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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대변혁의 물결, 전조를 포착하라

박영규 | 307호 (2020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주역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학문이다. 실제로 주역의 본질적 의미는 해[日]와 달[月]을 상징하는 한자가 합쳐져 변화를 뜻하는 한자인 ‘바뀔 역(易)’에 담겨 있다. 서양에서 주역을 ‘변화의 책(Book of Change)’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이런 변화를 놓치기 십상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날그날의 매출 실적이나 자금 사정에 매몰되다 보면 변화에 대한 대처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뒤늦게 변화를 인지하고 분주하게 움직여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곤 한다. 기업과 국가 등 거대 조직의 흥망성쇠에는 예외 없이 이러한 법칙이 적용된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둔감한 조직은 도태되고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조직은 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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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생산하는 주체는 해와 달로 대표되는 자연이다. 주역은 바로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학문이다. 이는 주역의 역(易) 자가 해를 상징하는 날 일(日) 자와 달을 상징하는 달 월(月) 자를 합친 것이라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복희씨는 해가 뜨면서 하루의 시간이 시작되고 달이 뜨면서 하루의 시간이 마감되는 것으로 인식했고, 그러한 시간표를 국가 경영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역을 고안했다.

변화의 책, 주역

시간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변화다. 일출과 월출이 교차되면서 생성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역이라는 학문 체계가 완성된 시기를 나타내는 주나라 주(周) 자는 단순한 지시대명사에 지나지 않으며 변화를 뜻하는 바뀔 역(易) 자가 주역의 본질적 의미를 구현한다. 조선시대의 군왕들과 선비들은 주역을 그냥 ‘역’이라 불렀으며 서양에서 주역을 ‘변화의 책(Book of Change)’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역 점을 치는 것은 지나간 시간인 과거를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시간인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좋은 대학에 입학할 것인지, 좋은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새로 시작한 사업이 성공할 것인지 등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치는 것이 주역 점이다.

점괘를 구성하는 효(爻) 가운데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효를 변효(變爻)라 하는데 주역에서는 이 변효를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효(爻)라는 글자는 모양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역 점을 칠 때 사용하던 산(算)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효는 긴 막대기 하나(-)로 된 것을 양효라 부르고, 작은 막대기 두 개(--)로 된 것을 음효라 부른다. 이것은 주역의 기본 원리가 되는 동양의 음양 이론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음양 이론에서는 팽창하려는 기운이나 에너지를 양이라 정의하고, 이를 억제하려는 반대편의 속성을 음이라 정의한다.

만물은 예외 없이 두 가지 속성을 가진다. 대소, 장단, 고저, 냉온, 남녀, 홀짝, 전후, 좌우 등에서 보듯이 하나의 속성이 있으면 그 반대편의 속성도 반드시 존재한다. 이런 단순한 원리를 기반으로 우주 만물의 생성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주역이다. 양효(-)와 음효(--)는 0과 1로 구성되는 이진법과 수학적 원리가 같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가 보내준 주역 효의 문양을 본 후 이진법 체계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컴퓨터 알고리즘의 기초인 이진법 체계는 그 원조가 주역인 셈이며, 현대 지식정보화 사회의 DNA 속에는 5000년 전 동양의 지혜가 녹아 있다.

주역 점을 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산가지를 이용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모둠을 만들어 제한 후 남는 나머지를 가지고 점괘를 뽑는 것이 정통 주역 점이지만 임의성만 확보된다면 동전과 같은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서도 점괘를 뽑을 수 있다. 동전의 앞면이 나올 때를 양이라 하고, 뒷면이 나올 때를 음이라고 정한 후(거꾸로 정해도 상관없다) 임의로 동전을 공중에 던져서 나오는 면을 기준으로 점괘를 뽑으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뽑은 점괘와 원리 면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확률의 기댓값이 나오도록 하는 임의성이다. 이런 과정을 여섯 번 시행해서 얻은 효를 밑에서부터 차례차례 쌓으면 64괘 가운데 하나가 완성된다. 건물을 지을 때도 1층부터 먼저 쌓고 2층, 3층을 쌓듯이 주역의 괘도 같은 방식으로 쌓는다. 시간적으로 보면 제일 밑에 있는 효, 즉 첫 번째 뽑은 효가 가장 오래된 과거이고, 마지막으로 뽑은 효가 가장 나중에 오는 미래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첫 번째 뽑은 효가 양효, 두 번째 뽑은 효가 음효, 그다음부터는 차례대로 양효, 양효, 양효, 음효가 나왔을 경우 다음과 같은 모양의 괘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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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괘를 주역에서는 택화혁괘(澤火革卦)라고 부르는데 연못을 상징하는 택괘(☱)가 위에 놓이고 불을 상징하는 이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 괘다. 주역에서 연못은 그릇에 담긴 물, 포근함, 안정된 체제 등을 의미하고 불은 빛과 광장, 정의 등을 의미한다. 시간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택화혁괘는 법과 질서가 잘 작동되는 안정된 체제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 혁명의 ‘혁(革)’ 자를 괘사로 붙인 이유는 주역이 현재 시점보다는 다가올 미래 시점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택화혁괘는 겉으로는 안정된 체제처럼 보이지만 공정의 가치나 사회적 정의를 상징하는 불이 그 밑에 깔려 억압받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장차 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밑에 있는 불이 활활 타올라 연못이 뒤집히는 상황이 예측된다는 것이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직전의 앙시앵레짐이나 1987년 6월 항쟁을 촉발한 4.13 호헌조치 등이 택화혁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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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변화의 예술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씨줄과 날줄이 돼 삶을 다양하게 직조하고 채색하지만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그러한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대개는 무의식적으로 흘러가 버리게 내버려 두고 때로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묻어버리기도 한다.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날그날의 매출 실적이나 자금 사정 등에 매몰되다 보면 변화에 대한 대처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쓰나미 같은 큰 변화가 몰려오고 있지만 무감각하게 지나쳐 버리거나 ‘변화? 그게 뭔데? 하던 일이나 제대로 해’라면서 애써 외면해 버린다. 버스가 떠난 뒤에 변화를 인지하고 분주하게 움직여보지만 떠나버린 버스를 잡을 수는 없다. 기업과 국가 등 거대 조직의 흥망성쇠에는 예외 없이 이러한 법칙이 적용된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둔감한 조직은 도태되고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조직은 흥한다.

한때 잘나가던 대우그룹은 글로벌 기업 환경의 변화와 권력 질서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빌미가 돼 한 방에 와르르 무너졌다. 변화를 알아차리고 대응책을 강구하기 시작했지만 공룡 조직의 난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조선시대 선조와 고종은 국제 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국토를 유린당하고 국권을 빼앗겼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묻힌 삶의 발자취를 예리한 감성으로 추적한다. 그리고 묻혀 있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서 분석하고, 재해석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작중의 화자(마르셀)는 때로 탁월한 시선을 가진 화가가 되기도 하고, 때로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하는 음악가가 되기도 한다. 화가의 붓끝에서, 음악가의 손끝에서 마르셀의 과거는 새롭게 태어난다. 색깔과 모양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자체가 바뀐다. 사교계의 바람둥이는 근사한 신사로 다시 태어나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았던 아비규환의 과거는 감미로운 사랑의 엘레지로 바뀐다.

경영은 변화의 예술이다. 프루스트와 같은 섬세한 촉각으로 시장의 변화를 주시하고, 분석하고, 예측할 때 기업 경영을 예술적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트렌드를 뒤에서 좇아가는 후발 기업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와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선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CEO들이 성공한 기업가로 발돋움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변화에 대한 인지 능력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주역은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는 힌트를 한 가지 준다. 조짐, 전조, 기미에 관한 힌트인데 주역 64괘 가운데 두 번째 괘인 중지곤괘에서는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에 이른다(履霜堅氷至, 이상견빙지)’라는 메시지로 이를 표현한다. 기업이나 사회 조직에 큰 변화가 몰려오기 전에는 반드시 그것을 예감할 수 있는 전조 현상이 나타난다. 그것을 잘 간파해서 대처하면 변화의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고 그 날개 위에 능동적으로 올라탈 수 있다.

제프 베이조스는 한때 잘나가던 맨해튼의 금융 전문가였다. 하지만 어느 해 인터넷의 사용량이 3000배 가까이 급증하는 것을 보고 안정된 직장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향한다. 변화의 조짐을 예민하게 간파한 베이조스는 온라인에 기반한 서점을 시작으로 모든 상품을 온라인에서 거래하는 이른바 ‘에브리싱 스토어’를 구축했다. 오늘날의 아마존은 서리를 밟으면서 직감적으로 굳은 얼음을 예감한 변화 전문가 베이조스가 만들어낸 명작이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등이 있다.
  • 박영규 |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chamn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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