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와 같은 거대한 몸집의 동물들은 에너지 소모량이 효율적이며, 세포 손상률이 적어 수명을 늘리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환경이 변화하면 거대한 몸집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급변하는 상황에 필요한 변신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조직의 큰 회사들이 결재 단계가 복잡해 신제품 개발이 늦춰지는 것처럼 거대한 동물은 환경에 맞는 몸으로 진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기업이나 사람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편집자주 320호에 실린 1편에 이어 ‘거대한 동물들은 왜 멸종했을까’를 주제로 한 두번째 편을 소개합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볼만한 곳이 많지만 그래도 꼭 들러야 할 곳 중의 하나가 몽마르트르다. 예술가의 거리로 이름난 곳이라 처음 가는 이들은 자못 가슴 설레기 마련인데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많이 한다. 그림 그려주는 사람들과 커다란 성당 외에는 볼 만한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영화 ‘퐁네프의 다리’를 보고 로맨틱한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가 실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몽마르트르의 진수는 잠깐 왔다 가는 관광객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미로 같은 골목들 속에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사실 몽마르트르를 제대로 즐기려면 이곳의 지난한 역사를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230여 년 전인 1790년대만 해도 몽마르트르는 예술가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환락과 범죄가 가득한, 좀 과하게 말하면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었다. 역사도 오래돼 로마 시대 때부터 석고(gypsum) 광산이 있었고 이후엔 포도밭으로도 유명했는데 1790년대 후반 나폴레옹의 통치가 시작되고 건축 붐이 일면서 흥청망청하는 곳이 됐다. 석고(정확하게는 소석고11소석고(燒石膏): 석고를 구운 후, 수분을 모두 제거한 황산칼슘을 소석고(燒石膏)라고 한다. 가루 형태로 만들어 수분을 첨가해 주면 굳어지는데 이런 속성을 이용해 주물이나 깁스로 사용했고 물에 개어 건축 자재로도 썼다. 이곳의 소석고는 워낙 유명해 ‘파리의 석고’로 불렸을 정도였다. 이 석고는 산호초가 퇴적된 것이다.
닫기)가 건축 자재로 활용되면서 사람과 돈이 갑자기 몰린 결과였다.
이곳이 우려스러운 곳으로 변해가자 종교계가 나서 언덕 위에 성스러운 성당을 짓기로 했다. 그때 지은 게 바로 눈부시게 하얀 노트르담 뒤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더구나 이곳은 3세기 디오니시우스라는 성인이 참수당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어서 의미도 있었다. 디오니시우스가 참수당한 자신의 목을 들고 천사의 도움을 받아 이 언덕의 정상에 올랐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데 이즈음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곳이 화제가 됐다. 환락과 범죄 때문이 아니라 광산에서 이상한 동물 뼈들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작은 뼈들이야 어디서든 나올 수 있지만 이곳에서 나온 뼈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뼈가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럽은 코끼리나 그만한 덩치의 동물이 살지 않는데 코끼리 뼈와 비슷하거나 더 거대한 뼈들이 땅속에서 나왔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비교해부학자이자 1세대 고생물학자였던 조르주 퀴비에 남작이 이 뼈들을 가져다 연구를 진행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퀴비에 남작이 “지금은 멸종한 동물의 뼈”라고 하자 다들 못 들은 척했다.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믿는 이가 없었다. 학계 권위자인 그의 말을 귓등으로 넘긴 이유가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세상의 역사는 모두 성경에 있는 그대로였다고 믿고 있었다. 창세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세상이 만들어졌고 노아의 방주를 거쳐 지금의 세상이 됐다고 말이다. 현재 세상에 살아 있는 동물은 노아의 방주에 실린 동물이 전부였고, 이들은 신의 보호를 받았던 덕분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더구나 거대해서 누구나 모를 수가 없는 동물들이 있었고 멸종하기까지 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그런 일은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용불용설을 주장한 라마르크도 그랬다.22『공룡 이후』, 도널드 R. 프로세로, 김정은 옮김, 뿌리와이파리, 2013년; 『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이혜리 옮김, 처음북스, 2014년.
닫기 당연히 코끼리나 하마, 또는 고래 중에서도 더 컸던 개체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여겼다. 사람 중에도 키가 2m가 넘는 사람이 있듯 같은 종 중에서도 대형 개체가 있었던 것이라고 믿은 것이었다. 당시엔 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멸종 개념은 1840년 즈음에서야 받아들여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이 뼈들의 주인들이 현재 몸집이 가장 큰 코끼리보다 두세 배는 컸던 매머드(맘모스)와 이보다 작았던 마스토돈 같은 동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고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서광원araseo11@naver.com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