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안 망가질 인재 뽑으려면...

24호 (2009년 1월 Issue 1)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사의 K사장은 중남미 모(某) 법인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파견한 L부장 관련 보고를 인사팀으로부터 받고 머리가 아파졌다. 보고 내용은 L부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으며, 현지 채용 인력들과의 갈등이 심해 법인장이 그를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L부장은 일도 잘하고 리더십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K사장은 L부장의 영어 실력이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기준인 토익 700점을 넘었기 때문에 기본 실력은 있다고 판단했다. 수치를 다루는 일의 성격상 영어와 스페인어는 파견 후 현지에서 일하며 차츰 익히면 된다는 것이 본사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파견 후 6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임자가 처음 3개월 동안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귀국한 뒤 L부장은 혼자서 법인의 재정적 살림을 이끌어가면서 많은 갈등을 야기했다. 현지에 대한 이해 부족과 커뮤니케이션 장애, 한국적 리더십 등이 원인이었다.
 
현지 직원들은 L부장과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법인을 떠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이직하면서 L부장의 업무량은 더 늘어났다.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L부장은 급기야 최근에는 직원들에게 고함을 치고 물건을 던지는 등의 행동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한국에서도 성숙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지의 직원들이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것이 본사 인사팀 직원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직원 대표들은 법인장에게 공식적으로 “L부장과 더 이상 일을 같이 못하겠다”며 본사 송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례는 특정 개인 또는 기업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다. 필자는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수차례나 들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글로벌 리더십이다. 국내에서는 통한 리더십이 외국에서는 통하지 않거나, 본사의 정책 및 전략이 일부 해외 조직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글로벌 리더십의 기준 부재(不在)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선발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선발과 관련한 첫 번째 이슈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리더십 역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당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론이나 도구도 거의 없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주재원을 선발할 때 일반적으로 최근의 업무 평가와 어학 점수, 업무경력 위주의 이력사항 등을 기준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이런 기준으로는 실제로 업무에 필요한 역량을 가진 인재를 뽑기가 힘들며, 어학점수에 가려 뛰어난 인재를 놓칠 가능성도 있다.
 
반면에 선진 기업들은 명확하고 체계적인 기준을 가지고 해외 파견 인재를 선발한다. 표1은 헤이그룹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만든 ‘글로벌 인재에게 필요한 역량’의 집합이다. 표에 따르면 글로벌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크게 글로벌 마인드세트와 사고 및 감성 능력, 성공을 향한 추진력, 다문화 대처 능력 등 4가지로 이뤄진다.
 
글로벌 마인드세트는 고객과 경영 환경에 대한 관심이 본인이 속한 지역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미치며, 특정 현상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관점에서 어떤 파급 효과를 낼 수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는 시각과 사고 역량이다.

 

 
사고 및 감성 능력은 기업의 핵심 인재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 역량이다. 이것은 글로벌뿐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분석한 사안들을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개념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글로벌 마인드세트와 연계되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 전체적인 글로벌 역량이 강화된다.
 
성공을 향한 추진력 또한 지역적 인력들에게도 필요한 역량이지만 글로벌 조직 차원에서는 자국을 넘어 타 국가의 전문가 및 리더의 도움을 받고 활용하거나 지역적 이견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문화 대처 능력은 업무를 함께 추진하는 다른 배경과 사고방식의 임직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며, 갈등을 원활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4개의 역량군이 모두 다 중요하지만 많은 기업이 공통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사고의 확장’을 의미하는 글로벌 마인드세트와 ‘변화에 대한 적응’을 뜻하는 다문화 대처 능력이다.
 
두번째로 주재원 제도와 핵심인재 관리 제도가 이원화돼 운영된다는 것도 문제다. 많은 선진 기업은 해외 주재원 파견을 경영진 승계관리(succession planning) 또는 고도 잠재능력 인력(HPI·High Potential Individual) 육성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당연히 핵심 인력 선발에 필요한 리더십 역량 등이 글로벌 차원에서 검토된다. 이런 맥락에서 선진 기업들은 여러 국가에 있는 주요 직책의 직무 가치를 고려해 핵심 인력들을 파견하고 검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할 수 있으며, 좀 더 뛰어난 인력을 주재원으로 파견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기업이 아무런 교육도 실시하지 않은 채 주재원을 바로 현지에 파견하는 것 역시 현지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주재원에 대한 교육은 리더십, 직무, 문화적 다양성 등 다양한 방향에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주재원 파견 후보자에 대한 현지 조직 책임자의 면접도 적임자를 가려내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적 글로벌 리더십 개발해야
한국 기업의 경우 현실적으로 기업에 따라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핵심인력 제도와 주재원 제도를 일원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많은 주재원을 파견해야 하는 경우 핵심인력만으로 주재원자리를 다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 글로벌 기업과 달리 본사에서 사용하는 주요 언어가 영어는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가 가능한 주재원을 많이 파견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재원을 많이 파견해야 하는 현실과 주재원을 제대로 선발하는 이슈는 당연히 별개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적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정의와 기준, 선발 방법 등을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간략하게 한국적 글로벌 리더십을 정의하면 ‘리더십의 통용성’을 가지는 동시에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의 통용성’은 같은 언어와 문화권에서 성장한 직원들에게만 인정되는 리더십이 아니라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성장한 인력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리더십이다.
 
한국인만의 장점으로는 많은 것을 꼽을 수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성실함이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한국인의 성실함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인 리더들이 이런 장점을 기반으로 솔선수범한다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직원들에게도 충분히 존경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LG전자 인사팀 해외인사 그룹과 머서 컨설팅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헤이그룹에서 부장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다. 글로벌 인사와 인사전략, 보상, 직무평가 분야의 전문가다. 고려대 행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