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현재 식당에서 두 가지 음식 중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고 있다. 첫 번째 음식은 맛이 별로 없지만 몸에 좋은 샐러드다. 두 번째 음식은 온갖 토핑이 듬뿍 들어가 매우 맛있지만 혈관 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햄버거다. 이때 당신이 샐러드를 고르도록 만드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와튼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주치의나 배우자의 잔소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강에 관한 상식들은 당신의 음식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당신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메뉴판의 길이였다.
와튼 스쿨의 마케팅 교수인 요나 버거, UCLA의 마케팅 교수 웬디 리우,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네르 셀라는 자신들의 논문 <다양성의 해악과 미덕 : 선택의 폭이 선택에 미치는 영향>에서 아이스크림, 과일, 전자제품을 이용한 5가지 실험을 통해 선택의 행동 양식을 묘사했다. 연구 결과,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의 수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는 오락성 위주나 당장의 만족이 아닌, 현명하고 실용적을 선택을 했다.
선택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은 ‘선택할 수 있는 재화의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소비자는 더욱 쉽게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구매율도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선택의 폭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느끼고, 구매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쉬운 쪽을 택한다. 버거 교수는 이 현상을 ‘선택의 패러독스’라고 칭했다.
버거 교수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엄청나게 늘어난 선택의 폭을 감당해야만 한다. 예전에는 한 상점에 서너 개의 케첩이 있었지만 현재는 어떤 상점을 가도 10가지가 넘는 케첩이 있다. 잡지의 종류도 100여 가지가 훌쩍 넘는다. 소비자가 구매 선택을 하는 과정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더 많은 요소들이 연관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버거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 참가자들에게 쿠폰과 상품권 등을 제공하고, 재화의 수나 다양성이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들은 연구 결과를 2009년 4월 호에 기고했다.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를 수 있는 재화가 다양하고 많을 때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구입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을 힘들어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선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느냐, 필요한 물건을 사느냐’는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버거 교수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초콜릿 케이크를 사는 일보다 건강한 과일을 섭취하는 일이, MP3 플레이어보다는 업무에 도움을 주는 프린터기를 사는 일이 훨씬 정당화하기 쉬운 선택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상품보다 실용적인 상품을 살 가능성이 높다. 실용적인 상품을 사는 일이 구매 행위를 쉽게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실험의 목표는 제품 구색의 다양성이 소비자들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연구진들은 우선 실험 참가자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진들을 보여주고 먹고 싶은 맛을 선택하도록 했다. 실험군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일반 아이스크림과 저지방 아이스크림 두 가지 중 하나의 아이스크림만 택하라고 했다. 대조군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저지방 아이스크림 5개가 포함된 총 아이스크림 10개 사진을 보여줬다. 그 결과, 첫 번째 집단에 속한 사람 중에서는 불과 20%만이 저지방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반면, 다양한 아이스크림 중에서 고른 참가자들은 37%가 저지방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두 번째 실험은 한 빌딩의 입구 두 곳에서 이뤄졌다. 첫 번째 입구에는 각각 2가지 과일과 2가지 쿠키가 담긴 쟁반을 놓고 그 앞에 “둘 중 원하는 한 가지를 드세요”라는 표시를 해뒀다. 두 번째 입구에는 6가지 종류의 과일(바나나, 빨간 사과, 녹색 사과, 배, 귤, 복숭아)과 6가지 다과류(각종 쿠키, 크루아상, 바나나 아몬드 머핀)를 비치해뒀다. 첫 번째 입구에서는 55%가 과일을 선택했고, 선택의 폭이 넓었던 두 번째 입구에서는 76%가 과일을 선택했다.
연구진은 두 실험에서 도출한 결과가 생활용품이나 오락 제품의 선택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또 다른 실험을 실시했다. 그들은 이번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프린터와 MP3의 샘플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MP3보다 프린터를 구입하는 일을 더욱 바람직한 구매로 인식한다는 사실은 이미 이전 실험에서 밝혀졌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사람들에게 각각 2가지 프린터와 MP3 샘플을 보여줬을 때는 참가자의 11%가 프린터를 선택했다. 반면 각각 6가지 프린터와 MP3샘플을 보여줬을 때는 참가자의 무려 50%가 프린터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는 물품 종류가 늘어날수록 정당화가 쉬운 제품을 고른다’는 사실은 동일 실험에서 프린터는 그대로 두고 MP3 종류만 더 늘렸을 때의 결과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프린터 종류는 그대로 두고, MP3 종류만 더 늘리면 MP3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MP3 종류를 늘리자 프린터와 MP3 종류를 똑같이 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프린터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