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by Map

사람마다 창의성 끌어내는 ‘창조공간’ 있다 겹침의 미학으로 생동하는 홍대 앞처럼…

176호 (2015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 인문학

홍대상권은 점점 자라고 있다. 예전의젊음의 거리들이 점점 쇠락할 때에도 홍대만큼은 동교동,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으로 확장 중이다. 홍대에는겹침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창의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 매력이여성젊음이라는 상권 성장의 핵심 인자들을 끌어들인다. 최근 IBM이 수행한 설문조사에서 60개국 33개 업종 CEO 154명의 답변을 모아보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리더의 자질은창조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권 형성에도, 기업의 리더십에도, 평범한 직장인에게도 창조성은 이제 명실상부한핵심 어휘.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성을 키울 것인가. 우선집어넣기끌어내기를 적절히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별로는 각자 자기 스타일에 맞는 창조공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창조과정자체가 사람을 변화시켜 창조성을 키운다. 더 이상 창조성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가보자.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홍대상권의 확장세

상권도 흥망성쇠를 겪는다. 상권은 사람이 좌우한다. 사람의 흐름은 교통통계에 흔적을 남긴다. 2013년 서울시의 교통수단별 운송분담률은 지하철(38.2%), 버스(27.4%), 승용차(23.1), 택시(6.9%) 순이다. 서울시 지하철은 9개 노선에 302개 전철역이 있다. 하루 평균 서울시 전철 이용객 718만 명 중에서 2호선은 29% 208만 명이 타고 내린다. 9개 노선 중에서 가장 붐빈다.1  (지도 1)

 

 

홍대입구역은 4위로 올라섰다. 2호선 전철역은 모두 50개다. 2006년 홍대입구역은 연간 지하철 승하차 이용객 기준 14위였다. 홍대입구역은 2006 3453만 명에서 2013 5001만 명으로 1547만 명이 늘었다. 신도림역에 이어 순증가 2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2호선 전체 이용객은 7%가 증가했다. 홍대입구역의 이용객은 44.8%나 가파르게 상승했다. 대학가 상권이 모두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 1> 2호선 전철역별 이용객 증감률을 보여준다. 신촌(연세대), 이대, 한양대 전철역은 이용객이 줄었다. 홍대상권은 방문객의 규모, 상승폭, 확장성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을 보여준다.

 

중첩의 공간미

홍대상권은 점점 자라고 있다. 동교동,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으로 확장 중이다. 요즘 홍대상권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겹침의 매력이다. 겹침이란 서로 다른 것이 포개지는 것이다. 홍대상권에는 옛 것과 새 것, 한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 장르와 장르의 겹침이 다양하다. 겹침의 매력은 대로변의 대형 빌딩이 아니라 이면도로와 골목의 건물에 있다.

 

오랫동안 자취방이나 원룸 주택으로 사용되던 건물들이 레스토랑과 옷가게로 변신했다. 신축건물에는 없는 리모델링 건물만의 매력이 있다. 겹침은 가게 안에서도 빚어진다.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세련된 레스토랑인데 고등어·갈치를 구워 판다. 레게풍의 음악과 남미 스타일의 치킨요리도 특이하다. 터키식 피자, 네덜란드식 팬케익, 포르투갈식 샌드위치도 맛볼 수 있다. 타국의 풍미가 한국적 입맛으로 변주돼 중첩의 층위(layer)를 만들어낸다.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매력도 중첩에서 출발한다. 원래 화력발전소였다. 발전소로서의 역할은 1981년에 끝났다. 20년 동안 런던의 흉물이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괴물이 2000년에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사진 1>의 왼쪽처럼 겉모습은 세월의 풍상 그대로다. 하지만 미술관 내부는 파격으로 가득하다. 서울 경복궁 옆에는 오랫동안 국군 기무사 건물이 있었다. 군대의 비밀정보를 취급하던 건물이 현대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사진 1>의 오른쪽은 2014년 새로 개관한 미술관 내부 모습이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다른 층위로 포개졌다.

 

 

 

창의적 다양성

홍대상권의 두 번째 매력은 창의적 다양성이다. 홍대 정문과 상수역 사이에서교동 408번지 블록이 있다. 한 바퀴 둘레는 700m. 국제규격 축구장 둘레의 2배 길이다. 408번지 블록 안은 다양하다. 꼬막과 냉이가 들어간 파스타, 8가지 쌈을 맛볼 수 있는 밥상, 인도와 유럽의 거리에서 공수해온 가로등이 놓인 카페, 제주도식 고기국수, 진짜 새우로 튀겨낸새우깡안주, 전병 과자점, 패션 디자이너들의 편집매장이 그렇다. 작은 블록이지만 창의성의 밀도는 높다.

 

창의적 개성들이 층층이 겹친다. 발걸음은 느려지고 눈길은 바빠진다. 가게마다 특이한 이름, 간판, 콘텐츠로 지나가는 사람들을호객한다. 가게 분위기는 공연 포스터처럼 각양각색이다. 평범하면 파묻히기 쉽다. 뻔한 가게는 버티기 힘들다. 유명 연예인이 서교동 408번 블록에서만 서로 다른 다섯 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실험했다. 단 한 곳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다른 곳에서는 없고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가게들의 생존률이 높다.

 

<지도 2>는 지하철 2호선을 기준으로 식음 분야 가게들의 공간 밀집도를 담았다. 신용카드 빅데이터팀과 수도권을 13300개 블록으로 쪼개 소비패턴을 분석했다. 블록별 경쟁밀도도 살펴봤다. 서울시 5626개 블록에 영업 중인 식음업종 107620개 업소를 분석했다. 식음 분야만 따로 <지도 2>에 시각화했다. 식음 분야란 고기, 분식, 별식, 양식, 일식, 제과, 주점, 중식, 치킨, 커피, 패스트푸드, 퓨전, 한식, 해물 등인데, 역시 그대로 세분화했다. 홍대상권은 서울에서 가장 강력한 식음업소 경쟁밀도를 보였다.

 

 

젊음·여성·새벽·양식

상권의 특징은 서로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반경 700m 동그라미를 지도에 그려 8개의 비교상권 위에 포갰다. <지도 2>에 점선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동일한 면적으로 신용카드 빅데이터 소비패턴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 1> 8개 상권을 비교하기 위해 일부 요인만 추린 것이다. 이번 분석은 8개 상권에 영업 중인 13428개 업소에서 1년 동안 OO카드로 식음 분야에 결제한 총 12584억 원에 대한 분석결과다.

 

 

종로·을지로상권의 매출 규모가 가장 크다. 강남역, 구로디지털, 선릉, 종로·을지로 이상 네 곳은 기업체의 종사자가 많은 오피스 상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건대, 서울대입구, 신촌, 홍대상권은 대학가 상권이다. 대학가 상권 중에서는 홍대상권의 매출규모가 가장 크다. 신촌과 서울대입구 두 지역을 합한 것보다 크다.

 

홍대상권의 특징은 여성과 젊음이다. < 1>에는 8개 상권의 신용카드 식음 분야 지출비율이 나타나 있다. 여성 결제 비중은 평균 41.6%. 홍대상권의 여성 지출 구성비가 47.5%로 가장 높다. 가장 낮은 구로디지털상권에 비해 12.5%포인트가 높다. 20∼30대 젊은 층의 비율은 선릉상권에 비해 21.2%포인트 높고 20∼30대 비율이 높은 강남역상권에 비해서도 5.3%포인트 높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시간에 일어난 새벽 매출과 양식 비중도 두드러진다.

 

상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젊은 층의 지속적인 유입이 가장 중요하다. 성장하는 상권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다. 젊은이의 발길이 줄어드는 상권은 예외 없이 어려움을 겪는다. 1980년대 신촌·종로 3, 1990년대 압구정동, 2000년대 신사동은 젊은 층의 발걸음으로 흥하기도 하고 쇠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젊은 역동성이 깃드는 거리에는 새로운 활기와 전에 없던 실험으로 가득하다.

 

 

봉준호의 만화가게

홍대 앞 만화가게에 가본 적이 있는가? 영화감독 봉준호를 만날지도 모른다. “(만화) <설국열차>를 처음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가 언제인가요?” 기자가 물었다. “제가 처음 샀던 <설국열차> 만화책을 봤더니 ‘2005 1. 홍대 앞숍에서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2005 1, 그때 홍대 앞에 제가 자주 다니는 만화가게에서 처음 봤죠.” 봉준호 감독이 대답한다. 영화설국열차는 그렇게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시작됐다.2

 

기자는 어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지 물었다. 봉 감독은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 화면 안에 이상한 조합으로 있을 때 자극을 받고 흥분하게 된다고 했다. “록 콘서트를 찍을 때 보면 가수 뒤쪽에서 찍은 화면 있잖아요. 한 명의 기타리스트가 서 있는데 그 앞에 수만 명의 관객이 꽉 차 있다거나….” 이런 장면은 영화 속에서 반영된다. ‘설국열차에서도 여자 주인공 틸다 스윈튼이 연설할 때 꼬리 칸 사람들이 쫙 서 있는 장면이 그렇다. 그가 사진 한 장을 2시간씩 들여다보는 이유다.

 

봉 감독의 작품은 중첩을 중시한다. 평범한 일상에 독특한 소재를 중첩시킨다. ‘괴물에는 익숙한 한강, 매점, 다리에 괴물을 집어 넣어 이질적인 느낌을 만들어 냈다. ‘살인의 추억에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에 끔찍한 살인현장을 배치했다. ‘마더의 시작 장면은 인상적이다. 고즈넉한 초원에서 정신이 몽롱한 표정의 주인공 김혜자의 독특한 춤 장면을 조합한다. 전혀 다른 소재와 이야기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 충돌하며 독특한 정서를 자아낸다.

 

 

영감은 당신의 온 주변에 있다

폴 스미스(Paul Smith)는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다. 패션산업에 남긴 공로를 인정받아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처음 시작은 의류창고 보조였지만 나중엔 세계적 거장이 됐다. 그는 어디에서 창조적 영감을 얻을까? “당신은 모든 것에서 영감을 찾을 수 있다. 만일 찾을 수 없다면 다시 한번 보라.” 일상에서 끊임없이 창의적 소재를 발굴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창작시스템을 갖춘 경우다. 그들에겐 쉽고 일반인들에게는 어렵다.

 

창의성에도 공간이 중요할까? 폴 스미스에게 런던에서 작업하는 이유를 물었다. “런던에 사는 것이란 다양성으로 둘러 쌓인 세상 속에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런던에 살면 300개 이상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그 엄청나고 개성이 넘치는, 다양성의 세계가 뻔하지 않은 디자인, 수평적이고 상상력이 발휘된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3 창의성에도 공간적 배경이 필요하다. 뻔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성이 서로 겹겹이 쌓여 있는 공간 말이다.

 

런던이나 홍대 앞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소설가 김연수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일산에 산다. 김연수 작품은 대부분 공원에서 나왔다. 그는 호수공원이 가까운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호수공원에서 한동안 오른쪽으로 돌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돌면 많은 것이 새롭게 보인다고 한다. 그는 공원에서 뛰고, 걷고, 생각한다. 그에게 공원은 창작의 하드웨어다. 그의 노트북에는 다양한 상상력을 작품으로 빚어내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창작시스템’을 가동한다.

 

작가 김연수는 다른 지역에서는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했다. 사람들이 말 걸고 신경 쓰는 게 귀찮아 창작촌에도 가지 않는다. “여행지나 이동 중에는 글을 못 써요. 제 공간을 장악해야 하거든요. 제 글들 대부분을 이 공원 옆에서 썼어요. 호수한테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요.”4 그가 공원과 인연을 맺은 이유는 서러움 때문이다. 스물여섯, 무명의 백수 작가는 막막했다. 서글픔을 잊기 위해 공원에 나와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에게 창의성의 원천은 공원과 달리기다. 공원 주변에서 책 읽기, 음악 듣기, 고쳐 쓰기를 겹쳐낸다. 그의 창작법은 동사 네 개로 압축된다. 보고, 듣고, 뛰고, 쓴다.

 

 

영화감독처럼 움직인다면

 

 

창조성이 중요하다는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더욱 창의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우선, 개인 분야에서는 작가들을 주목하려 한다. 남의 작품을 베끼는 작가에게 미래는 없다. 남이 하지 않았던 것으로 새것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작품성과 대중성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소설가 황석영은작가는 영원한 벤처라고 했다. 미술, 음악, 사진, 문학 어느 장르건 뛰어난 작품을 꾸준히 양산하는 작가라면 누구라도 연구해보고 싶다.

 

두 번째는 산업 분야를 둘러보자.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분야는 어디일까? 여러 분야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영화산업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기존 작품을 똑같이 모방해서는 활로를 찾을 수 없다. 영화산업은 대표적인 고위험 감수사업이다. 개인 작가들이 개별 역량에 의존하는 반면 영화산업은 기획, 투자, 제작, 촬영, 마케팅, 유통이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참여 인원에서부터 규모가 다르다.

 

봉준호 감독을 주목하는 이유는 역할의 중첩성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는 점에서 작가적 성격을 띤다. 관객을 만족시켜 투자자들의 이익을 실현해야 하는 감독으로서 경영자적 위상을 갖는다. 영화설국열차에서 그의 존재적 중첩성은 시나리오 작가, 400억 원의 투자금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책임자, 수백 명의 배우와 스태프를 통솔하는 리더, 세 가지의 핵심 역할에 포개져 있다.

 

봉준호 감독은 평상시에 어떻게 작업할까? 조사하고, 연구하고, 찾아보고, 쓴다. ‘살인의 추억마더에 단역으로 출연한 특이한 신문기자가 있다. 그는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과 문화대기자를 지낸 이대현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봉준호의 놀라운디테일은 그 다음에서 확인됐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큼지막한 가방에서 엄청난 양의 서류를 꺼냈다. 모두화성연쇄살인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당시 수사기록, 신문기사, 관련 인물을 자신이 직접 인터뷰한 것들도 있었다.” 이대현은 봉준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기자 같다. 당신이 기자 하라.5

 

‘마더’에서 국민배우 김혜자는 뺨을 맞는 장면을 연기했다. ‘국민배우반열에서엄마몫은 김혜자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 47년 동안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런 김혜자도 47년 동안 현실과 극중 어디에서도 따귀를 맞아본 적이 없었단다. ‘마더에서는 따귀 맞는 장면 하나를 찍는데 스무 번을 다시 찍었다. 김혜자의 따귀를고막이 떨어지도록 매섭게때릴 수 있는 감독이 봉준호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자 김혜자의 뺨을 스무 번 때릴 수 있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김혜자 앞에서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작아지는 연기자는 안 된다. 정말 기가 센 배우를 찾아내야 했다. 봉준호 감독은 평상시 충무로 연극을 보며 연기자에 관한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그렇게황영희라는 배우를 찾아냈다.

 

‘김혜자 선생님에게 똑같은 장면에 대한 연기 지시를 서른 번 할 수 있는 감독이 몇이나 될까? 그녀의 역량을 완전히 꿰고 있어야 가능하다. 같은 장면을 서른 번 다시 찍고 나서선생님, 이번 것도 너무 좋았어요. 16번째와 30번째 두 개 중에서 고를게요.” 봉 감독의 집요함과 김혜자의 노력은 촬영이 끝난 후에 뿌듯한 보상을 받았다. ‘마더라는 작품을 통해 김혜자는 전 세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13개나 받았다.

 

 

집어넣기와 끌어내기

테마파크 에버랜드의 누적 입장객이 2억 명을 돌파했다. 1972년 개장 후 37년 만인 2013년에 세운 기록이다. 2억 명을 37년으로 나눠보니 연간 540만 명이 다녀간 셈이다. 2001∼2013년 사이에만 1억 명이 다녀갔다고 하니 연평균 770만 명이 다녀갔다.6 에버랜드 홈페이지는즐길거리를 어트렉션, 엔터테인먼트, 주토피아, 정원, 레스토랑, 글램핑으로 구분하고 있다. 수많은 동물, 식물, 공연, 볼거리가 가득하다. 여름에는 워터파크도 붐빈다. 그저 평범했을 야산에 새로운 놀이동산을 집어넣었다. 37년 넘게 다듬고 바꾸며 상상력의 한계를 실험해왔다.

 

문화관광체육부가 운영하는관광지식정보시스템은 전국 주요 관광지의 방문객 수를 공개한다. 특히 유료 관광지의 통계는 더 주목할 만하다. 2013년 집계를 살펴보면 에버랜드가 연간 방문객 730만 명으로 1위에 올랐다. 2위는순천만자연생태공원으로 699만 명이었다. 2012년 여수엑스포, KTX 개통, 2013년 정원박람회가 연달아 열리며순천만을 찾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었다. <지도 3>은 영호남지역 800여 관광지 중에서 2013년 연간 방문객 100만 이상인 곳만 추려 지도에 옮긴 것이다.

 

순천만은 원래 있던 갯벌, 갈대밭, 수로 위에 최소한의 갑판 산책로를 설치하고 인근 야산에 전망대를 설치한 것이 투자의 대부분이다. 최근에야 탐방선과 작은 코끼리 열차가 등장했지만 기본적으로생태공원의 취지를 살려 인공적인 시도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빼고 자연상태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한때 교육의 초점은집어넣기에 있었다. 상대방을빈 책장으로 설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자꾸 넣어주는 쪽으로 노력한다. ‘집어넣기가 언제나 효과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끌어내기에 주목한다. 이미 상대방 내면에 있는 역량을 꺼내어 보여준다. 스스로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잠재력을 확인해 스스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에버랜드는 평범한 야산에집어넣기방식으로놀이를 기획하고 설계해서 730만 명을 불러모은다. 순천만 갯벌공원은 원래 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끌어내기방식으로 699만 명을 불러 모았다. 어느 일방만으로 창의를 완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보태고 끌어내는 양자의 반복과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순천만생태공원의 방식은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해볼 만하다. 갯벌을쓸모 없는 땅이 아니라생태의 보고로 인식을 바꾸는 것으로 전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창조공간

봉준호 감독은 카페에서 쓴다.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모두 카페에서 작업했다. 초보 감독 시절, 멀리 두 달 동안 시나리오 쓰러 갔다가 한 줄도 못쓰고 빈손으로 돌아온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 후에 스스로 터득한 창작방식이다. 일단카페에서는 쉬고 싶다고 드러누울 수 없어서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편안함이 교차한다고 했다. 적당히 소음이 깔리는 카페에서 귀에는 이어폰을 꽂는다. 음질이 꽉 차는 바하의 바로크 음악을소음차단용으로 자주 듣는다. 가사가 있거나 감정기복이 심한 음악은 작품을 쓰는 데 방해가 된다.

 

작가 김훈은 멀리 떠나서 쓴다. 작품에 대한 구상, 자료 준비, 외부와의 인터뷰 등은 일산의 작업실에서 한다. 하지만 실제 작품을 원고지에 옮기는 작업은 외딴 곳을 선호한다. <칼의 노래>는 전남 나주 빈 농가에서 작업했다. <흑산>은 안산 선감도에서 썼다. 2013년에는 동해안 죽변항 후정리에서 썼다. 유배지의 선비처럼 골방에 스스로를 격리해놓고육군사관학교생도처럼 스스로 군기를 잡아가며 쓴다. 냉장고에 물과 감자 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

 

소설가 조정래는 집에서 쓴다. <정글만리>를 쓸 때 그는 중국에 관한 신문, 잡지, 전문지를 스크랩 해서 1차 취재노트를 만들었다. 2차로 중국 관련 서적 80권을수험생 공부하듯꼼꼼히 읽으며 밑줄치고 메모하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자료 정리를 했다. 3차로 중국 현지에 10여 차례 직접 취재를 나가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해 주요 장면들의 구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만든 취재수첩만 90권이 넘는다. 다시 자택의 집필실로 돌아와 매일 작업분량을 기록하며 써나갔다.

 

전업작가들의 작업방식은 제각각이다. 직장인들에게도 자신만의창작 시스템은 검토할 만하다. 보통 정보시스템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 사용자로 구성된다. 어디에서 꾸준히 창의적 아이디어를 확보하고 창조를 위한 데이터를 모으고 쌓아둘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가공할 것인지 자신만의 시공간을 만들어볼 일이다.

 

 

 

서성거리는 창의력

창의적 시도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책을 10권 정도 내면요, 재능이라는 말은 무의미해요. … 제가 바뀐 건 그때부터죠.” 한 권의 책을 낼 때마다 그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한 권의 책을 낸 후에 책을 내기 전의 사람으로 전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글을 쓴다는 건 글을 쓰기 위해 한 일들이 자신을 바꾸는 거죠. 약간씩 바뀌고 바뀌다가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거예요.” 소설가 김연수는 말한다.7 그는 오늘도 공원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다. 다음 책을 쓰며 또다시 변할 스스로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창조과정에서 스스로 변한다는 경험담은 용기를 준다. 창조적 시도자는 그 과정에서 더욱 창의적 존재로 거듭 난다니. 작가가 아니면 어떤가! 홍대에 사무실을 낸 지 5년이 지났다. 산책하듯 홍대상권 골목골목을 둘러본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프로젝트가 많아졌다. 자료를 찾기도 힘들고 유사사례도 거의 없다. 베낄 수도 없으니 새로 하는 수밖에 없다. 따로 길이 없으니 스스로 길을 만들며 가야 한다. 그런 심정으로 매일매일 새로 여는 가게와 망해서 사라지는 가게 앞을 서성거린다.

 

 

송규봉 GIS United 대표 mapinsite@gisutd.com

송규봉 대표는 ㈜GIS United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연세대 생활환경과학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를 전공했으며 와튼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에서 GIS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미국 인터넷산업의 지도> <비즈니스 GIS>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