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공원에 놀러간 장난꾸러기 철수가 영희에게 “나는 어떤 나무든지 10초 안에 나뭇잎 수를 정확히 셀 수 있다”며 허풍을 떨었다. 한술 더 떠 “내가 나뭇잎 수를 맞히면 네가 오늘 저녁을 사고, 맞히지 못하면 내가 너에게 한 달 동안 매일 저녁을 사겠다”며 내기를 걸었다. 영희는 잠깐 생각하다가 내기에 응했다.
영희는 나무 하나를 선택해 나뭇잎을 세어보라고 철수에게 요구했다. 철수는 그 나무를 쳐다보며 잠시 중얼거리다가 “5000개”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영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철수는 정색을 하며 미리 준비한 말을 했다. “저 나무의 나뭇잎은 5000개가 분명하다. 그러니 오늘 저녁은 네가 사라. 네가 5000개가 아님을 증명하면 내가 한 달 동안 저녁을 사겠다.”
철수의 사고 방법은 ‘역사고’의 전형이다. 철수는 자신이 나뭇잎을 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세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영희에게 나뭇잎을 세도록 책임을 떠넘겨 원하는 바를 얻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영희는 이대로 당할 수밖에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영희는 철수에게 잠깐만 뒤돌아서 있으라고 말한 뒤 그 나무로 가서 나뭇잎 20개를 떼어 주머니에 넣은 채 돌아왔다. 그리고 철수에게 다음과 같이 일격을 가했다.
“네가 10초 안에 저 많은 나뭇잎 수를 세다니 정말 감탄했다. 그런데 나는 방금 전에 그 나무로 가서 나뭇잎 몇 개를 떼어 왔다. 미안하지만 몇 개 떼어왔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 한 번만 더 세어 봐라. 지금 나뭇잎이 몇 개 남았는지!”
철수가 진짜로 나뭇잎을 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4980개(5000-20)’라고 대답해야 한다. 물론 영희가 몇 개를 떼어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철수는 말문이 막혔다. 결국 철수는 한 달 동안 매일 저녁을 사야 했다.
고정관념 탈피가 창의성의 원천
창의성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이다. 창의적 사고의 대가로 ‘수평적 사고’ 개념을 만든 에드워드 드 보노는 “창의성이란 이전에는 없던 무엇인가를 존재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거나 또는 만들어 내는 것’이 ‘창의성’이라 할 수 있다.
“제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가로채려고 하는 사람들’. 할아버지께서는 늘 제게 첫 번째 부류에 들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언제나 경쟁이 덜 치열하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 인디라 간디
공감할 만한 말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조언에 ‘경쟁’이란 개념이 등장한 게 매우 이채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부류를 하나 더 늘린다면 어떨까. 간디의 할아버지가 창의성에 가치를 부여했다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 번째는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이곳은 경쟁이 아예 없단다.”
드 보노는 “창의성의 본질은 일단 ‘어떤 방식으로 형성된 인식’이 돌연 그와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된 인식’은 ‘고정관념’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고정관념은 매우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다. 고정관념이 없다면 매번 새로운 일을 접할 때마다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허둥댈 수 있기 때문이다.
장롱에 30개의 넥타이가 있다고 하자.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30개의 특성을 분석하고 옷과 어울리는 색상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는가. 다행히 인간의 두뇌는 매우 빨리 생각하고 판단한다. 기존 경험이나 고정관념을 기초로 순식간에 반응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두뇌의 뛰어난 점이다. 두뇌의 이런 점이 없다면 모두 넥타이 때문에 지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처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과거의 경험’은 결정적 단점이 있다. 바로 창의성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에는 큰 방해가 된다. 고정관념이 새로운 생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고정관념의 덫에서 벗어나 남과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바탕’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