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5일, ‘i-’를 남기고 스티브 잡스가 떠났다. 잡스의 업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케우치 가즈마사는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이란 책에서 그의 3가지 특출한 능력이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구심력, 둘째, 사람에게서 없는 것까지도 끌어내는 독창성, 셋째는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깔아뭉개고 군림하는 능력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능력을 바탕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탁월한 교섭력을 발휘했다. 어찌 보면 단점으로 보이는 ‘군림’의 능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분석한 점이 흥미롭다.
저자는 위에서 제시한 3가지 특성과 관련한 갖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잡스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의 뛰어난 협상력은 이미 이때부터 형성된 것 같다. 실리콘밸리 근처에 살던 소년 잡스 주위에는 최첨단 일렉트로닉스 기업에서 일하는 기술자가 많아 주말마다 차고 작업대에서 다양한 작업을 했다. 잡스는 어깨너머로 기술자들의 작업을 구경하며 호기심을 키워 갔다. 때로는 질문공세로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13세 때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전자회로 주파수를 측정하는 주파수 카운터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중요한 부품이 부족했다. 아직 어린아이인 만큼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르거나 만들기를 포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잡스는 달랐다. 핵심 인물(Key Person)을 찾아서 접촉했다. 놀랍게도 실리콘밸리에서 급성장해서 ‘포춘 500’에 오른 휴렛팩커드의 사장 빌 휴렛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빌 휴렛은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고문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될 만큼 사회적으로 지위 있는 인물이었다. 전화번호부를 찾아서 그에게 전화를 걸어 20분가량 통화한 잡스는 부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과감한 시도는 효과가 있었다. 대기업의 사장은 얼굴도 모르는 소년에게 부품을 보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름방학 때 휴렛팩커드 제조 라인에서 조립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했다. 13살이면 중학교 1학년의 나이다. 스티브 잡스의 두둑한 배짱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잡스는 젊었을 때 불법행위로 돈을 번 적이 있다. 1970년 초반은 세계적으로 베트남 반전운동이 일어난 시기로 미국 전역에서도 정부의 베트남 개입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16세의 잡스는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꼬드겨 AT&T 전화 시스템을 속여서 무료로 전화를 걸 수 있는 ‘블루박스’라는 장치를 만들었다. 워즈니악이 40달러에 블루박스를 만들면 잡스는 이를 내다 팔았다. 판매 가격은 상대에 따라 달랐다. 학생에게는 150달러를 받았지만 돈이 많아 보이는 손님에게는 300달러에 팔았다. 장난을 좋아하는 워즈니악은 블루박스로 “나는 키신저 국무장관이다”라며 바티칸에 장난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정말로 교황과 연결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끊었다고 한다. 두 스티브는 그런 놀이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AT&T가 부정사용 단속에 나서면서 즐거운 시간도 끝났다. 게다가 잡스는 피자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블루박스 장사를 하다가 총에 맞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됐다. 이 일이 계기가 됐는지 머지않아 두 사람은 블루박스 세계에서 손을 뗐다.
세월이 흘러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아이튠즈는 음원을 ‘어둠의 경로’를 통해 공짜로 다운로드받는 불법행위를 줄여 소비자와 음반업계 모두를 만족시켰다. 아이팟에 해적판 대책 기술을 탑재해 주요 음반회사들을 사업 파트너로 참여시킬 수 있었다. 탁월한 교섭력의 달인이었던 잡스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뒤 협상에 임했다.
픽사 시절에 디즈니와 체결한 계약 역시 잡스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좌절에 빠져 있던 중년의 스티브 잡스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픽사였다. 픽사의 토이 스토리를 비롯한 일련의 애니메이션이 스티브 잡스를 재기시켰다. 그 뒤에는 디즈니가 있었다. 디즈니는 꿈의 왕국인 동시에 캐릭터 사업과 영화 사업의 제국이다. 사람들은 디즈니의 CEO 마이클 아이즈너를 ‘제왕’이라고 불렀다. 잡스가 픽사를 매수했을 때 픽사는 단순히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그래픽 전문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픽사가 돈을 버는 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히트작 <토이스토리>가 태어난 것도 1991년 디즈니와 컴퓨터그래픽 영화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디즈니와 픽사의 계약이 평등할 수는 없었다. 당초 불평등 계약의 내용은 이랬다.
‘디즈니는 제작, 홍보, 배급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한다. 장난감이나 게임, 다른 업계와의 공동 캠페인에서 얻은 캐릭터 상품의 로열티는 모두 디즈니의 수익으로 한다. 픽사는 캐릭터의 외관과 성격, 대화, 성우 등 모든 창작을 담당한다. 계약에 기재된 영화 세 편 모두 존 래스터가 참여한다.’
물론 급했던 잡스는 이 계약에 모두 사인했다. 오히려 디즈니가 제작비를 부담한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1995년의 어느 날, 잡스는 제왕 아이즈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한이 남은 계약을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전화였다. 아이즈너로서는 승복하기 어려운 내용뿐이었다. 쥐가 사자한테 싸움을 걸어온 꼴이었다. 계약 기간도 아직 남았고 조건도 모두 합의해서 결정한 것인데 계약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잡스에게 아이즈너는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토이스토리>의 엄청난 히트로 픽사의 경영 상황은 크게 나아졌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이미 계약서에 사인한 상황에서 수정하자는 제안은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에게 계약 갱신 때까지의 참을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픽사의 주식을 상장한 후 자금에 여유가 생기자 잡스는 계약서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즈너에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디즈니용 영화를 제작할 때 모든 창작을 픽사에 맡긴다. 구성과 캐릭터, 스토리 등을 설명하기 위해 디즈니가 있는 밴쿠버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둘째, 픽사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DVD 포장, 다른 업종과의 공동 캠페인 등 모든 제품에 디즈니와 같은 크기로 픽사 로고를 넣는다. 셋째, 픽사가 제작한 영화의 수익금은 디즈니와 픽사가 반씩 갖는다.’
디즈니와 일하고 싶으면 디즈니의 방식을 따르라는 제왕에게 고작 영화 한 편을 히트시킨 햇병아리가 대등하게 협상하자고 덤볐던 것이다. 잡스는 미국 문화의 상징이며 할리우드의 왕좌에 앉아 있는 디즈니에게 유효기간이 남은 계약서를 들이댔다. 놀라운 것은 고자세로 나오는 잡스에게 제왕 아이즈너가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다. 잡스는 앞으로 수년 동안 여러 편의 영화를 디즈니가 도와줄 것 외에 파격적인 내용도 얻어냈다. ‘캐릭터 상품의 수익은 픽사에도 배분한다. 흥행수입은 디즈니와 픽사가 절반씩 나눈다.’
솜씨 있는 최고 일류 프로듀서조차 흥행수입의 15%밖에 받지 못하는데 디즈니에서 이만큼의 조건을 끌어낸 것은 기적이었다. 잡스는 계약기간이 남은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뒤집었다. 잡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협상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할리우드의 거인 디즈니와 제왕 아이즈너에게 기존 계약을 무시하고 다시 협상하자고 나선다는 발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둥글고 온화한 잡스는 더 이상 잡스가 아니다”며 “상식을 깨는 상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서는 선과 악,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배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절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자세, 군림하려는 심성이 잡스의 위대한 업적의 원동력이 됐다. 인생에서, 기업 역사에서 어느 순간 살다보면 갈등과 협상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배짱과 교섭력으로 이 순간을 버텼고 탁월한 성과를 냈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서진영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 (Centerworld Corp.) 대표이며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