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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튼 Pre-Term: 생사고락 함께하는 ‘러닝 팀’

송원준 | 41호 (2009년 9월 Issue 2)
와튼 MBA 과정의 시작은 학기가 개강하는 9월이 아니라 8월 초부터 이뤄지는 ‘프리 텀(Pre-Term)’이다. 프리 텀은 모든 MBA 학생들에게 다시 학부생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시키는 독특한 과정이다.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답게 와튼 MBA 과정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다양한 배경 및 국적의 사람이 모인 것으로 유명하다. MBA 첫 학기가 시작되기 전, 국적과 과거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공정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게 프리 텀의 핵심이다.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역량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다양한 수준의 수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도 독특하다.
 
학교에서는 프리 텀 기간 중 학생 5, 6명을 한 팀으로 묶어 러닝 팀(learning team)을 짜준다. 다른 학교 MBA 과정에 비해 전공 필수 과목이 많고 클래스 규모도 큰 와튼에서는 학생들의 교류 및 팀워크 강화를 위해 한 학년을 4개 클러스터(cluster)로, 각 클러스터를 3개 코호트(cohort)로 나누고, 그 밑에 5, 6명으로 이뤄진 러닝 팀을 조직한다. 이때 인종, 성별, 국적, 과거 경력이 다른 학생들을 러닝 팀으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다른 MBA 스쿨에도 러닝 팀이 있지만, 와튼의 러닝 팀은 유달리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로 이름이 높다.
 
러닝 팀에 속한 학생들은 1년간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듣고, 프로젝트도 함께 수행한다. 즉 러닝 팀은 MBA 학생들이 수업에 참가하는 가장 기본적 활동 단위이자, 1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장이다. 숙제와 발표 등을 공동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면 러닝 팀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반면 서로 맞지 않는 팀 멤버라면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프리 텀의 목적은 크게 2가지다. 첫째, 정량 분석에 기반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훈련시킨다. 둘째, MBA 졸업 후 필요한 리더십을 개발한다.
 

정량적 사고가 왜 중요한가
프리 텀의 첫 번째 과정은 바로 MPT(Math Pro-ficiency Test)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인 수학 시험이 아니다. 수학 개념을 실제 비즈니스 문제에 적용해 풀 것을 요구하는 상당히 어려운 시험이다.
 
MPT가 시작되기 전에 많은 학생들은 ‘그래도 내가 수학에는 좀 자신이 있는데…’라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필자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로그함수의 미적분, 한계비용 함수의 개념, 실제 기업에선 어떻게 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는지를 한꺼번에 묻는 문제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MPT 점수가 학교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가을 학기에 펜실베이니아대 학부생과 함께 미적분 수업까지 들어야 하니, 떨어지면 이런 망신이 없다.
 
혹자는 비즈니스를 공부하는 MBA에서 수학 시험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프리 텀과 실제 수업을 들어보면 수학, 나아가 정량적 사고가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2년간의 MBA 과정을 거치고 다시 사회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에게 2년은 무척 짧은 기간이다. 와튼에서는 이 짧은 기간에 MBA 스쿨이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리 텀을 비롯해 학기 중에 이뤄지는 강의에서 와튼 교수들은 학생들이 각자의 비즈니스 세계 안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수업을 준비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수업 중 일어나는 어떤 토론에서든 본인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량적 근거나 숫자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향후 학생들이 직면할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필요한 정량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하고, 이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능력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으로 배우는 리더십
올해 프리 텀의 특징은 일주일간의 리더십 강의 및 시뮬레이션 과정이다. 이 리더십 과정은 한 번이라도 강의에 빠지면 누구나 내년 학기에라도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다. 세계 최초로 상황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수업이다.
 
수업에서 시뮬레이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러닝 팀의 팀원들은 가상 회사의 6개 부서, 즉 회계, 재무, 인사관리(HR), 마케팅, 영업, 연구개발(R&D) 책임자의 역할을 부여받으며 9년 동안 회사를 경영한다. 이 기간 동안 6명의 책임자들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한다.
 
이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에는 각 부서의 내년 경영 계획 수립, 신규 인원 채용 등 부서별 의사결정을 비롯해 신사업 진출과 같은 전사적 의사결정도 포함돼 있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다른 회사를 합병한 후, 어떤 측면을 고려해 합병회사의 직원들을 재배치할지 등을 6명의 책임자가 모두 모여 결정하는 식이다.
 
이때 6명의 러닝 팀원들은 의사소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리더나 팀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강도 높은 토론과 실행을 거친다. 그 과정이 끝나면 팀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냉정하고도 엄격한 다면 평가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스스로의 리더십과 실제 의사결정 상황에서의 리더십 및 타인이 평가하는 리더십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평가 점수가 개개인의 성적을 결정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수업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필자의 러닝 팀은 남자 셋, 여자 셋의 총 6명으로 이뤄져 있다. 뛰어난 영업 실력으로 미국 재보험회사의 부사장까지 지낸 줄리아나, 미국 서부에서 제법 큰 규모의 가구업체를 운영하다 온 중국계 미국인 제임스, 태국 최고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회계사 난, 그리스 출신의 투자은행가 야니, 수학 천재인 인도계 투자은행가 아르티가 그 주인공이다. 다들 너무 쟁쟁한 배경을 갖고 있어 처음에는 약간 위축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러닝 팀에 대한 각자의 기대와 팀을 운영하는 원칙 등을 공유하고 난 뒤에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팀원들 모두 굉장히 개방적인 데다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깊은 배려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팀원들이 역할을 분담할 때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 생소한 분야를 서로 나서서 맡겠다고 한 점이었다. 대기업 부사장이나 중소기업 오너를 지냈으면 확실한 자기의 전문 분야가 있고 팀 내에서도 그 역할을 담당하려 할 텐데 의외였다. 필자가 한 친구에게 이 점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온 거지.” 이에 필자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동료들이 지닌 저력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친구들과 향후 2년간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업 시간과는 다른 배움의 기회가 많을 듯하다. 그 기대감이야말로 프리 텀이 필자에게 준 가장 큰 소득이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스탠퍼드 경영대학원과 영국 옥스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인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의 명 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와튼 스쿨은 1881년 필라델피아의 사업가였던 조셉 와튼이 설립한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세계 유수 언론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즈니스 스쿨로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다. 매년 850명 정도의 신입생들이 입학하며, 재학생의 45%가 외국 학생일 정도로 다양성에 바탕을 둔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도 상당수여서 탄탄한 동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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