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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어제의 성공과 치열하게 싸우기

김현진 | 294호 (2020년 4월 Issue 1)
1854년, 루이뷔통은 여행을 많이 하는 상류층 고객들을 위해 가죽 가방보다 훨씬 가볍고, 표면이 평평해서 여러 개를 안정감 있게 겹쳐 쌓을 수 있게 설계한 여행용 트렁크를 선보였습니다. 당시로선 혁신이었던 신제품의 등장에 주문은 폭주했고 이를 소화하기 위해 파리 인근 아니에르에 공방이 마련됐습니다. 2015년 이 공방은 갤러리로도 변신했는데 역사적 제품들이 전시된 선반과 캐비닛 하부에 모두 바퀴를 단 것이 눈에 띕니다. 이동성을 상징하는 바퀴를 통해 브랜드 역사에 담긴 여행이란 DNA를 드러내면서 바퀴라는 ‘멈추지 않는 혁신’이란 의미까지 중의적으로 드러낸 셈입니다.

대륙을 넘어 일본에서도 ‘바퀴’가 상징하는 혁신 정신이 발견됩니다. 시니세(老鋪,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대표적 장수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최대 유통기업 ‘이온’이 그 주인공입니다. 1758년, 지방의 작은 동네 포목상에서 시작된 가업을 아시아 대표 유통기업으로 키운 비결을 오카다 다쿠야 명예 회장은 오랜 가훈을 통해 들려줍니다.
“대들보에 바퀴를 달아라.”

집안의 기둥이라 절대 흔들려선 안 될 것 같은 대들보마저 생존을 위해서는 과감히 옮길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라는 뜻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발(發)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DBR이 이처럼 전 세계 장수 기업 전략에 주목하게 된 것은 부단하게 페달을 굴러 100년 이상을 달려온 이들 기업에서 단기적 위기 속에서도 ‘큰 그림’을 보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거시조직학계에선 생존율이 기업 성과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힙니다. 기업 존속의 관점에선 이미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이 입증된 셈인 전 세계 100년 기업에선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킹스턴대와 런던경영대학원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이 예술과 교육, 스포츠 영역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조직 7곳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공통점은 ‘견고하게 핵심(사업 비전과 철학)을 지킨다는 점에선 전통적이지만 놀랄 정도로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역동성도 갖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컨대, 이들은 직원 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기업들과 반대로 참신함이란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직원의 70%를 계약직으로 채웁니다. 연구 대상 중 하나인 RCA(영국 왕실예술학교) 측은 “우리는 여기서만 일하는 ‘직업형 학자’ 말고 관습을 뒤집는 사람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연구 대상이 된 100년 조직들은 성과에 기뻐하기보다 이에 긴장한다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RSC(로열셰익스피어극단) 측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20% 이상이 성공하면 긴장하게 된다. 이는 별로 새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뉴질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인 올블랙스는 승리를 거둔 후에 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경험치를 바탕으로 큰 승리를 거둘 때마다 더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다시 프랑스의 럭셔리 기업으로 돌아가 볼까요. 110년 전통의 샤넬은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여자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최애 브랜드’로 꼽힙니다. 창업주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수녀원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카멜리아 문양을 여전히 옷과 가방에 한 땀, 한 땀 손으로 정성껏 붙이는 이 브랜드는 2017년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브랜드’로 꼽히며 ‘힙’한 젊은 고객들을 유혹합니다. 지극히 오프라인적인 가치를 내세우던 기업이 고객과 시장 변화에 맞춰 기민하게 디지털의 미덕을 탑재한 결과입니다. 성공한 100년 기업을 추구하기 위해 자문해야 할 것은 그래서 ‘급진적인 동시에 전통적일 수 있는가’입니다. 200년 장수 기업을 유지한 듀폰의 성공 비결을 묻자 찰스 홀리데이 전 회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는 20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어제의 성공과 치열하게 싸워왔다”고.

과거의 성공 공식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동시에 시장에 맞춰 유연하게 맞춰 진화하고 있는 100년 장수 기업의 교훈을 성공 및 실패 사례를 통해 입체적으로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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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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