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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식물에서 배우는 장수의 지혜

식물의 진화와 장수기업의 공통점? 개체 간 ‘경쟁’보다 ‘협력’

유재우 | 245호 (2018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진화에 성공한 식물과 장수기업의 공통점은 ▲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량 ▲ 핵심 경쟁력에 집중한 차별적 생존 전략 ▲ 생존과 번영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의 전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상호 협력을 통한 집단 선택의 진화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조류 식물을 체내에 기르면서 바다의 숲이 된 산호초, 균류와의 동맹을 통해 장수 식물이 된 지의류, 곤충을 번식의 매개물로 활용한 현화식물의 사례 등을 통해 21세기 플랫폼 비즈니스 생태계에 필요한 협력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장수(長壽)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염원이다. 기업 또한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 최대한 오랫동안 존속하길 바란다. 의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점차 길어지는 반면 기업의 기대 수명은 그 반대다. 미국 컨설팅사 액센츄어(2010)는 S&P 500지수 편입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90년 50년에서 2010년 15년으로 단축됐고, 2020년에는 10년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1 포브스(2011)는 글로벌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이 약 30년이며, 이들 기업이 70년간 존속할 확률이 18%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기업의 기대 수명이 짧아지고 있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변화가 예견되는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과연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지속적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 질문의 해답을 급격한 생존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진화에 성공한 식물의 생존 전략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개체 간 경쟁보다 협력에 주목

진화에 성공한 식물의 특성에서 장수기업과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량’이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생존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식물종이 사라졌다. 오직 새로운 생존방식에 적응한 종(種)만이 살아남았다. 장수기업 또한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둘째, ‘핵심 경쟁력에 집중한 차별적 생존전략’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바탕을 둔 차별적 강점을 활용해 경쟁에 승리한 종만이 생존과 번영의 기회를 확보했다. 지속적 성장에 성공한 기업은 예외 없이 핵심 기술이나 사업에 집중하고 경쟁 역량을 선별해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셋째, ‘생존과 번영의 축적된 노하우를 세대를 거쳐 전이하는 전략’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최적화된 생존과 번영의 노하우를 유전적 저장장치인 DNA에 담아 기상천외한 방법을 통해 후세에 전달하는 데 성공한 식물만이 오랫동안 종의 권세를 누렸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로 많은 투자와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공 노하우 혹은 경영 철학을 조직 전체에 내재화하고, 흔들리지 않는 조직문화로 구축해야만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베인&컴퍼니(2014)도 전 세계 장수기업을 분석한 결과 적응(외부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 집중(핵심 사업에 주력, 타 기업과 차별화), 내재화(성공 경험을 자사 문화로 구축)를 3대 성공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2

하지만 필자는 최근 진화 연구의 초점이 개체의 유전적 변이의 결과에서 개체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옮겨가고 있는 데 주목한다. 최근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진화의 원동력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진화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생존경쟁’이다. 찰스 다윈(C. Darwin)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생물은 서로 경쟁을 한다’는 로버트 맬서스(T. Malthus)의 경제학적 입장을 반영해 ‘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아 진화의 기회를 얻는다’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협력을 통해 집단이 선택돼온 진화적 사례가 속속 밝혀지면서 경쟁 논리만으로는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개체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협력을 통한 종(種) 다양성이 확보됐고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앞으로 다가올 ‘초연결사회’에서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생존 영역을 확장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협력을 통한 진화’의 증거를 식물의 진화사에서 찾아봄으로써 기업의 장수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바다의 숲을 이룬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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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다. 하나의 세포 덩어리에 불과했던 원시생명체는 물과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생물로 진화했다. 그 주인공은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의 원시 조상이다. 단세포의 박테리아는 이후 조류(藻類, algae)식물로 진화해 바다는 물론 대기에 풍부한 산소를 만들어내고 바닷속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틀을 다진다.

바닷속에도 숲이 있다. 얕은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산호초다. 산호초는 좁게는 수십m에서 넓게는 수천㎞에 이르기까지 형성된다. 그곳에서 다양한 바다 생명체들이 모여 각자의 생존방식을 유지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육지에서 종(種) 다양성을 책임지는 곳이 숲이라면, 바다에서는 산호초가 그 역할을 한다.

산호는 동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풀과 나무가 모인 숲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산호가 광합성을 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이유는 산호가 조류식물을 체내에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산호는 원뿔이나 원통 형태의 폴립(coralita)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속은 비어 있다. 마치 고무장갑의 손가락과 같은 구조다. 이곳에 물의 흐름을 타고 들어온 쌍편모조류(Dinoflagellate)를 소화시키지 않고 가둬 둔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인산염이나 질산염 같은 양분까지 공급해준다. 그러면 산호 폴립 속에 자리한 조류는 안정적인 광합성을 할 수 있게 되고, 광합성을 통해 생산된 영양분을 산호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하게 된다. 그 덕분에 산호는 주변의 다른 동물보다 빠르게 자라고, 더 많이 번식할 수 있게 된다. 새끼 산호들은 기존 산호초에 붙어 성장하고, 어미 산호와 마찬가지로 조류를 끌어들여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산호초는 빠르게 생존 영역을 확장해가는데 이곳에 해면동물이나 조개, 성게와 새우, 작은 물고기 등이 모여든다. 물론 김, 미역, 파래 등과 같은 해조류도 풍부해진다. 산호초에서 발견되는 생물은 약 3만 종에 이른다고 하니 ‘바다의 숲’이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3

2. 협력을 통해 장수 생명체로 등극한 지의류

바다의 숲이 형성된 지 한참 후 육지에도 숲이 형성됐다. 최초의 상륙 작전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육지의 생존 환경은 바다와 달리 매우 척박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는 강한 자외선과 뜨거운 열기, 심한 일교차와 건조한 대기, 무엇보다 바닷속에서 경험하지 못한 중력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사방이 물이고 물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며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며 살던 바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지옥과도 같다. 육상 생활에 먼저 도전을 했다고 추측되는 종류는 구조가 단순한 녹조류다. 그 이유는 녹조류의 표면에 큐티클층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즉 체내의 수분 증발을 막아 건조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게 해주고 몸을 지탱해 주는 큐티클층이 육지 생활의 필수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4 하지만 녹조류의 큐티클층도 뜨거운 태양열을 언제까지나 막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다 두꺼운 방패가 필요하지만 유전적 변이를 통해 스스로 두꺼운 갑옷을 만드는 몸의 구조로 변신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물은 또 한 번 동맹을 선택한다. 바로 진균류(fungi)를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오염이 되지 않은 숲에 가면 바위면이나 나무껍질 등에서 청회색의 얼룩을 쉽게 볼 수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마치 페인트 얼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청회색 얼룩의 정체는 지의류(地衣類)라는 생명체다. 녹색의 조류와 하얀색의 균류(곰팡이)가 만나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가는 공생생물이다. 바다에 살던 조류가 뜨거운 태양열에 체내 수분을 모조리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곰팡이가 보호막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실제 지의류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조류는 바위면에 고착돼 있고, 그 위를 균류가 이불처럼 뒤덮고 있는 모습이다. 균류 덕분에 육상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을 균류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지의류는 비 온 뒤에는 청회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물을 만난 조류가 반가운 마음에 숨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조류와 균류의 ‘결혼’은 단지 땅 위의 새로운 환경에 생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지의류는 전 세계에 2만∼3만여 종(種)이 지금까지 존재한다. 더욱이 지구상 거의 모든 기후대에 완벽하게 적응해 자생하고 있다. 해안가에서부터 해발고도 6000m의 고산지역에서도 서식하고, 적도의 사막은 물론 극한(極寒)의 남극과 북극에서도 서식하고 있다. 식물계에서 이 정도의 완벽한 기후 적응력을 갖춘 식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의류의 가치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2008년 유럽우주국의 과학자들은 국제우주정거장에 박테리아와 각종 씨앗, 지의류와 조류 샘플을 아무 보호장치 없이 정거장 밖의 우주공간에 부착시켜 18개월을 보낸 뒤 지구로 다시 가져왔다. 이 샘플들은 지구에서 측정되는 자외선의 1000배에 달하는 자외선 폭격을 당하고, 영하 12도에서 영상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변화를 200번 거친 것이라고 한다. 지구로 다시 가져온 샘플을 분석한 결과 가장 강인한 생물은 지의류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지구로 돌아온 지의류의 일부 종은 정상적으로 다시 성장했다고 한다.5 이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의류는 육상 생태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대표적인 장수 생명체가 됐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는 약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가장 오래 살아남아 생명 역사에서 진정한 승자의 왕좌를 차지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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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무와 균, 땅밑 네트워크를 만들다


지의류 이후에도 식물과 균(菌)의 동맹은 계속 진화했다. 녹조류가 땅 위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면서 진화를 거듭해 커다란 나무가 된 이후에도 식물은 균류와의 공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나무와 균(곰팡이)의 협력 관계는 땅속에서 단단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무는 뿌리를 이용해 물과 양분을 흡수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잔뿌리에 난 털을 이용해 물과 양분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력을 조금만 더 높여 살펴보면 뿌리털에는 하얀 실타래가 엉켜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얀 실타래는 진균류(fungi)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균사(菌絲)라고 한다. 균사는 진균류의 포자가 발아해 발달하는 실모양의 세포열(細胞列)로서 식물의 뿌리, 가지, 잎에 해당하는 영양체다. 그래서 물과 양분의 흡수가 가능하다. 균사의 길이는 나무뿌리의 몇십 배에 이르기 때문에 식물의 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뻗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균사의 기능 덕분에 식물은 뿌리가 닿지 않는 땅속 깊은 곳의 물과 양분까지도 얻을 수가 있다. 또 나무뿌리에서 자라는 균류, 균근(菌根)은 다른 나무의 뿌리와 접촉하면서 그 뿌리에 서식하는 다른 균류와 접촉하게 된다. 이러한 접촉은 나무 간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네트워크망’ 역할을 한다. 이 네트워크망을 통해 영양소가 교환되고, 활발한 정보 교류가 일어난다. 균류가 숲의 인터넷 역할을 하는 셈이다.6 나무는 땅속에서 소리 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균근에게 충분한 포도당을 제공하며 극진히 대접한다. 어떤 경우에는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의 80%까지 내준다고 한다. 단순히 고마움의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발아하고, 뿌리를 내린 후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균근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무는 자신의 생존과 영역 확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균근에 세금을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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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우

    유재우supia_eco@naver.com

    - 인터브랜드에서 브랜드 경영 컨설턴트, 인컴브로더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역임
    - 2006년 국내 최초로 숲에서 배우는 인재개발 교육전문기관인 ㈜수피아에코라이프를 설립하고 조직개발 및 리더십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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