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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인문 정신과 경영

“멋대로 해라” 노자, 자발적 생명을 가르쳤다

최진석 | 109호 (2012년 7월 Issue 2)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유행 혹은 흐름 가운데 하나는 바로인문학 열풍일 것이다. 6.25 전쟁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가장 의미 있는 현상이자 사건이다. 한국 사회가 비로소독립적 주체로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제도권 대학 내에서는인문학의 위기라고 아우성인데 사회에서는인문학의 열풍이니 설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항상 소수가 다수를 전복해가고 주변이 중심을 공격해가는 과정의 흔적이다. 인문학을 중심에 놓고 봤을 때 주변의 입장이었던 사회가 인문학의 중심이었던 대학의 역할을 대체하려고 한다. 문명의 변화를 보여주는 코드로 읽을 수 있다.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때 그 흐름을 담지 못하는기존의 것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그룹은 상식적으로는 돈 버는 일에만 열중하고 인문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기업가들이다. 어째서 정치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니고, 대학도 아닌 기업에서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그것은 인문학을 통해서 지금보다 나은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기업인들은 매번 하는 판단이나 결정이 즉시 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해버리는 경계에서 긴장하며 산다. 자신의 생존 여부에 대한 질문 앞에서 고도의 예민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고도의 긴장이 고도의 예민함을 유지하게 하고, 그 예민함이 민감한더듬이를 갖게 하고, 그 더듬이가 감각적 통찰을 부여한다. 상인들은 감각적으로 안다.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아주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이 변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면 성공할 것이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엉뚱한 결정을 하면 망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 이 질문이 벌어지는 공간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분야이다. 기업에서 먼저 인문학을 요청하는 이유이다. 인문(人文)은 말 그대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이다. 인간이 세계에 그리는 무늬와 결을 인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한다면 인간의 동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동선을 파악한다는 것은 문명의 흐름을 읽는다는 말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한국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듣는 화두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다급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는 상상력이나 창의성 없이도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상상력과 창의성 없이는 지금 같은 정도의 성장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게 됐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상상력과 창의성 없이도 지금까지 먹고 살았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았다는 말인가? 간단히 말해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해서 만든 어떤내용대신’, 혹은따라서수행하는 일로 먹고 살았다는 뜻일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미수행하는 역할로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 내외적 조건상 한국도 문명의 흐름을 감당해야 하는 위치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내려주었던 문명의 흐름에 대한 비전과 메시지를 대신 혹은 따라서 수행했지만 이제는 문명의 흐름에 대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승부를 걸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문명의 흐름을 읽고 문명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힘을 상상력이라 하고 상상의 힘을 발휘해 문명이 나아갈 방향의 조금 앞에 서보는 일을창의라고 한다. 기업인들이인문의 필요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1. 리더는 조짐을 포착하는 사람

길을 가다가 꽃무늬 스카프를 두른 채 화장을 하고 귀고리를 한 남자를 만났다고 하자.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좋다’, 다른 하나는나쁘다’.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 리더로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다. 리더란 한 집단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자기 삶의 주인인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좋다 혹은 나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은 자기에게 이미 있는 신념이나 가치관을 근거로 한 정치적 판단을 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는 그 판단을 하는 기준으로서의 가치관이 주인이지 자기 자신은 주인행세를 하지 못한다. 리더는 마주하는 사태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무슨 변화가 있길래 이전에는 없었던 저런 일이 가능해 졌는가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춘 사람이다.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질문을 한다. 질문을 통해서 리더는 눈앞에 나타나는 사태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고 세상 흐름의 정체를 보여주는조짐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리더는조짐을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인문적 통찰이 작동하는 모습이다.

 

2. 인문적 사유는 독립적 주체에게만 가능

그렇다면 그동안 상상력과 창의성이 개입된 인문적 통찰은 왜 그리 더뎠는가?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일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이념, 그리고 가치관 등으로부터 독립돼 나올 수 없다면 줄곧 정치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성공 경험이다. 성공의 기억이 그 사람을 그 기억 속에 가둬 버리기 때문이다. 그 기억과 함께 그 사람은 시멘트처럼 굳어버린다. 역동적으로 변화해나가는 이 세계에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신념의 장치로는 적절하게 반응할 수 없다.

 

인문적 사유, 즉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와 직접 대면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에게 있는 신념이나 이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자기로만 존재해야 정치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동선[人文]을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문적 통찰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3. 노자와 공자, 최초의 철학자들

인간은 생각을 하면서 신으로부터 독립한다.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을 최초의 철학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철학은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면서 시작된다. 철학을 통해서 인간은스스로인간이 된다. 서양에서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로 부르면서 최초의 철학자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탈레스는 이 세계의 근원은 물이라고 말했다. 신의 뜻으로 이 세계가 이뤄졌다고 믿던 당시의 모든 사람들과 달리 탈레스는 이 믿음을 부정하고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생각하는 능력에 의존해서만 이 세계가 물을 근원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해했다.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하는 이유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스스로의 생각으로 이 세계와 마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노자와 공자를 최초의 철학자들이라고 한다. 그것은 서양에서 탈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노자와 공자가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신이 결정했다고 하는 믿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들만의 생각하는 능력으로 세계와 직접 관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신의 명령을 중국인들은천명(天命)’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철기가 발명된 후 그것이 산업에 투입되자 계급 변동부터 시작해 사회 전체가 기존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다. 세상은 새로운 사회 경제적 조건이 맞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대혼란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당시의 중국인들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자 그것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던 힘이었던 하느님 자체를 의심했다. 결국 하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 하늘이 의심되고 인간에 의해 포기되자 세계에는 인간만이 남게 되었다. 하늘이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게 된 세상에서 인간은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시대적 문제의식을 안게 된다.

 

천명(天命)이 극복의 대상이 돼버린 것은 천명을 정점으로 해서 이뤄졌던 세계관이 철기의 발명 이후 새롭게 진행되는 사회 경제적 변화 조건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명이 지배적 권위를 가질 때 인간은 하늘이 만들어 놓은 길을 잘 알아내고 살펴서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됐다. 하늘이 만든 그 길을 어떻게 하면 잘 따를 것인가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사명이자 삶의 의미였다. 하지만 천명이 권위를 상실한 춘추 말 전국 초 시기의 중국인들은 새로운 시대적 과업 앞에 서게 된다. 즉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인간을 초월한 어떤 힘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만의 힘으로 건립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만의 능력으로 건립한 바로 그 길을()’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만의 능력은 믿음의 힘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말한다. 인간은 이제 천명을 따르지 않고 도를 따라야 한다. ‘의 출현은 바로 중국문명에서 최초로 터져 나오는 인간의 독립선언이었다.

 

천명론을 극복해 인간의 길을 건립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최초의 철학자로 노자(老子)와 공자(孔子)가 있다. 모두 춘추(春秋) 말에서 전국(戰國) 초 사이에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공자는 공자식의 혁명적인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 공자 이전의 사람들은 아마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바로 하늘의 명령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그런 믿음을 과감히 거부하고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인간을 초월해 있는 어떤 절대적 힘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자신에게서 발견해버리는 것이다. 공자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이라고 했다. 공자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이제 하늘의 뜻을 어떻게 잘 따를 것인가 하는 사명 대신에 인간의 본질인 이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 하는 새로운 사명을 가진 존재가 됐다. 공자에게서 인간은 이제 하늘의 은총을 비밀스러운 풍경 속에서 각자 다르게 받은 존재가 아니라 이라고 하는씨앗을 공통의 기반으로서 공유하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존재로 새롭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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