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무실 밖 난간에 기대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상상해보라. 건물은 불타오르고 있고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앉아 있던 창틀로 불길이 번지기 시작한다. 더는 발 디딜 곳이 없다. 너무 놀라 발조차 떨어지지 않는다. 얼어붙은 채로 누군가 구해주길 간절히 기도하거나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미지의 세상을 향해 뛰어내려야 한다.
필자가 5년 전 인도 델리에 본사를 둔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 HCL테크놀로지 사장으로 취임할 때의 상황이 이랬다. 당시 HCL테크놀로지의 매출은 연간 30%씩 증가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시장 점유율이나 경쟁 업체와 비교한 고객 인지도 점유율(mindshare)은 계속 감소했다. 반면 경쟁 업체는 연간 40∼50%씩 성장하고 있었다. IT 서비스 산업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고객들은 차별화되지 않은 단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자를 선호하지 않았다. 고객이 원하는 건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장기적 파트너였다. HCL이 그런 요구에 부응하는 회사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 지난 수년간 회사는 그렇게 일해왔다. HCL은 2009년까지 사업 모델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연간 매출과 시가총액이 각각 3배, 2배로 증가했다. 글로벌 HR 컨설팅기업 휴잇이 HCL을 인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로 꼽기도 했다. 여기에는 필자가 ‘선(先) 직원, 후(後) 고객(Employees First, Customers Second·EFCS)’이라고 부르는 선도적이고 독특한 경영 문화가 한몫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먼저 이것은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100명의 경영진과 5만 5000명의 직원들이 함께 해낸 일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어떻게 이들이 혁신에 동참하도록 설득했을까? 진실을 말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질문을 하고, 심지어는 춤까지 췄다. 무엇보다, 미지의 세상을 향해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포인트A(출발점)를 인정하고 포인트B(지향점)를 설정
조직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데도 굳이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내던질 사람은 없다. 필자는 취임 이후 처음 몇 주는 전세계 HCL 지사를 방문하고 간부들과의 소규모 회의 및 대규모 모임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먼저 필자가 포인트 A라고 부르는, 조직의 최근 현황에 대해 토론했다. 일부 간부들은 위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회사 실적과 IT 시장의 호황, 과거의 성공만 보는 것 같았다. 대다수의 간부들은 특별한 의견이 없었다. 이들은 상황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좀더 지켜보고자 했다. 그러나 일부 간부들은 현 상황이 아주 급박하며 좀더 일찍 변화를 시작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의가 거듭되면서 조직을 뒤흔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내가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한 번도 공론화되지 않았던 사실을 제시하고 의견을 밝혔을 뿐이다. 이 회의들을 ‘거울로 비춰보기(Mirror Mirror)’라고 불렀다. 물론 공식 명칭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필자는 이 회의를 통해 새로운 각도로 거울을 들이대 조직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이렇게 되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점차 사라졌다. 지금도 사업 환경이 변화할 때면 우리는 ‘거울로 비춰보기’ 과정을 통해 HCL의 입지를 점검한다.
필자는 전세계 지사 방문을 위한 출장길에 고객사도 많이 만났다. 이를 통해 HCL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 놀라운 점은 고객들이 우리 상품이나 서비스, 기술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직원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는 고객과 대면하는 일선 직원들이 만들어가고 있었다. 회사의 가치가 창출되는 곳이 바로 고객과 일선 직원의 접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사 조직은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지 않았다. 일선 직원이 감독 관리자의 요구를 따르는 전형적 피라미드 구조였다. 직원들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는 어려웠다. 필자는 역으로 인사나 재무 책임자, 혹은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고위 경영진이 일선 직원의 요구를 따르는 조직 구조가 가능한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막연했던 생각은 차츰 구체화됐다. 그리고 EFCS라는 원칙으로 확정돼 현재 HCL이 하는 모든 업무와 운영의 기본 방침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