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사자’는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전쟁소설이다. 그러나 두 소설의 내용이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젊은 사자들’은 유럽 전선을 무대로 국적과 사회적 배경이 다른 세 사람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나자와 사자’의 전선 배경은 태평양전쟁으로,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과 사건들의 모순 및 아이러니를 소재로 했다.
두 소설은 모두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둘의 공통점이 생겨났다. 원작 소설에서의 비극적 결말이 영화에서 ‘해피엔딩’으로 바뀐 것이다. 전사한 주인공들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다.(말런 브랜도가 연기한 독일 장교만 제외하고) 그 이유는 뻔하다. 영화의 주인공이 죽으면 관객이 40%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수익성만 추구하는 할리우드 자본의 폐단 같은 것을 논하고 싶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고상하고 심오해 보이는 우리의 역사책도 마찬가지니까. 물론 역사책에는 패전과 전쟁의 비극에 대한 수많은 글이 있다. 그러나 그 글들을 가만히 보면 2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백성들이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든가 ‘처참한 패배였다’는 식으로 총괄적으로 언급하며 뭉뚱그리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희생양을 찾아 모든 것을 그의 실수로 떠넘기는 것이다.
희생양을 찾는 이유
‘지도자의 책임회피’ 내지는 ‘정치적 음모’ 등의 이유로 희생양 만들기가 성행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당시에는 그런 목적에서 희생양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역사책에 기술된 더욱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과 성공 사례를 좋아하고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으며, 망각할 수 없는 사건도 있는 법이다. 이때 인간은 두 가지 방법으로 불쾌함에 대처한다. 가슴속 가장 구석진 곳에 처박아 놓고 거들떠보지 않거나 한두 사람의 실수나 사소한 잘못, 우연 때문이었다고 치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지난 번 패배는 실수였다는 말은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는 자신의 경험이나 사건을 분석할 때 기계적이고
빤한 결론을 가져다 붙이는 아주 나쁜 습관을 남긴다. 우리 역사에서 그런 사례를 하나 찾아보자.
1361년 11월 16일 지금의 황해도 황주군과 개성 사이에 있는 절령(자비령)에는 수만의 고려군과 민간인이 집결해 있었다. 이곳에서 개경까지는 하루 이틀 길로, 이 방어선은 개경 방어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고려군의 병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일대 8개 군의 주민 전부를 징발해서 이곳에 모았다.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이곳을 지켜야 할 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고려군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홍건적이었다. 고려군은 처음에 홍건적을 상대로 잘 싸웠다. 그런데 당시 고려는 거듭되는 외침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왜구의 침공이 동시에 발생해서 관료들의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군대와 물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홍건적의 2차 침공 때 고려군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11월 9일 청천강변에 있는 안주성이 함락됐다. 보통 때 같으면 서경과 대동강을 거점으로 2차 방어선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군은 서경도 포기하고 바로 절령까지 후퇴했으며, 민간인까지 끌어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