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손대수로부터 도착한 문자. “내일은 우리 팀 홍일점인 임 주임님의 생일입니다. 오늘 퇴근 후 회식 어때요?”
생일? 내일이 임 주임 생일이라고? 오호라, 이게 웬 횡재람.
내일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해볼까? 그러면 임 주임이 부담스러워 할까? 생일이니까 다른 약속이 있으려나?
어쨌거나 우리 팀 전원의 찬성으로 오후 4시에 열리는 가격전략 회의가 끝난 뒤에 바로 회식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최대한 그녀에게 내 마음을 보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 임 주임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점심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사무실을 빠져나와 백화점으로 갔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골라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에도 별 생각 없이 돈만 드렸지, 이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줄 물건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온 것은 요 근래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백화점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예전엔 무심히 지나쳤는데 백화점에는 정말이지 여성을 위한 수많은 물건이 있었다. 자, 그럼 선물을 골라볼까? 뭐가 좋을까? 임 주임은 어떤 선물을 좋아할까? 반지? 그건 좀 나중에….
화장품을 사려고 하니 스킨·로션 같은 기초 화장품이나 색조 화장품을 비롯해 종류가 수십 개나 되어 고르질 못하겠다. 화장품 외에도 머리핀·브로치·목걸이·귀걸이·향수 등 젊은 여성들을 위한 물건이 정말 많았고, 들르는 매장마다 점원들이 친절하게 ‘선물 후보’를 추천해 주었지만 뭐가 예쁜지 잘 판단이 안 되고, 임 주임이 뭘 좋아할지도 종잡을 없어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고민하면서 2층 매장으로 올라가려던 순간에 1층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스카프 판매대에 눈이 갔다. 이제 가을이니 실용적이기도 하고 가장 무난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카프를 선물하기로 했다. 균일가 1만9800원에 팔고 있는 판매대에는 꽤 많은 스카프가 진열되어 있었다. 물건을 하나씩 들춰가면서 좀 더 예쁜 것을 찾다보니 왠지 시장에 널려 있는 물건을 고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선물인데, 그것도 임 주임 생일 선물인데 균일가 상품보다는 좀 더 ‘제대로 된’ 근사한 것이 낫지 않을까?
2층의 정식 스카프 매장으로 들어가니 상품 진열부터 남다르고 균일가 판매대보다 손님도 훨씬 적어서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었다. 매장 점원의 도움으로 20대 여성이 좋아할 만한 스카프 몇 개를 추천 받았다. 슬쩍 가격표를 보니 죄다 1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할인 상품과 별로 다른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가격 차이가 크다니….
‘같은 상표에 무늬도 비슷한데 그냥 싼 걸 살까?’
‘아니야, 그래도 1년에 하루밖에 없는 생일 선물인데 좀 비싸더라도 신상품이 낫지.’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나?’
‘내 사랑은 할인될 수 없어! 비싼 건 그만큼 값어치를 할 거야!’
결국 가장 비싼 것을 고르고야 말았다. 3개월 할부로 카드 결제를 하는데 은근히 뿌듯하다. 뭔가 소중한 것을 산 기분이랄까?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서 임 주임을 보며 선물 줄 생각을 하니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 과장님 주제로 신제품 가격전략 회의가 열렸다.
“저는 우리 제품이 초기에 최대한 판매량을 극대화해서 관련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비로 20억 원, 개당 생산 원가 7만 원에 홍보와 마케팅 비용으로 개당 1만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초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회사가 개당 3만 원 정도만 마진을 붙여 최종 소비자 가격은 15만 원 정도로 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적어도 첫 해에 2만 개 정도는 판매해야…. 강 대리는 어떻게 생각해?”
“전 가격이 적어도 50만 원은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누가 실내조명 기기를 50만 원이나 주고 산단 말이야?”
“우리 제품은 단순한 실내조명 기기가 아니잖습니까? 심신의 건강을 좋게 해 주는 특수 제품이라고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제품이란 말이죠. 그들은 제품 가격이 비쌀수록 자신에게 더 많이 투자했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더 뿌듯해 할 겁니다. 그래서 전 무조건 고가로 판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프리미엄 아니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50만 원이라는 가격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제가 물건을 사 보니까 아무래도 비싼 물건이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라도 우리 제품은 기꺼이 50만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팔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만큼은 제 말씀을 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