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날은 오히려 편안했다. 수술이 잘되면 대학 입학 때 뜻을 뒀던 한국 철학사를 쓰고 동양과 서양의 중세도시를 비교 연구하리라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제1 차 세계대전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여섯 편의 중요 논문을 썼는데 모두 두 달 안에 완성한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몸이 나으면 도시와 건축, 수학과 철학을 다시 하리라고 생각했다. 수학은 10대에 꽃이 피고 20대에 시든다. 수학에 빠졌던 10대는 황홀했다. 20대에 건축에 열광해 ‘하늘의 마을’을 그렸고 30대에 도시에 몰두해 한강·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40대에 예술의 전당을 설계하고 50대에 다시 도시설계로 돌아와 취푸와 인천 신도시를 설계하다가 60대에 심장병과 암이라는 덫에 걸렸다…. 암과 심장병을 앓았던 3년 동안 반은 쉬고 반은 책을 읽으며 지내면서 중세도시와 한국 건축을 다시 공부했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암은 앎이 됐다.” - 2009년 2월 ‘암과 앎 사이’.
김석철(68)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이자 명지대 석좌교수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로 수학, 철학, 물리학 등 여러 개의 프리즘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예술의 전당, 서울대 캠퍼스, 여의도 마스터플랜, 쿠웨이트 자하라 주거 단지, SBS 탄현 스튜디오, 베이징 경제개발특구 등이 있다.
서울 북촌 가회동에 있는 아키반 사무실에서 만난 김석철 대표는 3시간가량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그는 2002년 암 선고를 받은 후 위암과 식도암 수술을 거듭한 탓에 목으로 음식을 잘 넘기지 못한다. 음식 대신 독서를 통해 지식을 주로 흡수한다는 그는 위를 잘라내는 16시간의 큰 수술을 마치고 쉴 때 손으로 글 쓰기가 힘들자 경복궁과 창덕궁 벤치에 앉아 녹음기를 들고 책에 쓸 내용을 목소리로 풀어냈다. 이날도 그의 책상 위에는 최근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젝트 등 일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칼럼니스트 김서령 씨는 김석철 대표를 “아이 같은 천진함 뒤에 희로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유가적 품성이 비쳤다. 자유와 절제, 상상력과 현실인식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인간 유형”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실제로 만나본 김 대표는 김서령 씨의 설명 그대로였다.
한 분야에서 거장(maestro)이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탁월함을 향한 열정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들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