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의 전통, 리더의 품격

176호 (2015년 5월 Issue 1)

전통, 리더의 품격

 

지난 2500년간 동아시아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이끌었던 유학(儒學). 그러나 정작 공자와 맹자 당대에는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중원의 각국을 주유(周遊)하며 사상을 펼쳤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군주는 없었고 외로운 분투로 그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부국강병이 목표였던 군주들에게 그들의 사상은 옳기는 하지만 너무나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긴 공자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던 자로(子路)조차도선생님의 사상은 우활(迂闊, 실제와 거리가 있음을 의미)하다고 갸우뚱했을 정도니 군주들의 생각이야 물어볼 것도 없겠다.

 

유학사상은 기본적으로 CEO론이다. <논어> <맹자>를 비롯한 유학의 경전은 천하(天下), (), () 등 크고 작은 각종 조직의 최고경영자에게 들려주는 경영 이야기다. 공맹은 조직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조직을 운영하는 세세한 기술이 아니라 구성원을 한마음으로 보듬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덕성이라고 설파했다. 즉 인의(仁義). 위나라 혜왕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왕이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맹자는 서슴없이이익을 염두에 두지 말고 인의만을 생각하라고 꾸짖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기본 덕성인 인의가 없으면 리더의 자격은 없다.

 

왜 지도자의 덕성이 중요한가?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인간의 본연적 속성이요,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기능적 측면으로 말하자면 그래야만 구성원들이 하나로 뭉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하나가 되는 것은 보상이나 제도, 권유나 강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하나가 되는 것은 리더의 덕성에 달려 있다. 맹자는 이를외부적 압력이나 조건으로 인해 리더를 따르는 것은 마지못해 따르는 척하는 것이고, 리더의 덕을 보고 따르는 것은 마음이 기뻐서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군자는 그릇처럼 되지 않는다(君子不器)”고 했다. 리더는 어떤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은 수많은 브레인이 모여 있는 곳이다. 리더의 역할은 그 브레인들이 적재적소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길을 틔워주고 그 조각들을 하나로 갈무리하는 일뿐이다. 그래서 노자뿐만 아니라 공자 역시도 중시한 것이 아무런 인위적 작위 없이 하는무위의 정치였다. 그 무위의 정치가 가능한 까닭은 바로 리더의 덕성에 있다. 공자는덕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뭇 별들이 그 주위를 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지도자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전통의 DNA 덕분이다. 물론 병역과 납세의 의무 수행이나 위장 전입 여부로 도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현실은 안타깝다. 요즘 정치권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즉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리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된 품격을 갖춘 리더가 등장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 혼란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 일반인들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리더의 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2500년 전의 가르침을 통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아우르는덕성보다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줄능력이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고 있지는 않은지, 후속 세대들에게 덕성을 무시한 채 능력 갖추기만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리더는 구성원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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