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역사

거대한 동물들은 왜 멸종했을까

322호 (2021년 0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매머드와 같은 거대한 몸집의 동물들은 에너지 소모량이 효율적이며, 세포 손상률이 적어 수명을 늘리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환경이 변화하면 거대한 몸집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급변하는 상황에 필요한 변신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조직의 큰 회사들이 결재 단계가 복잡해 신제품 개발이 늦춰지는 것처럼 거대한 동물은 환경에 맞는 몸으로 진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기업이나 사람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편집자주
320호에 실린 1편에 이어 ‘거대한 동물들은 왜 멸종했을까’를 주제로 한 두번째 편을 소개합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볼만한 곳이 많지만 그래도 꼭 들러야 할 곳 중의 하나가 몽마르트르다. 예술가의 거리로 이름난 곳이라 처음 가는 이들은 자못 가슴 설레기 마련인데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많이 한다. 그림 그려주는 사람들과 커다란 성당 외에는 볼 만한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영화 ‘퐁네프의 다리’를 보고 로맨틱한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가 실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몽마르트르의 진수는 잠깐 왔다 가는 관광객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미로 같은 골목들 속에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사실 몽마르트르를 제대로 즐기려면 이곳의 지난한 역사를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230여 년 전인 1790년대만 해도 몽마르트르는 예술가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환락과 범죄가 가득한, 좀 과하게 말하면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었다. 역사도 오래돼 로마 시대 때부터 석고(gypsum) 광산이 있었고 이후엔 포도밭으로도 유명했는데 1790년대 후반 나폴레옹의 통치가 시작되고 건축 붐이 일면서 흥청망청하는 곳이 됐다. 석고(정확하게는 소석고1 )가 건축 자재로 활용되면서 사람과 돈이 갑자기 몰린 결과였다.

이곳이 우려스러운 곳으로 변해가자 종교계가 나서 언덕 위에 성스러운 성당을 짓기로 했다. 그때 지은 게 바로 눈부시게 하얀 노트르담 뒤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더구나 이곳은 3세기 디오니시우스라는 성인이 참수당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어서 의미도 있었다. 디오니시우스가 참수당한 자신의 목을 들고 천사의 도움을 받아 이 언덕의 정상에 올랐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데 이즈음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곳이 화제가 됐다. 환락과 범죄 때문이 아니라 광산에서 이상한 동물 뼈들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작은 뼈들이야 어디서든 나올 수 있지만 이곳에서 나온 뼈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뼈가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럽은 코끼리나 그만한 덩치의 동물이 살지 않는데 코끼리 뼈와 비슷하거나 더 거대한 뼈들이 땅속에서 나왔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비교해부학자이자 1세대 고생물학자였던 조르주 퀴비에 남작이 이 뼈들을 가져다 연구를 진행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퀴비에 남작이 “지금은 멸종한 동물의 뼈”라고 하자 다들 못 들은 척했다.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믿는 이가 없었다. 학계 권위자인 그의 말을 귓등으로 넘긴 이유가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세상의 역사는 모두 성경에 있는 그대로였다고 믿고 있었다. 창세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세상이 만들어졌고 노아의 방주를 거쳐 지금의 세상이 됐다고 말이다. 현재 세상에 살아 있는 동물은 노아의 방주에 실린 동물이 전부였고, 이들은 신의 보호를 받았던 덕분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더구나 거대해서 누구나 모를 수가 없는 동물들이 있었고 멸종하기까지 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그런 일은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용불용설을 주장한 라마르크도 그랬다.2 당연히 코끼리나 하마, 또는 고래 중에서도 더 컸던 개체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여겼다. 사람 중에도 키가 2m가 넘는 사람이 있듯 같은 종 중에서도 대형 개체가 있었던 것이라고 믿은 것이었다. 당시엔 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멸종 개념은 1840년 즈음에서야 받아들여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이 뼈들의 주인들이 현재 몸집이 가장 큰 코끼리보다 두세 배는 컸던 매머드(맘모스)와 이보다 작았던 마스토돈 같은 동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고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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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는 대체로 커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커지고 싶다고 모두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뼈를 비롯해 대부분의 신체 기관을 변형시키는 진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거대한 덩치를 가졌다는 건 대단한 생존력을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물들이 커지려고 하는 이유는 그만한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크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상대와 맞서 싸울 때 대체로 덩치가 큰 쪽이 이긴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무서운 포식자들도 코끼리나 하마는 덩치가 거대한 까닭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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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커질수록 에너지 소모량이 줄어든다는 이점도 있다. 이건 스위스 출신의 생리학자 마르크스 클라이버가 1932년 13종의 동물을 연구한 후 발견한 것인데 핵심은 에너지 소비(기초대사율)가 몸무게의 4분의 3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동물들 사이에 묘한 패턴이 존재하는 것이다. ‘클라이버 법칙’으로 불리는 이 패턴을 바꿔 말하면 몸무게가 증가할수록 4분의 1제곱 비율로 덜 먹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2017년 출간한 책 『스케일』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3 알다시피 육상 동물 중 가장 큰 동물은 코끼리이고 쥐는 포유동물 중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수치로 따지면 코끼리가 쥐보다 1만 배 정도 무겁다. 세포 수가 1만 배나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쥐가 1㎏을 먹을 때 코끼리는 그 1만 배인 1만 ㎏을 먹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작 1000㎏(10의3제곱)만 먹는다. 10분의 1에 불과한 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몸집이 두 배가 되면 대사율(에너지 소모율)도 두 배로 늘 것 같지만 75%에 머물기 때문이다. 두 배로 늘 때마다 25%가 절약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 덕분인데 이런 식으로 거듭제곱 비율 3대4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그림1]처럼 우상향 직선으로 나타난다.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덜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이점인데 큰 덩치의 이점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몸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사 과정이 여유로워져서 세포 손상률이 줄어들고 이것이 수명의 증가로 이어진다. 쥐는 고작해야 1, 2년을 사는데 코끼리는 무려 75년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포유동물은 대체로 평생 심장박동 수가 15억 회로 비슷한데 앞에서 말한 대사 과정이 심장에 영향을 미쳐 몸집이 커질수록 심장박동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땃쥐는 분당 심장박동 수가 1500회나 되지만 코끼리는 30회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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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커지면 추위도 덜 탄다. 큰 돌이 작은 돌보다 훨씬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하는 원리다. 커질수록 부피가 작아져 열 손실이 적어지고, 덕분에 에너지를 덜 써도 된다. 이 역시 앞의 결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크기는 번성의 징표인 것이다. 벌새는 눈만 뜨면 정말이지 숨 가쁘게 살아야 하는데 사자는 한 번 사냥하면 4일 정도는 푹 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발견된 거대한 동물들은 이런 법칙에서 벗어난 예외였던 것일까? 아니었다. 그들 역시 대단한 생명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들 멸종했을까? 공룡이야 워낙 불가항력의 재앙이 닥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멸종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이들에겐 그런 재앙도 없었다.

백악기 대멸종 같은 재앙만이 재앙은 아니다. 소행성 충돌은 그야말로 희귀한 재앙이었지만 지구에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닥쳐오는 크고 작은 재앙들이 많았다. 급격한 환경 변화가 그것이다. 지난 200만 년 동안만 해도 다섯 번의 빙하기가 있었을 정도다. 이때마다 이전 시대에 주인공급으로 살아왔던 거대한 동물들이 사라졌다. 몸집의 거대함은 분명 이점이 많지만 환경이 급격하게, 그것도 이전과 큰 차이로 변하면 덩치의 이점은 고스란히 단점으로 변한다. 쉽게 말해 덩치가 커질 때와 같은 환경에선 덩치가 아주 우월한 생존 방식이지만 다른 환경으로 변하면 이런 이점이 순식간에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몽마르트르 광산에서 나온 뼈들의 주인공은 대체로 마지막 빙하기가 왔을 때 멸종된 동물들이었다. 마지막 빙하기는 7만5000년 전에서 1만7000년 전까지 지속됐는데, 특히 끝날 때쯤인 2만 년∼1만7000년 전엔 절정에 달해 유라시아와 북미 대륙 절반을 끝없는 얼음으로 뒤덮을 정도였다. 환경이 지금의 남극과 같은 얼음 대륙으로 변하다 보니 온대기후에 적응해왔던 몸으로는 이겨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덩치를 지탱하려면 엄청나게 먹어야 했는데 이걸 조달할 수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클라이버 법칙에 나타나는 절약 효과로는 어림도 없었을 테다.

생명의 역사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그래서 주인공만 바뀐 채 비극이 되풀이된다. 몽마르트르의 뼈 주인공들을 멸종시켰던 빙하기가 5만 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끝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빙하기에 적응했던 거대한 덩치들의 차례였다. 털매머드, 털코뿔소, 아일랜드큰뿔사슴 등이 따뜻한 기후(그들에게는 무더운 기후)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사실 2000년이라는 시간은 긴 것 같아도 새로운 환경, 그것도 이전 환경과 엄청나게 다른 환경에 맞는 몸을 만들어내기에는 너무나 짧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 환경이 변한 다음에야 변화를 알게 되는 데다 거구가 되면 새끼를 덜 낳기도 하고 새끼가 자라 번식을 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빠르게 개체 수를 늘릴 수도 없고 세대교체 또한 빠르게 할 수 없다. 세대교체를 빨리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유전자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마치 거대한 조직을 가진 대기업에서 수많은 결재를 받느라 신제품 개발이 계속 늦춰지는 바람에 때를 놓치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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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과거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는 북극곰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 후보다. 그동안 추운 곳에 적응해 살아왔는데 온난화로 얼음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음이 있어야 사냥을 할 수 있는데 이게 점점 힘들어지면서 비쩍 마른 북극곰을 보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됐다. 이뿐 아니라 극한의 북극 추위에도 끄떡없던 ‘털옷’이 이제는 체온을 올리는 ‘죽음의 옷’이 돼가고 있다. 빙하기가 끝날 때도 비슷했을 것이다. 보통 기후가 따뜻해지는 해빙기가 됐다고 하면 호시절을 연상하지만 강추위에 적응한 동물들에게는 반대다. 아니, 사실은 재앙 그 자체다. 빙하기에 적응했던 것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인 장애물이 되는 까닭이다.

거대했기에 번성했지만 바로 그 거대함 때문에 멸종한 동물이 한둘이 아니다. 매머드 중에는 어깨높이가 건물 2층 높이인 4m, 몸무게가 최대 12톤(보통 8∼9톤)까지 나가는 종도 있었다. 현재 살아 있는 아시아코끼리의 어깨높이가 2∼3m, 몸무게가 5톤 이하인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크기다. 유라시아에 살았던 거대한 코뿔소는 코끼리만 한 덩치에 2m나 되는 뿔을 이마에 달고 있었고, 거대한 엘크사슴은 지금의 사슴보다 몇 배나 컸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회색곰(150∼250㎏)만 한 크기의 비버가 있었고(현재의 비버는 몸길이 60∼70㎝, 몸무게는 25㎏ 전후다), 몸길이 7m에 무게가 3톤이나 나가는, 거의 코끼리와 비슷한 땅늘보도 있었다. 당연히 이들을 사냥했던 맹수들도 컸다. 동굴사자는 길이가 3m나 됐고, 검치호랑이로도 불리는 마카이로두스(Machairodus)와 스밀로돈 역시 몸길이 3m에, 최대 20㎝나 되는 기다란 송곳니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빙하기로 인한 변화의 역사를 보면 다른 때보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났을 때 유독 거대한 동물이 많이 멸종됐다. 이유가 있었다. 어렵게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슴보다 조금 더 큰 몸집을 가진 이들은 사슴 같은 날렵함은 없었지만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능력을 갖고 있었다. 영리했다. 이들은 이 영리함을 이용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대신 더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있었고 긴밀한 협력과 전략으로 거구들에게 도전했다. 항상 이기진 못했지만 가끔씩만 지고 자주 이겼다. 호모사피엔스들이었다. 6만여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중앙아시아 부근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빙하기가 물러난 초원을 따라 대거 등장했던 것이다.

이전과 전혀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의 출현. 그렇지 않아도 간신히 버티고 있던 거대한 덩치들에겐 이런 악재가 없었고, 이들을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게 된 사피엔스들에겐 이런 호재가 없었다. 쇠퇴와 멸종, 번성이 엇갈리는 시대가 그렇듯 이전 시대를 주름잡았던 거구들이 가장 먼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칼로 일어선 자가 칼로 망하듯 덩치 덕분에 번성했던 이들이 덩치 때문에 사라져갔다. 반면 사피엔스는 이 시기를 넘기면서 신석기 시대를 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일까? 사실 이런 패턴은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자연이 아니라 시장 환경에서 일어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사라져 간 거구들이 남긴 생존의 교훈을 음미해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아가는 원리는 같은 까닭이다.

왜 덩치 덕분에 번성했던 거구들이 덩치 때문에 사라지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걸까? 생명체들은 대체로 자기만의 전략을 찾으면 이 전략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으로, 효과적으로 살기 위해 최적화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번성을 이룬다. 그래서 번성이란 현재 환경에 최적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된다. 현재 환경에 완전하게 적응했기에 이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생존력이 뚝 떨어지게 된다. 진화는 대체로 점진적인 환경 변화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급변하는 상황에 필요한 변신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이런 변화의 시대마다 나타나는 변치 않는 생사의 법칙이 있다. 변신이 변화를 앞서가면 번성하지만 뒤처지면 쇠퇴하고, 이게 계속되면 멸종의 운명을 맞는다. 앞에서 말한 북극곰의 운명이 비극으로 향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자신들이 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얼음이 녹고 있기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쉽게 멸종하지는 않겠지만 극한의 시련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시대 환경이 필요로 하는 걸 재빨리 갖춰야 하고, 필요로 하지 않는 걸 한시라도 빨리 버려야 하는데 이걸 못하니 삶이 무거워지고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생태계 꼭대기를 향하는 경향이 있다. 최적화라는 덫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다가 사라진 기업이나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두 가지 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크게 성공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바로 그 때문에 사라진다. 번성을 이룬 그 능력에 최적화(사실은 의존)한 까닭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기득권들이 변화를 바라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변화에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데 자꾸 강한 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주인공이 바뀐다.

12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2018년 파산을 신청한 미국의 시어스백화점이 좋은 예다. 시어스는 1960년대와 70년대 카탈로그 전략이 적중하면서 급성장한, 미국 유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유통업체들이 진출하지 못한 지역에 수많은 상품 설명을 담은 두툼한 카탈로그를 뿌려 우편으로 주문을 받고 배달해주는 방식으로 성공했다. 유통기한이 짧은 식료품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가능했기에 그야말로 일취월장했다. 워낙 빨리 성장해 경쟁자조차 없었다.

경쟁자가 없었기에 내부 경쟁이 심해졌고 내부 경쟁은 자신들이 이룬 번성을 최대화하는 쪽으로 이들을 이끌고 갔다. 당장 이익 나는 것에 집중했고 매출 감소 조짐이 보이면 새로운 매장을 열어 해결했다. 전형적인 덩치 키우기였다. 자신들을 과시하기 위해 당시 세계 최고층이었던 108층짜리 빌딩을 시카고에 세우기까지 했다. 조금씩 바뀌는 새로운 시장에서 할인점들이 빠르게 성장했고 무엇보다 월마트가 도심이 아닌 지역을 직접 공략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시어스는 이들을 경쟁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덩치를 믿었다. 그렇게 덩치를 추구하다 앞에서 말한 거대한 덩치들처럼 사라졌다.

위기란 다른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내가 변하는 것보다 세상이 더 빨리 변하는 게 위기다. 잭 웰치가 일찌감치 했던 말이 있다.

“내부보다 외부가 빨리 변하고 있다면 끝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웰치가 이 말을 했던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시대가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것과 동시에 비극의 주인공을 고르고 있는 듯하다. 누굴까? 다음 주인공은?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araseo11@naver.com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2호 The Art of Compensation 2021년 0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