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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요시 셰피 MIT 교수

日 지진을 보았는가?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대비하라

하정민 | 78호 (2011년 4월 Issue 1)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강진은 아직까지 그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 경제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끼쳤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기반 시설 마비는 물론 원자력 발전소의 붕괴로 인한 방사능 누출까지 겹쳐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진도 7.2였던 1995년 고베 지진은 발생 당일 일본 전체 수출입의 5분의 1을 담당하던 세계 6대 항구인 고베항을 초토화시켰다. 고베 도심과 인근의 전력, 가스와 수도공급, 통신, 교통, 의료서비스 등 사회 인프라 기능은 완전히 마비됐다. 고베 항이 기능을 되찾는 데는 여러 달이 걸렸다. 지진 발생 2년 후에도 물동량은 지진 이전 수준을 밑돌았다. 고베 지진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의 회복에도 상당 시간이 소요될 거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는 진도 6.0에서 6.9에 이르는 강진이 평균 134차례 발생한다. 진도 7.0 이상의 대형 지진도 17차례 이상이다. 이 중 대부분은 산간오지나 미개발지에서 일어나지만 일부는 이번 사태처럼 세계적인 경제 중심지를 강타하기도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갑작스러운 재해가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시설을 언제 어떻게 강타할지 아무도 모른다. 기업이 이로 인해 겪어야 할 피해도 엄청나다. 이처럼 대규모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매우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는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은 그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충격이 발생했을 때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미 일본 부품 의존도가 높은 많은 기업들이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공급망 위험 관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 매사추세츠 공대(MIT) 요시 셰피 교수와 e메일 인터뷰를 갖고 리질리언스(resilience) 및 위기 대응과 관련한 그의 통찰을 들어봤다.
 
위기가 일상화하면서 리질리언스란 개념이 중요해지고 있다.
리질리언스란 용어는 원래 재료 과학(material science)에서 사용됐다. 이 개념은 변형 후에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물질의 특성을 뜻한다. 비즈니스계의 리질리언스는 예상치 못했던 외부 충격으로 인한 조업 중단 등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이 평상 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회복되는 전체적 과정 및 일련의 위기 대응 역량을 뜻한다. 물론 정상화 수준으로 복귀하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걸리고, 어느 정도의 자원과 비용이 소요될지는 개별 기업마다 다르다. 리질리언스 개념은 개별 회사뿐 아니라 산업 및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다.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 적용한다면 지진 전 국내총생산(GDP)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의 복구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지진과 같은 위기에 글로벌 공급망은 얼마나 취약한가.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하다. 변화의 폭도 크다. 특히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는 글로벌 공급망은 어느 연결고리가 취약한지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에 실제 어떤 부문에서 충격이 일어날지,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에는 수많은 회사가 참여한다. 세계경제 전반이 과잉생산(over capacity)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일본 대지진이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끼치는 악영향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을 수 있다. 소비자의 측면에서도 일본 혼다가 자동차를 만들지 못하면 현대자동차나 폭스바겐(VW) 차를 사면 된다. 문제는 산업계 전체나 소비자와 달리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는 개별 기업들은 매우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부터 보자.
 
인텔(Intel)의 마이크로 칩은 일본 도시바 세라믹에서 얇게 자른 실리콘 웨이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태평양을 건너 인텔의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실리콘 웨이퍼에는 수 많은 집적회로가 그려지고, 이후 하나의 반도체 판으로 만들어진다. 이어 포장 공정을 거친 후 다시 태평양을 건너 베트남(2009년까지는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조립 및 테스트 공장에서 가공된다. 잘게 쪼개진 반도체 판은 각각의 세라믹 패키지 속에 끼워지고, 최종 회로판에 심어진 후 박스에 포장돼 다시 애리조나 공장에 온다. 태평양을 세 번이나 건너야 반도체 칩이 탄생하는 셈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아일랜드, 브라질,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델 컴퓨터 공장 및 대만에 위치한 델 컴퓨터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장으로 보내진다.
 
GM의 운전석 도어 내부에는 파워 윈도 모터에 들어가는 작은 전선이 있다. 이 전선은 구리 광석에서 만든 순동으로 주조된다. 순동은 합금 과정을 거쳐 덩어리로 주조된다. 이 덩어리는 금속봉 형태로 만들어진다. GM은 금속봉을 전선으로 뽑은 후 여기에 절연재를 입히고, 모터 내부에 감아 자동차 안에 장착한다. 조그만 전선 하나를 만드는 일에 칠레의 구리 광산, 중국의 전선 제작업체, 일본의 모터 회사, 캐나다의 자동차 도어 제작업체, 미국의 최종 조립 공장까지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기업이 관여한다.
 
이렇게 복잡한 공급망 중 어떤 부분이라도 조그만 충격을 받으면 그 여파는 엄청나다. 충격이나 위기가 공장에서 일어날 수도, 물류센터나 운송 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인터넷을 포함하는 컴퓨터 네트워크 및 유무선 통신시스템에서도 충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어떤 기업이든 공급망의 참가자는 원자재를 완성품화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3가지 부문을 갖는다.
 
첫째, 인바운드(inbound)다. 공급망의 공급 부문은 회사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모든 프로세스와 공급업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둘째, 내부 프로세스(internal processes and conversion)다. 기업 설비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과 제조 공정을 포함한다. 셋째, 아웃바운드(outbound)다. 공급망의 소비자 부문(customer-facing side)으로, 기업의 모든 고객 및 유통 과정을 말한다. 이 3가지 과정 중 어디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필연적으로 나머지 과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물론, 선도적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을 재설계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수요 변동에 대처하기 위해 ‘탄력적 계약’ ‘생산처의 다양화’ ‘상호 공급 계획 예측 프로그램(CPFR)’ ‘안전 재고’ 등으로 공급망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한다. 소수 부품 공급업체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다수 공급업체를 활용하고 공급업체 간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 대지진과 같이 상상하기 어려운 대규모의 충격과 영향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의 대비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않는 기업들도 생각보다 많다. 탄력적 SCM(Supply Chain Management)1 을 통한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관리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공급망 위기관리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2000년 3월 미국 뉴멕시코 주에 위치한 필립스 반도체 공장에 갑작스러운 번개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곧 진화됐지만 반도체 공정의 핵심인 클린룸과 웨이퍼가 진화 과정에서 오염됐다. 연기도 전체 시설로 퍼져 피해가 커졌다.
 
화재 직후 필립스는 이 공장의 반도체부품을 공급받는 노키아에 1주일의 조업 중단이 예상된다고 통보했다. 당시만 해도 이 화재가 비상 사태로 비화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키아는 사태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노키아는 즉시 문제의 부품을 특별관리 품목에 올리고 전 부서에 이 사실을 알렸다. 또 필립스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상황을 점검했다. 화재 발생 2주일 후 필립스는 생산공정 정상화에 몇 개월이 더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키아는 즉시 전 세계 필립스 공장의 생산 여력을 모두 노키아에 배정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반면 에릭슨은 안이하게 대처했다. 같은 공장의 부품을 사용하던 에릭슨도 사고 발생 후 필립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에릭슨의 담당자는 1주일만 지나면 사태가 해결될 거라고 보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영진에게 보고하지도 않았다. 수 주일 후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파악한 에릭슨의 경영진은 필립스로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필립스의 모든 생산 여력이 노키아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다른 반도체 공급처 역시 노키아가 이미 동원 가능한 설비를 모두 장악한 상태였다.
 
에릭슨은 2000년 휴대전화 부문에서 2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화재 여파가 겹친 2001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2000년 10%보다 낮은 6.7%로 하락했다. 에릭슨은 휴대전화 생산 전면 중단 등의 비상조치를 취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에릭슨은 소니와 함께 소니에릭슨이란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에릭슨이 놓친 시장점유율은 고스란히 노키아가 흡수했다.
 
이는 기업의 위기 관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키아와 에릭슨이 필립스로부터 경보를 받은 시점은 동일했다. 비교적 낮은 수준의 위기였고, 빠른 시일 내에 회복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도 있었다. 하지만 두 회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초기 대응에 나섰다.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 노키아와 에릭슨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조그만 화재에 대한 초동 대처가 개별 기업의 운명은 물론 업계 전체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1999년 대만 지진으로 야기된 반도체 공급 차질에 대한 델과 애플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규모 7.6의 강진으로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컴퓨터 칩으로 쓰일 반도체 웨이퍼 공급이 차질을 빚었다. 당시 델은 소수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자사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점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물류 혁신에 주력한 델은 단기 주문-생산-출하 체제를 운영하면서 특정 부품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신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던 애플은 소수 부품 공급업체와의 장기 공급 계약에 주력했다. 결국 지진으로 인한 부품조달 차질을 메울 만한 대체 부품업체를 찾지 못했다. 애플은 사활을 걸고 야심 차게 준비한 아이북(iBook)을 제때 선보이지 못했다. 반면 델은 1999년 3분기 순익을 전년 대비 41%나 높였다.
 
시장에는 많은 경쟁 회사들이 있다. 어떠한 이유건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한 회사가 그 충격을 빨리 회복하지 못하면 고객 및 시장에서의 위치는 다른 경쟁기업의 몫이 된다. 이번 일본 대지진은 그 영향과 충격이 상당히 대규모이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과 개별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더 크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일본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향후 수 개월 혹은 수 년에 걸쳐 심각한 글로벌 공급망의 중단과 혼란이 올 수도 있다. 때문에 개별 기업은 전체 공급망과 이 체계에 속해 있는 관련 시장, 협력업체, 비즈니스 파트너들에 대한 세밀한 이해와 비상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차이가 해당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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