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후 조정은 대의명분을 중요시하고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산림(山林)이 장악하게 된다. 현실보다 이상을, 실리보다 도덕을 중시한 이들이 득세하면서 당시 조선은 어려움을 겪는다. 정통성에 하자가 있던 효종은 산림을 어쩔 수 없이 각별히 예우할 수밖에 없었는데 산림에 권력을 분배하는 와중에도 전문성과 경륜, 정치력과 개혁 의지를 두루 갖춘 실전형 인사를 삼정승으로 임명하는 등 자신의 어젠다를 구현해 줄 인재들을 중용해 전면에 배치했다. 또한 수시로 구언(求言)을 열어 신하들이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위기를 타개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근본이고 정사(政事)를 처리하는 것은 말단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미 급박해졌는데 어떻게 내 마음이 올바르지 않다고 하면서 팔짱만 낀 채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부덕하여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르게 만들어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우선 정사에서 잘못된 일들부터 해결해 가고자 하니 경들은 사무(事務)의 폐단을 말하여 보라.”
1653년(효종 4년) 6월 20일에 열린 어전회의에서 왕은 연일 계속되는 재해와 변고에 대처할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영중추부사 이경여는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면 하늘의 덕과 합치돼 재이(災異)를 막을 수 있다며 이러한 때일수록 더욱 수신에 힘써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신하들도 비슷한 의견을 말하자 효종은 위와 같이 답답한 심정을 내비친다. 극심한 재난으로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왕이 수양을 잘했는지 아닌지를 따질 겨를이 있냐는 것이다. 효종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할 구체적인 방책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흔히 유교에서 임금의 수양을 강조하는 것은 왕이 천명(天命)의 대리자이며 교화(敎化)의 주체라는 거창한 이념 때문만은 아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사사로운 욕심에 물들지 않으며, 객관적이고 올바른 인식·판단 역량을 갖춰야 최고 리더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수양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위기가 닥치고 눈앞에 재앙이 펼쳐지고 있는데 원론만 이야기해선 안 된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머뭇거리다간 사태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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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akademie@skku.edu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김준태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