)의 책임 연구원이다. 신시아 M. 비스(Cynthia M. Beath)는 텍사스주립대 맥콤즈(McCombs)경영대학원의 정보시스템 담당 명예 교수다. 마틴 모커(Martin Mocker)는 MIT 정보시스템연구소의 협력 연구원이자 독일 로이틀링겐대(Reutlingen University) ESB 경영대학원의 정보시스템 담당 교수다. 본 글은 필자들의 이름으로 곧 출간될 『Designed for Digital: How to Architect Your Business for Sustained Success』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1103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