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Revisiting Machiavelli-4

포퓰리스트 사보나롤라,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다

김상근 | 96호 (2012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권모술수의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더 이상 당하지 마라고 조언했던 인물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연재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주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광기의 탄생

비극의 씨앗은 1494년에 뿌려졌다. 피렌체에 몰려든 짙은 먹구름을 막기에는 토스카나 지방의 구릉이 낮기만 했다. 차가운 칼바람이 불던 그해 겨울, 메디치 가문은 갑자기 몰락했고 프랑스 왕 샤를 8세는 대포를 앞세우고 피렌체를 점령했다. 외국 군대의 침공 앞에서 자존심 강한 피렌체 시민들은 굴욕을 당했다. 마키아벨리는 샤를 8세가 피렌체를 공격했던 무기는 분필 한 자루였다고 냉소적으로 회고한 바 있다.1 프랑스 군대는 피렌체에 입성(入城)하면서 병사들이 묵을 집 대문에 분필로 숙박 예정 표시를 하는 것으로 점령을 끝내버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피렌체가 프랑스 군대의 약탈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겁에 질린 피렌체 행정부는 피사에 주둔하고 있던 샤를 8세에게 사절단을 보냈다. 말이 사절단이지 항복을 선언하기 위한 시민 대표였다. 1494 119, 삭풍이 몰아치던 피사 평야의 주둔지에 6 명의 피렌체 사절단이 도착했다. 그중의 한 명은 검은 사제복을 입은 도메니코회 소속 수도사였다. 이름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 출신은 페라라.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그는 적국의 왕 샤를 8세에게 이렇게 큰소리로 외쳤다.

 

“왕이시여! 당신은 하느님의 종으로 이탈리아에 오신 것입니다. 당신의 도래를 우리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왕이시여! 하느님의 뜻을 잘 받드시기 바랍니다! 승리가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고 지금부터 내 말을 경청하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지금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피렌체는 죄인의 소굴이지만 아직 하느님의 종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므로선한 자들을 보호하셔야 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종으로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피렌체의선한 자들을 보호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샤를 8세는 이 뜬금없는 수도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았고 피렌체는 약탈을 피할 수 있었으며 피사 평원의 수도사는 피렌체를 구한 영웅이 됐다. 사보나롤라는 갑자기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피렌체 공화정의 실세로 떠올랐다. 아마추어 정치가가 등장한 것이다. 요즘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포퓰리즘(Populism)의 전형적인 모습이 15세기 말 피렌체에서 재현됐다. 피렌체 시민들은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예언자라고 믿기 시작했다. “프로페타(예언자)! 프로페타!” 사보나롤라가 지나갈 때 사람들은 뒤에서 그를 프로페타로 부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터 4, 1494년부터 1498년까지 피렌체는 산 마르코 수도원 원장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와 함께 광기의 시대를 맞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25살부터 29살 때까지 기간에 해당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되는 20대 후반을 사보나롤라와 함께 보낸 것이다. 사보나롤라 사태를 지켜보던 20대 후반의 마키아벨리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종교는 사회 유지를 위한 유용한 도구인가? 왜 사람은 권력을 잡으면 변하게 되는가? 이리저리 휩쓸리며 손바닥 뒤집듯이 자기 입장을 바꾸는 대중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인기를 누리던 사보나롤라는 왜 하루아침에 몰락했는가? 사보나롤라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사보나롤라가 열광적으로 설교하는 장면. 루드비히 폰 랑게만텔(Ludwig von Langemantel)의 1881년 작품으로 현재 미국의 보나벤투르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보나롤라의 등장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1452년 페라라에서 태어났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외지(外地) 사람이다. 자기 조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진 피렌체 시민 사이에서 외지인이 신권(神權)정치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종교적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의 추천을 받아들인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1488년에 피렌체를 처음 방문했고 1490 6월부터는 메디치 가문이 건축한 산 마르코(San Marco) 수도원에서 거주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된 사보나롤라는 명 설교자로 이름을 날렸다. 파격적인 내용과 직설적인 표현으로 그의 설교는 피렌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교황청의 타락과 피렌체 시민들의 향락에 물든 삶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1492, 그는 피렌체에 하느님의 징벌이 내릴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예언은 2년 뒤 샤를 8세의 피렌체 침공으로 현실화됐다. 사보나롤라는 파국을 예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막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피렌체 시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신정(神政)정치의 막후 실세로 떠오른 사보나롤라는 당시 교황 알렉산데르 6(1431∼1503)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여갔다. 사실 알렉산데르 6세는 사보나롤라의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이 됐던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의 생부(生父)였다. 교황이 아들을 뒀다는 사실만으로도 알렉산데르 6세의 타락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피렌체의 수도원 원장이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붓자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사보나롤라에 대한 파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피렌체의 상황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497 27, 사육제의 마지막 날이었던 그날 피렌체 도심의 시뇨리아광장에는 높이 18m와 둘레가 72m나 되는 거대한사치품의 산이 쌓여졌다. 사육제와 무도회에 사용됐던 가면 트럼프와 같은 도박 도구들,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작품, 로마시대의 이교(異敎)적인 주제의 조각, 점성술 책 등이 피라미드처럼 수북이 쌓였다. 향락적인 피렌체의 문화를 성토하던 사보나롤라의 지시에 따라허영의 화형식(Bonfire of the Vanities)’이 열린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사치품과 이교도의 상징들이 이글거리는 화염 속에서 사라져 갈 때 피렌체의 모든 성당은 일제히 타종을 하며 이 거룩한 시간을 기념했다. 피렌체 시민들은 프로페타 사보나롤라를 바라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피렌체 시민들은 사보나롤라에 대한 교황의 파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황청은 1498 3, 파문의 강도를 더 높여 피렌체 시민들을 압박하게 된다. 사보나롤라의 신병을 로마로 인계하지 않으면 로마와 나폴리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피렌체 시민들의 재산을 누구든지 강탈해도 좋다는 강경책이었다. 이 조치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자기 재산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교황청의 발표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했던 말, “인간이란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일은 곧 잊을 수 있어도 자기 재산의 손실은 여간해서 잊지 못한다가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2 종교적 신념보다 자기 재산이 더 중요함을 깨달은 피렌체 시민들은 그동안 보여 왔던 사보나롤라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피렌체에 4년간 몰아닥쳤던 종교적 열광주의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산 마르코 수도원 성당에 전시돼 있는 사보나롤라의 동상.

사보나롤라, 불의 심판을 받다

사보나롤라의 행운(포르투나)이 다해가던 1498 327, 산 마르코 수도원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한 설교자가 사보나롤라에 대한 공개 도전장을 던졌다. 누가 진짜 하느님의 예언자인지 가리기 위해불의 심판을 받자는 것이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 길을 만들고 그곳을 걸어서 무사히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하느님의 예언자일 것이기 때문에 사보나롤라에게불의 심판에 나서라고 요구한 것이다. 만약 사보나롤라가 불 속으로 걸어가도 화상을 입지 않으면 그를 진짜 예언자로 모실 것을 약속하면서 자신도 심판을 받기 위해 그 불 속으로 걸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인문주의와 르네상스 정신이라는 근대적 사고의 기틀을 제공했던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가 갑자기 중세 암흑의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천성적으로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좋아하던 피렌체 시민들은 이 갑작스러운 시대정신의 회귀에 열광했다. 르네상스에서 다시 중세로! 아름다움의 극상을 추구하던 피렌체의 예술가들과 인간 정신의 부활을 주장하던 탁월한 인문학자들도 이 모순과 무지의 축제에 동참했다. 실제로 15세기 후반의 피렌체 화단을 대표하던 보티첼리(1445∼1510)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던 인문학자들이 사보나롤라 때문에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피렌체 일반 시민들은 두 수도회 간에 벌어질 목숨을 건불의 심판에 열광했다. 메디치 가문의 과두정치를 몰아내고 완벽한 공화정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던 피렌체의 시민의식은불의 심판이 주는 오락적 요소 앞에서 사라져갔다. 시민들은 사보나롤라를 지지하는 피아뇨니(Piagnoni)파와 반대하는 아라비아티(Arrabbiati)파로 나눠 하루 속히불의 심판을 개최해야 한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시뇨리아 정청으로 몰려가서불의 심판을 열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쪽은 기적을 믿었고 한쪽은 사보나롤라의 죽음을 기대했다.

 

1498 47, ‘불의 심판이 열린 날. 시뇨리아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가운데불의 심판을 위한 무대가 설치됐다. 벽돌로 무대 하단을 만들고 약 30m쯤 되는 장작더미로불의 길이 만들어졌다. 산 마르코 수도원과 사보나롤라를 대표하는 도메니코(Domenico Buonvicini) 수도사와 산타 크로체 성당을 대표하는 론디넬리(Giuliano Rondinelli) 수도사가불의 심판을 받기 위해 심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피렌체 시민들은 숨을 죽이며 행사를 기다렸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두 수도사가 모두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시각은 정오로 정해 놓았다. 기다리다 지친 일부 시민들은 경비병의 감시를 피해 몰래 장작에 불을 붙이려다 쫓겨나기도 했다.

 

드디어 론디넬리와 도메니코 수도사가 불의 제단 앞으로 걸어 나왔고 시민들은 환호를 질렀다. 어떤 이들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적을 바라던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대표하던 론디넬리가불의 심판을 받을 수 없다며 무대 아래로 퇴장해 버렸다. 상대편 도메니코 수도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교리에 어긋난다며불의 심판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두 수도회 측은 이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 말싸움을 벌였고 결국 시뇨리아 행정부 대표의 중재를 받기 위해 두 수도사는 정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렀다. 수도사들은 몇 시간 만에 잠깐 밖으로 나와 자기편 수도회 대표들과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상의한 다음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몇 차례 반복했다.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시뇨리아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심에 하루 종일 서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오후 다섯시쯤 됐을 때 갑자기 피렌체 하늘에서 빗방울을 떨어졌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봄의 소낙비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사보나롤라 측 수도사들이 벌떡 일어나 외치기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은 하느님의 계시다! 하느님은 이불의 심판을 원하지 않으신다!” 이 말 한마디가 사보나롤라를 몰락시켰고 그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 외침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그를 반대하던 아라비아티파뿐만 아니라 지지하던 피아뇨니파의 얼굴들이 일그러졌고 사보나롤라를 향해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사기꾼! 저 놈은 프로페타가 아니라 사기꾼이야! 처음부터 불로 뛰어들 자신이 없었던 거야!”

가입하면 무료

인기기사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