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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묻고 신하가 답하다: 중종-송겸

‘出’해야 할 때와 ‘處’해야 할 때를 정확히

김준태 | 332호 (2021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중국 한 고조 유방의 참모 장자방, 유비의 참모 제갈공명, 진나라 시인 도연명이 관직에 나가거나 나가지 않음을 결정한 것은 모두 지금 시대에 무엇이 의리를 지키는 길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어떤 지위에 취임하거나 역할을 맡을 때 역시 원칙과 신념을 지키되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해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세상의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해야 자기 자신을 지키고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



1520년(중종 15년) 9월에 열린 별시(別試)에서 임금은 이렇게 물었다. “출처(出處)는 중대한 일이므로 선비라면 마땅히 깊이 성찰하고 행동해야 한다. 옛날 장자방(張子房, 장량)은 한(漢) 고조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뒤 병을 핑계 대고 생식을 하며 적송자(赤松子)1 를 따라 노닐었다. 제갈공명은 선주(先主, 유비)의 부탁으로 군대를 일으켰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마쳤다. 도연명(陶淵明)2 은 이익과 영달을 구하지 않고 사직함으로써 스스로를 맑고 깨끗하게 지켜냈다. 이 세 사람의 공명(功名)과 사업은 각기 아주 다른데도 선유들이 말하길 ‘고아한 풍모와 원대한 절개가 서로 같다’고 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출처. 벼슬에 나아간다는 뜻의 ‘출’과 자리에서 물러나 은거한다는 의미의 ‘처’를 합쳐 부르는 단어다. 낯설다면 ‘진퇴(進退)’로 대체해도 좋다. ‘진퇴를 분명히 하라’는 말은 한번쯤 들어봤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옛날 선비들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출과 처, 진과 퇴를 결정해왔다. 지금 이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지, 군주가 도리를 추구하고 있는지, 군주가 선비를 예우하고 선비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지, 나라와 백성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등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판단은 아무래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출’해야 할지, ‘처’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컨대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하다고 하자. 이에 물들지 않기 위해 은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고통받는 백성을 돕겠다며 관직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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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이 언급한 장자방, 제갈공명, 도연명은 각기 다른 출처를 보여준 사람들이다. 한 고조 유방의 핵심 참모였던 장자방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자마자 정계에서 물러난 뒤 신선술(神仙術)에 몰두했다. 유비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선 제갈공명은 한나라를 부흥하고 역적을 처단하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온 힘을 기울였다.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관직을 내던지고 향리에 은거한다. 이처럼 세 사람의 선택과 행적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왜 “고아한 풍모와 원대한 절개가 서로 같다”라고 평가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장원급제한 송겸(宋㻩)3 의 답안을 보자. 그는 “군자는 의리를 따르되 시대를 보아 행동하거나 멈추니 시종일관 적절하고 마땅함을 잃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갈 만한데도 나가지 않으면 의리가 아니고, 벼슬하지 않고 은거해야 하는데도 은거하지 않으면 역시 의리가 아닙니다. … 출처가 다른 것은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지, 그 의리는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송겸의 설명에 따르면 장자방이 한고조를 보좌해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항우를 죽인 것은 유방의 한(漢)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조국 한(韓)나라를 위해서다. 그는 복수를 위해 유방을 활용했을 따름이다.4 따라서 천하가 통일돼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긴 했지만 조국에 대한 충심을 지키기 위해 미련 없이 물러났다는 것이다. ‘속마음을 감춘 채 섬기지 않겠다’는 한고조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제갈공명은 “이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둔한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몸과 마음을 바쳐 온 힘을 다할 것이니 죽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전국 13개 주 중 1개 주 5 에 불과한 촉나라가 9개 주를 차지한 위나라에 맞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국력도 4분의 1 수준으로 인적•물적 역량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갈공명이 자신을 모두 소진하면서까지 북벌의 대업에 매진한 것은 천하에 대의가 살아 있음을 천명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연명이 사직하고 낙향한 까닭은 “유유(劉裕)6 의 찬탈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뻔뻔하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었고, 또한 힘이 미약하여 뜻을 함께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송겸은 말한다.

요컨대 장자방은 여건이 마련됐지만 ‘처’한 경우, 제갈공명은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출’한 경우, 도연명은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처’한 경우에 해당한다. 얼핏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선택의 이유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로 동일하다. 출한 것도 의리로 하지 않음이 없었고 처한 것도 의리로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이 의리를 지키는 길이냐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어 송겸은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사례를 들며 부연했다. “염계(濂溪, 주돈이) 선생과 강절(康節, 소옹) 선생은 세상에 대한 뜻을 마음속으로 거두어 감추고 여러 차례 조정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는데, 이는 그 시대가 무언가를 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군주가 어둡지 않았고 나라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군주가) 자신의 지혜에 스스로 만족하고 일에 어그러짐이 많았으니 차라리 물러나서 도를 밝혀 후세에 전하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입니다.” “구산(龜山, 양시) 선생과 회암(晦庵, 주희) 선생은 위태로운 조정에 출사하였고 상소를 올리며 간절히 간언하였습니다. 비록 무언가를 이루기 힘든 시대라도 선비가 나서지 않으면 천하는 더욱 도탄에 빠지고 금수의 세상으로 전락할 것이니 어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중간한 시대가 있다. 임금과 신하의 수준이 무난하고 세상도 그럭저럭 돌아간다. 하지만 현실에 만족한 채 개선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뜻 있는 선비가 출사해 무언가를 이루기가 힘든 환경이다. 이럴 때는 괜히 힘을 낭비하기보다는 물러나 학문을 쌓고 도를 닦는 것이 현명하다. 그 깨우침을 후세에 전해주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 극단적인 위기가 닥치는 시대도 있다. 출사했다가는 자칫 휩쓸려 목숨을 잃을 수 있고, 자신을 모두 소진시켜 노력했는데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외면하게 되면 백성이 큰 고통을 겪는다. 이럴 때는 고난을 각오하고 출사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각각 염계와 강절, 구산과 회암의 출처이고, 출처에 차이가 생긴 이유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송겸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마주하여 어길 수 없는 것이 시대고 행하여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의리입니다. 군자가 진실로 그 시대를 살펴보고 의리를 행한다면 출처가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인물들의 출처는 모두 ‘그러한 시대에 맞춰’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 의리에 부합했고 올바름을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처를 잘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신념을 지키되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무엇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지금 이 순간에 적합한 선택인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출처의 도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어떤 지위에 취임하고 퇴임할 때, 어떤 역할을 맡고 물러날 때, 상황과 역량, 올바름의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어울리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도 존중받을 수 있다. ‘출’해야 할 때와 ‘처’해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시대에 맞게 의리를 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도 중요하다.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에 맞는 의리라는 것은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말고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적으로 나아가고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 송겸의 대책이 주는 메시지다.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왕의 경영』 『왕의 공부』『탁월한 조정자들』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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