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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위조범과 모방의 기술

김정수 | 40호 (2009년 9월 Issue 1)
제목만 보면 그동안 흔히 보아왔던 ‘돈 버는 기술’에 대한 책(재테크 서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아트 윌리엄스라는 ‘걸출한’ 화폐 위조범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로, 문자 그대로 ‘돈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것이다. 윌리엄스는 겨우 30세가 될 때까지 무려 1000만 달러(약 120억 원) 상당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유통시킨 혐의로 2001년 체포됐다. 저자인 제이슨 커스턴은 음악 전문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에 윌리엄스의 화폐 위조 노하우는 물론, 시카고 빈민가에서 시작된 인생 역정과 가족사에 대한 기사를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기사를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
 

독일, 영국 경제 타격 주려 위폐 제조
어느 나라에서나 화폐 위조는 다른 사람의 신체에 상해를 가하지 않는 범죄 가운데 가장 엄하게 다뤄진다. 국가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파괴해 엄청난 사회, 경제적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영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선택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대규모의 위조지폐 유통이었다. 독일은 ‘베른하르트 작전’으로 불린 이 계획을 통해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인 1억3000만 파운드(약 2600억 원)의 위조지폐를 만들었다(2008년 국내 개봉한 영화 <카운터페이터>가 관련 내용을 다뤘다).
 
미국도 남북전쟁의 와중에 위조지폐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 당시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절반 정도가 가짜여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링컨 대통령은 자신이 암살당한 당일, 위조지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방기관 창설을 최우선 과제로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기관이 바로 비밀수사국(US Secret Service)이다. 현재 약 65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비밀수사국은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으로 많은 업무를 이관한 이후 단 2가지 일만을 수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대통령 경호이며, 다른 하나가 위조지폐 단속이다. 그만큼 위조지폐 단속은 아직도 미국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로 여겨진다. 미국 정부는 철저한 단속 노력과 함께 1996년 최첨단 위조 방지 기능을 적용해 새로운 지폐를 발행했다. 화폐 위조는 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자동차에서 위폐 만들 실마리 얻어
하지만 좋은 방패가 나오면 그것을 공략할 수 있는 창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트 윌리엄스는 정부의 노력을 무력화할 방법을 하나 둘씩 찾아냈다. 그 과정은 천재적이며 끈질긴 노력 그 자체였다.
 
윌스엄스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드라이마크 펜’이었다. 미국에서는 고객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내면 점원이 굵은 사인펜을 꺼내 돈 위에 선을 그어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굵은 사인펜이 바로 위조지폐를 판별하는 가장 위력적인 수단인 드라이마크 펜이다. 드라이마크 펜에 들어 있는 용액은 종이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전분(starch)과 반응하면 검은색으로 변한다. 하지만 미국의 지폐를 만드는 종이에는 전분이 사용되지 않아 색이 변하지 않는다.
 
윌리엄스는 색이 변하지 않는 종이를 찾기 위해 신문지에서 화장실 휴지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종이에 펜을 그어댔다. 그러던 중 찾아낸 것이 바로 전화번호부였다. 신기하게도 전화번호부 종이, 그중에서도 아비티비라는 회사가 만든 종이만은 색이 변하지 않았다.
 
그 다음 문제는 ‘광가변성 잉크(Opti-cally Variable Ink·OVI)’였다. 지폐를 서서히 옆으로 돌리면서 보면 오른쪽 아래 숫자의 색상이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광가변성 잉크를 이용한 첨단 위조 방지 기능이다. 문제를 풀지 못한 아트가 낙심해 주차장을 걸어가고 있을 때, 1996년형 포드 ‘머스탱’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차의 색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즉시 자동차 수리점으로 달려갔고, 머스탱의 페인트를 만드는 회사가 미국 조폐공사에 OVI를 납품하는 ‘플렉스 프로덕트’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그 페인트를 한 통 사서 미국 지폐의 글씨체로 ‘100’이라는 숫자의 고무도장을 만들어 찍어보니 대성공이었다.
 
가장 힘든 장애물은 ‘워터마크’였다. 워터마크란 지폐를 들어 불에 비춰보면 어렴풋이 보이는 인물(벤저민 프랭클린)의 초상을 말한다. 이 작업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해결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원가’가 너무 올라갔다. 5달러짜리 지폐를 탈색한 후 100달러짜리로 다시 인쇄하는 것인데, 윌리엄스는 100달러당 5달러의 ‘원가’가 너무 아까웠다. 종이를 물에 불려 반으로 가른 틈에 프랭클린의 초상을 넣은 후 오븐에 구워보기도 했지만 진짜 돈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윌리엄스는 실망한 채 잠자리에 든 어느 날 꿈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얇은 트레이싱지에 프랭클린의 초상을 인쇄한 후 아비티비의 종이 두 장을 양쪽에서 덮어 접착제로 붙이는 방법이었다.
윌리엄스가 만들어낸 ‘작품’은 비밀수사국 요원이 아니면 판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는 이 지폐를 주로 마약 거래를 하는 시카고 갱들에게 1달러당 25센트를 받고 팔았다. 마약 거래상들은 마약 대금의 20∼30%를 위조지폐로 지불했다. 윌리엄스의 위조지폐는 항상 공급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모방 기업, 원조보다 실패 위험 적어
이처럼 위조 또는 모방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도 막기 힘들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더 나아가 경영 전략은 성공 즉시 다른 기업의 모방 대상이 된다. 통계에 따르면 모방 기업의 제품 개발 비용이나 기간은 원조 기업의 70% 수준이며, 실패의 위험도 훨씬 적다.
 
모방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는 기업들은 원조 기업보다 원가를 더 낮추거나, 모방 후 제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기존 시장 지위와 브랜드를 지렛대로 삼아 성공한다. 캐논과 니콘은 원가 경쟁력으로 라이카를 제쳤으며, 애플은 앞서 가정용 컴퓨터를 개발한 MITS 제품을 개량해(키보드와 메모리를 일체형으로 만들어) 선도업체로 성장했다. RC콜라는 1960년대에 다이어트 콜라를 시판했지만, 후발주자인 코카콜라의 유통망과 마케팅에 밀려났다.
 
무형적 차별화에 주목하라
성공적인 전략은 우리 회사가 경쟁사를 이기게 해주는 동시에 경쟁사들이 모방할 수 없는 전략이다. 또 지속 가능한 시장 우위를 창출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방이 어렵고 지속 가능한 성공 전략의 조건으로 특허권과 같은 법적인 보호 수단이나 공장 설비, 전문 인력 등을 꼽는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서 설명한 유형적인 차별화 수단보다 고객에 대한 이해와 같은 무형적 차별화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일찍이 3가지 형태의 지점을 설치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것은 바로 △셀프서비스형의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한 ‘익스프레스’ △자산 상담을 위한 ‘파이낸셜 센터’ △일반적 지점 형태의 ‘뱅킹 센터’였다.
 
다른 은행들도 BOA의 지점 형태나 인테리어는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어떤 지역에 어떤 유형의 지점을 설치해야 하는지 △직원은 어떤 사람들로 배치해야 하는지 △판매 목표는 어느 정도로 차별화해 부여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지역별 고객의 유형과 금융 거래 성향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으로 이를 모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혁신을 통해 시장의 리더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어떻게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유지할 것인가는 그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다. 기업은 이를 위해 유형적인 차별화 수단과 함께 무형적인 수단, 즉 고객과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이해, 마케팅, 고객 록인(lock-in) 등을 빈틈없이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아트 윌리엄스 같은 모방의 천재들을 물리칠 수 있다.

필자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산업자원부에서 국제통상 업무를 담당했다. 공인회계사이며,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베인&컴퍼니 도쿄 및 시드니 오피스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서울 오피스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금융, 중공업, 인수합병(M&A) 및 인수 후 통합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김정수 | - (현) GS칼텍스 전략기획실장(부사장)
    - 사우디아람코 마케팅 매니저
    -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 산업자원부 사무관
    jungsu.kim@gscalt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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