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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기술’ ‘이론 + 사례’ 크리스텐슨의 비법

신나연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필자는 이번 학기에 운 좋게도 하버드대 MBA과목 중 ‘톱(top) 3’에 드는 최고 인기 강의를 듣게 됐다. 하버드에서는 학생들이 각각 듣고 싶은 수업을 1순위부터 나열한 자료를 복권 방식으로 추첨해 강의를 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 인기 강의를 듣게 되니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들 정도다. 바로 세계적 석학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성공 기업을 만들고 유지하기(Building and Sustaining Successful Enterprise)’ 수업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성공 기업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 <성장과 혁신(Innovator’s solution)> <미래 기업의 조건(Seeing what’s next)> 등의 저서로 유명한 혁신 분야의 대가다.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기 전에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의 컨설턴트로 5년간 일했고, 백악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CPS 테크놀로지, 이노사이트, 이노사이트 벤처, 로즈 파크 어드바이저라는 4개 기업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덕분에 책에 갇힌 이론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관여한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연구 사례들을 들려준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워낙 유명한 교수라 다가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수업 시간에 만나본 크리스텐슨 교수는 큰 키에 인상 좋은 선비 같은 느낌을 줬다. 천천히 말하는 습관을 가져서인지 수업 시간에 쉴새 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그다지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젊은 시절 한국에 2년간 살면서 선교 활동을 한 경력도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수업 시간에 종종 한국 기업, 특히 현대자동차의 사례를 자주 언급한다. 현대차가 저가품(low-end) 시장을 먼저 공략한 후, 점차 고가품(high-end) 시장으로 올라온 대표 기업이라는 이유에서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의 특징은 2가지다. 잘 알려진 대로 하버드대 MBA 수업은 대부분 실제 사례 연구(case study) 로 이뤄진다. 사례 연구 수업 자체가 하버드대와 다른 MBA 스쿨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수업은 사례 연구에 치중하는 다른 수업과 달리 비즈니스 이론과 사례 연구를 병행한다. 즉 비즈니스 이론에 대하여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끼리 논의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시작해서, 그 이론을 실제 기업 사례에 적용해보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비즈니스 이론의 중요성을 ‘안경’에 비유하곤 한다. 좋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봐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는 논리다.
 
둘째, 전략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대한 비중이 매우 높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학자이지만, 그가 설립한 기업이나 연구 주제의 대부분은 기술 분야에 치우쳐 있다. 사실 많은 MBA 학생들이 공학기술 분야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때문에 그는 기술 관련 비즈니스 사례들을 많이 다루고, 학생들이 사례에 나온 기술에 관하여 서로에게 설명하도록 한다. 학생들이 기술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최근 수업에서는 1980년대 인텔이 왜 1970년대의 핵심 사업이었던 D램을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바꿨는지를 다뤘다. D램은 인텔을 오늘날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의 위치에 올려놓은 제품이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인텔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할 정도였다. 당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인텔 내부에서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D램 생산업체가 늘어나고, 가격 경쟁이 심화되자, 인텔은 사업 구조를 마이크로프로세서 중심으로 잘 재편한 덕분에 오늘날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수업에서는 인텔이 어떻게 사업 구조를 바꿨고, 당시 전략 개발의 한계점은 무엇이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당시 인텔에는 D램, EP롬,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의 제품이 있었고, 웨이퍼당 수익률(margin per wafer start)에 따라서 내부 자원을 배분했다. 계속되는 가격경쟁으로 D램 사업의 수익성은 갈수록 하락했다. 그러나 신규 사업이었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부의 경우 매출 비중은 작았지만 수익성은 높았다. 따라서 수익률이 높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부에 더 많은 자원이 배분되었고, 결국 1982년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인텔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창출하는 사업 부서로 떠올랐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인텔 경영진들은 198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그 당시 성공의 주역이었던 D램 중심의 사업 구조를 선호했다. 하지만 수익성에 따라 내부 자원을 배분하는 인텔의 시스템이 워낙 확고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기업의 핵심 사업이 바뀌었다. 즉 수익률 중심의 자원 배분 구조가 결국 성공을 이끌어낸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른 기업들도 인텔처럼 단 하나의 절대적인 자원배분 기준을 가져야만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지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 제품은 현재의 사업 평가 체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현재의 사업 평가 기준의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수익률이라는 하나의 잣대만으로 본다면, 파괴적 혁신 제품의 특성상 이 제품은 현재 상황에서는 낮은 수익률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즉, 하나의 기준만으로 모든 사업 기회를 평가한다면 미래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단일한 자원배분 우선 순위만을 가지고 사업 기회를 평가하기 때문에, 파괴적 혁신이 기업 내부에서 묻혀버리기 십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파괴적 혁신 제품에 관해서는 별도의 평가 체계를 개발하거나 별도의 사업체로 분사해야 한다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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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나연

    올리버 와이만의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통신, 바이오테크, 은행업 부문의 전략 수립, M&A 프로젝트 등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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