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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홀라크라시’ 도입 실패에서 배운다

강원식 | 306호 (2020년 10월 Issue 1)
필자는 패션 브랜드를 수입 유통하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현재는 규모가 축소됐지만 한때는 빠른 속도로 매출 규모가 성장하면서 5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빠른 매출 성장 덕분에 조직이 급격히 커졌다. 직원 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회사는 기능형 조직 중심으로 업무를 하게 됐다. 그런데 조직이 커질수록 경영 이론서에서나 보던 ‘사일로 현상(Silo effect)’이 실제 회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은 회사일 때는 자연스럽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의 문화가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많은 고민을 했고 다양한 시도도 해봤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홀라크라시(Holacracy)’ 도입이었다. 홀라크라시는 수평적이고 자기 경영적 의사결정 방식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고 실제 자포스(Zappos)라는 미국의 온라인 신발 판매회사가 이 기법을 도입해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었다. 평소 자포스의 기업 문화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 문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필자는 홀라크라시를 과감히 도입했다. 그러나 홀라크라시를 도입하면서 수많은 저항과 어려움을 경험했다. 특히 직원들이 새로운 방식에 혼란스러워했다. 홀라크라시에서는 개인에게 역할 (domain)을 부여하고 그 역할에 상당한 수준의 결정 권한을 부여한다. 거버넌스 프로세스와 오퍼레이션 프로세스라는 두 가지 큰 축의 회의 방식을 통해 역할을 부여받은 개개인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고 자기 경영적으로 회사를 이끌어 나간다. 부여받은 역할을 자유롭게 쓰면서도 회의 프로세스를 통해 적극적으로 논쟁을 벌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은 구성원 대부분에게 상당히 생소했다. 결과적으로는 3년 정도의 정착 시도 끝에 홀라크라시 도입에 실패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회사의 매출이 홀라크라시의 도입 시기와 겹쳐서 하락한 것도 제도 정착이 쉽지 않았던 원인이었다.

시간이 지나 찬찬히 실패의 원인을 되짚어 보니 가장 큰 원인은 ‘성급함’이었다. 홀라크라시 자체가 매우 난도 높은 방식임에도 부딪혀가면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데 철인 3종 경기를 뛰는 격이었다. 홀라크라시의 창시자인 브라이언 로버트슨은 홀라크라시를 빅뱅 방식으로 한번에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성공적으로 홀라크라시를 도입하려면 그전에 조직 구성원의 대다수가 기본 자질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큰 개념의 철학이나 제도보다는 매일매일의 사소한 리추얼(ritual)과 구체적 행동 요령 등을 쌓아 나가는 것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수평적 조직문화 도입’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 거는 것보다는 “보고할 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먼저 다가서서 이야기한다” “휴가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등의 사소한 룰들을 잘 실행하는 것이 수평적 문화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건설적인 논쟁과 회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제도화하기 이전에 ‘잘 반대하기’ ‘감정과 이성을 구분하기’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듣기’ 같은 기초적인 바탕을 먼저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차근차근 쌓이면 비로소 홀라크라시에 준하는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필자는 그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회사의 문화와 조직의 기초를 다시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수평적이고 자기 경영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이 향후 모든 기업이 가야 할 방향성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경영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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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필자는 2007년 수입 전문 유통사인 ㈜코넥스솔루션을 창업해 탐스슈즈, 캐나다구스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현재는 조직문화 관련 팟캐스트인 ‘새꿈사(새로운 조직문화를 꿈꾸는 사람들)’에 사회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남성 패션 전문 유튜브 채널인 ‘풋티지브라더스’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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