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 첫 학기 때 이번 논문 주제로 발표를 했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때 오기를 갖고 ‘반드시 이 주제로 좋은 논문을 쓰겠다’며 노력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듯합니다.”
‘공기업 성과평가 지표의 차별화 정도가 피평가자의 인센티브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국내 대학 박사 과정 학생으로는 최초로 세계 최고 회계학 저널인 <어카운팅 리뷰(Accounting Review)>에 논문 게재를 확정한 김명인 박사(38)의 말이다. 2004년 3월 서울대 경영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한 그녀는 5년 내내 쉬지 않고 이 주제를 연구해왔다. 지난달 <어카운팅 리뷰>로부터 논문을 싣기로 확정했다는 최종 연락을 받았으며, 내년 5월 정식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 논문은 여러 면에서 국내 경영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의 박사 과정 학생이 세계 최고 저널에 논문을 실은 일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논문 공저자인 안태식 서울대 경영대학장도 테뉴어(정년 보장)를 받은 지 한참 지났을 뿐 아니라, 학장직을 수행하면서도 논문 집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학계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어카운팅 리뷰>는 미국 회계학회(AA A)에서 발행하는 회계학 분야의 최고 저널로, 국내 대학 교수들 중에서도 논문을 게재한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1년에 전 세계에서 5000편이 넘는 논문이 들어오지만 1%에 불과한 50여 편만 실린다.
김명인 박사는 서른넷의 늦은 나이로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고, 가정을 돌봐야 할 주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못지않은 성실성과 열정으로 장애물을 극복해 눈에 띄는 연구 성과를 이뤄냈다. 7월에 졸업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8월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를 부담이나 과제로 여기지 말고 자신을 시험할 기회라 생각하면 의무감이 즐거움으로 변할 때가 온다’는 김 박사의 자기 관리 비법을 들어봤다.
회계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1990년 덕성여대 회계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을 뿐인데,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아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졸업 무렵 학교에서 해외 유학 장학금을 빌려주는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지원했는데 바로 떨어졌어요. 다음 해 또 지원을 했더니 사무처에서 ‘연속 2년 지원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라며 난색을 표하더군요. ‘2년 연속 지원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냐’고 밀어붙였죠. 결국 1996년 9월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 MBA 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MBA를 졸업하고 미국 공인회계사(AI CPA) 자격증을 딴 후, 1999년 8월에 귀국했습니다. 삼정회계법인에서 3년 반 정도 일했는데, 업무 강도도 세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자꾸 들더군요. 사표를 내고 2004년 3월 서울대 박사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학생이 됐는데 새롭게 시작한 공부가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4년 가까이 회계법인에 있다 학교에 오니 회계학을 학문으로 접근하는 게 굉장히 낯설었어요. 적은 나이도 아니었고, 석사를 마치고 바로 박사 과정에 진학한 동기생들과 비교하면 제가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고 나서야 처음 논문을 제대로 읽었어요. 학부나 석사를 서울대에서 한 것도 아니어서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죠.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자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수학의 정석> 시리즈를 사서 미적분부터 공부했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걸 주저하지 않았죠. ‘내가 나이가 더 많은데…’ ‘이런 거 물어보면 나를 업신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어보는 일을 주저하기 시작하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계량경제학처럼 까다로운 과목은 경제학 석사 과정 후배에게 방과 후 별도 강의를 요청해 열심히 복습했습니다.”
주부라 공부와 가정 생활을 함께 하기도 쉽지 않았을 듯한데요.
“제일 힘들었던 문제죠. 시댁 가풍이 좀 엄격해요. 제사가 있을 때 늦거나 빠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편입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제사에 늦거나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잖아요. 굳이 뭐라 하진 않으셨지만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 있으면서 좀 일찍 오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생각하실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공부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집안일에는 참여하기 힘들어졌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돼 남편이 해외 주재원으로 뽑혀서 두바이로 혼자 떠났어요. 수년 동안 두 달에 한 번 꼴로 두바이에 갔습니다. 제가 체력이 약한 편이라 열 시간 비행 후 두바이에 도착하면 드러누워야 했어요. 공부는 공부대로 할 시간이 없었고, 정작 남편을 만나도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거죠.
아직 아이가 없어 그 스트레스도 무척 컸습니다. 아무래도 양가 부모님은 ‘아무리 대단한 공부를 해도 가정이 우선 아니냐. 나이도 있는데 아이가 중요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편이니까요.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았는데 남편이 묵묵히 참아줘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가 졸업논문을 빨리 마무리하지 못해 졸업이 한 학기 늦어졌어요. 그것마저 잘 이해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