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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관점이동

공감능력으로 정서와 통하고 관점이동으로 생각을 사로잡아라

김학진 | 156호 (2014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자기계발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에 대한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면 상대방과의 교감과 소통이 훨씬 명확하고 수월해질 것이다. 공감이 소통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발동되는 또 하나의 신경학적 기제는 관점이동능력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선호나 의도, 신념 등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공감이 정서적, 직관적인 반면 관점이동능력은 인지적이며 분석적이다. 공감과 관점이동능력이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다른 사람과의 교감과 소통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해질 수 있다.

 

 

2008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경기를 숨죽여 보던 시간이 떠오른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연기를 펼친 뒤 빙판 위에 우뚝 선 김연아 선수가 터뜨리는 울음에 줄곧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보던 필자는 순간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김연아 선수가 그동안 느껴온 고민과 설움, 간절함이 모두 내 것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이 경기를 지켜본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흔히 공감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심리적 경험은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범인의 소식을 들을 때 아이의 아빠가 돼서 함께 분노하게 하고, 진도 여객선과 함께 차가운 바닷물에 갇힌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 구조를 간절히 기다리는 엄마가 돼서 구조 활동 소식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내 자식, 내 가족이 아닌 타인의 불행에 힘겨워하며 때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공감능력은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공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우리에게 왜 필요한 것일까? 타인의 관점으로 이동해 사고하는 능력은 공감과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아직 요원하지만 최근 뇌과학적 연구결과들이 흥미로운 단서를 제시해주고 있다. 공감의 뇌기제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통해 공감의 기원과 사회적 기능에 대해 알아보고 흔히 혼동해서 사용되곤 하는 공감과 관점이동 간의 차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공감의 신경학적 기제

20년 전 의학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다. 이 논문에는 29세의 한 목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목수가 일을 하다가 하루는 실수로 15㎝가량 튀어나온 못 위에 뛰어내렸고 이 못이 구두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던 이 목수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처치로 강한 진통제가 투여됐고 구두는 조심스럽게 제거됐다. 그런데 구두가 제거된 후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목수의 발에는 상처가 전혀 없었다. 구두를 뚫고 들어간 못이 목수의 두 발가락 사이를 관통한 덕분이다. 하지만 목수는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물리적인 상처가 없어도 고통을 느끼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이 우리 몸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피부에 생긴 물리적인 상처는 피부 밑의 통각수용기를 활성화하고 이 정보는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정보가 일단 뇌로 들어오면 두 갈래로 나뉜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의 갈래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대뇌피질 종착지는 체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 영역으로 불리는데 주로 물리적인 촉각 자극들에 대한 정보가 처리된다. 두 번째 갈래는 주로 정서적인 정보에 따라 반응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뇌 부위들로 전달되며 대표적인 부위로는 편도체(Amygdala), 시상하부(Hypothalamus),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 뇌섬엽(Insula) 등이 있다. 동일한 통증 신호가 서로 구분되는 뇌 영역들로 나눠져 전달된다는 사실은 통증 신호가 유발하는 두 가지 경험, 즉 물리적 감각 경험과 정서적 경험이 구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통증의 정서적 경험과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된다면 직접 물리적인 가해가 없더라도 충분히 실제와 같은 통증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으며 이는 앞서 소개한 목수의 사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통증에 반응하는 정서 관련 뇌 기제는 앞으로 얘기할 공감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위라고 할 수 있다.

 

공감의 신경학적 실체에 대한 첫 번째 증거는 2004년 한 뇌 영상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 연구에서는 실제 연인들을 섭외해서 여성 파트너는 MRI 기계 안에 들어가고 남성 파트너는 기계 옆에 앉게 했다.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손에 통증을 유발하는 전기충격 장치를 부착했다. MRI 기계 안에 누운 여성 파트너는 거울에 비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자신이 충격을 받거나 파트너가 충격을 받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상황을 번갈아 제시하면서 여성 파트너의 뇌 활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기법(fMRI)을 통해 측정했다. 실험 결과 물리적 감각자극에만 반응하는 체감각피질 영역은 자신이 전기 쇼크를 받는 조건에서만 반응했다. 파트너가 전기 쇼크를 받는 조건에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통증의 정서적 측면과 관련된 전대상회와 뇌섬엽에서는 두 조건 사이에 차이가 없었고 거의 동일한 수준의 반응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파트너가 충격을 받을 때는 자신에게 직접 물리적 자극이 가해지지 않아도 통증의 정서적 경험과 관련되니 뇌 부위가 활성화됐다. 이는 타인과 공유된 정서적 경험, 즉 공감을 반영하는 신경학적 증거로 볼 수 있다.

 

전기 쇼크 같은 강한 통증에 노출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감정이 미세하게 변하는 순간 이를 빠르게 감지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정보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통해서 얻는다. 예를 들어 향이 강한 외국 음식을 처음 접하는 친구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표정의 변화는 그 사람이 그 음식을 즐기는지, 거부하는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게 해준다. 실제 이런 상황을 신경학적 수준에서 관찰해본 뇌 영상연구가 있다. 이 실험에서는 배우들을 고용해 컵 안에 든 각기 다른 내용물의 냄새를 맡게 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3초 정도의 짧은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컵 안에 든 내용물로는 역겨운 냄새를 유발하는 것과 향기로운 향수 등이 사용됐고 냄새를 맡은 배우들은 각각의 냄새에 해당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조건에서 실험 참여자들은 배우들의 동영상을 시청하기만 했다. 다른 조건에서는 동일한 냄새들을 직접 맡았다. 두 조건을 비교한 결과, 역겨운 냄새를 직접 맡을 때 참여자들의 뇌 반응은 역겨운 냄새를 맡은 배우의 표정을 볼 때의 뇌 반응과 매우 유사했다. 특히 앞의 공감 실험에서 관찰된 뇌섬엽이라는 부위에서 이런 반응이 가장 뚜렷하게 관찰됐다. 두 실험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 뇌섬엽이라는 부위는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 곳일까? 이곳이야말로 공감의 생물학적 근거가 뿌리를 두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반응 신호들이 집합되는 뇌섬엽

뇌섬엽은 대뇌피질의 일부지만 다른 대뇌피질로 뒤덮여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림 1>에서 보이는 것처럼 측면의 대뇌피질을 모두 제거해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 뇌에서 유독 뇌섬엽에서만 폰 이코노모 뉴런(Von Economo neuron)이라는 특별한 종류의 신경세포가 발견되는데 이 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들에 비해 크기가 크고 수직으로 긴 방추형의 모양을 갖고 있다. 이런 구조적 특징은 이 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에 비해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세포의 특이한 점은 여러 종들 사이의 비교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폰 이코노모 뉴런은 사람뿐 아니라 돌고래, 고등 영장류, 코끼리 등 여러 다른 포유류에게서도 발견되는데 흥미롭게도 이 세포가 발견되는 종들은 주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개체들 간 상호교류가 활발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림 1 뇌섬엽의 위치(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

출처: http://www.auladeanatomia.com/neurologia/telencefalo.htm

 

이렇게 멀리 떨어진 부위로 빠르게 신호를 전달하는 폰 이코노모 뉴런이 뇌섬엽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뇌섬엽의 또 다른 중요한 해부학적 특징은 이 부위에 내장피질(Visceral cortex)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리 신체 내 다양한 내부기관들로부터 오는 신호들에 특별히 민감하다는 점이다. 흔히 감각정보라고 하면 시각이나 청각, 촉각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 뇌가 받아들이는 감각정보들 중에는 몸속에 있는 장기기관들로부터 오는 감각정보도 포함된다. 대표적인 예가 심장에서 뇌로 전달되는 신호다. 이 신호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평상시에도 심장의 기능을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심장박동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심장에서 오는 신호를 의식하게 된다.

 

다마지오(Damasio)라는 뇌 과학자가 주장한신체표지가설(Somatic Marker Hypothesis)’이라는 이론에 따르면 정서적 상황에서 유발된 신체적 반응이 뇌로 전달되고 뇌의 특정 부분에는 이런 신호들이 남긴 흔적, 신체표지들이 저장된다. 그리고 이런 신체표지들을 통해 우리는 직접 정서적 상황에 처하지 않더라도 그 상황이 유발할 정서적 경험 또는 신체적 반응을 비교적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상상해낼 수 있다. 신체표지는 특히 상황의 위급함을 깨달을 때 직접 경험을 통해 이해하려는 수고와 위험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예를 들어 뜨거운 김이 오르는 컵을 보고 상상만으로도 이 컵을 잡았을 때의 뜨거움을 예측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사람의 생존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뇌섬엽은 신체표지들이 저장되는 가장 대표적인 뇌 부위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가 있는데 바로 자신의 심장박동수를 의식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과제 결과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헤드폰을 통해 들리는 음정이 자신의 심장박동수와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했다. 어떤 음정들은 아무 규칙 없이 무작위로 만들어진 반면 다른 음정들은 참가자의 심장박동수를 측정해 이와 일치하는 음정들로 이뤄졌다. 매우 어려운 과제처럼 들리지만 몇몇 참가자들은 상당히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fMRI를 사용해서 참가자들의 뇌 반응을 관찰한 결과, 뇌섬엽의 활동이 활발했던 사람은 들리는 음정들이 자신의 심장박동수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맞췄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자신의 심장박동수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공감능력의 개인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감지하는 능력이 공감능력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길을 가던 당신이 사나운 개의 습격을 받았다. 이때 공포에 질린 엄마의 표정 같은 시각적 신호는 동일한 상황에 엄마와 함께 도망치며 경험한, 심장박동수 증가라는 신체적 신호와 결합된다. 이와 유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우리 뇌에서는 특정 얼굴 표정에 상응하는 신체적 변화들이 서로 결합하며 이런 결합 과정은 얼굴 표정과 같은 시각적 정보뿐 아니라 글이나 생각처럼 좀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정보들로 확장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속의 인물과 동일한 감정의 신체적 반응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타인의 정서적 변화를 알리는 다양한 신호들을 감지하고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신체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며 성공적인 적응을 위해 필수적이다. 단순히 정보처리적 관점에서만 생각해볼 때 타인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정보들을 처리해야만 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대화 중인 상대방이 하고 있는 말의 내용은 물론 상대방이 만드는 다양한 몸짓과 표정의 변화, 말투, 목소리의 크기와 높낮이 등을 고려해 매순간 적절한 반응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거의 기적에 가까울 만큼 복잡한 정보 처리과정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정서적 변화와 유사한 신체적 변화를 뇌에서 직접 시연할 수 있다면 이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에 대한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내가 직접 미리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이나 행동을 선택해야 할지 비교적 명확하고 수월해질 수 있으며 이는 효율적으로 상대방과 교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준다. 예를 들어 아이를 잃은 부모와 대화하는 상황이라면 나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매우 신중해야 하지만 부모의 정서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교감이 먼저 이뤄진다면 나의 행동이나 말이 부모들에게 미칠 영향을 일일이 논리적으로 고려하는 과정이 없더라도 판단과 선택이 분명하고 신속해질 수 있다. 공감이 사회적 소통을 위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기능 때문이다.

 

타인 이해를 위한 또 하나의 기제관점이동능력

상대방과의 정서적 공감은 모든 상황에서 이롭기만 한 것일까? 공감은 물론 타인을 향한 감정 반응이지만 신경학적 뿌리를 파악해보면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자기중심적 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강한 정서적 상황에서는 공감반응의 정확도가 높을 수 있지만 각자 살아온 경험에 따라 개인차가 큰, 비교적 약한 수준의 정서적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감정 반응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향적인 해석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오해를 초래하고 소통을 막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공감은 합리적인 판단이나 결정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예를 한번 생각해보자. 작은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당신은 이번 달 말까지 주문받은 제품을 거래처 기업에 전달하지 않으면 계약을 위반하게 된다. 이는 거래처와의 관계를 잃게 만들어 결국 회사가 부도를 맞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당연히 직원들을 재촉해 일을 마치도록 다그쳐야 한다. 하지만 연이은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직원들의 모습은 측은함을 느끼게 한다. 과연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순간의 측은한 감정, 즉 공감에 휘말리면 당신의 결정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낮은 수준의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오히려 합리적인 결정, 즉 지친 직원들을 다시 한번 다그쳐 임무를 완수하도록 지시하는 결정을 내리기 쉬울 것이다.

 

위의 논리에서 볼 때 집단의 리더들에게 지나친 공감능력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한 CEO들 중에는 공감능력이 낮은 사람이 많았다는 주장이 있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정치와 종교 분야의 지도자들 중에도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들이 존재할 확률이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들을 범죄를 저지르는 부류와 분류해 일종의성공한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다른 이들의 선호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을 통해 뛰어난 리더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위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들에게 호감을 갖고 끌리곤 한다. 성공한 사이코패스들의 탁월한 타인 이해 능력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함과 만날 때 훨씬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들을 매우 위험한 포식자로 만들 수 있다.

 

공감과는 구분되는 또 다른 종류의 타인 이해 능력인관점이동능력은 자신의 것과는 다른 타인의 선호, 의도, 신념 등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인적 경험들을 고려할 때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투사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이전에 상대방이 보였던 행동들과 현재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고려해 다음 행동을 추론해내는 고도의 계산과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때 활용되는 능력이 관점이동능력이다. 실제로 공감능력을 거의 갖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연쇄살인범들에게서도 매우 정교한 관점이동능력이 관찰되곤 한다. 그 예로 미국의 폴 존 놀스나 한국의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들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여성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통해 이들에게 쉽게 접근해 유혹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공감과 관점이동이 구분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는 최근 뇌과학 연구결과들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타인의 관점으로 이동해 타인의 생각이나 신념 등을 파악하고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선호를 예측하는 능력은 뇌섬엽보다는 측두-두정 접합부 혹은 TPJ(Temporo-parietal junction)라고 알려진 부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 2) 그 증거로 TPJ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생각을 추론할 때 높은 활동을 보이며 이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은 타인의 생각이나 의도를 추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림 2 측두-두정 접합부의 위치(빨간 원으로 표시)

출처: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a/ab/Temporoparietal_junction.jpg

 

물론 TPJ는 반드시 사회적 상황뿐 아니라 기대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할 때 주의를 환기시켜 새롭게 기대를 수정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활동 수준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런 TPJ의 특징은관점이동이라는 심리적 과정의 주요 속성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타인으로의 관점 이동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자동적이고 직관적으로 유발되는 공감반응을 억누르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정보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공감보다 노력이 더 요구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관점이동을 통해 우리는 비록 일시적이나마 우리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욕구를 가진 타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며 이런 과정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감능력과 관점이동능력 사이의 균형

공감능력과 관점이동능력은 모두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이 두 기능 사이의 차이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 기능들 사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며 이런 차이를 반영하듯 우리 뇌에서 공감과 관련된 뇌기제는 관점이동과 관련된 뇌기제와 명확히 구분돼 있다. 공감과 관점이동 사이의 차이를 다시 한번 간단히 요약하자면 전자는 정서적이고 직관적인 측면이 강한 반면 후자는 인지적이고 분석적인 측면이 강하다. 지나치게 공감에만 치우친 감정적 대응이 사회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방해할 수 있는 것처럼 공감이 결여된 관점이동능력은 인간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 때로는 타인의 감정을 악용한 범죄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감과 관점이동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우리 뇌는 타인과의 소통에 최적의 기능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공감과 관점이동이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완수할 때 개인의 공감반응은 여러 사람들의 관점을 취해서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질 수 있으며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관점이동 역시 타인과의 공감으로부터 강한 동기를 얻을 수 있다.

 

타인과의 소통능력은 노력을 통해 향상될 수 있을까? 소통능력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에 대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다양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현재 과학적으로 그 효과가 검증된 방법은 많지 않다. 공감과 관점이동능력의 정확하고 객관적인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러 검사들이 개발됐는데 그중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비교적 검증이 잘된 것으로 배런-코헨이라는 심리학자가 개발한 RMET(Reading the Mind in the Eyes Test)라는 검사가 있다. 이 검사는 다양한 감정을 묘사하는 사람들의 눈 그림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묘사하는 4개의 형용사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옥시토신이라는 약물을 투여하면 이 검사 결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코를 통해 스프레이 형태로 주입되는 옥시토신은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 신체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물질이며 아기를 가진 엄마들의 뇌에서 많이 생성된다. 옥시토신이 출산과 양육에만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인 남녀에게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상황이 있는데 바로 연인과 사랑에 빠져 있을 때다. “또 사랑 타령?”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들은 우리의 뇌가 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비로소 상대방과 감정을 공유하기에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개발되고 교육 현장에도 도입되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도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태생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을 수 있겠으나 사회적 불균형과 계층 간 대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소통의 부재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공감과 관점이동에 대한 심리학적, 그리고 신경과학적 이해가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좀 더 새롭고 현실적인 돌파구를 제시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오랫동안 베일 뒤에 가려져 있던 공감과 소통의 비밀을 밝히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hackjinkim@korea.ac.kr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 학사와 보스턴대 계산신경과학과 석사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생물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칼텍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거친 뒤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국제전문학술지인와의 부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공저에 <뇌로 통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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