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3. 식물에서 배우는 장수의 지혜

식물의 진화와 장수기업의 공통점? 개체 간 ‘경쟁’보다 ‘협력’

245호 (2018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진화에 성공한 식물과 장수기업의 공통점은 ▲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량 ▲ 핵심 경쟁력에 집중한 차별적 생존 전략 ▲ 생존과 번영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의 전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상호 협력을 통한 집단 선택의 진화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조류 식물을 체내에 기르면서 바다의 숲이 된 산호초, 균류와의 동맹을 통해 장수 식물이 된 지의류, 곤충을 번식의 매개물로 활용한 현화식물의 사례 등을 통해 21세기 플랫폼 비즈니스 생태계에 필요한 협력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장수(長壽)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염원이다. 기업 또한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 최대한 오랫동안 존속하길 바란다. 의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점차 길어지는 반면 기업의 기대 수명은 그 반대다. 미국 컨설팅사 액센츄어(2010)는 S&P 500지수 편입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90년 50년에서 2010년 15년으로 단축됐고, 2020년에는 10년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1 포브스(2011)는 글로벌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이 약 30년이며, 이들 기업이 70년간 존속할 확률이 18%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기업의 기대 수명이 짧아지고 있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변화가 예견되는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과연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지속적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 질문의 해답을 급격한 생존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진화에 성공한 식물의 생존 전략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개체 간 경쟁보다 협력에 주목

진화에 성공한 식물의 특성에서 장수기업과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량’이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생존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식물종이 사라졌다. 오직 새로운 생존방식에 적응한 종(種)만이 살아남았다. 장수기업 또한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둘째, ‘핵심 경쟁력에 집중한 차별적 생존전략’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바탕을 둔 차별적 강점을 활용해 경쟁에 승리한 종만이 생존과 번영의 기회를 확보했다. 지속적 성장에 성공한 기업은 예외 없이 핵심 기술이나 사업에 집중하고 경쟁 역량을 선별해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셋째, ‘생존과 번영의 축적된 노하우를 세대를 거쳐 전이하는 전략’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최적화된 생존과 번영의 노하우를 유전적 저장장치인 DNA에 담아 기상천외한 방법을 통해 후세에 전달하는 데 성공한 식물만이 오랫동안 종의 권세를 누렸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로 많은 투자와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공 노하우 혹은 경영 철학을 조직 전체에 내재화하고, 흔들리지 않는 조직문화로 구축해야만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베인&컴퍼니(2014)도 전 세계 장수기업을 분석한 결과 적응(외부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 집중(핵심 사업에 주력, 타 기업과 차별화), 내재화(성공 경험을 자사 문화로 구축)를 3대 성공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2

하지만 필자는 최근 진화 연구의 초점이 개체의 유전적 변이의 결과에서 개체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옮겨가고 있는 데 주목한다. 최근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진화의 원동력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진화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생존경쟁’이다. 찰스 다윈(C. Darwin)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생물은 서로 경쟁을 한다’는 로버트 맬서스(T. Malthus)의 경제학적 입장을 반영해 ‘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아 진화의 기회를 얻는다’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협력을 통해 집단이 선택돼온 진화적 사례가 속속 밝혀지면서 경쟁 논리만으로는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개체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협력을 통한 종(種) 다양성이 확보됐고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앞으로 다가올 ‘초연결사회’에서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생존 영역을 확장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협력을 통한 진화’의 증거를 식물의 진화사에서 찾아봄으로써 기업의 장수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바다의 숲을 이룬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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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다. 하나의 세포 덩어리에 불과했던 원시생명체는 물과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생물로 진화했다. 그 주인공은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의 원시 조상이다. 단세포의 박테리아는 이후 조류(藻類, algae)식물로 진화해 바다는 물론 대기에 풍부한 산소를 만들어내고 바닷속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틀을 다진다.

바닷속에도 숲이 있다. 얕은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산호초다. 산호초는 좁게는 수십m에서 넓게는 수천㎞에 이르기까지 형성된다. 그곳에서 다양한 바다 생명체들이 모여 각자의 생존방식을 유지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육지에서 종(種) 다양성을 책임지는 곳이 숲이라면, 바다에서는 산호초가 그 역할을 한다.

산호는 동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풀과 나무가 모인 숲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산호가 광합성을 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이유는 산호가 조류식물을 체내에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산호는 원뿔이나 원통 형태의 폴립(coralita)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속은 비어 있다. 마치 고무장갑의 손가락과 같은 구조다. 이곳에 물의 흐름을 타고 들어온 쌍편모조류(Dinoflagellate)를 소화시키지 않고 가둬 둔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인산염이나 질산염 같은 양분까지 공급해준다. 그러면 산호 폴립 속에 자리한 조류는 안정적인 광합성을 할 수 있게 되고, 광합성을 통해 생산된 영양분을 산호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하게 된다. 그 덕분에 산호는 주변의 다른 동물보다 빠르게 자라고, 더 많이 번식할 수 있게 된다. 새끼 산호들은 기존 산호초에 붙어 성장하고, 어미 산호와 마찬가지로 조류를 끌어들여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산호초는 빠르게 생존 영역을 확장해가는데 이곳에 해면동물이나 조개, 성게와 새우, 작은 물고기 등이 모여든다. 물론 김, 미역, 파래 등과 같은 해조류도 풍부해진다. 산호초에서 발견되는 생물은 약 3만 종에 이른다고 하니 ‘바다의 숲’이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3

2. 협력을 통해 장수 생명체로 등극한 지의류

바다의 숲이 형성된 지 한참 후 육지에도 숲이 형성됐다. 최초의 상륙 작전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육지의 생존 환경은 바다와 달리 매우 척박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는 강한 자외선과 뜨거운 열기, 심한 일교차와 건조한 대기, 무엇보다 바닷속에서 경험하지 못한 중력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사방이 물이고 물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며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며 살던 바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지옥과도 같다. 육상 생활에 먼저 도전을 했다고 추측되는 종류는 구조가 단순한 녹조류다. 그 이유는 녹조류의 표면에 큐티클층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즉 체내의 수분 증발을 막아 건조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게 해주고 몸을 지탱해 주는 큐티클층이 육지 생활의 필수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4 하지만 녹조류의 큐티클층도 뜨거운 태양열을 언제까지나 막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다 두꺼운 방패가 필요하지만 유전적 변이를 통해 스스로 두꺼운 갑옷을 만드는 몸의 구조로 변신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물은 또 한 번 동맹을 선택한다. 바로 진균류(fungi)를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오염이 되지 않은 숲에 가면 바위면이나 나무껍질 등에서 청회색의 얼룩을 쉽게 볼 수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마치 페인트 얼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청회색 얼룩의 정체는 지의류(地衣類)라는 생명체다. 녹색의 조류와 하얀색의 균류(곰팡이)가 만나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가는 공생생물이다. 바다에 살던 조류가 뜨거운 태양열에 체내 수분을 모조리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곰팡이가 보호막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실제 지의류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조류는 바위면에 고착돼 있고, 그 위를 균류가 이불처럼 뒤덮고 있는 모습이다. 균류 덕분에 육상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을 균류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지의류는 비 온 뒤에는 청회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물을 만난 조류가 반가운 마음에 숨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조류와 균류의 ‘결혼’은 단지 땅 위의 새로운 환경에 생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지의류는 전 세계에 2만∼3만여 종(種)이 지금까지 존재한다. 더욱이 지구상 거의 모든 기후대에 완벽하게 적응해 자생하고 있다. 해안가에서부터 해발고도 6000m의 고산지역에서도 서식하고, 적도의 사막은 물론 극한(極寒)의 남극과 북극에서도 서식하고 있다. 식물계에서 이 정도의 완벽한 기후 적응력을 갖춘 식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의류의 가치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2008년 유럽우주국의 과학자들은 국제우주정거장에 박테리아와 각종 씨앗, 지의류와 조류 샘플을 아무 보호장치 없이 정거장 밖의 우주공간에 부착시켜 18개월을 보낸 뒤 지구로 다시 가져왔다. 이 샘플들은 지구에서 측정되는 자외선의 1000배에 달하는 자외선 폭격을 당하고, 영하 12도에서 영상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변화를 200번 거친 것이라고 한다. 지구로 다시 가져온 샘플을 분석한 결과 가장 강인한 생물은 지의류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지구로 돌아온 지의류의 일부 종은 정상적으로 다시 성장했다고 한다.5 이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의류는 육상 생태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대표적인 장수 생명체가 됐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는 약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가장 오래 살아남아 생명 역사에서 진정한 승자의 왕좌를 차지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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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무와 균, 땅밑 네트워크를 만들다


지의류 이후에도 식물과 균(菌)의 동맹은 계속 진화했다. 녹조류가 땅 위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면서 진화를 거듭해 커다란 나무가 된 이후에도 식물은 균류와의 공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나무와 균(곰팡이)의 협력 관계는 땅속에서 단단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무는 뿌리를 이용해 물과 양분을 흡수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잔뿌리에 난 털을 이용해 물과 양분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력을 조금만 더 높여 살펴보면 뿌리털에는 하얀 실타래가 엉켜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얀 실타래는 진균류(fungi)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균사(菌絲)라고 한다. 균사는 진균류의 포자가 발아해 발달하는 실모양의 세포열(細胞列)로서 식물의 뿌리, 가지, 잎에 해당하는 영양체다. 그래서 물과 양분의 흡수가 가능하다. 균사의 길이는 나무뿌리의 몇십 배에 이르기 때문에 식물의 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뻗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균사의 기능 덕분에 식물은 뿌리가 닿지 않는 땅속 깊은 곳의 물과 양분까지도 얻을 수가 있다. 또 나무뿌리에서 자라는 균류, 균근(菌根)은 다른 나무의 뿌리와 접촉하면서 그 뿌리에 서식하는 다른 균류와 접촉하게 된다. 이러한 접촉은 나무 간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네트워크망’ 역할을 한다. 이 네트워크망을 통해 영양소가 교환되고, 활발한 정보 교류가 일어난다. 균류가 숲의 인터넷 역할을 하는 셈이다.6 나무는 땅속에서 소리 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균근에게 충분한 포도당을 제공하며 극진히 대접한다. 어떤 경우에는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의 80%까지 내준다고 한다. 단순히 고마움의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발아하고, 뿌리를 내린 후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균근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무는 자신의 생존과 영역 확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균근에 세금을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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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육상 생태계에 파괴적 혁신 일으킨 현화식물

바다를 벗어나 땅 위에서 생존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한 식물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육지 안쪽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한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더 넓은 잎을 만들었고, 바람을 통해 씨를 더 멀리 퍼트리기 위해 키 높이 경쟁에 집중했다. 하지만 경쟁은 언제나 승자와 함께 패자를 낳는다. 자연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지만 그렇다고 경쟁에 패한 생명체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혁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1억4000만 년 전 열대우림에는 돌연변이 식물이 등장한다. 당시 식물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주인공은 큰 키의 겉씨식물이었다. 겉씨식물의 큰 키는 바람을 이용해 씨를 멀리 퍼트리기에 매우 유리했다. 이러한 전략으로 겉씨식물은 영토를 확장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초대륙(pangaea)의 이동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물의 흐름이 바뀌고, 바람의 길까지 바뀌었다. 세계 지도가 빠르게 변하면서 식물도 계속해서 바뀌는 생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예전에 없던 이상한 시도를 한 키 작은 식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꽃이라는 새로운 기관을 만든 현화식물이다.

꽃이 피는 현화식물이 특별한 이유는 다른 생명체를 번식의 매개물로 이용하는 발칙한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꽃은 잎과 줄기의 유전적 변형으로 만들어졌다. 아마도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꽃의 구조를 살펴보면 암술을 중심으로 주변을 수술이 둘러싸고 있고, 다시 수술과 암술을 꽃잎이 울타리처럼 보호하며, 그 아래에 꽃받침이 이것들을 모아 지탱하고 있다. 결국 암술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수정이 이뤄지는 장소로 안내하는 ‘깔때기 모양’의 구조로 설계돼 있다. 이러한 설계 의도는 매우 명확하다. 바로 수정(受精)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방문객을 초청하기 위해서는 꽃잎을 화려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또한 꽃에는 생식기관과 함께 ‘꿀’이 있다. 많은 에너지의 투자를 요하는 꿀을 왜 만들었을까? 역시 방문객이 찾아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러한 교묘하고 발칙한 시도는 육상 생태계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현화식물의 과감한 투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곤충이다. 단지 화려함에 현혹돼서가 아니라 식량을 구하러 온 것이다. 현화식물의 첫 번째 방문객은 사냥꾼이었던 셈이다. 수술에 붙은 꽃가루는 곤충에게는 일용할 양식이다. 더구나 꽃 속 깊숙이 숨겨놓은 꿀은 생각지도 못한 최고의 선물이다. 당연히 곤충 입장에서는 더 많은 꽃가루와 꿀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 결과 곤충은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을 늘리고 부리가 길어지며 털이 더 많은 모습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 부지런히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면서 양식을 구했다. 이러한 곤충의 노력 덕분에 현화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더 화려하고 교묘한 구조를 가진 꽃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이러한 현상을 공진화(共進化)라고 한다. 다시 말해 특정 개체의 진화적 변화가 다른 개체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꽃의 등장은 곤충의 진화를 유발했고, 곤충의 진화는 다시 꽃의 진화로 이어졌다. 진화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 현화식물이 육상 식물계의 8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진화의 패러다임이 ‘개체의 진화’에서 ‘개체 간의 진화’로 바뀌는 역사적 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요구되는 파괴적 혁신이 식물계의 경영 환경에서는 이미 1억4000만 년 전에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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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복수정 기술, 동식물의 공진화 촉진

식물과 곤충의 협력을 통한 진화가 가속화되면서 식물은 또 다른 생명체를 이용하기 위해 더욱 과감하고 도발적인 시도를 한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속씨식물이다. 씨가 속에 숨어 있다는 의미다. 곤충 덕분에 수정(하나의 정핵과 하나의 난핵의 결합)에 성공하면 씨가 생긴다. 그런데 때때로 수정 과정에서 두 개의 정핵이 난핵에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수정 실패로 끝났겠지만 특이하게 수정이 두 번 이뤄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식물은 중복수정이라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 중복수정은 두 개의 정핵이 난핵과 만나 수정이 돼 하나는 씨로, 또 하나는 배젖(씨가 발아할 때 사용되는 영양분)이 된다. 중복수정으로 탄생한 씨앗은 발아의 확률이 크게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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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젖에 저장된 양분은 씨앗이 발아하는 데 필요하지만 이것을 탐내는 동물도 많다. 사실 배젖뿐만 아니라 밑씨가 들어 있던 씨방은 훌륭한 식사거리다. 씨방에는 달콤한 당류가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열매라고 부르는, 다양한 동물이 사랑하는 먹잇감이다. 속씨식물은 점차 씨방에 더 달고 맛있는 영양덩어리를 저장하고, 겉은 더 두껍고 단단하게 포장했다. 그 이유는 곤충의 출입은 금하고, 더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새나 포유류 등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속씨식물은 씨방을 더욱 업그레이드해 달콤한 향기까지 나도록 개발했고, 이 ‘신제품’에 열광한 동물이 바로 (인간의 가까운 친척이라 볼 수 있는) 원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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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왕성한 식욕으로 속씨식물의 씨앗이나 씨방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나면 배설을 한다. 배설물 안에는 미처 소화가 되지 않은 씨앗이 포함돼 있고, 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쳐 밖으로 나온 씨앗은 결과적으로 비옥한 환경에서 발아를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동물의 먹잇감이 된 속씨식물은 더 유리한 환경에서 발아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생존 영역 또한 더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속씨식물이 지구 곳곳을 지배하게 된 배경이다. 동시에 새와 포유류, 원숭이 등 식물의 열매를 탐닉하던 동물은 먹이가 되는 열매를 더 쉽고,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감각(시력이나 후각)과 운동력을 발달시키게 됐다. 지금의 숲은 이러한 식물과 동물의 협력을 통해 유지되는 생태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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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업 생존의 키워드도 ‘협력’

지금까지 식물의 진화사를 통해 협력이 진화의 원동력이 된 이야기를 살펴봤다. 육상 생태계의 기본은 식물이다. 바다에서 표류의 삶을 살던 식물이 육지로 올라와 정착의 삶을 살기 위해 뿌리와 줄기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단단한 바위는 작은 알갱이로 잘게 부서졌고, 수명을 다한 식물의 낙엽이나 사체(死體)로 지층은 더욱 두껍게 쌓였다. 많은 시간이 걸려 풍부한 영양분을 간직한 토양이 형성됐고, 이것은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터전이 됐다. 한편, 식물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균류와의 동맹을 강화해갔고, 곤충은 물론 새와 작은 동물을 이용해 생존 영역을 빠르게 확장해갔다. 또 균류와 식물의 네트워크는 땅 밑에서 빠르게 확장됐고, 곤충과 동물은 부지런히 꽃과 열매를 사냥하며 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숲이 만들어졌고, 숲은 육상 생물의 삶의 터전이 됐다. 식물과 다른 생물과의 협력을 통한 공진화는 끊임없이 진행될 것이고, 생태계는 복잡하지만 더욱 건강하게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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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을 통한 진화’는 21세기 기업의 생존 전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지구 역사는 급격한 환경 변화의 연속이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종이 사라지고 많은 종이 번성했다. 그러면서도 생태계 전체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는 생태계가 하나의 유기체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미래의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 우선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장수기업의 가치를 단순히 ‘오래 살아남는’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기업의 생존기간을 특정 개체의 생존 기간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기업은 다양한 개체들이 모여 이뤄진 유기적 공동체기 때문이다. 기업은 그 자체로서 생태계를 형성하고, 다른 생태계와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유지된다. 따라서 어떤 개체들이 모여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는가, 또 기업이 활동하는 시장환경은 어떤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따라 생존 비결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기업 경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존환경에서 생존 영역을 확장하고, 지속적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중국의 온라인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투자설명서에 ‘생태계(Ecosystem)’라는 단어를 160번이나 반복 사용했다고 한다.7 ::C::비즈조선, “인터넷 경제시대 ‘비즈니스 생태계’ 만들고 생존하는 법”, 2015.09.10:/C::여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등 개개인이 알리바바의 기반이며, 개개인의 니즈가 융합과 분열을 반복하면서 지속적인 번영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마윈의 경영 철학이 반영돼 있다. 기업을 생태계에 비유한 것은 마윈이 처음이 아니다. 생태계라는 용어가 경영학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93년 제임스 무어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논문에서 “기업을 하나의 산업에 속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산업에 걸친 비즈니스 생태계 속에 존재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객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한다.8 ::C::Deloitte Anjin Review, September 2015 No.5::/C::

비즈니스 생태계는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ICT를 기반으로 한 산업 간 융복합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비즈니스 생태계의 진화를 촉발하고 있다. 금융, 제조, 유통,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산업의 비즈니스 인프라가 디지털화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의 자체적인 역량만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 많은 기업이 단일 기업으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연결의 경제성’을 실현하고자 적극적인 기업 간 동맹을 활발히 구축하고 있다. 또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창출하고, 그 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호관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 간 초연결성은 더욱 강화되고 가속화될 것이다. 미래의 생존을 준비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주도적으로 비즈니스 생태계를 건설하거나 발전을 주도하든지, 아니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적극적 동맹관계를 통해 발전을 모색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협력을 통한 진화의 원칙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는 자신의 책 『마이크로코스모스』에서 “생명은 전투가 아닌 네트워킹으로 지구를 정복했다”고 말했다.9 그는 “생명체들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협력함으로써 증식하고 복잡해졌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우리 몸속 세포의 진화로 설명했다. 이를 설명하려면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원시의 바닷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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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년 전 지구의 대기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다. 바닷물의 분자 상태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시아노박테리아가 광합성을 하면서 산소를 배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바닷속과 대기에 산소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바닷속에 살던 대부분의 원시 생물은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세균(박테리아)이었다. 혐기성 세균 입장에서 산소는 오히려 오염물질이었고 생존을 위협하는 독소였다. 그런데 원시생물 중에는 소수지만 산소를 좋아하는, 다시 말해 산소 호흡을 하는 ‘호기성’ 세균, 프로테오박테리아도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이유로 인해 혐기성 세균이 호기성 세균을 자신의 세포막 안으로 끌어들이게 됐다. 호기성 세균은 산소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는 혐기성 세포 입장에서도 큰 이익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공생체의 상태로 진화한 것이 바로 진핵생물(미토콘드리아를 가진 생물)이다.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호기성 세균이 유전적으로 변형된 세포 내 소기관으로서 우리 신체의 모든 세포 안에도 자리 잡고 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 심지어는 곰팡이의 세포 안에서도 산소를 이용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10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태초에 혐기성 세균과 호기성 세균의 ‘공생’에서부터 진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생명 역사는 처음부터 ‘협력’을 통해 시작된 것이다.

숲은 전체로서 진화한다. 숲이 경이로운 것은 ‘경쟁과 공생’이라는 상반되는 현상이 유지되며,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명 역사가 시작된 이래 생태계는 경쟁과 협력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유지돼 왔다. 이는 21세기 비즈니스 생태계 또한 마찬가지일 것 이다.

유재우 수피아에코라이프 대표 supia_eco@naver.com

필자는 한양대 광고홍보학과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충북대 생명과학대학원 산림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터브랜드에서 브랜드 경영 컨설턴트를, 인컴브로더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를 역임했다. 2006년 국내 최초로 숲에서 배우는 인재개발 교육전문기관인 ㈜수피아에코라이프를 설립하고 조직개발 및 리더십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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