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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혼자 다녀라

문권모 | 39호 (2009년 8월 Issue 2)
얼마 전 취재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다 그분들과 같은 업계에 있는 A사 근황을 물었습니다. “A사도 사업이 잘되지 않나요?” 깜짝 놀랄 대답이 나왔습니다. “글쎄요, 인력 이탈이 꽤 많다고 하던데요.”
 
“아니, 왜요?”
 
“그 회사 사장님이 등산과 마라톤 마니아라네요. 주말마다 끌고 다니니까 직원들 불만이 엄청 높다고 하더라고요.”
 
‘등산, 마라톤이 싫어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 심리학 전문가 S박사님께 조언을 청했습니다(박사님의 요청으로 부득이 익명을 썼습니다. 이분은 여러 권의 심리학 관련 서적을 집필한 전문가입니다).
 
Authority Harrassment
 
뜻밖에도 “그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민감한 사람의 경우, 그런 상황에서 최고 강도의 80%에 달하는 스트레스를 느끼게 됩니다. 일단 하기 싫은 일을 강요받는 것이고요. 그 상황에 자신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트레스 강도가 더 세집니다. 등산을 하기는 싫은데, 빠지자니 눈치가 보여 심적 갈등이 생기니까요. 차라리 실패나 좌절이 주는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할까요?”
 
S박사님은 자신의 취미 활동을 강제하는 상사는 ‘권력 추행(authority harrassment)’을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대가 싫어하는 성적(性的)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성추행(sexual harrassment)이듯, 자신의 권력으로 상대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것은 권력을 이용한 추행입니다.”
 
설명을 좀더 듣다 보니, 강제적 등산이 퇴직 사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중요한 변수는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등산을 강요하는 사람은 2가지 심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첫째, 남에게 자신의 취미를 권함으로써 ‘등산은 정말 좋은 여가 활동’이라는 자기 확신을 얻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이지만, ‘강제’란 개념이 들어가면 남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게 됩니다. 둘째, 이들은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해 부하 직원들이 자신을 추종하고 순종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통제 욕구가 강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부하 직원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산에 오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거죠. 이런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자신의 제안에 ‘노(No)’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조직 내 파벌 만드는 취미 활동
 
위와 같은 상황에서 직원들은 감히 뭐라고 얘기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게 되고, 결국은 리더에 대한 불만으로 회사 생활에도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2가지 심리적 배경의 원인이 모두 ‘리더의 자기 성찰 부족’이라는 점입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만 하다가 직원들의 불만만 높이게 된다는 말이죠. 특히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빼앗기는 걸 매우 싫어합니다. 등산 같은 운동은 대부분 주말에 시간을 내야 해서 그 ‘폐해’가 더 큽니다.
 
게다가 상사와 부하 직원이 취미 활동을 공유하면 직장 내에 파벌이나 ‘패거리 문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취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자전거 마니아인 모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절대로 직원들과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답니다.
 
참, 부하 직원은 자기 취미를 강요하는 상사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S박사님께서는 절대 직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진 말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상사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라 이해를 못하거나, “이 좋은 걸 왜 싫어하냐”고 되물을 테니까요. 대신에 “저는 등산이 아니라 낚시를 좋아합니다”라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이 방법은 저도 한 번 써본 적이 있습니다. 기쁘게도 더 이상 강권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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