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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보다 고객”…고객 자본주의 시대가 왔다

로저L.마틴(Roger L. Martin) | 52호 (2010년 3월 Issue 1)

현대 자본주의는 크게 두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32년 시작된 관리 자본주의로 이 개념의 정의는 ‘전문 경영진이 기업을 이끌어야 한다’다. 둘째는 1976년 시작된 주주 가치 자본주의로 이 개념은 ‘모든 기업의 목적은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를 전제로 한다. 기업이 주주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주주는 물론 사회 전체가 혜택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숨어 있다. 이제 주주 가치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제 3의 시대, 즉 고객 자본주의 시대로 나아갈 때다.
 
관리 자본주의와 주주 가치 자본주의 시대에는 모두 학계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1932년 아돌프 A 벌리와 가디너 C 민즈는 <현대 기업과 사유 재산(The Modern Corporation and Private Pro-perty)>이라는 명저를 통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록펠러, 멜론, 카네기, 모건 같은 오너 최고경영자(CEO)가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저물고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경영하는 시대가 왔다. 벌리와 민즈는 이러한 변화는 두려워할 게 아니라 경제 성장이란 멋진 신시대의 일부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 이 시기의 경제 성장은 대공황으로 인해 몇 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오너 CEO들도 계속 자리를 지켰지만, 좋은 전망을 지닌 회사의 최고 명당 자리는 대부분 전문 경영인의 차지였다.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창업이 활발해졌고, 성공한 창업자들은 현명하게도 일정 규모로 기업이 성장하면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겼다. 이들의 경영은 신뢰할 만했고, 기복도 적었다.
 
하지만 관리 자본주의는 1976년 뼈아픈 일격을 맞았다. 마이클 C 젠센과 윌리엄 H 머클링의 논문인 <기업의 이론 : 관리 행동, 대리인 비용 및 소유 구조(Theory of the Firm: Managerial Behavior, Agency Costs and Ownership Structure)>가 <저널 오브 파이낸셜 이코노믹스(JOFE)>에 실렸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도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다. 저자들은 ‘기업의 오너가 전문 경영진들로부터 얻는 게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 경영인들은 주주가 아니라 자신의 부를 늘리는 데만 열심이고, 기업 및 사회 자산을 남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쓰고 있다는 주장이다. 젠센과 머클링은 전문 경영인의 존재가 주주들에게는 손해요, 경제 전체로도 낭비라고 지적했다.
 
젠센과 머클링의 비판은 주주 가치 자본주의 시대를 주도했다. CEO들은 즉시 주주 가치 극대화를 떠받들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사회는 자신들의 일이 고위 경영진에게 주식을 기반으로 한 보수를 제공해 이들의 이해관계를 주주들의 이해관계와 일치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면 주주들이 더 이상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이에 따라 주주가 왕인 시대가 왔다.
 
주주 운동의 슈퍼스타로 1981년에서 1997년까지 코카콜라의 CEO를 지낸 로베르토 고이주에타와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였던 잭 웰치를 들 수 있다. 잭 웰치는 GE로부터 CEO 지명을 받은 지 몇 달 후 뉴욕 피에르 호텔에서 당당히 연설했다. 비록 웰치는 당시 주주 가치라는 단어를 직접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연설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주주 가치 시대의 진정한 서막이 올랐다고 생각했다. 웰치와 고이주에타는 모두 기업은 주주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두 사람 모두 회사로부터 전대미문의 많은 주식도 받았다. 창업주도 아니고 기업 상장을 주도하지도 않았지만, 고이주에타는 오로지 주식 지분만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입성한 미국 최초의 경영인이다. 웰치는 말할 나위도 없다. GE에서 물러날 당시 그가 보유하고 있던 GE 주식의 가치는 무려 9억 달러에 달했다.
 
주주 가치 우선 논리가 지닌 결함
전문 경영인이 비즈니스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주주들이 진정 살기 좋은 세상이 열렸을까? 답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관리 자본주의가 득세했던 1933년부터 1976년 말까지, 전문 경영인을 전면에 앞세웠던 S&P 500 기업의 주주들이 얻은 연평균 실질 수익률은 7.6%였다. 하지만 주주 가치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던 1977년부터 2008년 말까지 이 수치는 오히려 5.9%로 하락했다. 이 두 시기의 시작 일과 종료 일을 조작해 수익률 수치가 같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기업이 주주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고 해서 주주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증거는 없다. 결국 젠센과 머클링의 주장은 주주들에게 큰 득을 가져왔다고 말하기 어려운 셈이다.
예상과 다른 현실은 다음의 도발적인 질문을 낳는다. 만일 기업이 가장 소중히 생각했던 대상이 주주라면, 과연 주주 가치를 올리는 데 집중했던 기업의 선택이 주주들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까? 현실이 예상과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우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주주가 최고라면, 과연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는 주주 가치에 집중하는 게 최선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오’다. 주주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주주 가치가 아니라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이 말은 ‘기업의 최우선 목적은 고객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과 같은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객 만족과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2가지 모두를 목표로 삼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최적이론에 따르면, 동시에 2가지 상반된 목표를 최적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즉, 원하는 변수 2가지를 최대화하거나 원하지 않는 변수 2가지를 최소화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최소한의 고객 만족으로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거나, 최소한의 주주 가치로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는 일만 가능하다. 하지만 2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다.(▶HBR TIP 목표가 하나 이상이 될 수 없는 이유 참조)

주주 가치 극대화 개념은 그 포장만큼이나 그럴싸해서 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은 경영진들에게도 쉬운 게 아니었다. 주주 가치라는 개념이 탄생한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 난관을 피할 수 없었음이 잘 드러난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주주는 기업의 자산과 수익에 대해 잔여 청구권을 가진다. 즉 직원, 직원들을 위한 연금, 협력 업체, 세무당국, 채권자, 우선주 주주 등 다른 청구인들이 모두 지급받고 난 후 남는 금액을 주주가 가져간다. 그러므로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는 이 미래의 현금흐름에서 청구인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을 공제한 금액의 할인 가치라 할 수 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주주들은 미래의 현금흐름이 어떨지를 예상해야만 한다. 이 미래에 대한 기댓값이 모여 주가를 결정짓는다. 해당 주식의 미래 가치가 현재 주가보다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는 주주는 당연히 주식을 내다 팔 것이다. 반대로, 미래 가치가 현재 주가보다 높을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주식을 구입할 것이다.
 
즉, 주주 가치는 현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 한 기업의 현재 수익은 해당 기업의 보통주가 지닌 가치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편이다. 지난 10년 동안, S&P 500 기업의 연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27배였다. 이를 달리 말하면 현재 수익이 주가 중 불과 4% 미만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의 미래 실적이 긍정적이라는 예상이 나타나면 당연히 주주 가치, 즉 주가가 높게 형성된다. 2009년 가을 구글의 PER은 약 35배에 달했다. 사람들이 구글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이 계속 늘어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엑손 모빌의 PER은 원유 산업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반영해 12배 정도에 불과했다.
 
이 사실이 경영자들에게 전하는 점은 분명하다. 주주 가치를 끌어올리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기업의 미래 실적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경영자는 이를 무한정 지속시킬 수 없다. 기업이 우수한 실적을 달성하면 주주들은 이에 들뜨고, 주가는 경영자가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주가 기업의 밝은 전망에는 지나치게 흥분하고, 나쁜 전망에는 지나칠 정도로 낙담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주식 시장은 기업의 수익 변화폭보다 훨씬 큰 폭으로 요동친다. 2001년 말 S&P 500 기업의 P/E 비율은 평균 46배에 달할 정도로 거품이 심했다. 이는 모두 주주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진입했다고 믿은 결과였다. 그렇지만 주식 시장에 넘쳐나던 행복감이 끝나면서 P/E 비율은 표류를 거듭하다 19배로 떨어졌고, 2007년까지 회복될 줄 몰랐다. 2008년 S&P 500 기업의 P/E 비율은 25배까지 상승했으나, 곧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 시장의 붕괴가 찾아왔다.
 
많은 경영자들은 주주 가치의 생성과 파괴는 경기 순환적이며,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진다. 호재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주주 가치를 부양할 수는 있지만,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가격은 다시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논리에서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예정된 폭락 이전에 탈출하는 일을 꿈꾸며 단기 전략에만 집중한다. 예정된 주가 하락을 막지 못한 책임을 운 나쁜 자신의 후임자에게 전가하기 위해서다. 아니면 어떻게든 시장의 기대 수준을 낮춰 오랫동안 주주 가치를 꾸준히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무형 자산과 영업권에 대한 재무 보고 규정에 따르면 기대를 낮추려는 시도 또한 극도로 많은 비용이 든다. (▶HBR TIP 회계 기준이 문제의 원인이기도 한가? 참조) 쉽게 말해 CEO들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위해 뽑힌 사람들이다. 이들은 게임 자체를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상태로 해석해내고 있다.
 
이게 바로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목표와 이에 따른 보상 체계가 주주 입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영자들은 목표 달성이 자신의 능력 밖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능력 있는 경영자들은 시장점유율과 매출을 확대해 마진을 올리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의 능력과 관계없이 기대 수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주주 가치를 늘리는 일이 불가능하다. CEO가 주주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이 어려워질수록, CEO들은 주주에게 손해인 조치를 취하려는 유혹에 더 깊이 빠진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가장 주창했던 잭 웰치를 보자. 웰치는 1981년 시가 130억 달러의 GE를 2001년 자신의 은퇴 직전 시가총액 484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주주 가치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GE를 끝없이 성장하도록 밀어붙였다. 가장 큰 성장 동력은 웰치의 취임 초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회사였던 GE 캐피털이었다. 하지만 웰치가 은퇴할 무렵 GE 캐피털은 GE 전체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벌어들이는 회사로 변모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때문에 2009년 GE는 GE 캐피털에 관한 대대적인 상각 절차를 밟았다. GE의 시가총액 또한 2009년 초 750억 달러로 급감했다. 같은 해 9월 GE의 시가총액은 1700억 달러로 불었지만 최고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웰치의 리더십하에서 GE의 주주 가치가 무려 4710억 달러나 증가했다는 점은 웰치가 물러날 당시만 해도 정말 멋지게 보였다. 특히 최고점에서 주식을 팔 수 있었던 주주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주들이 과연 얼마만큼 이익을 보았느냐는 점에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로베르토 고이주에타도 마찬가지다. 고이주에타가 코카콜라의 CEO로 취임할 당시 코카콜라 주가는 20년간 답보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CEO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무려 40배 이상 상승했다. 코카콜라의 시가총액은 고이주에타가 사망한 직후 1800억 달러에 이르렀지만 그 이후 단 한 번도 이 수치에 근접하지 못했다. 코카콜라의 후임 CEO들은 고이주에타가 경영할 당시에 열광적으로 진행되던 인수합병(M&A)과 급속한 성장의 유산을 물려받은 채로 회사를 경영하느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주주 가치 증대를 위한 가장 좋은 해법은 고객 가치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고객 만족에 상시 힘쓰는 일이다. 물론 무제한적으로 그러라는 뜻은 아니다. 고객에 아주 높은 가치를 제공하고 아주 낮은 가격을 받으면 고객은 행복하겠지만 회사는 망할 테니까 말이다. 즉, 주주가 자산에 포함된 위험을 감수한 만큼의 적절한 수익을 얻는 한에서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존슨앤존슨(J&J)의 사례를 보자. J&J의 미션은 어느 회사보다도 감동적이다. 1943년 전설적인 인물 로버트 우드 존슨 회장이 제정한 ‘우리의 신조’는 이후 단 한 번도 수정된 적이 없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우리의 첫째 책임은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자인 의사, 간호사, 환자와 자녀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의 둘째 책임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와 같이 근무하는 모든 남녀 직원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의 셋째 책임은 우리가 생활하고 근무하고 있는 지역 사회는 물론 세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의 마지막 책임은 우리 주주에 대한 책임이다.”
 
J&J의 ‘우리의 신조’는 회사의 우선 순위를 너무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고객이 첫 번째, 주주는 마지막이라는 개념이다. J&J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면 주주 가치도 자연히 좋아진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 믿음은 실제 지금까지도 사실로 드러났다.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오염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시 CEO였던 제임스 버키의 대응을 살펴보자. 시카고 지역에서 7명이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는 J&J의 잘못이 아니라 소매품 캡슐에 독극물을 투여한 범죄자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음이 이후 밝혀졌다. 사망자가 시카고 지역에서만 나왔는데도, 버키는 미국 전체 타이레놀 캡슐의 전량 회수를 지시했다. 당국의 지시 범위보다 훨씬 큰 조치였다. 그는 타이레놀이 J&J의 5번째 수익원이라는 점도 개의치 않았다. 이 조치는 회사가 이익보다 옳은 일을 우선한 교과서적 사례로 회자된다. 이후 J&J의 매출액과 시장점유율은 크게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버키의 결정에 대해 놀라워했다. 상장 기업의 CEO가 이익에 대한 영향을 무시하고 옳은 일을 선택했다며 버키 개인의 도덕성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앞에 나온 ‘우리의 신조’를 보면, 이는 버키가 특별히 도덕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J&J의 경영 이념에 따랐을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버키는 J&J의 CEO라는 의무를 성실히 다했을 뿐이다. 고객이 첫 번째고 주주는 네 번째라는 게 J&J의 경영 이념이었고, 그는 J&J의 CEO로서 자사의 경영 이념에 따라 행동했다.
 
장기적으로 버키의 결정은 J&J에 손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J&J가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매장이 아닌 약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도 미국 최초로 이물질 혼입 방지 포장을 적용하자 타이레놀에 대한 고객 충성도는 수직 상승했다. 2009년 가을, J&J의 시가총액은 1670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9위를 차지했다. 그 누구도 J&J가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합당한 수익 정도만을 안겨줬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주주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도 좋은 성과를 낸 기업은 J&J 말고도 더 있다. 세계 최대 소비재 회사로 2009년 9월 기준 시가총액 기준 세계 8위 기업인 프록터앤갬블(P&G) 또한 오래전부터 고객을 기업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1986년에 제정된 P&G의 경영 이념은 J&J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우리는 지금과 다음 세대를 위하여 전 세계 고객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최상의 품질과 가치를 지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 결과, 고객들은 우리에게 업계 선두의 매출, 이익 및 가치 창출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의 임직원들과 주주, 우리가 일하고 생활하는 지역 사회도 더불어 번영할 것이다.” P&G에서도 주주 가치의 증대는 고객 만족에 집중하는 데 따른 부산물일 뿐이다. 절대 P&G의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
물론 주주 가치를 최우선시한 회사들의 실적이 모두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괜찮았다. GE와 코카콜라는 아직도 시가총액 기준 세계 25위 내에 자리하고 있다. 2009년 9월 기준 GE는 세계 6위, 코카콜라는 22위를 차지했다. 웰치와 고이주에타가 재임하는 동안 두 회사 모두 S&P500 기업보다 충분히 높은 주주 가치 향상을 이룩했다. GE의 주당 순이익은 연평균 12.3% 증가해 같은 기간 S&P500 기업의 평균 10%를 능가했다. 코카콜라도 15%를 기록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J&J나 P&G보다 더 높은 주주 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했다. J&J와 P&G는 고객 가치를 제일 위에, 주주 가치를 제일 아래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주 가치 창출 면에서 각각 업계 1위를 차지했다. 매출액의 연평균 성장률도 마찬가지다. 웰치 취임 후 P&G의 매출은 15.2%, J&J는 14.5%가 늘었지만, GE는 12.3%를 기록했다. 고이주에타 취임 이후 P&G의 매출은 15.0%, J&J는 14.6%씩 늘었고, 코카콜라의 매출은 15.1%를 늘었다.

작동 원리
주주 가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회사들이 이렇게 좋은 주주 가치 증대 성과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기업의 CEO들이 주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실질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기 때문이다. 앨런 래플리가 P&G의 CEO로 취임했을 때, 래플리는 기업 문화에 따라 아무런 부담감 없이 주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향후 상당수 비즈니스가 펀더멘털 개선 작업에 들어가야 하며, 이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P&G의 상황이 악화될 것이다.” 월가의 주주들에게 이런 선언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CEO는 많지 않다. 한다 해도 되도록 간단하게 넘어가려 들 뿐 개선 작업을 시시콜콜 설명하려 들지는 않는다.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주주들을 향한 이런 발표를 공공연히 막지는 않아도, 장려하는 분위기 또한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P&G의 주주들이 갖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는 본사에 설치된 주가 현황 모니터다. 래플리는 취임 후 P&G의 주가를 보여주는 이 모니터를 없앴다. 래플리의 전임자는 직원들에게 주주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며 이 모니터를 설치했다.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례는 블랙베리 스마트폰으로 유명한 캐나다 회사 리서치인모션(RIM)도 있다. (▶HBR TIP 블랙베리와 도넛 참조).
 
보상 체계 또한 이 차이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이다. P&G 이사회는 CEO에게 단기 실적에 연동하거나, 퇴임 후 실현 가능한 주식 보상을 제시하는 법이 없다. 단기 보상을 강화하면 CEO는 진정한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단기 전망, 즉 주가를 관리하는 일에만 힘쓸 뿐이다. 퇴임 후 주식 보상을 제시하면 CEO는 결승점까지만 열심히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경영한다. 결승점을 통과한 후에 탈진해 쓰러진다 해도 퇴임한 CEO에게는 남의 일일 뿐이라는 뜻이다. 

퇴임 시 기준으로 주식으로 CEO 보수를 받기로 한 웰치의 연봉 체계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GE의 주가 차트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웰치의 후임자인 제프리 이멜트는 웰치에게 ‘결승점 집착증’의 전형적인 증세로 고전하는 기업을 물려받았다. 이멜트가 아무리 눈부신 경영 기술을 발휘해도, 웰치 취임 당시의 주주 가치에 근접하는 성과를 낼 확률은 거의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P&G가 래플리에게 제공한 보상 체계를 살펴보자. 고객 만족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어떤 식으로 경영자의 보상 체계를 관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래플리의 전체 보수 가운데 약 90%는 스톡 옵션과 매도 조건이 까다로운 제한부 주식이었다. 더욱 특이한 점은 행사 기간이 3년이라는 장기로 묶여 있고, 여기에 보유 기간도 별도로 2년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래플리는 그 자신이 직접 회사가 요구한 기간보다 2배 많은 옵션 보유 기간과 계획 매각에 의해서만 주식을 처분하겠다는 조건까지 선택했다. 성과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제한부 주식은 래플리의 퇴임 이전은 물론 퇴임 즉시에도 처분할 수 없었다. 처분 가능 시점이 퇴임 후 1년이 지난 후부터 10년간이었기 때문이다.
 
래플리가 퇴임할 시기에 그가 주주의 기대만 높이는 경영을 했다면 어떨까. 이후에는 주주들의 기대가 하락할 일만 남았으므로, 그는 스스로 자신의 보수를 깎아먹는 행위를 해야만 했다. 결국 래플리는 CEO 재임 기간 동안 예외 없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후임자를 훌륭히 키우며, 최상의 기업 체질을 갖고 있는 상태로 후임자에게 P&G의 사령탑을 넘겨주어야 하는 강력한 동기가 존재했다.
 
래플리의 보수 체계가 예외적이라고 주장할 전문 경영인들도 있다. 이들은 래플리가 후임자의 실수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에 과도할 정도로 노출됐다는 논리를 편다. 바로 여기에서 기업 문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P&G의 보수 체계는 직원들의 단기 성과를 주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기업에서는 적용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기업에서는 장기적 보상 체계를 도입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기업 문화 자체가 ‘스스로 내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기주의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객 봉사가 중심인 문화를 지닌 기업에서는 래플리의 보상 체계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도입하는 일도 힘들지 않다. 이러한 보수 체계를 도입하면 장기적으로 진정한 가치를 구축하는 행동이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에 들어간다.

설사 고객 가치 극대화가 최우선 목표이고, 이에 걸맞은 기업 문화를 갖추고 있으며, 주식 기반 보상 체계가 극도로 긴 행사 기간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고객 가치 극대화를 실행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도처에 주주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P&G에서도 래플리가 CEO로 취임하기 1년 전부터 고위 경영자에 대한 보상이 총주주수익률(TSR)과 연동했다. TSR은 3년간 주가 상승분에 배당금(주식에 재투자할 때)을 더한 수치다. 즉, P&G의 TSR을 동종 업계 기업의 TSR와 비교한 후, P&G의 TSR이 그룹 내 상위에 위치하면 P&G 임원들이 보너스를 받는 식이었다.
 
그러나 래플리는 어느 해의 TSR 성과가 우수하면, 이듬해의 TSR은 저조해진다는 점을 감지했다. TSR이 높다는 건 그만큼 주주의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즉 이듬해에는 같은 일이 반복될 수가 없다. 래플리는 주주 가치의 상승은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와의 상관 관계가 매우 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가는 비즈니스 성과가 아니라 기업의 미래 상황을 놓고 투기를 하고 있는 주주들의 무한 상상력과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깨달음에 다다르자 래플리는 즉시 보너스 지급 기준을 TSR가 아니라 매출 확대, 수익율 개선, 자본 효율성 증대라는 3가지 요인을 바탕으로 한 경영 TSR로 대체했다. 래플리는 P&G가 고객을 만족시킨다면 경영 TSR이 자연히 상승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주가 역시 상승할 거라고 믿었다. 특히 주식 시장에 연동된 TSR와 달리 경영 TSR는 P&G의 부서장들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더욱 효과적이었다.
 
물론 고객 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고 해도 모든 기업이 P&G나 J&J처럼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고객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조직 내 의사결정의 질 자체가 개선될 것이다. 고객을 중시함으로써 기업은 주주에게 필요한 성과를 지어내는 데 급급하기보다 경영 개선, 제품, 서비스의 개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가치를 중시한다고 해서 원가를 절감하고 수익을 향상하고자 하는 욕구가 줄어드는 건 절대 아니다. 경영진은 주주들 못지 않게 수익에 안달한다.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수록 경영진이 보수로 받을 돈도 커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주가에 대한 건전한 욕구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주가 상승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때, CEO들은 ‘경영’에 장기적 가치 성장을 ‘기대’에 기반한 단기적 가격 상승과 맞바꾸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CEO가 장기 성장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목적과 목표부터 재창조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0년 1,2월호에 실린 캐나다 토론토대 로저 마틴 교수의 글 ‘The Age of Customer Capitalism’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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