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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 문왕의 ‘무서운 기다림’

김영수 | 38호 (2009년 8월 Issue 1)
주 임금의 폭정을 지켜보며 탄식하다
 
중국 역사상 두 번째 왕조인 상(商, 사기에는 은[殷]으로 기록돼 있음)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포악한 통치자의 대명사로 불린다(동아비즈니스리뷰 32호 참조). 주 임금은 술과 놀이, 여자를 탐해 자제할 줄 몰랐다. 그는 자질이 뛰어난 통치자였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고 자만에 빠져 타인의 충고에 귀를 닫았다. 백성에게는 과중한 세금을 매겨 자신의 사욕을 채웠다. 사구(沙丘)라는 곳으로 엄청난 규모의 악단을 부르고, 술로 연못을 채웠으며, 고기를 나무에 매달아 숲처럼 만들어놓고는 나체의 남녀들이 숨바꼭질 놀이를 하게 하면서 밤새 마시고 놀 정도였다. 폭정을 대변하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성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원망의 소리가 높아갔고 제후들은 등을 돌렸다. 그러자 주 임금은 ‘포락(烙)’이라는 혹형을 창안해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잡아다가 불에 달군 시뻘건 쇠기둥 위를 걷게 했다. 쇠기둥 아래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에 달궈진 쇠기둥 위를 어떻게 걷겠는가?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불속으로 떨어져 타 죽을 수밖에….


 
당시 제후 중 하나인 구후(九侯)가 아리따운 딸을 주 임금에게 바쳤는데, 딸이 주 임금의 음탕한 짓거리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주 임금은 그녀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구후까지 죽였다. 게다가 시체의 포를 떠서 젓갈을 담갔고, 이에 항의하는 또 다른 제후 악후(鄂侯)까지 죽여 포를 떴다.
 
훗날 주(周)나라 건국의 터전을 닦아 문왕(文王)으로 추증(追贈)된 창(昌)은 이런 참담한 현실에 탄식했다. 그러자 창을 감시하던 숭후호(崇侯虎)라는 간신이 잽싸게 주 임금에게 이를 고자질했다. 주 임금은 창을 잡아들여 유리성(里城)에 구금했다. 창은 유리성에 7년을 억류당한 채 수많은 백성이 폭정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 임금은 창의 마음을 떠보려고 창의 큰아들인 백고를 잡아다 끓는 물에 던져 곰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창에게 보내 고깃국이라며 마시게 했다. 창은 그것이 아들을 삶은 국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비통함을 속으로 삭히며 다 받아 마셨다. 전설에 따르면 주 임금은 창이 아들을 삶은 국을 전부 다 마시도록 했다고 한다. 창이 그것을 다 마시던 날 그때까지 먹은 것을 다 토해냈더니, 토사물이 하얀 비둘기로 변해 날아갔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 토사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작은 무덤 하나를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전설의 무덤은 창이 구금됐던 유리성 뒤쪽 담장 밑에 쓸쓸히 남아 있다(사진 참조).
 
창은 7년 동안 유리성에 갇혀 수모를 당했지만 참고 기다렸다. 하지만 마냥 자포자기 상태로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리성에 구금된 동안 전설시대부터 전해오던 8괘를 64괘로 늘리고, 각각의 괘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해냈다. 이것이 바로 <주역(周易)>이다. 복희가 발명했다는 기존 8괘를 주 문왕이 64괘로 풀이했다고 해서 ‘주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은 <주역>을 지으면서 만물의 이치와 변화, 그리고 통치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통치자의 자질에 대해서는 더 많이 고민했고, 인내도 배웠다.
 
독기가 서리도록 기다리다
 
창의 측근인 굉요와 산의생은 주 임금에게 진귀한 보물과 여자를 바쳐 결국 창을 석방시켰다. 풀려난 창은 가장 먼저 폭군인 주 임금에게 낙수 서쪽 자신의 땅을 바치며 포락이라는 형벌을 폐지해달라고 간청했다. 뇌물과 땅을 받은 주 임금은 경계심을 늦추고 창에게 다른 제후들을 정벌할 권리를 주면서 서쪽 지역을 총괄하는 직위, 즉 서백(西伯)으로 삼았다.
 
그러는 사이 주 임금의 폭정은 점점 더 심해졌다. 주 임금에게 강력하게 충고했던 친족 비간(比干)에게는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7개나 있다던데”라며 심장을 갈라 죽였고, 미친 척하며 노비가 된 숙부 기자(箕子)를 가둬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은 주 임금이 빨리 죽기를 갈망했다. 주 임금이 자신을 태양에 비유하자 “몹쓸 놈의 저 태양은 언제 사라지려나. 내가 저 태양과 함께 죽으리!”라는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제후들도 하나 둘 주를 떠났다. 예악을 담당하던 태사와 소사는 국가의 상징물인 제기와 악기를 들고 창에게로 도망쳤다. 이에 서백 창의 세력이 점점 커져 주 임금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서백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주 임금에게 충성하는 기국(耆國) 같은 나라를 정벌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대했지만, 주 임금을 직접 자극하는 행동은 삼갔다. 주 임금의 충직한 신하인 조이(祖伊)는 천하대세가 창에게로 넘어가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주 임금을 찾아가 천명(天命)이 바뀌고 있다며 이렇게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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