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마음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

151호 (2014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소옹의 봄나들이

봄꽃 핀 나무 사이로 수레 타고 지나는 그림 속 인물은 소옹(邵雍, 1011∼1077)이다. 그가 죽은 뒤 받은 시호(諡號)강절(康節)’이기 때문에 흔히소강절이라 불린다. 그림 제목에서요부(堯夫)’는 소옹의 자다. ‘작은 수레(小車)’는 소옹의 수레며 그림 속에 그려진 바로 그 수레다. 소옹의 수레가 그 시절 다른 이들의 수레보다 작고 허름했기 때문일까. 소옹과 그의 부친이 모두 관직을 얻지 못했기에 가산이 풍족하지 못했다. 그의 수레가작은 수레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소옹은 자신의 수레를 스스로작은 수레라고 불렀다. “꽃 감상의 마음은 작은 수레로, 쾌활한 뜻은 큰 붓으로(小車賞心, 大筆快志)”라며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 시구를 보면 소옹은 허름한 수레로 꽃 감상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요부소거는 조선후기 왕실에서 제작된 시화첩 <예원합진(藝苑合珍)>에 실려 있다. 그림 왼쪽 면에는 소옹의 시 두 수가 나란히 적혀 있다. 소옹의 모습이 화원화가 양기성의 솜씨로 그려졌다면 소옹의 시는 조선후기 명필가 윤순(尹淳)의 필치로 옮겨졌다. 시는 작은 수레를 타고 가는 소옹의 기분과 주변 분위기를 읊고 있다. <예원합진>에 실린 두 수 중 첫 수가 다음과 같다.

 

흥겹게 취함에 어찌 천일주가 없겠는가,

봄이 아쉬움은 사계절의 꽃이 다시 있을까 해서라오.

작은 수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기뻐하니,

낙양성 안 모두가 한 집안 같도다.

 

양기성(梁箕星) 그림, ‘요부소거(堯夫小車, 소옹의 작은 수레)’,

조선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x29.4, 일본 야마토분가칸.

 

술이 좋고 꽃이 좋아 소옹은 흥겹다. ‘천일주란 좋은 술이다. 한 번 마시면 1000일 동안 취한다는 천일주는 도가의 전설 속 명주였다. 옛날 중국의 유현석(劉玄石)이란 이가 천일주를 마시고 취해 깨어나지 않자 가족들이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렀는데 3년이 지난 후 관을 열어보니 술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중국의 <박물지(博物志)>에 실린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천일주라 하는 술이 최고로 통했다는 기록이 있다. 위 시에서 소옹이 노닐고 있는 낙양은 예로부터 꽃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낙양의 봄날은 아름다웠고 꽃은 봄날에 가장 화사하다. 낙양의 봄이 그저 아쉬운 이유다. 맛있는 술과 화사한 꽃으로 취한 소옹을 더욱 기쁘게 한 것은 낙양 사람들의 환영이었다. 모두가 소옹을 반겨주니 소옹에게 낙양성 전체가 집안처럼 편안했다. 위 시 속 자연과 사람들은 화창하고 따뜻하기 이를 데 없고, 소옹의 봄나들이는 즐겁기 한량없다.

 

소옹이 누구길래

작은 수레에서 소옹은 실로 그리 즐거웠을까. 사람들은 소옹을 어찌 그리 좋아했을까. 소옹 시절 송나라 때 문인이라면 마땅히 과거의 관문을 통과해 관료에 오르기를 원했다. 구양수, 왕안석, 소동파 등 저명한 송나라 문인들이 모두 그리했고 소옹의 벗 사마광(司馬光, 1019∼1086)도 한림학사를 지냈다. 그러나 소옹은 일찌감치 과거의 뜻을 접었고 사유와 독서 및 집필에 열정을 쏟았다. 벼슬이 없으니 소옹은 가난했다. 그의 수레는 작았고 그의 집은 몹시 누추했다. 송나라 역사서 <송사(宋史)>에 의하면 소옹의 집은 비바람도 막을 수 없었고 집안의 쌀독은 가끔 비어 있었다. 하지만 소옹은 이런 상황을 유유자적하며 편하고 즐겁게 여겨서 자신의 집을안락와(安樂窩)’라고 불렀다. 마음만으로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소옹은안락와에 거하는 안락(安樂) 선생으로 통했다. 이런 소옹을 사람들은 무척 좋아했다. 그의 벗들이 자금을 모아 소옹에게 집을 마련해줬다고 한다.

 

소옹은주역을 학습해 세상이 운행되는 이치를 밝히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소옹은 남방의 두견새가 북녘으로 날아와 우는 것을 보고 남쪽에서 큰 인물이 날 것을 예측했다. 남방의 기운이 넘쳐 그 징조로 북녘에 두견새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후 남방 출신 왕안석이 세상에 등장했다. 그는 재상에 올랐고 신법을 제정해 중국을 휘둘렀다. 왕안석의 등장은 소옹의 예측을 증명했다. 소옹이 두견새를 바라보는 순간은 중국의 역사를 예측하는 순간이다. 소옹이 여유롭게 서서 새를 바라보는 장면이 조선후기 그림의 화제가 됐다. 소옹은 사사로운 욕심을 초월해 세상의 큰 흐름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고 보여줬다. 사람들이 소옹을 좋아한 특별한 이유였다.

 

우리나라 민간 설화에서도 소옹의 인품과 능력을 만나볼 수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소옹은 이웃에 사는 한 늙은 총각이 처자식을 거느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소옹은 그를 도우려고 신비스러운 예언과 처방을 했다. 이야기 속 소옹은 상당한 초능력자다. 이것은 소옹의 능력과 인격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신뢰와 그리움이 빚어 만든 환상의 스토리였다. 소옹이 살아생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이유를 여기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실상 소옹의 주역 연구는 우주의 질서를 정리하는 상당한 수준의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소옹은 세상의 운행을 관측하는 체계를 세웠다. 그것은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면서 동시에 수학적이었다. 소옹의 연구영역은 특별히상수학(象數學)’이라고 일컬어진다. 만물 운영의 원리에 대해 소옹은 태극(太極)의 하나에서 음양의 두 가닥으로 나아가고 팔괘로 뻗어가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1년의 날수로 전개되는 우주적 이치를 수리(數理)로 설명했다. 남송대에 접어들어 성리학을 완성시킨 학자 주자(朱子)가 소옹의 사유법을 높이 인정했다. 주자는 자신의 여섯 선배 반열에 소옹을 올렸다. 이로써 소옹은 이른바 육현(六賢)에 들게 된다. 주자를 몹시 존경하고 주자학 학습에 열렬한 애정을 쏟았던 조선의 학자들에게 소옹에 대한 숭상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옹의 이론을 검토한 정약용은 소송의 사상 속에 도가적 유래가 있음을 지적하고 유학적 순수성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다름 아닌 유연한 사고 덕분에 소옹은 자신의 시절에서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인정받고 사랑받았다.

 

소옹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소옹은 꽃 속을 거닐고 사람들은 소옹을 기다린다. 낙양의 모든 집이 그의 방문을 기다렸고 누구보다 그의 벗 사마광이 오랜 시간 그를 기다리는 중이다. 당시 조선의 그림 감상자들은 꽃길을 수레로 소요하는 소옹을 보는 순간, 소옹을 기다리는 사마광의 마음이 됐다. 사마광의 다음 시가 더욱 유명하다.

 

숲 속 높은 누각에서 기다린 지 이미 오래건만

꽃 너머 작은 수레(花外小車)는 아직 오지 않는구나

 

실제로 정선이나 김홍도 등은 사마광의 이 시를 화면에 적고 소옹이 꽃길을 수레로 소요하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 <자치통감>의 저자로 잘 알려진 학자 사마광은 한림학사를 지낸 인물이지만 소옹의 작은 수레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소옹은 꽃에 취해 발길이 더디다. 소옹에 대한 기다림, 그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인격, 수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뛰어는 사고력에 대한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소옹의 진정과 능력은 그가 자신의 사욕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웠고 또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놀라운 빛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 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