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경영학자들이 경영혁신 사례로 자주 거론하는 회사 가운데 고어(Gore & Associates) 사가 있다. 직급이나 직책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창의적 자율성을 최대한 허용하는 조직운영 방식이 가히 혁신적이다. 전 직원은 동등한 동료의 입장으로 일을 한다. 따라서 명령이나 지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토론과 상호 협의를 통해 업무가 진행된다. 보스가 없으니 윗사람의 눈치나 평가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실험해 볼 수 있다.
창의적이란 것은 이전에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현실화 되기까지는 이견과 비판의 소용돌이를 거치게 마련이다. 고어는 이 불안정한 소용돌이를 활성화시키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경영자 테리 켈리는 리더라면 이런 카오스(chaos)를 사랑하고 모호함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걸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개입해서 어정쩡하게 관리하면 조직은 그야말로 카오스가 된다는 것이다.
창의적 사고를 하라고 독려하면서도 불완전한 아이디어의 발전과정에 대한 호기심 부족과 설왕설래하는 토론을 느긋하게 관전하지 못하는 리더의 조급함 때문에 중도에 아이디어가 사장되는 모습을 흔히 본다. 모든 회사가 조직구조를 고어처럼 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지만 자유토론 과정에 대한 회사의 믿음은 본받을 만하다. 조직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이므로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려는 자율 조정 기능이 있다. 고어도 무한 자유가 허용되는 관리 무방비의 조직 같지만 동료의 압박이라는 무언의 장치가 발동돼 올바른 방향으로 자동조정이 되고 회사는 그 사실을 믿었을 뿐이다. 개인과 조직의 성장지향적 본성에 대한 근본적 믿음이 조직의 생동적인 카오스 상태를 허용하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리더들이여, 믿음의 지구력을 키워 보자.
데이비드 오길비 “자신의 아이디어를 팔 수 없다면 창의성은 쓸모 없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광고계의 전설 같은 인물이다. 광고대행사 오길비앤드매더사를 운영하면서 광고로 소비자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광고주를 설득해야 했던 업의 특성과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광고는 과학이 아니라 설득이다. 팔리지 않는 아이디어는 무의미하다”고 일갈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강점으로 가진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창의적인 인물 가운데는 주변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괴팍한 자기중심적 인물로 치부돼 배척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아이디어 또한 고독하게 사장돼 버리기도 한다. 왜 이 괜찮은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는지 답답해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왜 자신의 아이디어는 당연히 이해 받아야만 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성찰해 봐야 한다.
협조자를 구하기 위해선 자신의 아이디어에만 도취되지 말고 동료나 상사를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도 연마해야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존하는 사고방식과 양립하게 만들 수 있기에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없다면 괴짜로 치부되는 데서 끝나 버릴 수 있다. 아마 발명의 역사 속에는 훌륭한 아이디어였음에도 동시대 사람을 설득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사장됐던 아이디어도 많았을 것이다. 아이디어가 제 아무리 훌륭해도 현실화시키지 못한다면 개인의 공상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설득의 수고 또한 창의적 과업 수행의 필수 프로세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논리와 정당성을 소통시킬 수 없다면 그건 개인적 이슈가 될 뿐이다.
필자는 국제 비즈니스코치와 마스터코치 자격을 갖고 있으며, 2002년 국내 최초로 임원 코칭을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600명이 넘는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을 코칭했다. 현재 딜로이트컨설팅에서 리더십코칭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