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st my choo.”(나의 지미추가 망가졌네)
미국의 인기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여주인공인 캐리 브래드쇼가 밤 12시에 떠나는 페리를 타기 위해 뛰어가다 샌들 끈이 떨어진 후 내뱉은 대사다. 지미추 슈즈를 가진 여성들은 신발에 대한 사랑을 ‘my choo’라는 애칭으로 표현한다.
지미추는 1996년 설립되어 20년이 채 안 된 신생 브랜드이지만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다른 명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책에는 현재 대표적인 뉴 럭셔리 브랜드로 평가받는 지미추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다.
지미추의 성공 스토리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구두의 명인 지미추, 그의 재능을 사업화시킨 타마라, 지미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린 전문 경영인 로버트 벤수산이다.
말레이시아 이민자 출신인 지미추는 런던 뒷골목에 작은 공방을 차리고 맞춤 구두를 만들던 구두 장인이었다. 워낙 뛰어난 디자인에 구두 만드는 솜씨가 각별해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런던 상류층 여성들이 그를 찾았다. 다이애나 비도 고객이었다. 패션 잡지 <보그>의 액세서리 파트에서 일하던 타마라 멜론은 잡지에 구두 화보를 실으면서 지미추를 알게 됐다. 타마라는 지미추 구두에서 ‘굽이 높고 화려하면서도 편안한 하이힐’의 가능성을 엿봤다. 그녀의 아버지 톰 이어디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비달 사순을 크게 키워낸 능력 있는 경영인이었다. 탁월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 딸의 사업 제안을 아버지가 승낙하면서 지미추와 타마라 가족은 50 대 50 지분으로 동업을 시작했다.
초기의 지미추는 타마라 가족의 자본과 경영으로 커나갔지만 지미추와 타마라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결별하게 됐다. 지미추는 라이언 캐피털이라는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지미추는 자신의 지분을 모두 매각해 회사를 떠났고, 타마라는 지미추의 절대 지분을 소유한 최대 주주 중 한 명으로 사장 자리를 유지했다. 새 주인이 된 라이언 캐피털은 최고경영자(CEO)로 전문 경영인인 로버트 벤수산을 임명했다. 그는 지미추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낸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미추가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로 한 단계 올라선 계기는 내부 갈등이었던 셈이다.
로버트는 CEO가 된 후 독창적인 지미추 매장 인테리어를 만들기 위해 매장 인테리어 응모전을 열었다. 부드러운 베이지와 엷은 라벤더 색을 기본으로 한 매장 안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벨벳 소파, 두꺼운 카펫 등이 갖추어진 지미추 부티크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인테리어 일을 해결한 그는 이탈리아 베니스와 피렌체에 있는 생산 공장을 찾아나섰다. 품질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생산 단가를 끌어내리고 싶었던 그는 하청 물량을 더 주는 조건을 내세워 생산 단가 인하에 합의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로버트의 탁월한 경영 능력과 런던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타마라의 화려한 인맥이 결합되면서 지미추는 성공을 거듭했다. 특히 타마라는 사교계와 연예계 인맥을 총동원해 유명인들이 지미추를 신게 만들었다. 드라마 협찬과 각종 영화제 시상식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을 공략해 일명 ‘레드카펫 구두’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셀러브리티(celebrity)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주며 단숨에 럭셔리 브랜드의 반열에 올라선 지미추는 ‘세련된 도시 생활’을 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상징이자 로망이 됐다.
2001년 브랜드 가치가 2100만 파운드였던 지미추는 2004년 라이언 캐피탈에 1억 100만 파운드에 매각됐고, 2007년 타워브룩 캐피탈은 지미추를 1억 8500만 파운드에 인수했다. 시장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몇 배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 지미추의 성공 스토리를 명품 업계는 물론 증권가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유구한 전통과 화려한 역사가 없어도 얼마든지 럭셔리 브랜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 지미추의 창업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과연 한국의 지미추는 언제쯤 탄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