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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中有訓

황향선침: 사소한 효행, 불후의 감동

고연희 | 185호 (2015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선친온금(扇枕溫衾)

“황향(黃香) 9세에 어머니를 잃고 그리움으로 몹시 초췌해져 겨우 장례를 마치니 고을 사람들이()’라 일렀다. 홀로 아버지를 모심에는 몸소 고생을 마다하고 여름이면 베개를 부채질해드리고 겨울이면 제 몸으로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해드렸다. 태수가 이를 듣고 표창하여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후에는 벼슬이 거듭 올라 상서에 이르렀고 자식과 후손이 모두 현달했다. 황향의 효행은 다박머리 어릴 때로부터의선친온금(扇枕溫衾, 베개를 부채질하고 이부자리를 덥히다)’이라 세상에서 모두 전하기를 아버지가 춥거나 덥지 않도록 성실한 마음을 한결같이 드렸으니천연에서 나왔다(出天然)’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왕실에서 제작된 고전 그림책 <예원합진(藝苑合珍)>의 한 면에 위의 글이 실려 있고, 여기 소개하는황향선침(黃香扇枕, 황향이 베개를 부채질하다)’이 위 글의 오른쪽 면에 그려진 그림이다. 편안하게 앉은 인물이 황향의 아버지요, 머슴이나 동자승처럼 침상 앞에서 둥근 부채를 흔들고 있는 인물이 소년 황향이다. 이 그림 속 황향의 집은 푸른 기와가 제법 번듯하고 노란 꾀꼬리 한 쌍이 노는 버드나무 아래 여름 연꽃이 활짝 핀 장관을 내려다보는 멋진 누각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황향의 집은 매우 가난했다. 이를 그린 조선후기 화원은 더운 여름날을 그리되 따스한 애정이 넘치는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이렇게 화사한 자연배경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향(18∼106)은 중국 동한(東漢)시대 문인이고 관리였다. 그의 효행이 <후한서(後漢書)> 열전 편에 실려 알려졌고, <이십사효(二十四孝)>의 하나로 중시되면서 여러 문헌에서 거듭 기록되고 칭송됐다.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선친온금(扇枕溫衾)’이라는 사자성어로 황향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서도 이미 신라시대의 최치원을 비롯해 고려시대 문인들이 황향의 이름을 들어 행위의 본보기로 삼았고 조선 초기 세종의 명으로 편찬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조선 후기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효자 편에 황향이 실렸다. 조선후기에 유명한 효자들을 모아 그린 병풍 그림에서도 황향의 모습은 빠지지 않는다. 대개 둥근 부채로 이부자리를 부치고 있는 소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소한 효행, 부채질

 

조선후기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도록 유행한 그림 중문자도(文字圖)’라는 것이 있다. 문자의 모든 획을 상징적 이미지로 디자인한 그림으로·······여덟 글자가 그려진다. 그 첫 번째 글자가()’, 자의 각 획은죽순’ ‘거문고’ ‘잉어’ ‘부채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거문고는 요순시절 순()임금이 타던 거문고를 의미하는데 순임금의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죽순은 맹종(孟宗)이 한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숲에 갔다가 울었더니 언 땅에서 죽순이 솟아났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잉어왕상(王祥)의 어머니가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어 했는데 강물이 모두 얼어 왕빙이 우니 강에 구멍이 나고 잉어 두 마리가 튀어 나왔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부채는 바로 황향의 부채다.

 

그런데 효자를 나타내는 거문고, 죽순, 잉어 등의 이야기에 비할 때 부채질은 커다란 기적이나 대단한 효행을 나타내기에는 다소 약해 보인다. 그림 속 황향의 부채질이란 <삼강행실도>에 실린 여러 효자들의 효행도에 비할 때 몹시 사소한 것이 사실이다. 행실도에 실린 대개의 효자들은 부모의 병을 치료하고자 자신의 신체를 해하기도 한다. 아버지 병에 사람 뼈가 좋다고 하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봉양하고, 아버지의 기력이 부족하면 손가락이나 허벅지 살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한다. 목숨을 걸고 호랑이와 싸워 부모를 구하거나 호랑이를 죽여 부모의 원수를 갚은 효자들이 등장하고 앞서 든 것처럼 가공할 만한 효심으로 하늘을 감동시켜 겨울에 죽순이나 잉어를 구하는 등의 기적을 유발한다. 이런 행위들과 비교할 때 여름날의 부채질이란 사소한 행동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향의 부채는 문자도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고 부채질하는 황향의 모습은 효자병풍 8폭이나 10폭 중 한 폭을 반드시 차지했다. 조선왕실에서 왕실 자제를 가르치도록 제작된 그림책 <예원합진>에는 뛰어난 지략가와 문인 등이 즐비하고 효자로는 단 한 명만 선정돼 그려졌는데 그가 바로 황향이다.

 

황향의 부채질이 수천 년 동안 인구에 회자되고 조선후기 왕실 그림책에서 유일한 효행의 예로 선정된 까닭은 무엇일까. 손가락을 자르고 호랑이를 죽이는 일보다 규모가 크고 중대한 일을 담당한 사람들, 즉 조정을 경영하는 최고 지위의 사람들에게 한갓 부채질하는 어린이의 그림을 감상하도록 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배려심과 실천력

 

권력자는 호랑이를 죽이거나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가족의 잠자리를 매만져주기는 오히려 어렵다. 그러나 사소한 행동의 효과는 크게 나타나곤 한다. 작은 행위라도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으면 감동을 준다. 반대로 어떤 작은 행위는 상대방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주고 큰일을 그르치게 한다. 이렇게 작은 행위들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누가 의미 있는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는 작은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가.

                                    

몇 년 전 중국 한 신문에서선친온금의 주인공이 9세 소년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런 효심은 천성인데 오늘날 중국의 부모들이 하나밖에 없는 아이에게 지나친 애정을 베풀어 그만 아이들이 지닌 천연의 효심을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천연에서 나왔다는 말은 위에 인용한 원문에도 나오지만 주의를 요한다. ‘원래 그렇다는 말을 더해 어떤 주제를 강화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다. 사실 중국 한나라 때 중시된 효의 개념은 충()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기반이라는 해석이 학계에서 우세하다. 천연의 효심이 이러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지나치며 오늘날 황향에게서 효도의 가르침만 읽어서도 곤란하다.

 

 

황향의 부채질이 오랜 역사 속에서 인용되고 그림으로 그려지는 동안 이를 전한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황향의 행동은 내가 더우니 남도 덥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심이 우선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고 나의 수고로움을 마다않는 실천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현실적 수준을 요구하는 여타 효행에 비해 부채질은 작지만 사실상 현실적인 행위다. 주변을 돌아보며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실천했던 남다름이 황향의 명성을 수천 년 동안 유지시킨 비결이다.

 

요컨대 황향의 모습은 효행으로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 감동을 주고 성공을 초래하는 작은 행위의 근본은 타인을 살피는 진실성과 이를 행하는 의지에 있다는 교훈,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만고의 가르침이 이 작은 소년의 부채질 속에 담겨 있다.

 

고연희 서울대 연구교수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 고연희 고연희 | - (현) 서울대 연구교수
    -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활동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
    -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lotus12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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