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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의 Negotiation Newsletter

흥정보다 좋은 관계가 더 좋다

알리셔 파이줄라브 | 103호 (2012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 프로그램 연구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에 소개된 ‘Bargaining lessons from the bazaar’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NYT 신디케이션 제공)
 
현장 교육을 하기 위해 가끔 협상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을 타슈켄트 최대 장터 중 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 동부 장터는 협상 전략을 연습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이곳에서는 흥정이 하나의 도구일 뿐 아니라 거래의 핵심이다. 흥정만 잘하면 여간해서는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 깐깐한 상인으로부터 존중받기도 한다.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 3종류를 3번의 개별 협상을 통해 사오라고 숙제를 낸다. 학생들은 두 명씩 짝을 이뤄 한 명은 흥정을 하고 다른 한 명이 이를 관찰한다. 그리고 역할을 바꾼다. 학생들에게는 우즈베키스탄 통화로 3000솜(som)을 가져오라고 하는데 달러로 환산하면 1달러 정도의 돈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3000솜은 흥정만 잘하면 사과 1㎏을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 돈으로 협상을 3번 해야 한다.
 
흥정을 할 때마다 학생들은 가능한 많이 사야 한다. 학점을 매기는 기준은 간단하다. 가장 싸게,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많이 사는 사람이 최고 학점을 받는다.
 
연습 1  일상적인 흥정
 
학생들은 우선 사과 1㎏이나 그와 비슷한 가격의 물건을 사는 일상적인 거래부터 시작한다. 장사꾼이 사과 1㎏에 3200솜을 요구할 경우 보통의 구매자는 2800솜으로 값을 부르면서 흥정을 시작한다. 최소한의 흥정을 거친 후 양측은 대개 3000솜에 합의한다.
 
공정한 거래일까? 그렇다. 둘 다 만족했을까? 분명 그렇다.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처음부터 3000솜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흥정이다.
 
그러나 학생이 사과 3분의 1㎏을 살 돈밖에 없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학생들은 2번의 거래를 더 해야 하기 때문에 돈을 남겨 둬야 한다. 우즈베키스탄 장터에서는 사과를 3분의 1kg만 사는 사람이 없다. 구매자는 자신이 원하는 무게를 처음부터 밝혀야 할까, 아니면 1㎏의 가격을 합의한 후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구매하고자 하는 물량을 미리 밝히면 판매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판매자는 그렇게 적은 양을 거래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흥정 자체를 안 할지도 모른다. 반면 아주 소량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흥정이 끝난 후에야 그 사실을 밝히면 판매자를 화나게 만들어 협상 자체를 못하게 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미리 사실을 밝히거나 나중에 밝히는 두 가지 방식 모두 시도해 보라고 조언한다. 다행히 장터에서의 흥정은 하나의 예술(art)과 같다. 신뢰를 쌓아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가능한 합의 범위를 넓혀서 좋은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어떤 전략이 더 나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연습 2 극단적인 흥정
 
다음 과제는 어렵다. 판매자가 포도 1㎏에 제시하는 가격은 대개 3200솜 정도다. 학생들은 최대한 낮은 가격을 제시하도록 지시를 받는다. 예컨대 50솜 정도의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그 후 가격을 60, 70, 80, 90솜순으로 아주 조금씩 높여간다. 여기서 목적은 최대한 낮은 가격에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판매자는 학생들이 제시한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불쾌하다는 몸짓을 보이거나 얼굴 표정을 찌푸린다. 욕을 퍼붓거나 빨리 나가라고 손을 휘젓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감정을 숨기면서 조금씩 가격을 올리고 판매자가 퍼붓는 강렬한 분노를 견디라고 주문한다. 이 전략을 적용하다 보면 성공하는 경우가 나온다. 대부분 그 결과가 아주 놀랍다. 통상적 수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를 성사시키는 때도 있다.
 
이 연습을 하다 보면 학생들은 제일 처음 제시하는 가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협상은 그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협상 상대방끼리 적대적인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과 상인은 협상을 끝내고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이런 ‘극단적 협상’은 장기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일회성 거래임을 깨닫게 된다.
 
연습 3  인간적인 거래
 
3번째 협상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절대 흥정하지 말고 상인과 좋은 관계를 만들 것을 주문한다. 장사꾼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을 보이고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며 진심을 다해 말하고 감정적 유대를 쌓으라고 조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 판매자가 자신의 물건을 팔려고 하면 학생들은 흥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경우 학생들은 유쾌한 충격을 받으며 상점을 나설 때가 많다. 학생이 요구하지 않아도 상인들이 아주 낮은 가격에, 심지어는 공짜로 물건을 퍼 담아 주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돈이 없기 마련이지”라며 복숭아를 손에 쥐어주는 상인도 나온다.
 
학생들은 3번째 협상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다. 인간적인 방식은 일상적인 흥정처럼 지루하지도 않고 극단적인 흥정처럼 전투적이지도 않다. 그보다는 많은 관심과 인내,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과 유쾌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경험이다.
 
이 전략이 효과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동부 장터와 같은 곳에서는 유대감을 느낀 사람을 위해 특정 재화를 기꺼이 나눠주는 상인들이 제법 있다. 이런 전략이 너무 의도적이란 생각이 드는가? 구매자가 결국 무언가를 얻으려는 의도로 인간관계를 시도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나면 사업상 협상에서는 상대방에게 “No”라고 말하기가 더 어렵다.
 
3개의 협상 전략은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훌륭한 협상가라면 상황에 따라 이 3개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장터에서의 현장 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배우는 교훈은 바로 단순한 사업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유대감이 협상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알리셔 파이줄라브
 
알리셔 파이줄라브(Alisher Faizullaev)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위치한 국제경제외교대학 협상연구소 이사다. 2011∼2012년 풀브라이트 급비 연구원으로 터프츠대와 조지타운대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외교적 협상(Diplomatic Negotiations)>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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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리셔 파이줄라브

    - 국제경제외교대학 협상연구소 이사(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터프츠대와 조지타운대풀브라이트 급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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