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는 크게 두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32년 시작된 관리 자본주의로 이 개념의 정의는 ‘전문 경영진이 기업을 이끌어야 한다’다. 둘째는 1976년 시작된 주주 가치 자본주의로 이 개념은 ‘모든 기업의 목적은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를 전제로 한다. 기업이 주주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주주는 물론 사회 전체가 혜택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숨어 있다. 이제 주주 가치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제 3의 시대, 즉 고객 자본주의 시대로 나아갈 때다.
관리 자본주의와 주주 가치 자본주의 시대에는 모두 학계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1932년 아돌프 A 벌리와 가디너 C 민즈는 <현대 기업과 사유 재산(The Modern Corporation and Private Pro-perty)>이라는 명저를 통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록펠러, 멜론, 카네기, 모건 같은 오너 최고경영자(CEO)가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저물고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경영하는 시대가 왔다. 벌리와 민즈는 이러한 변화는 두려워할 게 아니라 경제 성장이란 멋진 신시대의 일부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 이 시기의 경제 성장은 대공황으로 인해 몇 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오너 CEO들도 계속 자리를 지켰지만, 좋은 전망을 지닌 회사의 최고 명당 자리는 대부분 전문 경영인의 차지였다.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창업이 활발해졌고, 성공한 창업자들은 현명하게도 일정 규모로 기업이 성장하면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겼다. 이들의 경영은 신뢰할 만했고, 기복도 적었다.
하지만 관리 자본주의는 1976년 뼈아픈 일격을 맞았다. 마이클 C 젠센과 윌리엄 H 머클링의 논문인 <기업의 이론 : 관리 행동, 대리인 비용 및 소유 구조(Theory of the Firm: Managerial Behavior, Agency Costs and Ownership Structure)>가 <저널 오브 파이낸셜 이코노믹스(JOFE)>에 실렸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도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다. 저자들은 ‘기업의 오너가 전문 경영진들로부터 얻는 게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 경영인들은 주주가 아니라 자신의 부를 늘리는 데만 열심이고, 기업 및 사회 자산을 남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쓰고 있다는 주장이다. 젠센과 머클링은 전문 경영인의 존재가 주주들에게는 손해요, 경제 전체로도 낭비라고 지적했다.
젠센과 머클링의 비판은 주주 가치 자본주의 시대를 주도했다. CEO들은 즉시 주주 가치 극대화를 떠받들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사회는 자신들의 일이 고위 경영진에게 주식을 기반으로 한 보수를 제공해 이들의 이해관계를 주주들의 이해관계와 일치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면 주주들이 더 이상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이에 따라 주주가 왕인 시대가 왔다.
주주 운동의 슈퍼스타로 1981년에서 1997년까지 코카콜라의 CEO를 지낸 로베르토 고이주에타와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였던 잭 웰치를 들 수 있다. 잭 웰치는 GE로부터 CEO 지명을 받은 지 몇 달 후 뉴욕 피에르 호텔에서 당당히 연설했다. 비록 웰치는 당시 주주 가치라는 단어를 직접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연설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주주 가치 시대의 진정한 서막이 올랐다고 생각했다. 웰치와 고이주에타는 모두 기업은 주주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두 사람 모두 회사로부터 전대미문의 많은 주식도 받았다. 창업주도 아니고 기업 상장을 주도하지도 않았지만, 고이주에타는 오로지 주식 지분만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입성한 미국 최초의 경영인이다. 웰치는 말할 나위도 없다. GE에서 물러날 당시 그가 보유하고 있던 GE 주식의 가치는 무려 9억 달러에 달했다.
주주 가치 우선 논리가 지닌 결함
전문 경영인이 비즈니스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주주들이 진정 살기 좋은 세상이 열렸을까? 답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관리 자본주의가 득세했던 1933년부터 1976년 말까지, 전문 경영인을 전면에 앞세웠던 S&P 500 기업의 주주들이 얻은 연평균 실질 수익률은 7.6%였다. 하지만 주주 가치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던 1977년부터 2008년 말까지 이 수치는 오히려 5.9%로 하락했다. 이 두 시기의 시작 일과 종료 일을 조작해 수익률 수치가 같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기업이 주주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고 해서 주주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증거는 없다. 결국 젠센과 머클링의 주장은 주주들에게 큰 득을 가져왔다고 말하기 어려운 셈이다.
예상과 다른 현실은 다음의 도발적인 질문을 낳는다. 만일 기업이 가장 소중히 생각했던 대상이 주주라면, 과연 주주 가치를 올리는 데 집중했던 기업의 선택이 주주들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까? 현실이 예상과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우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주주가 최고라면, 과연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는 주주 가치에 집중하는 게 최선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오’다. 주주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주주 가치가 아니라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이 말은 ‘기업의 최우선 목적은 고객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과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