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4. VUCA 시대 리더의 심리학

“실패해도 돼, 나도 예전에 잘 못했어…”
심리적인 안전감을 줘야 진짜 리더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2020년에도 회사 안팎으로 리더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무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 안에서는 밀레니얼, Z세대가 상사의 지시에 R&R(Role and Responsibility, 역할과 책임)을 따지고 공정성을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국내외 경영 환경 변화도 거세다. 주 52시간제, 직장인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는 등 변화가 급격하다. 나라 밖에선 미·중 무역 전쟁이 현재진행형이고, 대일 갈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 이슈가 산적해 있다. 문제는 조직원들이 이 같은 불안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리더는 조직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여 조직 내 두려움을 관리해야 한다. 또 조직의 ‘썩은 사과’인 나르시시스트를 골라내는 데도 주력해야 한다.




“리더들이 너무 취약해졌어요.”

한 인사 담당자가 말한다. 인사나 교육의 입장에서 현업의 리더들은 보통 변화를 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이야기가 돼왔다. 하지만 이제는 인사 담당자가 보기에도 리더들이 억울한 상황이 너무나 많다. 예전에 선배들이 하던 대로, 혹은 그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행동을 하는데도 투서가 올라오거나 블라인드에서 난도질을 당한다. 나름대로 애를 쓰는 데도 젊은 직원들은 회사를 너무 쉽게 떠난다. 첫 취직 2년 안에 퇴사하는 비율이 44%다. 떠나는 사람이야 다시 충원을 하면 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우리 회사가 그렇게 나빠?” 하는 상실감과 박탈감으로 인한 사기 저하는 또 다른 해결해야 할 일이 됐다.

“대체 언제 세상이 안정되나요?”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 주 52시간제, 직장인 괴롭힘 방지법 시행 등 국가적 제도상의 변화가 급격하다. 해외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정세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대체 미·중 무역 전쟁은 어떻게 될 것이며, 대일 갈등은 또 무엇이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어떻게 될까. 모두 국내 기업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다. 대기업이 이러한 상황에 노출되면 협력 업체들에 당연히 타격이 가고, 회사 앞 식당에도 타격을 준다. 특히나 모든 경제지표가 암울해 펀더멘털이 약해진 지금 사소한 대외 변화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 같은 영향들을 리더들은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안정한 환경만 이슈가 아니다. 지금은 말 그대로 나르시시스트들의 세상이다. 이들을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리더들에게 큰 숙제로 다가온다.

먼저, 리더들이 실패하는 원인은 뭘까. 첫 번째는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0년에도 VUCA는 유지된다. 급격한 변화(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 복잡성(Complex), 모호성(Ambiguous)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어떻게 리더들이 이 변화에 선제적으로 적응하고, 그것을 따라잡을 것인가.

2019 하버드 의대가 주최한 리더십과 의료 분야 코칭 연례 콘퍼런스는 특정 감정에 주목했다. 감정에 관한 최근 연구 중 압도적으로 인기 있는 감정은 ‘불안’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변화 속에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에는 기업 수명이 60년이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기업 수명을 30년 정도로 보았다. 지금 포천 500대 기업의 평균 나이는 15세다. 기업의 수명이 한 인간의 커리어보다 짧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사람들에게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갖게 한다. 국내 자동차 보급률이 몇 %이고, 국민 소득이 얼마이니 자동차를 몇 대를 만들면 되겠구나 예상이 가능한 시대가 있었다. 또한 공급자 우선의 시장에서는 기업이 그다지 변화에 민감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만들면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예상도 하기 어렵다. 모토로라처럼 100년 된 기업도, 닷컴 신화의 포문을 열었던 야후도 헐값에 매각됐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사용했던 제품이나 서비스가 사라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승승장구하던 기업들이 적자를 기록하기도 하고, 새로운 산업이 부상한다.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리더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화두다. 조직 내에서 더욱 높아진 리더의 취약성과 비즈니스를 위협하는 나르시시즘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격의 실체: 두려움

“회사에서는 블라인드를 체크하면서 구성원 관리를 좀 하라고 해요. 그런데 블라인드를 보고 나면 너무나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런 제가 이상한가요?”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의 감정은 이성이 통제할 수 있지 않다.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는 글, 자신을 향한 것 같은 글, 혹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을 공격하는 글을 보면, 그 글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이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스트레스 반응을 촉발해 부정적인 기분이 짧게는 20분, 길게는 6개월까지도 지속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이는 아마 모든 생물의 기본 속성이 될 것이다. 신체적 공격뿐만 아니라 심리적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한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게임의 법칙은 바뀌었다. 조직의 방향성과 지시 등이 부당하다고 별로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리더 세대의 생각은 더 이상 일터에서 통하지 않는 가치가 됐다. 따라서 블라인드와 같은 것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들은 일상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의 갈등을 겪게 된다. 예전 방식을 고수하려 하면 꼰대 소리를 듣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변화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리더들은 이렇게 취약해졌다.

구성원들은 상사의 지시에 R&R(Role and Responsibility, 역할과 책임)을 따지고 공정성을 요구한다. 사실 이것도 그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액션이다. 그들은 자신이 함부로 ‘사용’되길 원하지 않는다. 조직에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은 개인의 발전과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조직의 성장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욕구보다 크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아예 없다 보니 조직에 충성하고 적응해야겠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따라서 개인이 자격증을 따고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조직에 충성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누군가에게 차별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치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이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공정성에 대한 요구다. 미국에서는 상위 1% 집단이 부를 형성한 과정이 과연 공정하느냐를 놓고 공정성 시위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고,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서 정치권을 위협하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장기간의 불황을 거쳐 취약함이 높은 세대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다. 따라서 그들의 R&R을 따지고 자신의 영역과 시간, 에너지를 지키고자 하는 것도 공정하게 일하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액션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를 공격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공격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보호 본능이 다른 형태로 발휘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개념이 바로 심리적 안전감이다. 2년 전 구글에서 수년간 진행한 자체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고성과팀에는 있고, 저성과팀에는 없는 것이 이 ‘심리적 안전감’이다. 이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에드먼드슨 교수가 팀워크에 있어서 핵심 개념으로 소개했고 많은 실증적 연구가 그에 화답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내가 실수나 실패를 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는 서로에 대한 방어행동이 갈등의 양상으로 드러나는 조직에서 주목할 만하다. 왜냐면 앞에 말한 조직의 경우는 이 심리적 안전감이 없다. 리더가 바뀐 게임의 법칙을 아직 이해하고 적응하지 못했다고 하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어딘가에서 난도질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조직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사람들이 쉽게 취하는 액션은 현실 부정이다. 자신이 적응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구성원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더욱 예전 방식을 강화하는 퇴행적인 행보를 보이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구가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 부정은 결국 더 악화된 결과만을 마주할 뿐이다.

구성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왜 R&R을 따지는가? 대부분의 경우 두렵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고, 그것으로 인한 비난에 대한 선제적 방어다. 학생종합평가를 통해 80%가 대학을 진학하던 세대는 하루하루를 평가받아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하루하루의 ‘품행’과 수행평가라고 불리는 잦은 정성적, 정량적 평가가 그들의 인생을 좌우할 고교와 대학 진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들은 상사를 통해 평가자인 선생님의 모습을 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시험 한 번 잘 보면 된다고 생각하던 앞 세대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앞 세대보다 크다. 그러다 보니 도전정신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못하는 일이더라도 해보고, 잘 안 되면 야단 맞고 다시 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던 앞 세대와는 다른 특성을 갖게 됐다.

즉, 한마디로 말해 갈등은 거의 이 ‘잘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두려움이 공격적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려움을 낮춰주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인시아드의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리더의 가장 큰 역할이 이러한 구성원의 두려움을 흡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취약성을 드러내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흡수하고 이 심리적 안전감을 높일 것인가?

전문가들은 몇 가지 실증 사례를 통해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 한 가지가 리더가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나도 너처럼 부족한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가 약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 그를 도울 생각, 그로부터 도움을 구할 생각을 하게 된다. 의외라고 보일 수도 있다. 상대가 아주 유능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도움을 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대의 유능에 기가 눌려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하냐?”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신뢰와 권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

한때 극심했던 반삼성 기류는 삼성이 애플의 곡선 직사각형 디자인을 침해했다고 캘리포니아법원에서 천문학적 벌금을 선고받은 이후로 한풀 꺾였다. 최근 오너가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일본 정부의 주요 소재 수출 규제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국민들이 삼성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작년 37억 원의 연봉을 받아 화제가 됐던 나영석 PD는 예능에서 옆집 아저씨 같은 소탈함을 보인다. 그리고 실수도 잦아 출연자들에게 종종 놀림거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면’이 보이면서 시청자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 천하장사였던 강호동은 불미스러운 일로 잠정 은퇴 후 돌아와서는 ‘옛날 사람’ ‘이빨 빠진 호랑이’ 이미지로 다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갱년기 아저씨’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처럼 약해진 천하장사의 모습에 사람들은 실망하고 등을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친근하고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그가 일반인들과 직접 접촉하는 예능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리더십 구루인 인시아드의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교수에 의하면 21세기 리더십은 유능함을 자랑하고 사람들을 압도하는 리더십이 아니다. 조직에 현명한 광대가 돼야 한다. 조직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위협적이지 않게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리어왕’의 광대와 같은 역할이다. 따라서 농담과 잡담 등 친근한 모습이 장려된다. 배달의민족은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을 통해 잡담을 장려한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낯선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빌릴 때, “핸드폰을 빌려주시겠어요” 앞에 단 한 문장, “비가 와서 날이 좀 그렇네요”라는 말을 더했을 때 낯선 이에게 핸드폰을 빌려줄 확률이 446%나 높았다. 조직문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거 샤인도 컨설팅은 나를 한껏 낮추어 질문을 던지는 것(Humble Inquiry)이라고 제시한다. 리더의 자기 희화화, 긴장을 풀어주는 잡담, 아주 사소하지만 상대방에게 나를 오픈하는 한마디, 그리고 낮은 자세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불러내는 데 성공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을 버리거나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두려움의 형태인 방어적 자세와 선제적 방어 자세인 공격적 언행을 내려놓는 것이다. 『어떻게 감정이 만들어 지는가』의 저자이자 유명 신경과학자인 하버드 의대의 리사 팰드먼 배럿 교수는 우리의 한정된 에너지 관리가 언어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몸은 한정된 에너지원인 글루코스와 이를 운반하는 코르티솔을 통해 운용된다. 이 에너지원은 우리가 몸을 움직일 때, 머리를 쓸 때, 어떤 감정을 느낄 때 한 구좌에서 사용된다. 우리는 두려움이나 우울함 같은 감정이 생길 때 이것을 관리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쓴다. 감정을 참는 데에도 에너지를 쓴다. 예일대 감성지능연구소는 감성지능을 ‘감정을 전략적으로 표현하거나 통제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몸이 피곤하면 이러한 기술도 소용이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최첨단 장비를 써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그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 무엇보다 그들과 사용하는 언어를 조율할 것을 강조한다.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그 감정을 다스리는 데 에너지원이 쓰이게 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 상태에서는 몸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도 고갈이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고맙다” “사랑한다”와 같은 말을 하거나 들으면 이러한 것과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옥시토신이나 가바와 같은 안정을 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라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의 몸에 긍정적인 신호를 통해 에너지를 관리한다. 또 나의 좋은 언어가 상대방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다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 몸에 쌓이게 된다. 이는 기분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신호는 우리 뇌의 서로 다른 부분을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몸에 물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트라우마 전문가인 보스턴 의대 베셀 반 데어 콜크 교수는 지속적이고 강렬한 감정의 경험은 뇌의 물리적 변형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의 몸은 매 순간 감정 경험에 의해서 실제로 면화가 된다. 식당에서 물 한 잔을 받아도 “감사하다”고 말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현장에서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리더들은 “내가 가벼워졌다”고 고백하고, 조직원들은 리더들이 언어를 바꾼 이후 조직 분위기가 순화됐다고 말한다.

심리적 안전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려움이 낮은 집단에서 고성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평소에 두려움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창조적인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은 덤이다.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언어는 “괜찮아” “잘하고 있다” “잘될 거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나도 예전에 잘 못 했다. 그래도 그를 통해서 성장했다”와 같은 말이 있다. 인정을 해주는 말도 그렇다. 그 사람이 어떤 특별한 것을 잘하지 않아도 그의 긍정적인 면을 알아봐 주는 말들이다. 칭찬은 잘못하게 되면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만들어 내기에 그다지 권장할 것이 못 된다. 대신 “김 대리는 참 성실해” “김 부장 덕분에 우리 부서가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지영 씨 덕에 우리 조직에 젊은 생기가 더해진 것 같다” “우리 부서의 성공은 다 여러분 덕이다, 감사하다”와 같이 그 사람의 긍정적 성향 혹은 존재 자체의 긍정성을 알아봐 주는 것이 심리적 안전감을 높인다.

많은 리더가 저성과자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사실 저성과자는 많은 경우, 사람들의 두려움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가 저 사람보다는 잘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두려움을 낮춰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반면 저성과자를 처벌하는 조직은 ‘나도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그 두려움을 관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보신주의가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저성과자는 매우 다양한 형태여서 그들에 대한 처분법을 단순화해서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몸이나 마음에 실질적인 병이 있거나 채무에 시달리는 등 다른 곳에 과도한 에너지가 새어 나가고 있다. 너무 몰아세우게 되면 더욱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다. 저성과자의 경우도 성과가 낮지만 노력하는 자세를 알아봐주고, 성과가 나지 않는 데 대한 실망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통해서 상대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인정해주면 좋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다. 리더가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결국 고성과 조직을 만드는 길이다.

나르시시즘

리더들을 취약하게 만드는 개인들이 있다. 이 개인들은 힘이 너무나 세다. 취약해진 일반적인 리더들과 달리 이들은 사람들을 취약하게 만든다.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메르켈 총리가 세계를 이끌던 시대와 확연히 다르다. 평화와 협력, 그리고 상생의 기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는 국가적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조직에 위치한 나르시시스트들은 사실상 조직을 갉아먹는다. 리더십 관련 학자들은 나르시시스트는 조직에서 제거해야 하는 ‘악의 싹’이라고 하지만 인류 역사에 꾸준히 존재하고 지금도 세계 최고 리더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다. 심지어는 선거로 선출이 되기도 한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하지만 두려움이 높은 시대에는 확신에 찬 비전을 제시하는 히틀러와 같은 나르시시스트가 득세하기 쉽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적 성격장애’ 증상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기를 너무 사랑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착취하고, 특권과 과도한 찬사와 숭배를 요구한다. 사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일관적이지 않고, 차가운 양육자에게 양육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깊은 내적 절망을 발달시켜왔다. 이러한 절망은 외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강요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들은 실제로 사랑받기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산다. 따라서 엘리트가 될 확률도 높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까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여유 만만하고, 섹시하며, 매력적인 면모를 보인다.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읽고 이용할 줄도 알아서 많은 사람 위에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충분히 힘을 갖췄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과도하게 착취하기 시작한다. 경계를 허물고, 법 위에 존재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가 심리적으로 원했던 존경과 사랑은 이러한 거짓된 착취를 통해서 채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매력에 대한 일상화가 이뤄져서 이전만큼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잡아 놓기 위해 망상적인 일들을 벌인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조언이나 충고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여겨 절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비극적으로 끝난다. 그러나 더 비극적인 것은 이런 사람들이 군림하는 조직과 국가의 구성원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추종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자신의 부적절함을 메워주는 도구로만 사용한다. 실제로 그들은 다른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들은 도덕성이 없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미국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나르시시스트에 가깝다. 수십 년 만에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중국의 지도자도 그렇게 보인다. 푸틴 대통령 역시 대표적인 나르시시스트 지도자다. 아베 총리도 그래 보인다. 우리가 보통 카리스마 있다고 말하는 많은 리더가 실상 나르시시스트다. 실제로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리더들은 진단 결과가 세상에 나와 있기도 하다.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형적인 행동을 통해서 추종자들의 숫자를 빠르게 늘려간다. 국제적 관계에 있어서도 나르시시스트들은 그들끼리 처음에는 매우 친해진다. 하지만 한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존재할 수가 없다. 그 안에서 서열 정리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다. 그들은 일관성이 없고, 인상 관리에 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어제 싸우고, 오늘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의 확고한 태도는 불확실성의 두려움에 확실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하지만 또 금세 그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간헐적으로 확고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애를 닳게 하며 사람들을 조작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늘의 유일한 해가 돼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며, 끊임없이 찬사를 받고,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거나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파워를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이러한 갈등은 해소되기 어렵다. 그들은 해소할 생각이 없다. 이러한 갈등은 그들의 파워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성향으로 보면 홍콩 사태도, 미·중 무역 갈등도,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도, 일본의 경제적 도발도, 북한의 행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실질적인 국가의 이득이 아니라 개인이 그 첨예함 속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들의 진짜 관심사다.


조직 내의 나르시시스트

조직 내에도 나르시시스트가 존재한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감 가득한 모습으로 승승장구한다. 이들은 정치에도 능해서 힘 있는 사람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과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을 실제보다 커 보이게끔 잘 포장을 해 자신감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추종한다. 이들은 희생양을 만들어서 문제가 생기면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 놓는다. 이러한 리더는 조직원들을 착취하고, 성과를 빼앗아 간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들은 실제로는 꽤나 능력 있는 사람들이지만 스스로가 사랑이나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깊은 절망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무엇을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것을 가로채는 것을 전략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불법이나 공정하지 않은 짓을 저질러 놓은 경우가 많다. 횡령과 성범죄 등은 이 나르시시즘의 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

조직 구성원이 나르시시스트인 경우도 있다. YG의 승리는 자신을 ‘승츠비’라고 부르며 자신의 사업적 성공을 자랑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 자체가 나르시시스트다.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사람들을 조작한다. 각종 범죄에 연루돼 있지만 이미 빠져나갈 구멍을 다 설계해 놓았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들은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르시시스트는 조직의 ‘썩은 사과’다. 혼자서 망가지지 않는다. 온 조직을 망가뜨린다. 자신 이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이 없어진 후에 조직이 무너지는 것이 자신의 유능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길이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리더들은 후계를 마련하지 않는다. 후계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드러나게 해줄, 능력이 없는 사람을 준비해 놓는다. 보통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발에 걸려서 몰락한다. 그때는 그의 조직이 다 함께 몰락할 수 있다. 따라서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제거하거나 알고나 당하자

나르시시스틱 리더십 전문가들은 이러한 나르시시스트 리더는 조직을 황폐화시키는 존재이기에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아티클 ‘악질 리더 코칭하기’는 나르시시스트를 코칭하기 아주 어려운 대상으로 지목했다. 전문가들도 고쳐서 쓰기에는 너무 문제가 깊고, 그 결과도 좋기 어렵기 때문에 수준 높은 전문가가 코칭을 할 것이 아닌 이상 제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나르시시즘 전문가인 샌드 호치키스 박사는 나르시시스트를 상사로 만난 경우는 퇴사를 고려하라고 말한다. 절대 맞서지 말라고 조언한다. 일반인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를 능가하는 유능을 드러내거나 그를 무력화하려고 하면 상상을 초월한 비이성적, 비정상적 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정상인들은 감당하기 어렵다. 많은 리더가 이 나르시시스트를 제거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독을 뿌려 놓은 경우가 많다. 오너는 이러한 나르시시스트 경영자의 거짓말에 속아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의 잔인하지만 깔끔한 일 처리나 큰 비전과 호언장담, 혹은 거짓말에 길들어 있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한동안의 혼란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법 위에 존재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실제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사규나 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 횡령이나 성추행 등이 고발됐을 때는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본인이 스스로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하면 보내주어야 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들을 제거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송사는 아주 기본이다. 실제로 필자가 코칭하는 기업에서는 나르시시스트 리더를 제거하고 실질적 타격을 입었고, 계속적으로 드러나는 그가 행해 놓은 관계사에 갑질, 조직 내외에서 갖은 뇌물 수수와 자질구레한 횡령 등의 악행을 수습하느라 오랜 기간 애를 먹었다. 그러나 조직은 평화로워졌으며, 안정화됐다.

그럼 어떻게 이런 리더들의 부상을 막을 수 있을까. 이사회가 민주적으로 운용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견제와 균형의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본인이 만든 회사에서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퇴사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이라도 뭔가를 저지를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것이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해서 원하는 만큼 진행하지 못한다. 필리핀의 경우는 마약 소지 의심만으로도 사살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시스템이 제어하게끔 하는 것이 나르시시스트의 부상을 막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레벨에서 나타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일차적으로 리더 개인이 감당해야 할 큰 짐이다. 나는 코칭에서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를 어쩌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나 당하자고 말이다. 상식으로 예측이 안 되는 것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원래 예측이 안 된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폭우가 쏟아지면 맞고 가야 할 때가 있다.

2020년은 리더들에게는 그다지 녹록지 않은 해가 될 것이다. 상황에 대한 인지적 이해와 자신의 두려움 관리, 그리고 실질적 대응 전략을 이해하고, 위기를 맞서 낼 에너지의 여유를 두고 관리를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필자소개 김현정 숭실대 혁신코칭컨설팅학과 주임교수 Hyun8980@gmail.com
필자는 미 컬럼비아대에서 조직과 리더십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미네소타대에서 상담심리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경영학부 조교수, INSEAD Global Leadership Center 방문연구원, 삼성전자 리더십 개발센터 등에서 근무했다. 심리학과 경영학, 성인교육학을 기반으로 한 효과적 리더십을 연구하면서 리더십 개발을 위한 상담 및 코칭을 하고 있다. 이그제큐 코칭/컨설팅 그룹인 Executive Coach Society 대표와 숭실대학교 혁신코칭컨설팅학과 주임 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