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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리더가: 우미영 전 어도비코리아 대표

“실적 닦달보다 칭찬 한마디가 효과”

지희수,배미정 | 404호 (202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우미영 전 어도비코리아 대표가 IT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글로벌 IT 기업의 한국 대표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1. 세일즈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고객 관점에서 본인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펼쳤다.

2. 팀원들 각각이 가진 서로 다른 내적 동기를 자극하고 그들의 성장 욕구를 끌어올림으로써 조직의 성장을 꾀했다.

3.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 도전했다.



“어릴 적 내가 자란 시골 동네에서는 집마다 누에를 쳤다. 고사리손으로 따온 뽕잎을 온돌방 윗목 시루에 올려놓고는, 그 잎을 사각사각 먹어 치우는 누에를 지켜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누에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나도 누에처럼 그렇게 쑥쑥 자라고 싶었다.”

경북 봉화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누에와 놀던 소녀를 글로벌 IT 기업 대표 자리에 오르게 한 동력은 마음속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성장의 불꽃이었다. IT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40대 초반 글로벌 IT 기업의 한국 지사장을 거쳐 글로벌 IT 기업 세 곳의 한국 대표 등을 지내면서 누구보다 빠르고 맹렬하게 커리어를 쌓았던 우미영 전(前) 어도비코리아 대표의 이야기다.

우 전 대표는 한국 IT 업계에서 드물게 여성, IT 비전공자 출신으로 글로벌 IT 기업의 수장 자리까지 올랐다. 본인의 전문성인 B2B 세일즈 업무뿐 아니라 리더십 부문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로 그는 지치지 않는 성장 욕구와 고객 관점을 강조했다. 정해진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도전했다. 항상 고객 관점에서 고객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고 그 과정에서 본인도 성장하게 되는 선순환의 반복이 탁월한 성과로 이어졌다.

그렇게 30여 년간 쌓은 화려한 이력을 뒤로 하고 2022년 어도비코리아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그는 현재 일선 비즈니스 현장에서 세일즈와 리더십 코치로 활동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특히 유튜브 채널 ‘어른친구’를 5년째 운영하면서 1만 명이 넘는 직장인 구독자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고객을 상대하고 구성원을 이끌던 회사의 리더에서, 직장인들의 성장을 돕는 멘토로 변신한 그를 DBR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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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IT 업계, 그중에서도 영업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학 선배를 따라 IT 스타트업인 나눔기술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늘날로 따지면 IT 벤처 1세대에 해당하는 초창기 스타트업이었다. 경영지원팀장으로 총무, 기획, 홍보 등 개발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닥치는 대로 맡아서 했다. 말이 팀장이지 이곳에서 일한 8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회사가 급격히 어려워져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했다. 안정적인 곳에서 일하고 싶어 대기업들에 원서를 냈는데 면접 볼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지원한 회사 중 한 곳 인사 담당자에게 문의를 해봤더니 “우리는 인사면 인사, 홍보면 홍보 등 특정 분야에서 몇 년 동안 경험을 쌓은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실패의 쓴맛을 보면서 ‘전문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결국 대기업에서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다시 신생 IT 기업인 아이티플러스에서 일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문과 출신으로 엔지니어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른 업무들 중에서 무엇이 회사의 성장에 더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 세일즈 분야에 눈길이 갔다. 사장과 면담을 요청해 영업부서로 직무를 바꿔 달라고 했다. 사장이 바로 영업부서로 옮겨줬다. 여성 영업 사원이 거의 없던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의사결정을 흔쾌히 내려준 사장님이 참 대단한 분이셨다.


영업은 처음인데 힘들지 않았나.

8년을 IT 업계에서 일해서 기본적인 업무를 이해하고 있고 평소 관계 맺기를 수월하게 하던 터라 ‘잘할 수 있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정작 나를 만나주는 고객이 없었다. 당시 영업 사원들은 모두 남성이었고 남성들끼리 어울리는 소위 ‘형님 비즈니스’가 대세였다. 동료들은 인맥 관리에 나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고객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고객사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됐고 새로운 기술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중에 그런 책이 없길래 직접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번역하게 된 책이 『엔터프라이즈 자바 빈(Enterprise Java beans)』이었다. 전문적인 기술 용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어려워 당시 파트너사에서 일하던 기술자와 공동 번역했다. 미팅이 끝날 때마다 고객들에게 번역한 책을 나눠주며 나를 기억하게 했다. 또 책을 번역하면서 나 스스로도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이 기술이 왜 나왔고,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해 회사 브로슈어와 영업 자료를 다시 만들었다. 때로는 한 명, 때로는 20여 명의 고객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실력 있는 영업 사원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고 주변 소개 등을 통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고객 미팅 횟수가 늘어났다. 그렇게 만난 고객 명단을 엑셀로 정리해보니 3년 동안 2800명에 달했다.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었던 본인만의 영업 비법이 있다면?

고객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겠다는 자세로 임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고객을 단순히 제품이나 솔루션을 구매하는 사람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고 진심으로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팔아야 할 물건에 초점을 맞추면서 고객 입장을 간과하곤 한다. 예컨대 전기차를 파는 사람은 고객을 보면서 ‘저 사람이 내연기관차를 5년째 타고 있는데 이제 전기차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정도 생각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저 사람이 지금 전기차를 타야 하는 이유’와 ‘저 사람이 전기차를 탔을 때 좋은 점’이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고객을 설득할 수 있다. 아마존은 창업 초기, 임원 회의실 한편에 빈 의자를 하나 두었다고 한다. 고객의 의자다. 그저 빈 의자처럼 보이지만 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 고객의 존재를 상기시켜 항상 고객 관점에서 사고하고 그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도록 독려한다. ‘고객의 의자’는 영업 외에 다른 직무뿐 아니라 리더십에도 필요하다. 회사의 고객은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 인사팀의 고객은 직원들이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들의 고객은 회사의 제품이나 솔루션에 질문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리더의 고객은 바로 구성원이다. 리더는 조직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조직 내에서 내가 자주 접하는 사람’을 고객으로 여기고 성심성의껏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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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부터 오랫동안 리더 역할을 했다.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은 어떤가.

팀을 꾸리면 가장 먼저 ‘팀원이 어떤 사람일까’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동기부여와 자기 결정 분야의 전문가인 에드워드 데시 교수는 동기부여에 외재적 보상뿐 아니라 내적인 만족감과 즐거움, 성취감 등 내재적 보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마다 각자 욕구가 다르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도 있고 전혀 다른 욕구를 가진 사람도 있다. 이런 팀원들의 서로 다른 욕구를 알려면 많이 대화해야 한다. 팀원들이 어떤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좋아하는 건 뭔지,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떤 강점이 있고 다듬어야 하는 약점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평소에 많이 나눴다. 그렇게 팀원이 무엇으로부터 동기부여가 되는지를 관찰해 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일을 할 때 팀원들이 잘한 일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다. “아니, 이걸 어쩜 이렇게 잘했어”라고 최대한으로 띄워준달까? 못하는 걸 지적하기보다 잘하는 걸 칭찬함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우고 싶게 만들고자 했다.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단 한 번도 ‘난 나빠질래’ ‘나아지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너는 이런 걸 잘하네”라고 얘기를 건네며 누구에게나 있는 ‘잘하고 싶은 마음’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렇게 칭찬을 많이 하다 보면 팀원과 친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충분한 연대감이 쌓인 뒤에 업무에 대한 피드백은 가감 없이 했다. 많은 리더가 팀원과 면담하거나 피드백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한다. 당연하다. 소위 ‘지적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나 감정이 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음의 다리를 먼저 놓으면 피드백이 한결 쉬워진다. 나와 같이 일했던 후배들은 내가 아무리 지적을 하거나 피드백을 줘도 내가 진심으로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일하다 보면 분명 눈에 띄는 후배들이 있다. 그런 후배들에게 기회를 더 많이 줬다. 그들 역시 나의 제안에 무조건 ‘NO’가 아닌 ‘YES’를 외쳤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일지라도 어떤 일을 함께 수행해서 배움을 얻으면 나와 본인,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된다.

나는 팀원들과 동행하는 리더가 되고자 한 것 같다. 같은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공동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고, 리더와 팀원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행한다. 목표가 무엇이건 간에 함께 해내야 하는 일의 수준은 점점 높아진다. 만약 올해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면 내년엔 120억 원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더 큰 목표를 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조직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과 함께 이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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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한테는 어떻게 좋은 평가를 받았는가.

대표가 아닌 이상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지시를 받고 보고해야 하는 상사가 있다. 많은 사람이 상사와의 관계를 어려워한다. 이전에 잘 알던 사람이라도 상사가 되면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관계가 달라진다. 그런데 상사를 ‘나한테 지시하는 사람’으로만 보지 말고 ‘나를 통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관점을 바꾸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인다.

델소프트웨어의 싱가포르 사무실에서 일할 때 신임 상사가 부임했다. 시드니에서 일하다 온 분이었는데 부임 1개월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본사로부터 아시아태평양본부의 비즈니스 전략을 발표하라는 요청이 왔다. 경력과 능력이 출중한 상사였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 팀이 그가 요청하는 자료를 챙겨주며 지원하던 중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필요하시면 자료를 챙겨드리는 것 외에 다른 일을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가 굉장히 고마워했고 그날부터 함께 발표 자료 준비에 매진해 성공적으로 보고를 마쳤다. 이를 통해 그는 비즈니스 전반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고, 나는 그와 빠르게 신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열심히 해도 성과를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떻게 성과를 이끌어 냈는가.

영업을 하다 보면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많다. 특히 수주에 성공했을 때는 그 이유가 명확히 한 가지라고 보기 어려우며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운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패했을 때는 대체로 이유가 명확하다. 예를 들어 마케팅 영역에서 캠페인 성과가 나지 않았다면 매체 선정을 잘못했는지, 그 안에 담긴 콘텐츠가 별로였는지, 타깃 오디언스를 잘못 설정했는지 등 특정 요소들을 따져볼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이든 팀 단위로든 ‘복기’하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실패했을 때 팀 단위로 복기하는 작업을 중시한다.

어떤 일이든 프로세스가 있고 적합한 프로세스를 인지하고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프로세스 복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특정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이 생긴다.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일이 있다면 분명 그 ‘감’이 반응을 한다. 그렇게 꺼림칙한 지점을 발견하고 개선해 성과를 내는 것,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곧 실력을 쌓는 것이다. 이전에는 복잡하게 느껴졌던 문제가 훨씬 단순하게 다가오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1년 전이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업무를 해내기도 한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가치는 높아지고 인정받게 된다.


여성 리더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가.

리더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은 외부에도 있지만 자기 안에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 또한 스스로 유리천장을 만들었음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두 번째 회사인 아이티플러스에서 6년 정도 근무하고 더 이상은 성장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냈다. 그리고 세 번째 직장인 글로벌 IT 기업 시트릭스에서 영업 업무를 하게 됐다. 성과를 내며 인정받던 중 나를 뽑았던 지사장이 회사를 그만뒀고 후임이 정해지기 전까지 한국 매출을 책임질 사람이 필요해지면서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회사의 요청에 나도 별생각 없이 수락했다.

그리고 권한대행으로 일하던 중 상부에서 이제는 지사장을 뽑아야 하니 헤드헌터를 만나 필요한 미팅을 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나한테 헤드헌터를 만나 해당 자리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나 회사 현황, 특성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헤드헌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드헌터가 나에게 “업계 경력이 꽤 오래된 것 같으니 적합한 후보가 있다면 추천이나 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음속에 단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나’였다. 헤드헌터한테 얘기했더니 “그럼 왜 나를 만나기 전에 처음부터 회사에 지원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우선 대표는 한국 전체 매출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비록 회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을지라도 매출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는데 이 일을 해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다음으로 나의 당시 외국계 회사 경력은 6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영어로 각종 미팅과 매출 보고 등을 원활하게 수행해야 하는데 한 국가의 비즈니스를 책임져 본 경험이 없는 나를 회사 입장에서 적임자라고 생각할까? 의심스러웠다. 나 같은 사람이 지사장이 돼도 좋을지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리더로서의 나의 자질을 의심하고 한계를 설정한 것이다.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헤드헌터가 그렇다면 권한대행 기간을 좀 더 연장해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했다.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Why not? Nothing to lose”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미팅을 끝내고 돌아와 회사에 미팅 내용을 보고하는 메일을 썼다. ‘이런 질문을 받았고 생각해 보니 내가 적임자인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선뜻 스스로 추천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나 스스로도 그렇고 회사 입장에서도 그렇고 내가 적합한 인물인지 서로 검증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떻냐’는 내용이었다.

의외로 회사는 흔쾌히 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권한대행 기간을 6개월 정도 더 연장해 업무를 수행했고 연말까지 목표한 성과와 인사 관리 등의 지표를 모두 달성했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 회사에 다시 제안을 했다. “이제 제대로 된 월급을 주고 나를 쓸 때가 됐다.” 그렇게 나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 지사장이 됐다.


델,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수 회사의 대표로 일했다. 회사를 옮긴 이유, 그리고 이직을 잘하는 비결이 있다면?

시트릭스에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5년 정도 한국 지사장으로 일했다. 실제로 역할을 수행해 보니 앞서 했던 두 가지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성과가 잘 났고 재미도 있었다. 혼자 세일즈를 하는 것과 조직을 움직여서 하는 일은 범위 자체가 다르다. 물론 고생도 많이 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잘못한 일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리더로 일을 하며 자기 효능감이 더 커졌고, 그 효능감을 더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동시에 세일즈 분야 전문가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리더일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다. 나는 주어진 과제를 다 해결하고 더 이상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시트릭스에서 5년 정도 일하니 비즈니스도 잘됐고 나 없이도 조직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회사로의 이직에 도전했다.

고객 경험을 관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직을 할 때도 ‘저 회사는 어떤 상황일까’ ‘이 포지션을 뽑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필요한 걸까’를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굉장히 많은, 쟁쟁한 지원자들 간의 경쟁을 뚫고 내가 리더로 채용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뽑는 회사의 입장을 훨씬 많이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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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자리에서 물러나 일선 현장에서 멘토이자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어른친구’도 벌써 5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와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리더로 오래 일하면서 후배들을 코칭하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 함께 일했던 팀원 중 나중에 글로벌 기업의 한국 대표가 된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된다. 그동안은 내가 속한 회사에 국한돼 이런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제 어느 회사에 국한하지 말고 더 넓은 범위의 다양한 연령과 직급의 직장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싶다.

특히 유튜브 채널을 꾸준히 운영하면서 현시대의 직장인들이 하는 고민을 많이 알게 되고 그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다. 최근에는 조직 내 관계에 대한 고민, 이직에 관한 고민 사연이 많이 들어온다.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조직의 온갖 사연을 접하는 것이 코치로서의 나의 역량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코칭은 기본적으로 대상이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그 성장을 돕는 행위다. 예컨대 팀원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코치로서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자율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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