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츠려야 멀리 뛰는 개구리처럼 20세기에는 대공황, 오일쇼크와 같은 경제 위기가 지난 이후 경제 성장이 가속화됐다. 그러나 21세기 경제 침체 이후의 상황은 20세기와 사뭇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끝났는데도 경제 성장의 속도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1950∼2000년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평균 2.25%인 반면 21세기 이후에는 평균 1%대를 유지하고 있다.
팬데믹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 성장이 멈춘 세상을 ‘뉴노멀’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대부분 그 원인을 혁신 실패 또는 정부 실패에서 찾았다. 그러나 과연 저성장의 원인이 그뿐일까? 저성장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일까? 책은 경제 성장에 제동을 거는 주범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성장이 더딘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준다.
방대한 경제 데이터와 기업 자료를 분석한 끝에 저자는 경제 성장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인구 구조의 변화’와 ‘서비스 중심의 산업 구조’를 꼽았다. 물질적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자녀를 키우기 위한 비용은 증가한 반면 임금 수준은 올랐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난 것도 출산율 저하의 원인 중 하나다. 인구의 감소는 곧 노동력의 감소를 뜻하고, 이는 경제 성장의 둔화로 이어진다. 또한 노동집약적인 서비스는 생산성을 개선하기 어렵다. 예컨대 1시간의 상담이 필요한 변호사 상담 서비스를 품질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30분으로 줄이는 일은 녹록지 않다. 서비스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일에 제약이 걸린 것 역시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양질의 일터와 서비스 역시 경제 성장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경제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 일터를 떠나 출산을 하거나, 갖고 있는 전자제품을 전부 부수고 새로운 제품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느린 성장은 인류의 선택인 셈이다.
저자는 성장 둔화가 성공에 따른 결과라는 게 곧 경제 상황이 개선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개선의 열쇠는 성장이 아닌 분배에 있다. 기업은 잉여 이익을 투자와 혁신에 쏟기보다는 배당금 확대와 자사주 매입에 투입한다. 무역은 특정 지역의 자원과 노동자를 착취하고, 정부 정책으로 득을 보는 이들의 반대편엔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다. 경제 성장에서 발생한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갔느냐를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마침 최근 비즈니스계에서 불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공정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한계에 부딪힌 자본주의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불어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