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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소확행, 소귀행, 그리고 CSR

박영규 | 247호 (2018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컫는 소확행이 최근의 트렌드다. 잔잔하면서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순간들을 확보하자는 의도는 좋지만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소확행을 얻기 위해서는 그를 위한 소귀행, 즉 자질구레하면서도 귀찮은 일들을 끊임없이 해치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책임지는 일 없이는 성과를 낼 수 없고,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처리하지 않고는 가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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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소비자는 서로 소통한다. 상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공급하는 주체는 기업이지만 수요를 결정하는 주체는 소비자다. 소비자들의 기호나 취향, 삶의 패턴이 변하면 그에 따라 시장도 바뀐다. 기업은 바뀐 환경에 맞춰 자원의 투입량과 생산량을 조절해야 한다.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하는 기업은 도태된다.

2018년 기업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트렌드 중 하나가 소확행(小確幸)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소확행은 시장에서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주거 형태, 레저산업, 뷰티, 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소확행을 관찰할 수 있다. 집은 자신만의 소확행을 누리는 플랫폼으로 변신 중이고, 필라테스나 요가와 같이 일상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디퓨저, 코지 필링 양말, 에코백 등 소소한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상품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도 소확행과 무관하지 않다.

소확행이란 말을 처음으로 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운동을 한 후 벌컥벌컥 들이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차곡차곡 갠 수건이 가득 들어찬 수납장을 바라보는 시선, 추운 겨울 이불 속을 파고드는 고양이의 따스한 촉감 등을 소확행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밥, 혼술이 자연스러운 삶의 한 형태가 됐듯 욜로족이 늘면서 소확행이 우리 삶에 점점 더 깊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부나 권력보다는 내 몸과 마음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더 소중한 가치라는 생각이 소비패턴을 넘어 삶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장자의 인생관도 소확행과 유사하다. 『장자』 곳곳에 등장하는 우화에서 그런 알레고리가 읽힌다. ‘지락’ 편에 나오는 순임금과 선근의 다음 대화가 대표적이다. 순임금이 “나보다 당신이 더 현명하다”며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선근은 이렇게 말한다.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베옷을 입으며, 봄이면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몸은 일하기에 충분할 만큼 튼튼하며, 가을에는 곡식을 거둬들여 몸을 편히 쉴 수 있습니다.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쉬면서 천지 사이를 유유히 소요하며 마음은 한가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천하를 맡는단 말입니까?” 궁궐 같은 큰 집에 억만금의 재물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는 작은 집, 적은 월급이라도 하루하루를 마음 편히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가르침이다. ‘소요유’ 편에서는 짧은 경구로 소확행을 예찬하고 있다. “뱁새가 깊은 산속에 둥지를 틀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셔도 제 배만 부르면 족하다. 鷦鷯巢於深林(초료소어심림) 不過一枝(불과일지) 偃鼠飮河(언서음하) 不過滿腹(불과만복)”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척’ 편에서는 소확행을 정언명령으로 선포하고 있다. “평범한 것이 행복이다. 나머지는 해롭다. 平為福(평위복) 有餘為害者(유여위해자)”

소확행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소소한 행복이지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수납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깨끗한 수건들이 주는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빨래라는 노동에 먼저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고양이가 주는 따스한 행복감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그가 싼 똥과 오줌을 치우는 수고부터 해야 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누리기 위해서는 소소하지만 귀찮은 행동(소귀행)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장자는 ‘응제왕’ 편에 나오는 다음 우화를 통해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도(道)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소귀행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유명한 무당이 있었다. 계함은 사람들의 길흉화복뿐만 아니라 죽는 날짜까지 알아맞히는 것으로 유명했다. 호자의 제자인 열자가 계함을 만나본 후 그 신통함에 반해서 흥분된 마음으로 스승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스승님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스승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났습니다.” 호자는 혀를 끌끌 차면서 제자를 나무란다. “네가 오랜 세월 내 밑에서 수양했는데 헛공부를 했구나.” 그러고는 무당을 자신에게 한번 데려오라고 말한다. 열자는 계삼을 스승에게 데려간다. 호자를 만나고 나온 계함은 열자에게 “애석하지만 당신의 스승은 곧 죽는다”고 말한다. 열자가 이 말을 전하자 호자는 다음 날 계함을 다시 데려오라고 말한다. 호자를 두 번째 만나고 나온 계함은 “나를 만난 것이 효험이 있었는지 당신의 스승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호자는 열자에게 계함을 다시 데려오라고 말한다. 호자를 세 번째 만난 계함은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혼비백산 줄행랑을 친다. 열자가 스승에게 그 이유를 묻자 호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자유자재로 변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깜짝 놀라서 도망간 것이다.” 열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한다. 그리고 3년간 두문불출 수양에 증진해 도(道)에 이른다.

이때 열자가 한 행동은 딱 두 가지였다. 아내를 위해 밥을 짓는 일과 돼지에게 밥을 챙겨주는 일이다. 원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列子(열자) 三年不出(삼년불출) 爲其妻爨(위기처찬) 食豕如食人(식시여식인)” 찬(㸑)자는 나무를 넣고 불을 때는 부엌의 아궁이를 형상화한 글자로, 밥을 짓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시(豕)자는 돼지를 뜻하는데 눈여겨볼 대목은 돼지에게 밥을 먹이되(食豕) 사람에게 밥을 먹이는 것과 똑같이(如食人) 했다는 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를 위해 부엌일을 하는 것과 돼지에게 정성껏 밥을 챙겨주는 것은 무척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특히 3년간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족과 타인, 동물과 자연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도의 세계에 이르고, 그렇게 해서 도달한 도의 세계에서 자유와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우화의 가르침이다. 소확행은 도를 닦은 결과 누리는 삶의 모습이고, 소귀행은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쏟아붓는 땀과 정성, 수고와 노동이다.

계약이 성사된 후 팀원들끼리 주고받는 하이파이브, 월급명세서를 받아든 샐러리맨들의 입가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 퇴근 후 삼겹살집에서 건배할 때 쨍하고 울려 퍼지는 소주잔의 경쾌한 소리 같은 것들이 CEO를 비롯한 기업 구성원들의 소확행이다. 여기에도 예외는 없다. 이처럼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번거롭고 성가신 일부터 해야 한다. 계약을 성사시켜 하이파이브를 날리기 위해서는 먼저 발품을 팔면서 땀을 흘려야 하고, 소주잔의 경쾌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불평불만을 듣고 성심껏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기업의 소귀행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으로 귀결된다. 기업에 책임은 성가시고 불편하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 CSR이다. 이해관계자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기업 활동으로 남긴 이익으로 시민사회의 그늘진 곳을 돌보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기업의 소확행은 좀 더 크고 지속가능한 행복으로 진화할 수 있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교수, 중부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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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규chamnet21@hanmail.net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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