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이광수 장편소설 『무정』

‘나’를 넘어 ‘우리’를 만드는 힘

267호 (2019년 2월 Issue 2)

“1만 부 이상 팔리기는 조선 출판계에 오직 이 『무정』뿐이다.” 1924년 『조선문단』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이 광고 문구만큼 『무정』의 인기를 보여주는 표현이 또 있을까? 『무정』은 1917년 새해부터 여름까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장편소설이다. 다만 『무정』의 인기를 정확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무정』을 둘러싼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무정』 연재가 시작된 1917년, 언론 탄압으로 인해 조선 사회에 대규모로 도는 일간지는 매일신보 하나뿐이었다. 어쩌면 『무정』이 누린 독보적 인기는 시장 독점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무정』은 식민권력이 식민지에 허락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무정』 위에는 식민지라는 그늘이 드리워 있다.


식민지 시대의 문학 시장과 정치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 조선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문학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선 대한제국의 독자들이 사랑했던 많은 책이 금서(禁書) 조치를 당해 사라졌다. 『혈의 누』 『서사건국지』 『월남망국사』처럼 ‘대한제국 국민’에게 눈뜨라고 호소하거나 ‘망국’의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 ‘구국’과 ‘독립’의 ‘영웅’을 바라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여기 해당한다. 그러자 조선시대 고소설을 활자본으로 찍어낸 염가 ‘이야기책’들, 족보, 교과서, 자기계발서와 수험서류가 식민지 초기 출판시장에서 그 빈자리를 채우며 팽창했다. 이런 책들만 보자면 출세, 보신(保身), 오락만이 식민지 조선인의 최대 목표로 남게 된 것 같다.

매스미디어의 상황은 어땠을까?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처럼 대한제국 각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문학류도 활발히 게재했던 각종 지면이 전부 폐간됐다. 대신 전국 규모의 일간지로는 오로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만이 남았다. 이 유일한 지면은 삼엄한 검열 아래 놓여 있었다. 편집권과 청탁권은 모두 식민권력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식민권력이 원하지 않는 것을 쓸 자유는 물론 식민권력이 원하는 것을 쓰지 않을 자유조차 위태롭게 된 사정이다. 식민지 초기 매일신보 연재소설 지면에는 술술 재미나게 읽히는 번안소설과 신소설이 연이어 실렸는데 사실 그 내용에서 정치성을 찾아보기 힘든 이 소설들은 존재 자체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었다. 정치에 대해 침묵하는 것 자체가 지배 권력에 순응한다는 ‘정치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식민지인의 삶은 이렇게 검열 속에서 구성됐다. 식민권력의 눈에 거슬리는 정치적 관점들은 싹이 나기도 전에 솎아내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한국 근대문학사의 기념비이자 위대한 베스트셀러인 『무정』을 보는 눈도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시 매일 『무정』이 나오기만 기다렸던 독자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정』의 새 연재분이 실린 신문을 구하려 매일 십 리 길을 왕복했다는 독자, 신문이 배달되면 가장 먼저 『무정』을 찾아서 옹기종기 모여든 가족을 위해 크게 낭독했다는 독자들의 열광은 대중의 ‘순진’과 ‘무지’에서 비롯한 것일까? 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일까?



소설 『무정』 에 지식인과 대중이 함께 열광한 이유
양반 핏줄을 타고났으나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기생이 된 가련한 여자 영채, 조선 사회의 갑부이자 명사(名士)의 딸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선형, 그리고 일찍이 은인이 맺어준 인연으로 영채와 묶여 있고, 지금은 선형에게 끌리는 촉망받는 청년 지식인 형식. 소설 『무정』에서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겁탈과 잠적, 유혹과 번민 같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갈팡질팡 달려간다. 그러다 형식은 약혼한 선형과 함께 신혼여행 겸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잡아탄 부산행 기차에서 행방이 묘연했던 영채와 다시 딱 마주치고 만다. 영채 역시 자신을 도와준 신여성 병욱과 함께 일본 유학을 위해 부산으로 떠나던 차였다. 운명의 장난처럼 만난 네 사람의 끝은 어디로 가는 걸까?

1910년대 거의 유일한 일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총독부 기관지라 지지부진했던 매일신보의 판매부수는 『무정』 연재와 더불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만 25세의 청년작가 이광수의 원고료가 연재 도중에 두 배로 뛸 정도였다. 매일신보는 이 기적 같은 스타 작가를 놓칠세라 『무정』 연재가 여름에 끝나자마자 당장 다른 장편소설을 그해 겨울부터 써달라고 청탁을 넣기까지 했다. 설렁설렁 읽고 버리거나, 냄비 받침으로나 쓰면 그만일 뿐인 연재소설 한 편이 이 시대에 발휘했던 힘은 이처럼 대단했다.

연재 이듬해인 1918년 여름, 『무정』은 1000부 초판을 시작으로 단행본을 출판했다. 1919년, 이광수가 참여한 ‘한국 근대문학사 최초의 전문 문예 동인지’인 『창조』가 창간호를 통 크게 1000부 발행한 사실이 있다. 조선 사회에서 ‘전문 문예’를 소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고급 독자’ 전체의 최대 크기가 1000명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도쿄 유학생 엘리트인 이광수의 출신 성분 같은 다른 맥락을 함께 고려하면 실제로 『무정』의 타깃이자 핵심 독자가 누구였는지 가늠이 된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에만 내리 8판을 찍으며 무섭게 타올랐던 『무정』의 인기는 이 ‘고급 독자’의 파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식계층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는 가볍고 자극적인 ‘연애소설’을 대체 왜 읽었고, 또 지식계층의 전유물인 ‘문예’를 외면하던 대중마저 이 소설을 좋아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 판이한 두 계층의 독자를 함께 열광하게 만든 열쇠는 뭐였을까?

실마리는 기차 칸에서 우연히 만난 주인공 네 사람이 맞닥뜨리게 된 뜻밖의 사건에 집약돼 있다. 부담스럽고 불편한 만남은 형식과 영채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고, 애정의 행방은 다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게 됐다. 그런데 무심하게 부산으로 달려가던 기차가 갑자기 멈춘다. 삼랑진에 홍수가 난 탓에 기찻길이 끊긴 것이다. 각자의 고민에 골몰해 있던 네 사람 앞에 참담하기 그지없는 수해 현장이 펼쳐졌다. 그러자 네 사람은 수재민을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홍수는 찬물을 끼얹은 듯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주인공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유학 후 돌아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때도 계속 사랑 타령을 해야 하고, 재산을 얼마나 모으고, 출세할지를 고민해야 하나? 팔자와 신세를 한탄하며 남의 도움에만 의지해 살아야 하나? ‘우리’는 홍수를 만난 바로 이들처럼 모든 것을 잃고 나앉은 조선 사람들, ‘민족’을 위해 일하려고 떠나는 것이 아닌가?

『무정』의 유명한 삼랑진 홍수 대목은 소설 전개만 놓고 보자면 상당히 당혹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앞뒤 맥락 없이 삼각관계를 자르고 뛰어 들어온 이 사건은, 방금까지도 진실한 사랑이 뭔지를 고민하고 있던 네 사람으로 하여금 민족을 떠올리고 민족을 위해 힘을 합치라고, 민족의 대의 앞에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폐기하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네 사람은 이 요청에 순응한다. 삼랑진 홍수를 겪은 네 사람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함께 조선의 일꾼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갑자기, 그동안 『무정』을 이끌어 왔던 삼각관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요즘 독자들이라면 분명히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우리’에 대한 열망
정치학자 칼 슈밋이 1932년에 쓴 고전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기인한다. 유럽이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상황에 처했던 때 나온 서슬 퍼런 이 표현은 ‘정치적인 것’은 ‘그들과 우리의 구별’, 다시 말해 그들과 다른 우리를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고 암시한다. ‘우리’를 규정하기 위해 ‘나’와 ‘너’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그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점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되는 ‘우리’는 생사의 운명을 함께하는 집단, 그 속에서 ‘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집단이다.

인간이 만들어 온 ‘우리’, 다시 말해 ‘공동체’의 역사에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싸워 온 역사가 새겨져 있다. 공동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무정』이 연재된 시기는 ‘우리’가 한 번 치명상을 입은 시기다. 그 이전까지 한창 만들어지고 있던 대한제국 국민이라는 ‘우리’는 파괴됐고, 그렇다고 대뜸 일본 제국의 자랑스러운 신민인 ‘우리’에다 자기를 귀속할 수는 없을 때 남은 건 가문이나 가족으로 축소된 ‘우리’였다. 내가 돈 벌고 교육받고 출세해서 명사(名士)입네, 사장입네 행세하는 게 다 무슨 의미인가? 나 잘되고 기껏해야 조상님 기쁘게 하자는 의미밖에는 없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좁은 ‘우리’에 만족하지 못한다. 사사로운 관계를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를 확인하고, 공동의 목표와 의식을 통해 확장되고 싶은 갈증을 억누르지 못한다. 성별, 나이, 출신, 교육과 재산처럼 ‘나’들을 갈라놓는 수많은 차이를 무효화시키는 ‘공동의 것’을 향한 욕망, 이처럼 존재에 뿌리내린 갈증이 바로 ‘정치적인 것’이다. 현실 정치가 아무리 단속해도 정치적인 것이 만들어내는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무정』은 대한제국이 파괴된 이래 흩어져 있던 ‘나’들이 엮이고 엮여 지금 필요한 ‘우리’를 힘겹게 다시 만들어내는 다사다난한 여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우리’는 총독부가 검열하는 ‘우리’는 아닐지라도 제국이 식민지인에 원하는 ‘우리’와는 또 다른 것이다. 초기 식민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식민지에서의 삶에 제대로 된 의미를 부여해 줄 ‘우리’를 열망했다. 지식인과 대중이 『무정』에서 같이 본 것이 바로 그런 ‘우리’였다.

이렇게 『무정』이 확인하는 ‘우리’는 ‘민족’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민족’이라는 말, 특히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신념이 다문화의 사회적 현실 속에서 차별과 위계를 조장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신념 자체는 해방 이후에 일반화된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도 민족, 국가, 국민 등은 논란을 몰고 다니는 개념이다. 민족이 혈연을 토대로 확장된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실체인지, 정치적 이념을 공유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의식적 결합체인지, 아니면 근대에 들어서야 탄생한 ‘상상된 공동체’로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이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근대 세계 역사의 전개에서 ‘민족’이 핵심적 역할을 한 단위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무정』이 탄생한 근대 한국에서도, ‘민족’은 ‘우리’의 힘을 담을 수 있는 중요한 그릇이 됐다.

‘우리’ 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넘어서게 만드는 거대한 힘이다. 개인의 역량을 그 단순한 총합보다 훨씬 더 크고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힘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만들어낸다. 삶이 텅 비었다고 보지 않으려는 싸움, 의미를 위한 싸움은 결국 ‘우리’를 만들어내려는 싸움으로 이어진다. 『무정』은 이 ‘우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관해 가장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해준다. 통제, 억압, 검열, 단속과 같은 식민지 통치의 기술로는 ‘우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많은 기업이 직원들과 운명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고, 또 그렇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기업이 말하는 ‘우리’는 과연 진정 직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귀속하고, 더 나아가 ‘나’를 넘어서게 만드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필자소개 이경림 서울대 국문과 박사 plumkr@daum.net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