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몹시 복잡한 과정이다. 측정하기도 힘들뿐더러 관리도 쉽지 않다. 혁신이 급격한 매출 성장으로 이어지면 그제야 혁신의 존재를 알아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불황으로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줄면, 임원진은 종종 혁신에 그만한 노력을 쏟아부을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혁신은 노력을 기울일 만큼 중요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혁신을 추구하느라 기업의 역량이 훼손됐으며,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에 돈을 쏟아붓느니 이미 효용이 증명된 대상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정반대의 생각도 있다.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 혁신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백신이자 성장에 힘을 실어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기는 일이다. GM이 혼다나 도요타와 같은 속도로 혁신을 추구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반대로 애플이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 등을 선보이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데 환멸을 느낀다. 혁신을 위한 그간의 노력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직 운영에서 혁신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기업이 많다. 이런 조직에서는 창의성 자체가 억압받는다. 하지만 어떤 기업들은 경제가 호황일 때조차 자칫 위험해 보이고 예측하기도 힘든 혁신을 단행한다. 이들은 왜 이런 모험을 하는 걸까?
뛰어난 패션업체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품 라인과 브랜드에 투자한다. 이들은 소비자들 스스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던 상품들도 끊임없이 선보인다. 그 결과 새로운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놀라울 만큼 늘어나 작년의 유행이 갑자기 한물간 패션으로 바뀐다. 이런 속도에 맞춰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패션업체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몰락한다. 때문에 패션업체들은 경제 상황이 어떻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를 개발해왔다.
패션업체의 독특한 파트너 관계는 이들의 혁신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흔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불리는 쪽은 상상력이 풍부한 우뇌형 인간이다. 이들은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목표 고객의 미래 수요 및 욕구를 창출한다. ‘브랜드 매니저’로 불리는 다른 한쪽이 바로 해당 패션업체의 최고경영자(CEO)다. 이들은 당연히 좌뇌형 인간이며, 사업 수완이 뛰어나고,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줄 안다.
우리는 이 글에서 우뇌형 인재와 좌뇌형 인재를 모두 확보하고 있는 기업을 ‘양뇌형 기업’으로 명명했다. 양뇌형 기업은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를 꾸준히 상품화시킨다.(HBR TIP ‘두뇌의 비밀’ 참조) 패션업계가 아닌 다른 업계에 몸담고 있는 임원진이, 자신이 속해 있는 기업이나 업계에서도 비슷한 파트너 관계가 혁신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있다.
우리는 좌뇌형 리더와 우뇌형 리더가 팀을 이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지휘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HP를 보자. 창의력을 담당하는 파트너는 빌 휴렛처럼 뛰어난 엔지니어이고, 경영을 담당하는 파트너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같이 훌륭한 관리자다. 할 스펄리치는 최초의 포드 머스탱 모델 및 크라이슬러 최초의 미니밴을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좌뇌형 인재다. 반면 리 아이아코카와 같은 경영의 귀재는 우뇌형 인재로, 이들은 훌륭한 파트너 관계를 이뤘다.
전직 육상 코치였던 빌 바워먼은 나이키에서 운동화를 개발했다. 바워먼의 파트너였던 필 나이트는 생산, 재정, 영업을 담당했다.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의 상징인 독특한 매장 구조를 생각해냈다. CEO 오린 스미스는 스타벅스의 눈부신 성장을 가능케 했다.
애플은 우뇌형 리더와 좌뇌형 리더가 공고한 파트너 관계를 구축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을 담당하며 제품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애플 매장에서 고객들이 겪는 경험 등을 직접 점검한다.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은 오랫동안 회사의 일상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물론 다른 업종의 기업들이 패션업체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P&G, 픽사, BMW 등은 패션업계의 접근법을 상당 부분 모방한 덕에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HBR TIP] 두뇌의 비밀
좌뇌적 역량이 반드시 좌뇌에서 기인하거나, 우뇌적 역량이 반드시 우뇌에서 기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뇌의 모든 부분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뇌량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다. 로저 스페리는 뇌량이 끊어진 간질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발표해 1981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좌뇌와 우뇌 간의 연결이 끊어지면 양쪽 뇌의 차이점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좌뇌는 언어, 논리, 숫자, 순차적인 배열, 일차 변환 등을 담당하며 수학, 독서, 기획, 일정 관리, 정리 정돈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우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념화, 큰 그림을 보는 능력 등을 담당한다. 또한 이미지, 음악, 색채, 패턴 등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우뇌의 처리 과정은 순서와는 상관없이 신속하게 진행된다.
물론 좌뇌와 우뇌 중 한쪽만이 두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양쪽 두뇌가 거의 모든 일에 함께 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쪽 두뇌가 작용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고, 특히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인간지식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심리학자 로버트 온스타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글을 쓰는 능력을 생각해보자. 오른손과 왼손의 능력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오른손잡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결코 왼손을 쓰지 않는다. 때문에 실생활에서 뇌를 사용하는 수준에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뇌형 인간과 좌뇌형 인간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들이 각각의 방식에 해당하는 고유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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