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지난 1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주창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특히 최근 십수 년 사이 게임의 룰을 바꾼 혁신 기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파괴적 혁신은 모든 기업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의 기업이 겉으로만 혁신을 외칠 뿐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 리더는 스스로 파괴적 혁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아닌 고만고만한 ‘땜질 처방’이나 보여주기식 ‘혁신 연극’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진정한 파괴적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얼마나 될까.
신간 『디스럽터』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디스럽터’의 사전적 의미는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 교란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경쟁자들을 혼란에 빠트려 전혀 새로운 판을 짜는 시장의 교란자를 뜻한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위해서는 ‘교란자’가 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다양한 디스럽터 사례를 소개한다.
책 속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피자 체인 1위인 도미노피자는 ‘형편없는’ 음식 수준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실적 개선과 기업 가치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패트릭 도일 전 최고경영자(CEO)는 TV 광고에 등장해 ‘내가 먹었던 최악의 피자’ ‘케첩 맛이 나는 소스’ 등 고객의 가혹한 비판을 공유했다. 또 고객의 의견을 사업의 중심에 두기 위해 정보기술(IT)을 적극 활용했다. 예를 들어, 존재하지 않는 피자를 웹사이트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그 피자를 원하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실제 주문이 이뤄지면 그런 피자는 없다고 밝히고 무료 피자를 제공했다. 이런 상식을 파괴하는 시도가 고객들에게 어필했고 도일 CEO가 취임하기 전 9달러도 채 되지 않던 주가는 현재 280달러를 넘나드는 수준으로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