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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일問일答: 일을 묻고 일에 답하다

김현진 | 302호 (2020년 8월 Issue 1)
7말 8초. DBR는 여름휴가 성수기인 매년 이맘때 휴가지에서 읽으면 좋을 철학, 고전 등 인문학적 주제나 문화 현상과 관련된 이슈를 스페셜 리포트로 소개해왔습니다. 직접적인 일의 영역에서 벗어나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 해의 나머지 구간을 힘껏 달리기 위한 힘을 비축하는 기회를 드리려는 의도에서입니다.

하지만 ‘뉴노멀’이 ‘노멀’을 대체하게 된 올해는 조금 다른 주제로 ‘쉼표’를 마련했습니다. 일상적 가치의 전복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숨 쉴 틈도 없이 전개됐던 올해였기에 ‘일 밖’이 아닌 ‘일 자체’의 변화를 면밀히 들여다보기로 한 것입니다.

모데라토로 진행되던 일상의 음표들은 셧다운의 공포 속에서도 때때로 프레스토로 전개됐는데, 바로 우리의 일터와 일의 영역에서 이런 변화가 극명하게 일어났습니다. 출근하는 게 당연했던 사무실은 화상회의와 업무용 메신저만으로 동료를 만나는 ‘온라인 오피스’로 바뀌었고, 대면을 원칙으로 했던 영업과 채용까지 가상공간으로 긴급 소환됐습니다. 따라서 DBR 이번 호는 달라진 일상을 빚고 있는, ‘뉴노멀’ 시대의 일터와 노동자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고찰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의 대유행은 일과 노동자의 가치를 다른 국면으로 이끄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중세에 발생한 페스트는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일으켜 노동력 부족 현상을 야기했고 운 좋게 살아남은 농노들은 몸값 높은 ‘귀족 노동자’가 됐습니다. 노르웨이의 사학자 올레 요르겐 베네딕토에 따르면 이처럼 농노의 경제력과 지위가 향상되면서 소비가 촉진됐고, 이는 자본주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장 경제 발달 시기에 맞춰 ‘농업’에서 ‘상업’으로 주전공을 재빨리 갈아탄 무역상과 상인들, 그리고 기술력을 가진 장인들이 경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기계의 개발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입니다. 결국 페스트가 1차 산업혁명 발달에 큰 기반을 마련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전염병과 마주하게 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는 기민성과 개인적 능력을 앞세운 인력이 세상을 바꿀 ‘신노동자’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임금으로 노력의 대가를 받는 임금 노동자가 아닌, 어떤 주체와도 자유롭게 노동 계약을 맺는 ‘인디펜던트 워커’, 그리고 ‘A기업, B 상무’란 타이틀만 빼면 나를 소개할 길이 막막한 ‘직장인’ 대신 주특기를 무기로 독자적 자생력을 확보한 ‘직업인’의 가치가 다시 한번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인디펜던트 워커’의 노동력과 이들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의 질은 회사를 방패삼아 때로는 ‘아름답게’ 과대평가되는 직장인의 모습과 달리 이들이 고객을 만나는 각각의 플랫폼에서 생생한 ‘민낯’을 드러낼 것입니다. 실제 고객들의 냉철한 리뷰는 도려내기 어려운 레퍼런스로 축적되며 각각의 노동자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기에, 개인적 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기업에서는 원격 근무(리모트워크) 등을 포함하는 스마트워크 확산으로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이에 맞춰 투명한 수평적 소통이 강조되면서 조직 내 소통과 신뢰에 대한 선진화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배려를 바탕으로 말하는 바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게 하는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의 중요성은 이미 여러 조직에서 주요 과제로 책정되고 있습니다. 스마트워크를 돕는 기업용 메신저 기업 ‘슬랙’의 핵심 가치가 ‘공감과 예의(Empathy & Courtesy)’인 것은 일과 일하는 방식의 미래에 대해 큰 인사이트를 줍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인 스튜어드 버터필드는 조직원 간 상호 대화에 있어 비폭력 대화에 기반한 언어의 ‘톤 앤드 매너’에 주목하라며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의미로, ‘Words are Hard!’를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미래에도 일과 노동자의 경쟁력은 누구나 나를 찾게 만드는 냉철한 능력과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소통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일의 미래에 대한 모범 답안이 따뜻함과 차가움을 조화시키는 중용에 있다니, 결국엔 일이라는 주제에서도 철학적 결론을 마주하게 됩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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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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